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똑똑한 환자 되기 8 - 재발성 허리 디스크

hope888 2022. 3. 28. 22:31

1. 재발성 허리 디스크

 

"아이구구구." 오늘도 예외 없이 홍 씨는 비명과 함께 몸을 일으킨다. 잠을 자고 나면 다리가 저려서 한참을 옆으로 돌아누웠다가 일어난다. 그러고도 요령껏 잘 일어나야지, 조금만 허리가 비틀리면 오른쪽 다리 뒤로 얼음물이 쫙 흘러가는 듯했다. 이를 악물어도 비명이 새어 나올 정도의 통증이다. 이런 생활이 벌써 10년째다. 나이가 80줄에 들어선 이제는 다리 힘도 자꾸 없어져서, 걷다가 오른쪽 발이 돌부리나 풀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잦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20년 전에 지금 같은 증상 때문에 서울까지 찾아가서 당시 이름깨나 날리던 의사에게 거의 집 한 채 값을 내고 수술을 받았다. 의사가 용하긴 했던 모양이어서 한 10년은 멀쩡했다. 병땜에 까먹은 돈 다시 버느라고 열심히 일을 해서 집도 두 채가 됐다.

그러던 중 10년 전에 다시 오른쪽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 수술했던 의사는 그새 죽었는지 의사 노릇을 그만두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유명한 의사를 왜 다른 의사들이 모를까 이상했다. 하는 수 없이 동네 병원이며 인근 도시의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제대로 고쳐준다는 데가 없었다. 뾰족한 치료법이 없으니 신경주사나 맞고 견디며 살라는 식이었다.

20년 전 아플 때 자식들은 겨우 60대였던 홍 씨를 노인 취급하며 수술에 반대했다. 그런 수술을 하기엔 위험한 나이니 뭐니 하면서, 그는 자신도 나이가 많은 그 용한 의사가 자식들이 부모 아픈 심정을 알겠느냐며 거들어서 일사천리로 해치웠다. 그런데 이제는 의사들까지 나이를 핑계로 본격적인 치료를 해주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러다 정말 앉은뱅이 되는 것 아닌가 싶어 인근에 있는 척추 전문병원에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어렵게 마음먹고 간 병원인 만큼 꼭 원장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우겼다.

"어서 오세요, 어르신, 어디가 불편하시죠?" 원장이라 그런지 나이가 꽤 들어 보인다.

", 오른 다리가 아프더니 이제는 힘까지 없어지네.” 홍 씨는 지난 20년간의 경과를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의사는 참을성 있게 듣고 나서 말했다.

, 그러시다면 우선 MRI를 찍어보아야 고칠 수 있을지를 알겠네요."

홍 씨도 예상했던 바다. 재작년에 다른 데서 찍은 게 있기야 하지만, 이야기해봤자 다시 찍으라고 할 게 뻔하니 잠자코 따랐다.

MRI를 보기 위해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전에 수술하셨던 자리에 재발했네요. 수술한 자리에 이렇게 재발하면 다시 손대기가 쉽지 않습니다. 뼈를 많이 손봐야 해서 금속 나사도 박아야 하고요.” 의사 말이 길어질 태세였다.

그래서 수술할 수 있소, 없소?" 홍 씨가 말을 끊었다. 어렵다는 말이야 워낙 여러 번 들어봤으니까.

할 수는 있지만 위험합니다. 수술하고 나서 뼈가 안 붙을 수도 있고”, 의사의 얼굴에 안쓰러움과 짜증이 동시에 스쳤다.

"결국 장담할 수도 없고 책임을 질 수도 없지만 그래도 수술을 하려면 하라는 거지?"

", 맞습니다. 어르신이 잘 생각해서 결정하세요.” 의사는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화가 났지만 참아내고는 휑하니 나가버렸다.

어디 가나 천편일률이다. 수술 방법도 지난번 다른 데서 들은 것과 똑같다. 결국 그 방법, 대수술밖에 없다는 건가.

홍 씨는 이대로 사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면서도 마지막으로 수도 대학병원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아들을 시켜서 예약했다. 환자가 밀리는지 한 달 뒤에야 가게 되었다.

