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환자 되기 4

1. 압박 골절
“아이 씨 다 잃었네.'
조 할머니는 고스톱을 쳐서 돈을 잃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재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손자 생일 선물 사려고 들고 나온 돈에다 내일 병원 가서 물리치료 받으려고 마련해놓은 돈까지 싹 잃었다.
에잇! 하고 벌떡 일어서려는데 허리가 뜨끔했다. 윽,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어서 뜨끔한 기운이 배꼽 밑에서 몸을 한 바퀴 돌았다.
마치 뜨거운 허리띠를 두른 것처럼, 발걸음을 뗄 때마다 송곳으로 찌르는 듯했다. 진땀을 흘려가며 겨우 집에 도착했다. 자식들이 걱정할까봐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저녁을 먹었다. 빼놓지 않고 보는 드라마도 포기하고 들어가 누워버렸다. 꼼짝 않고 누워 있으면 안 아프지만, 다리라도 들어 옮길라치면 허리가 잘라지는 느낌이었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도 돌아눕다 깜짝 놀라 깨기를 여러 차례 하는 사이에 아침이 되었다. 잔 것 같지도 않았다. 아들이 직장 가서도 신경 쓸까 싶어 아들 며느리가 모두 집을 나간 후에야 조심조심 옷을 입고는 지주 다니는 의원에 갔다. 평소에는 의사 얼굴도 안 보고 물리치료실로 올라갔었다.
병원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젠 연기를 안 해도 되어서인지 아니면, 한 십분 걸어온 탓인지 유난히 아파왔다.
"아이고 원장님, 나 허리 아파 죽겠소.”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진찰대에 드러누우면서 의사에게 하소연했다.
"다치셨어요?" 의사가 컴퓨터에 얼굴을 박은 채 눈길도 안 주고 물었다.
"다친 게 아니고, 고스톱 치고 일어서는데 뜨끔하더니 이렇게 아파."
"담이 드셨겠지요, 사진 한번 찍어볼까요?" 의사가 그제야 머리를 들면서 말했다.
“그려, 찍어보우. 한참을 누웠다가 겨우 일어나면서 대답했다.
조 할머니는 손으로 허벅지를 잡으며 걸었다. 영락없는 허리 병 환자였다.
엑스레이를 찍고 외래로 다시 왔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엑스레이로 보기에는 이상 없어요, 물리치료 하시고 약 드시고 좀 지내보세요. 돌아다니지 말고 누워 계시고요.” 의사가 심드렁하게 말 했다.
이상 없다는 말에 조 할머니는 힘이 좀 났다. 찜질하고 주사도 맞고 나니 한결 나았다. 그래도 손자 생일 선물 사러 갈 엄두는 나지 않아서 그냥 집에 가서 누웠다. 신음 소리 안 나오게 이를 악물고 끼니를 때웠다. 애들이 알면 또 큰 병원 가자고 할 게 뻔하니까. 그런 데는 한 번 가면 몇 십만 원이나 든다. 그거면 내가 받는 한 달 용돈의 몇 배 아닌가, 자식이라도 부모 때문에 돈 드는 게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을 테고,
그럭저럭 일주일을 치료했다. 도대체 낫지를 않는다. 더하면 더했지, 오늘은 의사하고 담판을 지으리라.
"계속 안 나으면 큰 병원 가서 MRI를 찍어보세요. 엑스레이에는 안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거든요. 소견서를 써드릴게요."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할 일이지, 망할 놈의 의사. 속으로 욕을 하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읍내 종합병원으로 갔다. 접수하고 외래 대기석에 앉아 있으려니 세상이 노랗다. 진통제라도 맞고 올 것을, 만나야 할 원장은 또 수술하러 갔단다. 전에도 와보면 원장은 툭하면 수술한다고 사람을 30분이나 한 시간씩 기다리게 했다. 그래도 잘 본다니까 다들 앉아서 마냥 기다린다. 30분이나 있어야 볼 수 있다고 했다. 허리를 앞으로 숙이거나 뒤로 젖히면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오니, 화난 사람처럼 말도 안 하고 땅만 노려보며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드디어 원장이 수술실에서 내려왔다.
