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환자 되기 21 - 무릎 관절염 2
"반이라도 어디여, 원장님은 그 수술 안혀?"
"왜요, 저도 가끔 해요. 원하시면 해드릴게, 근데 저는 줄기세포는 안 해요. 효과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뼈 수술만 하는 거나 줄기세포하고 같이 하는 거나 똑같은 것 같아서요."
"그려 요즘은 좀 나은 거 같으니 지내보고 또 아프면 그거라도 해야겠네."
“이제 세 번 맞았으니 약을 한 달분 가져다 놓고 많이 아플 때만 드세요. 주사 맞고 싶으면 또 오시고."
"알았슈, 고마워유“
그래도 저놈은 거짓말은 안 해. 그래 가지고 밥 먹고 살겠나? 김여사는 혀를 끌끌 차며 나온다.
그럭저럭 한 달이 지나고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무릎 아픈 것 어때요?"
“심하게 아픈 건 없어졌어도 가끔씩 시큰해서 주저앉을 것만 같은 느낌은 계속 있어.”
"제가 병원 알아봤는데 한번 가봐요. 다음 주에 올라오세요."
그래도 아들 공들여 키운 보람이 있는가 보다. 그걸 안 잊고 있다가 병원까지 알아보다니.
"이제 살 만, 안 가도 돼."
"아니에요. 이번에 아예 고쳐드릴게요.” 고친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고친다고? 읍내 원장은 못 고친다는디? 고치는 데가 있어? 그려, 그럼 한번 가보지. 너 바쁘니까 병원으로 바로 가게 역에서 만나."
며칠 후 영등포에서 만난 모자는 광고병원으로 갔다. 건물이 화려해서 들어서면서부터 비싸겠네 하고 걱정이 앞섰지만 아들한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돈 많이 못 벌어 무시한다고 아들이 기분 나빠 할까 봐.
로비에는 목발 짚은 사람부터 다리에 파란 보호대를 찬 사람까지 척 봐도 수술한 환자다 싶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순서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서니 지난번 주사 놔주던 의사보다 더 젊은 의사가 깍듯이 인사하고 무릎을 보잔다.
"아픈 지 너덧 달 됐슈. 안쪽이 많이 아프고 주저앉을 거 같어유."
“무슨 치료까지 해보셨어요?"
"피주사, 연골주사, 다 해봤지유.”
"관절염일 테니 엑스레이하고 MRI 찍고 볼게요."
"관절염이라고 알면서 뭔 검사를 한대유?"
의사 얼굴에 귀찮다는 빛이 잠깐 스쳤지만 이내 “자세히 봐야죠.” 하며 웃는다. 아들이 눈치를 준다. 시키는 대로 하자고.
검사를 하고 다시 가니 의사는 사진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자세히 보는 것 같지도 않더니 이내 김 여사를 돌아본다.
"관절염이 중간 정도로 진행됐으니 절골술과 줄기세포 시술을 하시는 게 좋겠어요.”
뭐여 다 아는 얘기잖여.
"그거 하면 낫는대유?" 의사의 얼굴에 잠시 당혹스러운 빛이 스쳐갔다. 이렇게 대놓고 낫느나고 물어보는 환자가 제일 어렵다. 낫는다고 큰소리치기에는 아직 세상 물이 덜 들었나보다.
"그럼요. 훨씬 안 아프지요, 아직 인공 관절을 하기는 이르니 그 수밖에 없어요.”
"알겠습니다. 언제 할 수 있지요?” 아들이 끼어들었다.
수술을 시키기로 이미 맘을 정한 듯했다.
“입원해서 검사하고 다음 주에 하시지요.”
날짜를 잡아놓고 나오면서 나 안 할래 한마디 했다가 가만 계세요 하는 아들 핀잔에 지는 척 넘어갔다.
아들 집에 들러서 며느리가 잘 차려준 저녁을 먹고 내려오면서도 잘하는 짓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서울에서 하는 게 그래도 지방에서 하는 것보단 낫겠지? 아닌가? 읍내 원장도 수술 잘한다고 소문났다는데, 광고병원 의사는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잖아. 큰 병원에 있다고 다 실력이 좋겠어?
저녁에 아들이 전화로 다시 다짐을 받는다. 줄기세포 시술이 최신 치료법이에요. 받아보세요.
아들 효도 받는 건 좋은데 헛돈 쓰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게다가 진료실을 나왔을 때 쪼르르 따라붙어 설명을 해주던 아가씨 말로는 목발도 한 달 짚어야 한다는데, 내가 그걸 짚고 걸어 다닐 기운이 어디 있다고? 어깨도 아픈데.
입원하는 날이다. 기차에 앉은 김 여사는 싱숭생숭하다. 10년 전에 맹장 수술 한 것 말고는 처음이라 두렵기도 하다. 읍내 원장이 고쳐주진 못한다면서도 하는 말은 다 맞던데 공연히 헛고생 하는 건 아닌지.