사진 찍은 것 복사본을 의뢰서와 함께 제출했다. 이제 허리 수술 상담은 마지막이라 생각한 홍 씨는 의사의 말을 얌전히 듣기만 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수술하지 말고 그냥 사십시오, 운동만 열심히 하면 앉은뱅이는 안 됩니다. 고얀 놈, 네가 아파봐라.

홍 씨는 포기했다. 첨단 의술 운운하지만 이깟 것 하나를 치료 못하는구나, 혀를 차면서. 아직 논일도 하고 밭에도 다니는 홍 씨였다. 오히려 일할 때는 아픈 걸 몰라서 더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 피곤해서 밤에도 아픈 걸 모르고 잤다. 속 모르는 이웃들은 노익장이라고 부러워했다.

모내기도 끝나고 일이 뜸해졌을 때 심한 통증이 또다시 찾아왔다.

오른쪽 다리에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오더니 없어지지 않았다. 사흘째에 결국 못 참고 신경주사를 맞으러 읍내 종합병원에 갔다.

접수에서 통증클리닉 과장이 지금 휴가 중이라며 정형외과로 가라고 했다.

"어서 오세요. 어디 보자, 신경주사 가끔 맞으셨네요. 이번에는 언제부터 아프세요?" 의사가 진료 기록을 훑어본 후 홍 씨에게 물었다.

맨날 아팠지만 3일 전부터 더 심해져서 걷지도 못할 정도요. 요새는 다리 힘도 더 없어져서 넘어지기도 잘하고”, 홍 씨는 넋두리처럼 말했다.

수술하시지, 왜 안 하세요?"

"그걸 누가 모르나, 한 번 수술했던 자리라고 큰 수술을 해야 한다잖아요. 그리고 나이 많다고 위험하대, 쇠를 박아야 한다나."

"그럼 오늘은 주사만 드릴 테니 맞고 가시고, 다음에 MRI 찍은 걸 가져와 보세요. 다른 의사들은 잘 모르는, 저만 아는 수술 방법이 있거든요. 재수술하는 분도 간단하게 할 수 있어요." 의사가 워낙 덤덤하게 말하는 바람에 귓등으로 흘려보낼 뻔했다. 이게 보통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진짜여? 나도 간단한 수술로 고칠 수 있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가능해요. 일단 MRI 가지고 오시면 그걸 보고 이야기하지요. 할아버지처럼 허리는 별로 안 아프고 다리가 아프다는 분들은 효과가 좋아요." 의사가 말하는 품이 자신있어 보였다.

"알았소. 내일 당장 가져오지. 홍 씨는 주사를 맞고 집으로 갔다.

다음 날 홍 씨는 MRI CD를 가지고 병원으로 다시 갔다. 새벽밥 먹고 미리 가서 앉았다가 9시가 되자마자 1번으로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MRI를 찬찬히 보고 나서 말했다.

"여기 이 자리가 신경이 눌려서 아픈 거예요. 전에 수술했던 자리가 맞네요. 이것도 쇠를 박지 않고 추간판 절제 수술만 할 수 있어요. 전에 수술했던 자국이 이건데, 이쪽으로 하면 처음 수술하는 것과 똑같이 할 수 있지요." 의사가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럼 어렵잖게 고칠 수 있다는 거네. 며칠이나 걸리려는가?" 홍씨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수술을 받으리라 마음먹었다.

걸어 다니는 것은 수술 다음 날부터 할 수 있고요. 한 열흘은 수술 자리가 아프겠지요. 다리 땅기는 건 수술하면 바로 없어질 테고요. , 물론 약간은 남아 있을 수 있겠지만요. 수술한다고 통증이나 불편이 말끔히 없어진다고는 생각지 마세요. 팔구십 프로쯤 없어진다고 생각하시면 좋아요.” 의사는 주저함이 없었다.

대학병원과 척추 전문병원이라는 데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여서 의구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사의 자신감을 믿기로 하고 홍 씨는 마음을 정해버렸다.

