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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환자 되기 12 - 견봉 쇄골 관절염

hope888 2022. 3. 31. 07:33

1. 견봉 쇄골 관절염

 

"임 여사, 내일 봐.”

"잘 쳤어요. 내일 또 봐요."

임 여사는 요즘 탁구에 푹 빠졌다. 점심 먹으면 복지관에 가서 탁구 치다 쉬고 또 치고 하다가 네다섯 시 되면 집으로 오는 게 일과다. 오늘도 어김없이 탁구장에 가서 서너 시간 놀다가 돌아와 잠시 누웠다.

아직 저녁 먹기는 이르고, TV나 볼까 하며 일어나려고 손을 짚는데 오른쪽 어깨가 바늘로 찌르는 듯 따끔하고 아팠다. 어깨 속에서 뭔가 찢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잠시 식은땀이 날 정도였지만, 일단 일어서자 곧 진정이 되고 더 아프지는 않았다. 리모컨을 찾아 다시 누웠다.

TV 드라마를 보면서 어깨 아픈 것도 잊었다. 한 회를 다 보고 나니 날이 어두워져 저녁 생각이 났다. 자식들은 다 외지에 나가 있고 남편은 젊은 나이에 죽어, 혼자 사는 데는 익숙하다. 늘 혼자서 밥을 먹어도 잘 차려 먹는다. 오늘도 이런저런 야채에 좋아하는 찰밥까지 지어서 진수성찬이다. 건강에 안 좋대서 고기는 먹지 않지만, 그 외에 좋아하는 건 골고루 다 먹는다.

그렇게 하루해가 가고, 자려고 누워서 잠시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아까 어깨가 아팠던 게 떠올랐다. 또 아프려나 하며 살짝 손으로 짚어보았다. 괜찮았다. 아까처럼 손을 짚고 일어서는 시늉을 해보았다. 그래도 아프지 않았다. 별일 아니었구나, 안심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뜬 임 여사가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는데 어제처럼 오른쪽 어깨가 또 날카롭게 뜨끔했다. 임 여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자식들 수발 받아가며 살 나이는 아니니 아프지 않도록 내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었다. 그런 생각이 굳었던 만큼 엄습한 고통에 대한 걱정도 컸다. 바로 병원에 가봐야지.

다음 날 임 여사는 탁구고 뭐고 다 제쳐놓고 자주 다니는 동네 의원에 갔다.

원장님, 나 어깨 아파.” 들어서자마자 투덜댔다.

"언제부터요?" 의사가 범상하게 대답했다.

"어제 저녁에 한번 뜨끔해서 괜찮겠지 했는데 오늘 아침에 또 아프더라고.” 푸념 조다.

"다친 건 아니지요?" 아직도 의사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투다.

"그럼, 다친 적 없어. 뜬금없이 아프다니까.” 관심 좀 보이라고 임여사는 약간 큰 소리로 말했다.

우선 사진을 찍어보세요."

이제야 좀 관심을 갖는군 하며 임 여사는 엑스레이를 찍고 왔다.

원장님, 어때? 큰 병 아니지? 왜 아픈 거유?"

"일단 엑스레이 사진에선 별 이상이 보이지 않네요.” 의사가 사진을 찬찬히 보더니 말했다.

이상이 없는데 왜 아파? “

병이 없다는 게 아니고 엑스레이에 보이지 않는 병이라는 얘기지요, 어깨 쪽 병은 대부분 힘줄이나 인대에 생긴 문제라서 엑스레이에는 안 보여요." 의사는 엑스레이만으론 보이지 않는 병이 얼마나 많은지를 환자들이 언제나 알게 될까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럼 뭐 하러 찍나, 안 보이는 걸."

의사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 그래도 혹시 뭐가 보일까 싶어서 찍어보는 거고요. 진료를 시작할 때 달리 쉽게 할 수 있는 검사가 없어요." 대답이 궁색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우선 며칠 주사 맞고 약 드시고 해보세요. 물리치료도 하시고, 별일 아니면 1~2주면 좋아질 테니까.” 의사는 내가 이 말을 오늘 몇 번 했을까 생각했다.

임 여사는 조금 화가 났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네. 나는 큰 병일까 걱정돼서 빨리 검사한다고 왔는데 약 먹고 기다려보라고? 그래도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할밖에.

"놔뒀다가 병 키우는 것 아니겠지?" 임 여사는 다짐을 받고 싶다.

"쑥쑥 크는 병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의사는 환자를 적당히 안심시켜 주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렇게 환자는 서둘고 의사는 미루었다. 일주일을 다녔지만 아픈 건 여전했다. 아픈지 안 아픈지 시험해보면 아프지 않았다. 그러다가 잊어버릴 만하면 옷 입다가도 뜨끔, 숟가락 들다가도 뜨끔, 하루 대여섯 번은 아팠다. 일주일을 치료해도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의사와 다시 면담했다.

