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똑똑한 환자 되기 19 - 전방 십자인대 충돌증

hope888 2022. 4. 6. 11:40

1. 전방 십자인대 충돌증

 

다들 만나서 반가웠어, 앞으로 가끔 보자."

권 씨는 고교 졸업 10주년 동창회를 마치고 일어섰다. 마음은 아직 젊은데 벌써 40년이나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둘러보면 머리가 반백이 된 친구들도 많았다. 권 씨로 말하자면 아직은 청춘이었다.

조기축구회를 나가도 30대 회원들 못지않게 뛰어다녔다. 축구를 하다 보면 다쳐서 수술까지 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권 씨는 큰 부상 없이 지냈다.

일어서는데 왼쪽 무릎이 시큰하더니 집으로 오는 내내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디딜 때마다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걸을 만은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잤다.

다음 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권 씨는 왼쪽 무릎 뒤가 땅기는 느낌이 들었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탱탱 부어서 오른쪽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아홉 시가 되자마자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로 갔다. 100미터도 안 되는 길을 가는 동안에도 서너 번은 섰다 가기를 반복했다.

이른 시간이라서 권 씨는 두 번째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처음이시지요?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권 씨 또래인 듯한 사람 좋아 보이는 의사였다.

"어제 의자에서 일어서는데 왼쪽 무릎이 시큰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많이 아파요. 심하게 붓기도 하고요." 권 씨는 말하면서 왼쪽 다리를 걷어 올렸다. 집에서 나올 때보다 더 많이 부어 보였다.

"어이구, 많이 부었네요. 무릎을 구부렸다가 펴보세요.”

시키는 대로 했다.

"어때요, 아프세요?”

약간 아프네요.

"쪼그려 앉을 수 있으세요?"

아직 안 해봤지만 하면 아플 것 같아요.”

우선 사진을 찍고 볼까요?"

권 씨는 복도 끝에 있는 방사선실로 갔다. 앞으로 서고 옆으로 서고 구부리고 눕고 하면서 대여섯 번을 찍은 후에 기사는 다 됐으니 외래로 다시 가라고 했다.

10분쯤 지나자 간호사가 방사선실에서 사진을 들고 왔다.

, 엑스레이에서 뼈의 이상은 없고요, 관절 주위가 많이 부은 걸로 봐서는 인대를 다친 것 같습니다. 우선 무릎에서 물을 빼고 깁스를 해 드릴게요. 일주일 치료해보고 다시 결정하지요. 침대에 누워보세요.”

권 씨가 침대에 눕자 의사는 주사기를 가져와서는 무릎을 찔렀다.

주사기 밀대를 당기자 마치 혈관에서 피를 뽑는 것처럼 무릎에서 피가 빠져나왔다. 그렇게 세 번이나 주사기에 꽉 찰 만큼 나오는 것이었다. 권 씨는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피가 많이 나와도 괜찮을까요?"

허허, 의사가 웃었다.

걱정 마세요. 이 정도 뽑아서 빈혈이 생기지는 않으니까요. 그나저나 피가 꽤 나오는 걸 보면 인대가 심하게 끊어진 게 분명하네요. 당분간 목발도 짚고 조심하시는 게 좋겠어요.”

권 씨는 무릎 뒤쪽으로 반()깁스를 하고 목발을 받았다. 엉덩이 주사도 맞고 약도 3일 치를 처방받아 나왔다. 피를 빼고 나니 무릎이 많이 편해진 기분이었다. 아침부터 심하던 통증도 어지간히 가라앉았다.

비록 목발을 짚기는 했지만 통증이 가벼워지자 심각한 부상이면 어쩌나 하던 염려 역시 줄어들었다. 다행히 왼쪽 다리여서 운전도 할만 했다. 조심조심 회사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니 회사 일도 그냥 하겠다 싶었다.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이니 별 무리가 될 게 없었다.

퇴근해서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려니 깁스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샤워를 거르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별 일 있겠나 생각하고 깁스를 풀었다. 붕대로 감아놓은 반깁스라서 푸는 것도 수월했고, 그러고 나니 오히려 아픈 게 덜한 느낌이었다. 샤워를 하니 기분도 상쾌했다. 내일은 아예 깁스를 안 하고 다녀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권 씨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권 씨는 왼쪽 무릎의 상태가 궁금했다. 일어나기 전에 이불 속에서 무릎을 살짝 구부려보았다. 아프지 않았다.