"원장님, 나 좀 빨리 봐줘요, 허리 아파 죽겠어.” 앞에 온 사람이 몇 있었지만 염치 불고하고 먼저 진료실로 뛰어들어서는 집 앞 의원에서 써준 소견서를 들이밀었다.
"음, 허리가 많이 아프세요?" 의사가 물으나 마나 한 걸 묻는다. 그럼 살짝 아픈데 여기까지 왔을까.
"아파서 숨도 못 쉬겠어.” 쓸데없이 물으니 대답이 부풀려진다.
“갑자기 아파지신 거지요?"
"맞아. 빨리 안 아프게 해주."
"무슨 병인지 알아내야 안 아프게 하지요. 할머니 성미 참 급하네, 여기 두드리면 어때요?" 의사가 여기저기 등을 두드리는데 한 곳이 소스라치게 아팠다.
"아야, 거기 그만 두드려, 아파 죽겠구먼.” 조 할머니가 소리 질렀다.
"아, 할머니, 압박 골절 같네요. 우선 엑스레이 찍고 오세요." 의사가 짓궂게 웃으면서 말했다.
“동네 의원에서 찍었어, 왜 또 찍으라고 그래?"
"할머니, 제가 봐야지 사진이 거기 있으면 무슨 소용이에요?"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다. 할 수 없이 다시 찍고 왔다.
"음, 예상대로 뼈가 눌렸어요. 이걸 압박 골절이라고 하는데 이게 전부터 있던 건지 요번에 생긴 건지를 알아야 해요. 다른 뼈도 같이 골절될 수도 있고 하니 MRI를 찍어보고 얘기해드릴게요.”
“우선 좀 안 아프게 해줘봐요, 무슨 검사를 하든지.” 조 할머니는 허리를 부여잡고 말했다.
“예, 많이 아프시지요? 우선 응급실 가서 진통제 맞고 누워 계세요, 안 아프도록 진통제 센 것으로 놔드릴게요."
“근데 그 비싼 엠아루 뭔지를 찍으라고?"
“허리 부러졌을 때는 보험이 돼서 안 비싸요.”
"그런가?" 할머니는 한시름 놓았다.
무슨 주사를 놓았는지 아픈 건 싹 없어졌는데, 정신이 몽롱하고 어지러웠다. 간호사들이 침대째 데리고 가서 MRI를 찍고 와 응급실에 누워 있으려니 원장이 왔다.
"할머니, 압박 골절이 맞네요, 12번 등뼈가 주저앉았어요."
"주저앉은 거여, 부러진 거여? “ 조 할머니가 공격적으로 물었다.
"음, 압박 골절이라고 해서 부러진 것이긴 한데, 두 동강이 나는 게 아니라 두부가 납작해지는 것처럼 되는 거지요. 주저앉았다고 해도 맞고, 부러졌다고 해도 맞아요.” 원장의 방어는 견고했다.
"다치지도 않았는데 왜 부러지나?" 환자가 한 번 더 따지고 들었다.
“뼈가 너무 약해서 물렁물렁하니까 그냥 힘만 줘도 부러져요. 저처럼 병원에 있으면 할머니 같은 분 매일 봐요. 뭘 따지고 들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한 대답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환자가 항복할 기미를 보였다.
“뼈 시멘트라고, 주사기로 뼈 속에다 약을 넣는 게 있는데, 하시면 금방 좋아져요. 부분 마취만 해도 되고, 의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수술하라고?" 할머니 눈이 동그래졌다.
"수술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요, 수술실에서 주사 맞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말하자면 시술이라고 할까. 째지는 않고 두 시간이면 일어나서 걷고 그래요."
“돈은 얼마나 받을라나?" 할머니는 병원비에 생각이 미치자 고스톱에서 돈 잃은 것보다 더 분했다.
"글쎄, 할머니가 올해 일흔아홉이라 고민이네요. 여든만 되셨으면 오늘 바로 해도 보험이 될 텐데 여든이 안 된 사람은 두 주 있다가 해야 돼요. 아니면 보험 안 하고 할머니가 다 부담하고 치료해야 해요."
원장의 최후통첩이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 나 아픈 지 두 주일 넘었어, 그리고 호적에만 그렇지 진짜 나이는 여든 셋이야.” 할머니가 우겨댔다.