원장님, 하나도 안 낫잖아.” 임 여사가 눈을 흘겼다.

짚고 일어설 때 아프다고 하셨지요? 만세 해보세요. 그럴 때는 안 아프고요?"

"만세는 잘 해, 하나도 안 아픈걸“. 임 여사는 팔을 번쩍 들어 보였다.

""힘줄이 끊어졌나, 초음파 한 번 해보세요.” 의사도 이제는 제대로 검사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글쎄 뭐든지 해보고 좀 고쳐줘요."

어깨에 젤리를 바르고 한참을 이리저리 비춰보던 의사가 말했다.

힘줄 끊어진 데는 없어요. 그냥 염증인가 봐요. 지금처럼 치료하면 나을 테니 걱정 마세요." 이번에는 진짜 장담했다.

그래서 일주일을 더 치료했다. 약 먹고 주사 맞고 물리치료 하고, 교회 가듯이 성실히 다녔다. 그래도 좋아지질 않았다. 임 여사는 병원을 바꿀 때라고 생각했다.

건강에 관한 한 양보가 없는 임 여사다. 안 되겠다 싶자 곧장 옆의 대도시에 있는 여기저기 전문병원으로 갔다. 버스며 택시며 플래카드며 오만 군데에 광고를 붙이는 병원, 그래서일까, 임 여사도 이 일대에서는 그 병원이 최고라고 확신했다. 이유는 못 대겠지만.

"의사 선생님, 저 오른쪽 어깨가 아파요.” 두 주일 치료한 사실도 덧붙였다.

"아 네, 그러셨군요. 아프셨겠어요." 의사의 적절한 리액션에 신이 나서 아픈 이야기를 더 늘어놓았다.

"아마 힘줄이 끊어진 것 같은데, 엑스레이에는 보이지 않으니 MRI 찍어보셔아겠어요.”

다 듣고 난 의사가 말했다. 그렇지, 찍어야지. 진료실을 나오고 나서 MRI에 냉큼 동의한 걸 살짝 후회했지만, 여기까지 온 바에야 뿌리를 뽑아야지 싶기도 했다. 찍고 나서 다시 진료실에 앉았다.

아주머니, 여기 길게 보이는 게 힘줄인데, 끊어지지는 않았네요……. 약간 부어 있기는 해요. 그런데 이 뼈 밑이 자라나는 바람에 힘줄이 자꾸 걸려서 끊어지려고 해요. 그러니 수술하셔야 해요.”

"끊어지지도 않았다면서 수술하라고요?"

", 그런 게 있어요. 충돌증후군이라고 하는데, 놔두면 나중에 힘줄이 끊어집니다. 그래서 미리 수술하시는 게 좋아요."

수술은 어떻게 하나요? 며칠이나 걸리지요?” 수술이라는 말에 임여사는 궁금한 게 많아졌다.

"그건 바깥에서 안내해드릴 겁니다."

임 여사는 옆방으로 안내되었다.

"어머니, 수술은 관절경으로 하는 거고요. 3일 정도 입원하셔야 해요.

예쁘장한 아가씨가 수술 장면이 찍힌 사진을 펴놓고 설명했다.

수술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일상생활 하시는 데 별로 불편이 없으실 거예요.”

임 여사는 갑작스러운 일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 좀 해보고 올게요.

집에 와서도 줄곧 수술 생각을 했다.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고 조심조심 일어나봤다. 아프지 않았다. 신경을 쓰고 있으면 아프지 않고, 방심할 때 한 번씩 뜨금해서 놀라게 했다. 시간을 좀 두고 생각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금방 큰일 나는 병이라고 한 의사는 있으니 좀 놔둬야지.

탁구장을 하루 거르고 다음 날 가니 사람들이 질문을 부었다.

임 여사, 어제 왜 안 나왔어?” 호기심 많은 천 여사가 맨 먼저 물었다.

어제 여기저기 전문병원에 갔었어, 이개 때문에, 임 여사가 시들하게 대답했다.

"의사가 뭐래? 수술하래지?' 천 여사가 바짝 다가섰다.

그러게. 끊어지지도 않았다면서 수술을 하라네.”

"?"

"그냥 두면 곧 끊어진다나. 그래서 고민이야, 어째야 할지.” 임 여사의 풀 죽은 대답에 천 여사가 탁구대 반대쪽으로 가며 말했다.

읍내 종합병원에 가봐, 거기 원장은 아주 시원하게 얘기를 잘 해줘.”

"그래? 거긴 한 번도 안 가봤네.”