약간 불편한 느낌이야 있었지만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다. 더 구부렸다. 역시 아프지 않았다. 끝까지 구부려도 마찬가지였다. 부은 것도 거의 가라앉았다. 권 씨는 어제 병원 갔던 게 후회가 되었다. 아이 씨, 하루만 참아볼걸, 피를 그리도 뽑은 건 싹 잊어버리고 말이다.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약간만 불편할 뿐 괜찮았다. 깁스를 도로 해야 하나, 생각도 잠깐 했지만 용감하게 내버려두었다. 그날도 별 불편 없이 지나갔다. 다만 계단을 내려갈 때 통증이 와서 꼭 오른쪽 발을 먼저 내디딘 후 왼쪽 발이 따라갔다. 성격이 느긋해서인지 무모해서인지, 권 씨는 좀 아프다 말겠지 하며 넘겼다.

그럭저럭 한 달여가 지났다. 무릎 상태는 권 씨의 기대를 저버리고 하루하루 나빠지는 것 같았다. 첫날만큼은 아니어도 차츰 부어오르고, 다리 뒤가 땅겼다. 계단 내려갈 때의 불편함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첫날처럼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으나, 길을 걷다가 무릎이 어긋나는 느낌이 들면 잠시 섰다 가야 했다. 그날 이후 축구는 할 생각조차 못했다. 30년이나 해온 축구였지만 무릎 나으면 다시 해야지 하고 한 달 넘게 미루다 보니 이제는 안 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 양반 이젠 축구 못할 나이도 됐잖아 하는 소리는 듣기 싫었지만, 막상 뛰어보려 하면 자신이 없었다. 뛰다가 금방 주저앉을 것 같았다.

그제야 권 씨는 인대가 심하게 끊어진 것 같다던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분명히 의사가 그렇게 말했는데 왜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다음 날 권 씨는 정형외과를 다시 찾았다.

의사는 권 씨를 잊었다가 지난번 진료 기록을 보고 나서 기억해냈다.

, 그래 무릎은 어떠세요? 이제 나을 때가 되어가지요?"

"아 원장님, 그게 그때처럼 심하게 아프지는 않은데 싹 낫지를 않네요."

어떤 점이 불편하세요! 의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계단 내려갈 때가 불편하고요, 평지 걸을 때도 가끔 어긋나는 느낌이에요. 권 씨는 의사의 표정 때문에 더 걱정이 되었다.

"저기에 누워보세요." 의사가 진찰대를 가리켰다.

"이렇게 하면 아프세요?" 권 씨가 눕자 무릎을 구부리고 안쪽, 바깥쪽으로 다리를 비틀면서 물었다.

"아니요, 별로 안 아파요." 대답하면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

여기를 누르면 아프세요?” 이번에는 무릎의 안쪽과 바깥쪽을 누르면서 였다.

그냥 눌러서 아픈 것 같아요."

의사는 권 씨의 무릎을 앞뒤로 밀고 당기고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글쎄요, 지난번 엑스레이에도 별 이상이 안 보였고, 지금 봐도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요."

그렇지요? 그런데 왜 아플까요? 전에는 인대가 심하게 끊어진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권 씨는 적이 안심하면서도 그 점이 궁금했다.

의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런 말을 한 걸 잊어버려서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 인대가 끊어졌다가 다시 붙었나 봐요.” 자신 없는 말투였다.

권 씨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확실한 건 몰라도 큰 이상은 없다는 게 확인되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의사가 주사와 약을 처방해준다고 했으나 원인도 모르고 뭘 처방하나 싶어서 거절하고 돌아왔다.

며칠 후 권 씨가 운동장에 나타났다. 이제 무릎에 큰 병이 없다는 것도 알았겠다. 축구를 다시 해보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몸풀기로 제자리 뛰기를 몇 번 했다. 땅을 디딜 때 무릎이 약간 시큰거리긴 했지만 이미 익숙한 느낌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권 씨는 되도록 살살 뛰었다. 해볼 만했다. 어쩌다 공을 받아 바로 패스하는 정도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서너 번만 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뛸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경기 시작 후 10분쯤 지났을까, 권 씨에게 공이 왔고 수비를 피해서 왼발로 공을 찼다. 힘차게 공을 찰 때까지는 좋았는데 잠시 후에 무릎의 통증이 심해지는 게 확연했다. 권 씨는 회원들의 눈길을 느끼면서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치고 스탠드에 가서 앉았다.