"수술 날짜 잡아줘. 이대로는 못 살겠어."

잠깐만요. , 다음 주 목요일에 시간이 비네요. 예정을 잡아놓을 테니 다음 주 수요일에 입원하셔서 검사 좀 하시고요. 수술 전에 아드님이 같이 오셔서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셔야 합니다. 수술 끝나고 나서 연세가 어쩌고 하면서 따지고 드는 사람들이 있어서 할아버지가 정정하셔도 아들이나 딸 한 사람은 동의서에 사인을 해주셔야 수술합니다.”

"알았소, 데리고 올게."

홍 씨는 집에 가자마자 서울 사는 맏아들에게 전화했다. “큰애야, 나 아무래도 수술해야겠다. 다음 주에 한 번 왔다 가라.” 홍 씨는 간단한 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내려와서 의사한테 잘 부탁한다고 한마디만 하고 가야지, 연세가 어떻고 지방 병원이 어떠니 떠들면 가만 안 둔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들은 의사의 장담이 썩 미덥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성격을 아는지라 그러겠습니다 했다.

수술 전날 홍 씨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아들은 시킨 대로 공손하게 잘 부탁한다는 말만 했다. 의사는 같은 설명을 아들에게 다시 한 번 했다. 팔구십 프로 얘기도 덧붙였다. 수술 후 상태가 약간 좋아지면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에 차지 않아서 불평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 가족에게도 미리 다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홍 씨는 피검사와 심장, 폐 검사를 하고, 혈당이 약간 높아서 그렇지 큰 병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다음 날 수술하고 나면 다리가 아프지 않겠지 하는 기대에 가슴이 다 설레었다.

수술은 정말 금방이었다.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수술 후 아직 마취가 다 깨지 않은 상태에서도 홍 씨는 다리 통증이 과연 사라졌는지 몹시 궁금했다. 12시에 수술을 했는데 6시가 되자 다리에 감각이 돌아왔고,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술 당일은 척추 마취를 했으니 일어나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다. 홍 씨는 내일 보면 알겠지 하며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의사가 회진을 왔다. “할아버지, 한번 일어나보실까요?" 하더니 홍 씨를 일으켜 세우고 복도로 데리고 나갔다. “한번 걸어보세요하고는 서너 발짝을 걷게 했다.

"다리 아픈 건 어떠세요?"

", 괜찮은 것 같네, 안 아파. 약간 땅기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 고맙소."

홍 씨는 자고 나서 통증이 없어 기분이 좋았지만 걸어보니 확실히 나아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것을! 대학병원이고 척추 전문병원이고 간에 다 엉터리야. 쇠 박는 수술이나 하라니. 이 병원이 최고야.

홍 씨는 기분이 좋아서 같은 병실 환자들에게 자신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겪은 일들을 쏟아놓고, 드디어 나은 것을 자랑했다. 홍 씨는 사흘 후 혈액 배액관을 제거하고 퇴원했다. 의사는 오래 앉아 있는 것 말고는 다 해도 된다고 했지만 스스로가 조심하게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다리의 통증 없이 잠에서 깰 수 있게 된 게 꿈만 같았다.

 

2. 재발성 허리 디스크

 

- 증상/원인/진단

 

원발성 허리 디스크와 같다.

 

- 치료

 

교과서적으로는 한 번 수술한 바로 그 자리에 디스크가 재발했을 경우, 광범위 절제(뼈와 연부조직을 폭넓게 잘라낸다는 뜻)와 금속 고정을 하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이 간단한 수술 쪽은 별로 생각지 않는 경향이 있다.

 

- 화타의 충고

 

경우에 따라서 의사를 잘 만나면 간단한 수술을 통해 원발성 디스크와 마찬가지로 치료할 수 있다. 처음 수술할 때에는 보통 척추의 정중앙 쪽에서 하기 때문에 소위 추간공의 바깥쪽은 처녀지로 남아 있어서 첫 수술처럼 접근, 추간판 제거를 할 수 있다. (정병오 지음 / 똑똑한 환자 되기/ 모멘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