"그래도 안 돼요. 부러진 것을 알고 나서 두 주일 치료해야 되는 거예요." 우겨도 안 통한다. 무조건 항복이냐 무조건 버티느냐만 남았다.
"이런 우라질 법을 어떤 놈이 만든 거야. 그런 큰돈이 어디 있어 내가. 또 아들 신세를 져야 하잖아.” 원망과 신세타령만 남았다.
"그리고 시술이든 수술이든 하시려면 가족과 함께 오세요. 제가 할머니들 말만 듣고 아들딸한테는 알리지 않고 했다가 몇 번 멱살 잡힐 뻔했거든요.”
"이래저래 아들한테 말해야겠군."
“우선 약을 일주일분 드릴 테니 두 주 후에 하시려면 그때 오시고, 바로 하시려면 내일 아들하고 같이 오세요.
진통제 탓인지 아직 약간 어지럽긴 했지만 통증은 견딜 만했다. 조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 퇴근 후 식구들과 저녁상에 앉아 병원 얘기를 언제 꺼낼까 눈치를 보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계부 안 훔쳐봐도 빠듯한 살림인 게 뻔하지 않은가. 그래
도 뿔뿔이 방으로 들어가면 말할 기회를 잡기가 더 어려워지니 일어서기 전에 털어놔야 할 텐데, 어려웠다. 눈치 빠른 손녀가 살려주었다.
"할머니 어디 아파? 아까부터 얼굴이 안 좋아요, 말도 없으시고."
"어머니, 어디가 편찮으세요? 그러고 보니 일어서시는 것도 좀 이상하던데?"
"눈치 챘니?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파 오늘 병원에 다녀왔다. 허리가 부러졌단다. 그래서 시술인지를 해야 하는데, 아직 팔십 전이라 젊다고 보험이 바로 안 돼서 60만 원을 내란다."
“젊다고요?" 아들과 며느리가 실소했다. 손자 손녀도 재미있다고 깔깔댄다.
"누가 그래요? 젊어서 안 된다고?"
"대통령이 그랬단다.
"하여튼 그래서 60만 원이면 고친다고요?"
"응, 두 주일 기다리면 일흔아홉 젊은이도 30만 원이면 되고."
"뭐가 그렇게 빡빡한가. 한 끗 차이인데 그냥 해주고 말지. 내가 그 병원 원장이랑 잘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놓을 테니 내일 당신이 어머니 모시고 갔다 와.” 아들이 며느리한테 말했다.
며느리는 잠깐 싫은 눈치가 지나갔지만 이내 "그럴게요. 내일 같이 가세요, 어머니” 하고 밥상을 치웠다.
어려운 고비를 넘긴 조 할머니는 한결 편하게 잤다. 이만하면 그냥 두 주일 있다가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서 비명부터 나왔다. 어제 아프지 않았다는 건 순전히 응급실에서 맞은 진통제 덕이었구나, 아무래도 두 주일까지는 못 참는다. 오늘 당장 치료해달라고 해야겠다.
조 할머니는 밥도 먹지 말고 빨리 병원엘 갔으면 싶었지만, 며느리는 아침상 다 차려 내고는 또 설거지한다고 꾸물거렸다. 미안한 조 할머니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열 시가 좀 넘어서야 두 사람은 읍내 병원에 들어섰다. 접수하고 잠시 기다린 후 원장실로 들어갔다.
“원장님, 오늘 어머니 치료해주세요. 그런데 젊어서 안 된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아, 예. 안 그래도 지부장이 아드님 부탁을 받았다고 전화했더군요. 그래도 법이 80세 미만이면 두 주일 후에 하라고 되어 있으니 도리 없습니다. 어쨌든 오셨으니 보험이 안 되더라도 오늘 하셔야겠네요. 수속하고 좀 기다리세요, 한두 시간이면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
"수술은 아니지요?” 며느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글쎄요, 수술이고 아니고야 부르기 나름 아니겠어요? 째지는 않고 부분 마취만 해요. 하고 나서 두 시간이면 일어나서 걷고."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검사를 하고 나서 수술실로 안내된 조 할머니는 수술 침대 위에 옆으로 누웠다. 마취과 의사가 와서 "따끔하실 거예요” 하더니 주삿바늘로 등을 찌르는 느낌이 왔다. 그러고 간호사 지시에 따라 엎드려 있으니 잠시 후 원장이 와서 "할머니, 좀 아파도 참으세요” 했다.