물을 마시러 권 씨 옆으로 온 주 씨가 앉으면서 말했다.

"무릎이 아직도 아픈 거야? 아직 다 안 나았구먼, 그런데 왜 공을 찬다고 나왔어, 쯧쯧. 이제 그만해, 나도 올해 안에 그만 둬야겠어. 이젠 공을 찬 날 저녁에는 무릎이 부어. 그러면 다음 날 병원 가서 뼈주사를 맞는데, 해롭다는 걸 자꾸 맞을 수도 없으니 축구를 그만둬야지.”

글쎄, 병원에서도 이상이 없는 것 같다는데 이러네.” 권 씨가 한숨을 쉬었다.

이상이 없으면 없는 거지, 없는 것 같다는 건 또 뭐야?" 주 씨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엑스레이에도 이상이 없고 만져 봐도 이상이 없는 것 같다는 구먼. 인대가 끊어졌다가 붙었다니."

"한심한 인사 같으니, 얼른 가서 MRI 찍어봐, 인대가 엑스레이에서 보이나? 내일 나하고 같이 병원 가."

주 씨는 3년 전에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져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무릎을 다친 사람이 나오면 주 씨가 의사나 마찬가지였다. 오지랖 넓은 주 씨는 자기가 수술받은 병원으로 환자를 데리고 다니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동안에는 옆에서 잔소리하는 게 싫어서 같이 가지 않으려 했는데, 이제는 권 씨도 주 씨를 따라갈 마음이 들었다.

꽤 먼 거리에 있는 병원까지 주 씨가 운전해서 권 씨를 데리고 갔다. 입구에는 유명 대학 출신 의사들의 이름과 이력, 최신 기술이 어쩌고 하는 선전 문구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원장님 이 양반 좀 봐줘. 우리 회원인데 무릎이 자꾸 아프대.”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주 씨는 막냇동생 대하듯 의사에게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의사는 기껏 마흔쯤으로나 보였다.

의사는 권 씨를 진찰대에 눕힌 후 정형외과 의원의 의사가 했던 것과 똑같이 해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연골 상태가 좋지 않네요. MRI 찍어보지요."

권 씨는 인대가 아니라 연골이라는 말에 이것 보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골이 어떻게 생겨먹었고 인대는 또 어떤 놈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두 의사의 말이 다르다는 건 한 사람은 틀렸다는 얘기지.

"그거 봐, 일단 MRI를 찍어봐야 한다니까.” 주 씨는 자신의 말이 맞아서 신이 났다.

MRI를 찍고 다시 진료실에 앉았다. 의사는 이리저리 화면을 바꿔가며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표정을 봐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는데, 예상과 달리 단정적으로 말했다.

"연골이 찢어졌어요. 여기 하얗게 보이는 게 찢어진 자리예요. 관절 내시경 수술을 하셔야겠어요."

인대가 아니라 연골이 찢어졌어? 나보다는 낫네." 주 씨가 아는 체를 했다.

"맞습니다. 십자인대보다는 연골 다친 게 후유증도 적고 훨씬 낫습니다. “ 의사가 맞장구쳤다.

수술하면 정상이 될까요? 축구도 할 수 있고?” 권 씨가 물었다.

", 몇 달만 지나면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의사가 웃으며 대답했지만 확신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권 씨는 수술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생각 좀 해보고 오겠습니다. MRI 복사해주실 수 있지요."

"네 그러시지요. 너무 늦으면 관절에 좋지 않습니다.” 의사는 마지막 경고를 잊지 않았다.

이후로 한 달 동안 권 씨는 운동장에 가지 않았다. 무릎은 더 나빠지지도 않았으나 그렇다고 증세가 없어지지도 않았다. 결국 이대로 사는 수밖에 없겠네 하는 생각이 굳어가던 차에, 무릎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리를 뻗고 앉으면 왼쪽 무릎이 아주 조금이지만 불룩 올라온 게 매우 기분 나빴다. 웬만하면 그냥 살까 했는데, 이래서는 곤란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병원을 가자고 했다. 허리가 아프고 자꾸 앞으로 굽는다는 것이었다. 병원이라면 손사래를 치던 어머니가 가자고 하시는 게 의아해서 웬일이나고 물었다.

지연이 할머니가 그러는데 읍내 병원 원장이 그렇게 용하대, 한 번만 가면 된대.”

