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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염식의 위암 다발국가, 한국과 일본

hope888 2022. 3. 14. 11:42

 

우리나라와 일본은 세계1, 2위를 다투는 위암 다발국가다. 미국과 영국은 10만 명당 위암 발병률이 각각 7.2명과 12.5명으로 비교적 낮은 데 비해 우리나라와 일본은 각각 69.5명과 62.1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대국이면서 식생활도 서구식으로 많이 바뀐 일본인들의 위암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은 위암 취재를 시작한 우리에게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선진국을 자처하며 위생관념도 높다고 알려진 일본인들이 위암에 많이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일본인들이 위암에 많이 걸리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식습관을 관찰하면서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본인들은 우리처럼 쌀밥을 주식으로 먹으며 반찬으로 위암 발병에 많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젓갈류, 츠케모노(절임채소) 등의 염장식품과 야끼도리(구운 닭고기), 야끼니꾸(구운 쇠고기) 등 불에 탄 음식을 즐겨 먹는다. 반면에 암 발생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신선한 채소류나 과일 등은 적게 먹는 편이다.

과연 이런 식습관이 위암 발병과 관련이 있을까?

취재진은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야마가타(山形) 시를 찾았다. 야마가타 시는 일본 내에서도 위암 발병률이 높은 도시 중 하나이다. 일본 동북지방의 명문 야마가타 의과대학에서 위암의 원인과 예방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는 후카오 아키라 교수는 일본인들이 위암에 많이 걸리는 이유로 젓갈이나 츠케모노, 왜간장 등 소금기가 많은 염장 식품을 좋아하는 전통적인 고염식 습관을 들었다. 그에 따르면 염분이 우리 몸속에 들어가면 혈압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음식물의 염분농도가 높아질수록 위 점막을 많이 위축시킨다고 한다. 위막이 위축되면 위 속에 살고 있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염분과 합세해 위염을 일으키며, 위염이 만성화되면 위점막이 노화되어 발암물질에 대한 방어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야마가타 현은 동해에 근접한 지역으로 한국과 마주 보는 지역입니다. 겨울이 길고 춥기 때문에 채소나 어류를 염장하는 풍습이 있지요. 이 점은 한국도 아마 비슷할 겁니다. 냉장고가 없었던 옛날에는 채소나 어류를 염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염장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높은 염분의 음식물을 먹게 됩니다. 이것이 동북지방 사람들의 위암 발병률이 높은 것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 일본인들은 식탁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까?

 

취재진은 야마가타 시내에서 우동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시야마 씨를 만났다. 올해 59세의 이시야마 씨는 10년 전 위암 때문에 위의 3분의 2를 잘라낸 위암 환자다. 취재진이 그에게 평소에 즐겨 먹는 반찬을 보고 싶다고 하자 그는 부식 냉장고에서 자신이 즐겨 먹는 반찬그릇들을 꺼내놓았다. 우메보시(매실장아찌), 우엉 등 각종 츠케모노(절임채소)들과 오징어 젓갈, 생선 젓갈 등 그가 꺼낸 반찬들은 대부분 염장 식품들이었다.

겨우내 오래도록 보관해두고 먹어야 하기 때문에 염장한 절임음식을 많이 먹어왔다는 이시야마 씨는 어릴 때부터 평생 이런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특별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며 이와 같은 음식 때문에 자신이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말을 마치며 그는 취재진에게 한번 먹어볼 것을 권했다.

취재진이 젓가락을 들고 맛을 본 것은 정어리로 만든 젓갈류.

3~4cm 길이의 젓갈 한 가닥을 입에 넣자 강한 쓴맛이 입 안을 감돌았다. 생전 처음 접해보는 짜디짠 맛이어서 짠맛을 느끼기도 전에 쓴맛이 느껴진 것 같았다. 젓갈을 씹지 못한 것은 물론 입에 넣고 있기도 힘들어 그냥 뱉어내면서 이렇게 짠 음식을 매일 먹으면 암 아니라 무슨 병이라도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 수술을 받은 지 올해로 10년째.

이시야마 씨는 수술 전보다야 확실히 절임음식 섭취가 줄었지만 어릴 때부터 먹어온 오랜 습관 때문에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면서 야마가타에는 이런 츠케모노와 젓갈류를 파는 가게가 여러 곳 있다며 몇 군데를 소개해주었다.

이시야마 씨의 가게를 나와 몇 블럭을 걸어가자 일본 전통양식으로 지은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1층은 판매점, 2층은 살림집으로 된 구조의 건물이었는데, 1층에서는 여러 가지 채소들을 소금에 절인 츠케모노와 어류를 염장한 젓갈류 등을 팔고 있었다. 오이지, 장아찌, 우엉절임, 국화꽃 절임, 벚꽃절임, 풋고추 절임 등 많은 종류의 츠케모노와 창난젓, 멸치젓, 오징어젓 등 형형색색의 젓갈류들이 진열돼 있었다. 우리나라 젊은 주부들이 김치와 된장을 직접 담가 먹지 않고 마트나 시장에서 사 먹듯이 일본인들도 츠케모노나 젓갈류를 집에서 담가 먹는 사람보다 사서 먹는 사람이 늘어서 이런 가게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현지인은 물론 여행객들도 찾아와 선물로 사간다는 야마가타식 츠케모노, 휴가를 맞아 동북지방을 여행하고 있는 오사카 출신의 다나카 씨 부부는 “고향인 간사이 지방에서는 순무절임이나 오이절임 정도만 먹어봤는데 이곳에 진열된 수많은 츠케모노를 보니까 집안어른들 생각이 나서 선물하려고 몇 봉지를 골랐다” 며 샘플로 제공된 우메보시를 먹어보고 혀를 내두르고는 “동북지방 절임음식이 짜긴 짜네요, 우리 간사이식 절임은 이 정도는 아닌데, 아마 차와 함께 츠케모노를 먹는 야마가타의 전통 때문인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츠케모노를 파는 가게 안쪽은 식당이다. 동창회 모임인지, 마을 계 모임인지 5~6명의 할머니들이 츠케모노와 차를 즐기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거의 매 끼니마다 이렇게 츠케모노를 먹어왔다는 할머니들은 어렵게 살던 시절, 염분은 몸에 꼭 필요한 필수영양소였다고 한다.

 

"옛날엔 지금처럼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없었지요. 빨래만 예로 들어봐도 그땐 기계가 아니라 모두 손으로 해야 했었잖아요. 기차에 석탄을 때는 화부들도 손으로 다 했고요. 그렇게 힘을 쓰려면 염분을 많이 섭취해야 더욱이 쌀밥을 주식으로 하다 보니 부식으로 반찬이 필요한데, 없는 살림에 이것저것 반찬 만드는 것보다 간간하게 절임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입맛도 맞고 눈 깜짝할 새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울 수 있었어요. 저희들은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마지막에는 반드시 절임음식을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절임음식을 조금이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요. 절임음식이 맛없으면 그 앞에 먹은 음식까지 전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우리들에게 절임음식은 한약방에서 약 달일 때 절대 빠뜨리지 않고 넣는다는 감초 같은 것이에요. “

 

할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간간한 음식을 먹는 건 야마가타의 오랜 전통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김치나 장아찌, 젓갈류 등 고염식을 하는 것처럼 일본인들도 츠케모노와 젓갈류 등으로 짜게 먹는 습관이 만연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KBS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팀. 김정수 PD 지음 / 『위암』 / 경향미디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