다음 날 오전 임 여사는 읍내 종합병원으로 갔다. 원장은 아홉 시도 되기 전에 나와 있었다.

ㅇㅇ , 들어오세요.” 간호사가 불렀다.

아픈 사연을 또 한 번 읊었다. 원장은 무심한 표정으로 들었다.

그래서 짚고 일어설 때 말고 또 어떤 동작을 할 때 아프세요? 이렇게 하면 아픕니까?” 하면서 원장이 양팔을 겹쳤다.

"글쎄, 그렇게는 안 해봤는데. , 이렇게 하니까 아프네요." 임 여사가 원장을 따라 팔을 교차시켜 보고 대답했다.

“MRI 찍은 것 가져오셨어요?"

"아니, 안 가져왔어요. 가지고 와야 되나요?"

"그럼요. 제가 그걸 봐야 뭐라고 얘기를 해드리지, 얼굴 보고 뭐 관상 봐드려요? MRI 찍은 것 가져오세요. 그리고 어떤 동작을 할 때 아픈지 더 알아서 오세요.“

임 여사는 방을 나오며 생각했다. 그 친구 참 시원스럽긴 하네, 살짝 재수 없게 시원해서 그렇지.

천 여사가 그러라고 하도 성화를 해서, MRI 복사한 CD를 받아 와 읍내 종합병원에 다시 갔다.

CD를 컴퓨터에 넣고 좀 있으니 사진이 떴다. 의사는 한참을 말없이 들여다보다가 임 여사에게 물었다.

"그래 어떤 동작을 할 때 제일 아프던가요?"

"탁구 칠 때 스매싱을 하면 많이 아파요."

임 여사는 그걸 생각해내고 확인해본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여기저기 전문병원에서 수술하자는 건 골극(骨棘, xone spur)이라고 하는 어깨뼈 밑으로 자라난 부분을 수술하자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아직 꼭 필요하지는 않아 보여요. 힘줄에 지금 해를 주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보다는 여기 쇄골(鎖骨)하고 견봉(肩峰)이라는 뼈가 더 문제예요, 이 사이의 관절이 안 좋아져서 아픈 거예요."

"그럼 어깨에 관절염이 있다는 건가요?"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근데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팔뼈와 어깨뼈 사이의 관절이 아니라 위에 있는 이 두 뼈 사이 관절이에요."

"어쨌든 관절염이네요. 그럼 고칠 수 있나요? 수술해야 돼요"

"누구나 아는 어깨관절, 그러니까 팔뼈하고 어깨뼈 사이의 관절은 힘줄이 끊어지는 걸로 시작해서 나중엔 어깨를 아예 못 쓰게 될 정도로 나빠질 수 있어요. 수술을 안 하면 말이지요. 하지만 여기 이 관절의 염증은 고칠 수는 없지만 치료 안 하고 놔둬도 어깨를 아주 못 쓰게 되지는 않아요. 그냥 가끔 약간씩 아프지."

"어깨에 관절이 둘이란 건 몰랐네. 아무튼 그럼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약도 없고?"

"약이래야 진통제지 병 자체를 고치는 건 없어요. 일주일분 드릴 테니 집에 두셨다가 많이 아프면 한 번씩 드세요."

약 먹을 정도로 많이 아프진 않지만 혹시나 해서 임 여사는 일단 약을 사 들고 집으로 왔다. 천 여사 말대로 그 의사를 만나보니 후련하긴 하다. 그런데 못 고치는 병이라니, 또 딴 데를 가봐야 하나 싶었다.

 

* 견봉-쇄골 관절염

 

- 증상

어깨가 아프다. 팔을 앞뒤로 움직일 때 아픈 것이 다음에 다룰 회전근 파열과 다른 점이다.

 

- 원인

관절염의 하나이니 과도한 사용이 원인이다. 물론 과도함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 부위는 류머티스 관절염이 유난히 잘 침범하는 관절이다. 나이와 노동 강도에 비해 조기에 발병했다면 류머티스 관절염인지 확인해야 한다.

 

- 진단

엑스레이에 보이긴 하는데 의사들이 간과하기가 쉽다. CTMRI가 훨씬 자세히 보인다.

 

- 치료

일반적인 관절염과 같다. 퇴행성관절염이라면 진통제, 류머티스라면 류머티스 치료를 병행하는 관절염 치료로 버티고 살아야 한다. 불편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면 수술로 관절 일부를 절제할 수 있다. 통증이 꽤 경감된다.

 

- 화타의 충고

어깨 통증은 대부분이 회전근 파열로 인한 통증이기 때문에 견봉-쇄골 관절염은 놓치기가 쉽다. 회전근 파열로 오해해서 엉뚱한 치료를 하지 않아야 한다. (정병오 지음 / 똑똑한 환자 되기/ 모멘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