뜻밖의 대답에 권 씨는 더 궁금해졌다. 아무리 용하다 해도 예수도 아니고 한 번에 병을 고치기야 할까. 그 할머니 어지간히 뻥이 세구나 했다. 어쨌든 헛말은 안 하시는 어머니인지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어서 오세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의사는 웃으면서 물었다.

내가 허리가 아프고 자꾸 앞으로 굽어요.” 어머니가 의사의 얼굴을 살피면서 물었다. 인상이 나쁘지는 않았다.

요새 생긴 병인가요, 10년 된 건가요?” 의사도 어머니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눈싸움이라도 하는 건지.

"10년이 뭐야, 20년은 됐지.”

"아침에 일어나고부터 굽어요? 아니면 한참 걸어야 굽어요?"

"아침에는 좀 나아. 오후 되면 더 굽고, 저녁에는 아예 안 펴져요."

", 왜 그런지 알겠네요, 엑스레이 찍고 오시면 보면서 설명해드릴게요. 의사가 몸을 뒤로 젖히며 말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돌아왔다. 의사는 어머니의 엑스레이를 컴퓨터 화면에 띄웠다.

"할머니, 어려운 내용이니까 잘 들으세요. 두 번 설명시키면 안 돼요. 이게 배 쪽이고 이게 등이에요. 배 쪽에 있는 척추 연골이 다 닳아서 없어지고 뼈끼리 붙었지요? 그래서 굽어 있는 데다 허리에 힘이 없어지니까 오후가 되면 점점 더 굽는 거예요."

의사의 설명에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권 씨는 어머니가 알고나 그러시는지 의심이 갔다.

그럼 못 고치우?"

"고치지는 못하고요. 허리 운동을 하시면 아침에 깨었을 때 굽은 것은 고칠 수 없지만 오후에 점점 더 굽는 건 막을 수 있어요. " 의사는 할머니가 잘 알아듣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약을 처방해드릴 테니 드시고 운동하세요. 운동 방법은 밖에서 우리 간호사가 알려드릴 거예요."

못 고친다면서 무슨 약이지요?” 권 씨가 끼어들었다.

"진통제지요. 아프다고 자꾸 눕지만 마시고 약 드시고 운동 열심히 하시라고요." 의사가 권 씨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안 아프게 하는 방법이라도 없을까. 조금만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파서."

"할머니, 사는 게 고통이잖아요. 그냥 사세요.” 의사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 대신, 가르쳐드리는 운동을 많이 하시면 오늘 병원오신 보람이 있을 거예요."

권 씨는 병원을 나오면서 왜 한 번에 고친다고들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맞지? 한 번에 고치지? 어머니의 미소가 권 씨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권 씨는 다음에 자신도 무릎 진료를 받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후 권 씨는 복사해 온 MRI를 들고 읍내 병원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의사가 인사했다. 권 씨를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권 씨는 복사해 온 MRI를 건넸다. 컴퓨터에 CD 영상을 띄우는 동안 의사에게 그간의 증상과 병원에 몇 번 갔다 온 사연을 말했다. 의사는 참을성 있게 들었다.

"결국 다리를 쭉 펴면 아프다는 거네요. 한번 펴보세요."

의사가 권 씨의 다리를 힘주어 피려고 했다. 권 씨는 아파서 다리를 뺐다. 모니터에 MRI 사진이 나왔다.

"어디 봅시다. 연골이 찢어졌다고 했다고요? 흐음, 이건 찢어진 게 아니고 혈관이에요. 연골도 속에 혈관이 있어서 간혹 MRI에 선명하게 보이는 수가 있어요. 연골은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한데요.”

"그럼 무엇 때문에 아픈가요? 정말 인대가 문제인가요?"

"맞아요, 전방 십자인대가 늘어났어요.” 의사가 MRI 사진에서 무릎관절 안의 십자인대 부분을 가리켰다.

끊어진 게 아니라 늘어났다고요?"

그래요. 여기 이 뼈가 자꾸 자라나서 십자인대를 눌러서 늘어난 거예요. 어쩌다 한 번씩 다리를 확 펴면 충격을 받아서 일부분이 끊어지기도 하고요, 그럼 십자인대에서 피가 나서 무릎이 붓는 거고, 보세요. 다리를 펴면 십자인대가 이 뼈에 닿게 생겼지요?"

설명이 일리가 있었다. 해부학은 모르지만 이치에 맞는 것 같았다.