그 원장이 관절이 늙는 거라 고칠 생각은 말라는데, 그래도 뼈 자르는 수술을 하면 아픈 게 반쯤 줄 수도 있다고 했지? 그러면 해야지. 근데 괜히 서울 가서 수술하고 왔다가 읍내 원장이 이제 안 봐준다고 하면 어쩌나, 모르겠다. 이왕 코 꿰었으니 갈밖에, 유명한 병원이고 최신 기술이라니 믿어봐야지.
하반신 마취만 한다더니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보니 다리가 없어진 느낌이다. 내려다보니 붙어 있기는 하다. 시간이 지나 마취가 풀리니까 이런 고통이 없다. 생다리를 잘라놨으니 얼마나 아플까. 무통주사를 달았는데도 아파서 몇 번이나 엉덩이에 진통제를 맞았다. 속은 또 왜 이리 불편한지,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억지로 참는다.
비몽사몽간에 잠들고 깨기를 반복하다 다음 날 아침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회진 온 의사는 상처 치료 잘 하고, 한 달 목발 짚고, 물리치료 열심히 하세요 하고는 간다.
같은 병실에 대부분 하루 이틀 간격으로 수술을 한 비슷한 환자들이 누워 있다.
“댁은 어디서 왔는감?”
옆 침대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예산서 왔어유. 할머니는유?"
누워 있는 동안 다들 자기가 어디서 왔고, 무릎이 어떻게 아프고, 어떤 의사들을 전전했고, 여기가 잘한다는 걸 누구한테서 듣고 왔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눈다.
한 사람은 3년 전에 다리 분지르는 수술을 했는데 계속 아파서 왔더니 인공 관절 수술을 하라고 해서 또 했다고 한다. 그럼 효과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거네? 그래도 다들 여기가 잘한다고 해서 왔다니까 나도 기대해봐야지.
이튿날 상처 치료를 하는데 코끼리 다리같이 부은 데다 짼 데는 왜 그리 보기 흉한지.
일주일 만에 병원을 나서는데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서 결국 휠체어 신세를 졌다. 아들이 집에까지 데려다주는 게 못내 미안하다.
한 달 동안 목발을 짚으라고 했지만 어깨도 아프고 기운도 없고, 결국 김 여사는 앉은뱅이 생활을 했다. 그러다 겨우 걸어보려니 수술 자리가 아파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 달이 넘어서야 겨우 걸을 만해졌다. 후회막급이다.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라는데, 서울까지 다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읍내 병원에서 했으면 편했을 것을.
얘기를 들어보니 똑같은 수술을 읍내에서 받은 사람도 적잖았다. 괜히 서울 가서 돈은 서너 배 들고 더 나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안 아프기만 하면 되지 했으나 석 달 넉 달 지나면서 보니 읍내 병원 원장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아픈 건 반이나 줄었을까 싶을 정도고, 여기서 수술한 사람들과 상처도 똑같고 걷는 것도 똑같다. 뭐 하러 서울까지 가서 고생했는지.
6개월쯤 지나고 나니 또 시큰한 느낌이 찾아와 하는 수 없이 읍내 병원에 갔다. 원장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할 수 없지. 그래도 수술 전보다 버스 타기는 수월하다.
"아이고,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무릎은 좀 어떠세요?"
진료실에 들어서자 원장이 인사를 건넨다.
“사실은 나 서울 가서 수술했어. 줄기세포하고 뼈 자르는 거, 미안혀.”
"할 수 없지요. 배신하고 서울 가서 수술하는 사람이 한둘인가요? 잘 되기나 했으면 다행일텐데.” 원장이 크게 타박은 안 한다.
"근데 요즘 또 아퍼.”
"그 수술이 싹 고치는 수술은 아니에요. 세상에 관절염 완치하는 방법은 없어요, 그러려니 해야지. 잘됐나 사진이나 한 번 찍어보세요."
김 여사는 안 그래도 궁금하던 터라 냉큼 사진을 찍었다.
"수술은 잘 했네요.” 원장이 사진을 넘겨보면서 평한다.
"근데 왜 아퍼?"
"하하, 아주머니도 참. 원래 그런 거라니까요. 나이 탓이려니 하고 참고 사세요. 제가 말했잖아요. 관절염 고치는 방법이 개발되면 죽지 않게 하는 기술이 나온 거나 마찬가지라고, 관절이 나이 들어서 아픈걸 어떻게 거꾸로 젊어지게 만들겠어요.“
딴은 그렇다. 내가 불로초 구하러 다닌 거네.
“할머니 소리 듣기 시작하면 무릎은 당연히 아프려니 하세요. 너무 아프면 응급조치하는 기술이나 수술은 있지만 아예 고치는 기술은 없어요.”
