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환자 되기 10 - 척추의 골수염
1. 척추의 골수염
"어서 오세요." 의사가 인사하면서 보니 아는 얼굴이다.
"아이고 민 여사님, 한참 만이시네. 어디가 불편하세요?"
“원장님, 미안해요. 지난번에 원장님이 수술하라고 했잖우, 근데 자식들이 하도 성화를 해서 서울 가서 수술했어요. 이제 한 달 됐는데, 아직도 이렇게 아파, 그리고 수술한 자리에 무슨 혹이 있어.” 민 여사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러세요? 수술하면 결과가 좋아야 할 텐데 어쩌나, 침대에 엎드려 보세요." 의사는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원장은 걱정보다는 그것 봐라 하는 마음이 앞섰다. 수술하라고 했더니 내가 이깟 시골 병원에서 수술을 하겠느냐는 표정으로 사라졌다가 큰 데서 한 치료가 잘못되어 돌아오는 환자들을 보면 잠깐은 고소하기까지 했다. 그게 인지상정 아닌가. 게다가 돌아와서는 자식 핑계를 대기 일쑤다. 그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남자의 경우엔 자식 핑계가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엎드리게 하고 민 여사의 상처를 보니 수술 상처 아래에 아기 주먹만 한 물주머니가 달려 있다.
“열은 안 나세요? 춥거나 떨린다거나.”
“안 그래도 저녁마다 으슬으슬 추운 기가 있어서 이상했어요.”
“수술 자리에 이렇게 혹이 나 있는 건 둘 중 하나예요. 감염이 돼서 고름이 차 있거나, 신경에 구멍이 나서 뇌척수액이라고 하는 물이 고여 있거나 지요. 어느 쪽이냐에 따라 치료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주사기로 물을 빼서 검사부터 해봐야 돼요. 우선 입원해서 항생제부터 맞으셔야겠네요.
민 여사도 병원에 오기 전부터 심각성을 예상하고 있었다. 옆에 선 자식들은 이곳을 마다하고 간 큰 병원에서 탈이 생겼으니 유구무언이었다.
“혹시 감염이 됐을 경우는 치료가 될지 안 될지, 치료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일주일 이 주일 지나고 왜 이렇게 안 낫느냐고 하실 것 같으면 아예 수술한 병원으로 다시 가세요." 원장은 자기도 모르게 심사를 드러냈고, 민 여사는 즉각 다시는 안 간다고 잘라 말했다.
입원 후 의사는 등 뒤의 혹에서 주사기로 물을 뺐다. 10cc 정도 나왔다. 이 물을 검사했더니 세균성 염증으로 확인되었다. 배양 검사와 감수성 검사에서 효과를 확인한 항생제로 3주간 치료했지만 여전히 고름이 생겨났다. 절개하고 청소한 후 배농관을 삽입해도 소용없었다. 3주째에는 균 배양과 상관없이 상위 항생제를 썼지만 1주일이 넘어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되었다. 이제 민 여사의 자식들과 의사는 대등한 입장이 되었다. 아들 둘과 딸 둘이 상담하러 와서는 따지듯이 물었다. 치료한 지 한 달이나 되었는데 왜 진척이 없느냐고,
의사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미리 준비해둔 말 한마디가 있다.
"내가 이럴 수 있다고 미리 이야기했지요? 이 병이 원래 그렇습니다. 더 큰 병원에서 치료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세요. 어쩔 수 없지요."
자녀들도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의사도 별로 미련이 없는 환자다. 서로 특별히 신뢰하는 사이도 아니고, 아무튼 감염성 질환의 성격상 어딜 가든 고생하고 고생시킬 게 뻔했다. 결국 다음 날 민 여사는 다시 서울로 갔다.
한 달 후 민 여사는 휠체어를 탄 채 또다시 내원했다. 상처에서는 아직 고름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온가족이 다 온 듯했다. 진료실을 꽉 채우고도 남을 인원이었다. 민 여사는 풀이 완전히 죽었고, 자녀들도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이렇게 온 가족이 출동하는 데는 효심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아들부터 시작해서 의사에 대한 예의는 안중에도 없었다. 의사는 그런 모습을 보고, 버릇을 고쳐놓고 시작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싸움이 나겠다고 생각했다.
"잘 고치고 오셨나요?" 의사가 물었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
“원장님, 염치없이 또 찾아왔네요. 저 좀 살려주세요." 민 여사는 매달리다시피 했다. 민 여사가 원장을 무슨 구세주처럼 여겨서 그러는 건 아니다. 서울에서 병치레하기도 지쳤고 병원비도 너무 들고 하니 같은 치료를 받을 바에야 고향 동네서 입원 치료하는 게 유리한데, 이 일대에서 병원다운 병원은 하나뿐이니 할 수 없이 오는 면이 있는 것이다. 출세깨나 한 자녀들의 얼굴에서도 그런 기색이 여실했다.