몇 번 뜨끔뜨끔하고 시린 느낌이 났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옆에 있에 있는 사진을 보면서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했다.
"할머니, 이제 다 했어요, 10분 정도 그대로 엎드려 계시면 다 끝나요."
“그려? 이제 안 아파?"
"네." 의사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일이십 분 지나서 간호사가 조 할머니를 바로 눕혔다. 병실로 올라갈 때만 해도 등에 느낌이 별로 없었다. 간호사는 한 시간쯤 누워 있다가 일어나라고 했다.
한 시간 후 조 할머니는 조심스레 일어나 보았다. 정말 괜찮았다.
전혀 안 아픈 건 아니지만, 훨씬 낫다.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많이 좋아져서 가벼운 기분으로 퇴원했다.
“나이 여든이 안 됐으면 법에서 젊다고 하는 별난 세상이네. 어쨌든 이만하길 다행이야. 내일은 고스톱 쳐서 반드시 돈을 따야지. 병원비도 좀 벌어놔야 하니, 난 아직 젊으니까.”
2. 척추 압박 골절
1) 증상: 말할 것도 없이 허리가 아프다. 등이 아플 수도 있다. 꼼짝 않고 있으면 괜찮은데 움직이면 아프다, 그것도 끔찍하게, 간혹 통증이 가슴이나 배로 돌아 나와 내과로 가는 경우도 있다. 특별히 다친 일이 없는데 발병하는 수도 있어 환자와 의사를 혼란스럽게 한다.
2) 원인: 대부분은 주저앉은 후 발생했다고 한다. 무거운 물건을 든 후에 생긴 경우도 꽤 많다. 아주 큰 외상을 당한 경우들을 제외하면 대개 골다공증이 있는 환자에게 발생한다. 골다공증이 심한 사람은 그냥 앉아 있다 일어나기만 했는데 골절이 되기도 한다.
3) 진단: 증세와 엑스레이로 대부분 확진이 가능하다. 그래도 엑스레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동반 골절이 있거나, 거기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엉뚱한 척추 뼈가 골절된 경우가 있으므로, 뼈 시멘트 주입 수술을 하기 전에는 MRI 검사가 필수다.
4) 치료: 80세 이상은 즉시 뼈 시멘트 주입 시술(수술을 좋아한다면 수술이라고 하자), 80세 이하는 2주일간의 보존적 치료 후에 시술하는 것이 원칙이자 가이드라인이다.
5) 화타의 충고: 요즘 유행하는 것으로, 뼈 시멘트 주입 같은 시술 없이 뼈 튼튼해지는 주사만 맞고 한 달간 누워 있으라는 요법이 있다. 화타의 생각에는 허무맹랑한 방법이다. 아무리 좋은 주사를 맞아도 한 달을 누워 있으면 뼈가 더 약해지게 마련이다.
시술과 관련해 복지부의 가이드라인은 80세 미만이면 2주간의 보존적 치료 후에 시행하라고 하지만, 이는 현실을 도외시한 규정이다. 그런 환자 대부분은 비급여 시술을 즉시 받기 때문이다.
의사가 부추기는 게 아니라 환자가 원한다. 그리고 2주 후에 보존적 치료의 효과가 있어서 시술을 안 하고 넘어가는 경우는 백에 하나 정도다. 그 기간에 화장실을 다니거나 밥을 먹을 때 안 일어설 수 없으니 뼈가 더 납작해진다. 결국 기다리면 환자가 고생할 뿐 아니라 압박이 심해져서 상태가 나빠지고, 흔히 입원 치료를 하므로 보험 재정도 시술의 경우보다 더 낭비된다. 따라서, 상태가 아주 경미한 경우가 아니라면 즉시 시행을 허용하는 쪽으로 규정을 개선하는 것이 옳다. (정병오 지음 / 『똑똑한 환자 되기』 / 모멘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