"그럼 오래전부터 그랬다는 건데 왜 갑자기 끊어지고 아프고 했을까요?”

"잘 들으세요, 한 번만 설명할게요. 중국 속담인데요. 옛날에 어떤 바보가 있었어요. 빵을 먹는데 한 개, 두 개, 세 개를 먹어도 배가 안 부른 거예요. 그래서 네 개째를 마저 먹었더니 배가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바보가 생각했지요. 에이, 네 번째 것을 먼저 먹었으면 하나만 먹어도 배불렀을 텐데. 어떠세요. 이해가 되세요? 저는 지금 다른 환자 수술하러 가야 되니까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보세요." 의사가 일어서려고 했다.

"잠깐만요. 그럼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권 씨가 다급하게 물었다.

뼈가 자라서 그런 거니까 뼈를 깎아내야겠지요? 내시경으로 하고, 간단하기는 해도 일종의 수술이지요. 잘 생각해보시고 제 말이 맞는 거 같으면 수술하러 오세요. 그냥 사셔도 죽거나 불구가 되지는 않아요, 그런데 불편함은 평생 갈 거고, 비교적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거니까 수술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지요.” 의사는 나가버리고 권 씨 혼자 남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권 씨는 그날 저녁에 자려고 누워서 빙그레 웃었다. 한 번에 해결한다는 거 맞네.

수술할지를 고민했다. 지금도 많이 불편한 건 아니지만 평생 갈 거라면 이삼일 고생하는 것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읍내 병원을 다시 찾았다.

"원장님, 수술해주세요."

"알겠습니다. , 다음 주 수요일이 좋겠네요. 괜찮으세요?"

", 며칠이나 입원해야 하나요?"

"하룻밤만 자고 나가셔도 돼요, , 가서도 된다는 거지 꼭 가라는 건 아니에요. 의학적으로 돌아다녀도 문제가 없다는 거지 수술해서 아픈 건 제가 수술을 안 받아 봐서 잘 몰라요. 지내보고 견딜 만하면 가세요.

권 씨는 십자인대 감압 수술이라는 것을 받았다.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과연 다음 날 걸을 수 있었다. 아프기는 했어도, 사흘간 물리치료를 받은 후 퇴원했다. 그에 앞서 수술 이틀 뒤에 다리를 폈을 때 아픈 느낌이 없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점차 좋아졌고, 운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하고 두 달 후 마지막 점검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원장님 축구해도 괜찮지요?"

"하지 마세요.” 의사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의외였다.

사실은 벌써 해봤는데요. 할 만하던데."

"선생님, 어차피 사람 몸은 쓰는 만큼 망가져요. 요령껏 쓰면 더 좋지요. 그런데 축구하는 게 요령껏 쓰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수술을 안 받은 건강한 사람도 과격하게 많이 쓰면 그만큼 망가지겠지요. 축구를 하시려면 무릎이 아주 망가질 각오를 해야 돼요. 이제 병원에는 안 오셔도 돼요.

권 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진료실을 나왔다. 아무리 그렇지만 이것도 인연인데 이제 병원 오지 말라고까지 할 건 뭐야, 매정하게시리.

 

2. 전방 십자인대 충돌증

 

- 증상

이 병증은 교과서에 안 나온다. 저자가 경험을 바탕으로 이름 지은 것이다. 다리를 펴기가 불편하고 아프다. 한참 걸으면 오히려 편해진다. 주로 운동이나 일 등 활동량이 많은 사람에게 생긴다.

참고로, 십자인대란 무릎 관절 안에 있는 것으로 관절의 안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뒤에 하나씩 있어서 각기 전방 십자인대, 후방 십자인대라고 부른다.

 

- 진단

MRI 검사상 십자인대가 끊어지지는 않았는데 긴장도가 떨어져 보이고, 대퇴골의 가운데 부분이 자라서 뼈와 전방 십자인대가 닿아 있으면 이 병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 치료

대퇴골의 자라난 부분을 제거해 십자인대를 압박하는 것을 없애는 수술을 한다. 관절 내시경으로 하며, 하루 뒤면 일상생활 복귀가 가능하다.

 

- 화타의 충고

이 병은 화타가 명명한 것이다. 따라서 위의 내용 모두 화타의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에 따른 것임을 밝혀둔다. 다른 의사에게서 이런 내용을 들을 수는 없다. 환자 스스로 알기는 더 어렵다. (정병오 지음 / 똑똑한 환자 되기/ 모멘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