“음, 아직도 고름이 나오네요, 서울에서 무슨 치료하셨어요?"
"수술도 세 번이나 했어요. 항생제도 독한 거 쓴다고 이제껏 썼는데 이래요. “
여기서 갈 때하고 달라진 게 없으시네요.” 의사는 자녀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녀들은 외면했다. 의사는 더 세게 나가기로 했다.
“서울서 치료를 더 받아보시지 왜 내려오셨어요?" 의사는 여전히 자식들을 향해서 물었다.
“이번에는 또 대수술을 하고 쇠를 박자고 하지 뭐예요. 그래서 그럼 고쳐지냐고 했더니 해봐야 안다면서….” 여전히 대답은 민 여사의 몫이다.
“지금까지 겪어서 아시겠지만 이 병은 고친다고 장담은 못해요. 서울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완치를 목표로 하니까 대수술을 하자는 가 본데 전 생각이 좀 달라요. 소견서를 보면 꽤 독한 항생제를 쓴 모양인데 전 다른 항생제를 하나 써볼까 해요. 물론 낫는다는 보장은 없고요. 나으면 재수가 좋은 거고, 만약에 안 나으면 그냥 사세요. 허리 상처가 있는 대로 살다보면 좀 나았다가 더 심하다가 할 거예요. 그리고 지금 쓰려는 항생제는 배양 검사와 감수성 검사에서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보험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항생제 값 모두를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이렇게 치료를 하는 데 동의하신다면 환자 본인, 남편, 자녀분들 모두 서명하신 뒤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의사는 잘난 가족일수록 더 확실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가족들의 얼굴엔 불쾌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의사는 그 얼굴을 정면으로 받아주었다. 지금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하면서, 결과는 뻔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의사가 칼자루를 주고 있다. 치료에 조금이라도 미진함이 있으면 칼자루는 환자 측으로 넘어간다. 이참에 칼을 없애야 한다. 환자와 가족은 머뭇머뭇 서명을 했다.
두 주일간 항생제 주사를 놓았다. 사실은 의사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고령에다 짜증이 많은 성격으로 보아 면역력이 약할 것이 분명한 민 여사가 항생제 주사로 감염증이 낫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좋아졌다. 1주일째 되니 고름이 거의 안 나왔다. 상처도 차츰 아물더니 2주가 되자 완전히 봉합이 되고, 빨갛던 부위도 점차 하얗게 변했다. 혈액 검사에서의 염증 수치도 거의 정상 수준이었다.
"다행히 염증이 가라앉았네요. 항생제를 끊으면 재발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성공이에요. 사흘만 더 맞고 퇴원하시지요."
"근데 원장님, 염증은 좋아졌는지 몰라도 허리가 아파." 민 여사가 자기 엉덩이를 툭툭치며 말했다.
"아, 그건 협착증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건데, 협착증은 수술이든 시술, 주사든 간에 감염이 치료되고 석 달은 지나서 해야 돼요. 그러니까 진통제 먹고 참으세요."
"아이, 우리 원장님은 참으라는 소리는 잘해, 원장님이 참아봐, 그게 쉬운가.”
생각해보니 그건 사실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환자이니 참아야지.
민 여사는 3일 후 퇴원했고, 그 후로 계속 진통제와 항생제를 복용 중이다.
골수염
- 증상
골수염이 생긴 부위에 심한 통증이 있고 전신 발열, 오한 등의 몸살 증세가 올 수 있다. 심해지면 국소에 농양 즉 고름집이 생긴다. 더 심해지면 패혈증으로 되어 혼수상태가 되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
- 원인
너무 다양해서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그래도 다수는 외인성(外因性, 몸 외부로부터의 원인에 의하여 병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 수술이나 침, 주사를 통해서 발병하는 경우, 즉 의인성(醫因性, 의료 행위 중에 발생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
- 치료
상태에 따라서 항생제 투약, 주사, 배농 수술을 한다.
- 화타의 충고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는 질병이다. 다만 어느 시점에서는 완치를 목표로 무리한 치료를 하기보다는 배농(고름을 빼내는 것)을 시키면서 상처를 달래며 살아가는 방법과 타협을 해야 한다. 몸에 상처가 벌려진 채로 산다는 것이 끔찍해 보일 수도 있지만, 치료를 강행하다가는 더 나쁜 결과가 올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정병오 지음 / 『똑똑한 환자 되기』 / 모멘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