"알았어. 잔소리 그만하고 응급조치라는 거 해줘."
"네, 6개월 지났으니 연골주사 다시 맞고 약 드세요. 약은 먹다 말다 해도 혼내지 않을 테니 신경 쓰지 마시고, 한 5년이나 10년 후에 인공 관절 할 때는 꼭 저한테 하세요."
"알았어, 꼭 그럴 터, 이제 서울이라면 신물이 나."
김 여사는 병원을 나오면서 인생의 깨달음을 하나 얻은 것 같으면서도 서글펐다.
2. 무릎 관절염
- 증상
아프다. 걸어도 아프고, 앉았다 일어날 때도 아프다. 무릎 뒤가 빠근하고 땅긴다. 급성으로 악화되면 구부리고 피는 게 고통이다.
- 원인
노화다. 꼭 나이가 많아야 노화가 되는 건 아니다. 40대에는 40대 만큼 노화가 온다. 관절염도 40대의 관절염이 있고 60대의 관절염이 있다.
- 진단
초기에는 엑스레이로는 잘 봐야 보인다. MRI가 더 잘 보인다.
- 치료
1) 연골주사: 히알루론산(hyaluronic acid)이라고 하는, 인체의 연골과 성분이 비슷한 화합물을 관절 내에 주사하는 요법이다. 제약사에서는 연골이 재생된다고 주장하지만 과장으로 보인다. 최대 장점은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다. 시술 경험으로 보면 상당한 정도의 통증 완화 효과가 있다. 초기 내지 중등도의 관절염에 추천할 만하다.
2) 뼈주사: 스테로이드 주사다. 강력한 소염 진통제로, 가히 만병 통치약으로 불릴 만한 신묘한 약이다. 먹는 것도 있다. 하얗고 작은 알약을 먹었는데 신통하게 이픈 게 없어졌다면 이 약일 가능성이 크다. 소문난 약국에서 쓰는 약에 포함돼 있는 경우도 많다.
약이나 주사가 잘 듣는다고 소문난 병원도 마찬가지다. 단기 효과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문제는 각종 부작용이다. 장기적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거의 몸 전체가 망가진다고 할 정도로 부작용이 심각하고 다양하다. 고혈압, 당뇨, 신장과 심장의 이상, 피부의 얇아짐, 골다공증, 비만 등등 다 열거하기도 어렵다. 한두 번의 주사나 복약으로 끝낸다면 써도 된다. 다만 류머티스 관절염 등 아직까지 그럴듯한 약이 없는 질환의 경우 장기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의사가 뼈주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관절에 주사를 찌르는데 우유색이라면 뼈주사다.
3) 자가 혈청 주입 주사: 5년쯤 전부터 유행했던 요법이다. 자기 피를 뽑아서 원심분리를 한 후 응고된 혈액 성분을 관절에 넣어 주는 치료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치료라고 부르기조차 부끄러운 실험성 조작이다. 이삼 년 유행 후 거의 사라졌지만, 지금도 하는 곳이 더러 있다.
4) 줄기세포 시술: 현재진행형이다. 심지어 유명 대학병원들에서도 한다. 그러나 이 시술을 받은 환자들의 무릎을 추적 관찰해보면 전혀 효과가 없어 보인다. 효과가 없는 것을 의사들 스스로도 의식해서인지 이것만 단독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연골 절제 수술이나 경골(정강이뼈) 절골술 등의 치료에 병행한다. 통증이 경감되었다면 줄기세포 때문이 아니라 다른 치료로 효과가 있는 것이다. 줄기세포는 병원의 돈줄 이상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5) 경골 절골술: 무릎 아래 뼈를 잘라서 다리의 배열을 곧게 펴는 수술이다. 통증 경감 효과가 분명히 있다. 나중에 인공 관절 수술을 할 때 더 쉬워진다는 장점도 있다. 단점은 회복 기간이 길다는 것이다. 통중 경감이 인공 관절만큼 좋지는 않다. 다만 정상적인 운동이 가능하다는 절대적인 장점이 있다.
6) 인공 관절 수술: 마지막 수단이다. 걸을 때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환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사용 연한이다. 한마디로 답하면 쓰기 나름이다. 많이 쓰면 일찍 망가지고, 누워서 지낸다면 백 년도 간다. 그다음 궁금증은 무릎의 구부러지는 각도, 쪼그려 앉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수술 방식에 따라, 그리고 수술 후 물리치료를 통해서 억지로 구부리면 정상 무릎만큼 구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과도한 굴곡은 고정물의 이완(헐거워짐)과 내장재의 조기 마모 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잘 구부러지고 쪼그려 앉을 수도 있다고 광고하는 병원은 피해야 한다. 환자도 많이 구부러지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장기간 재수술하지 않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100도 정도의 굴곡으로 만족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정상 무릎도 쪼그려 앉기를 많이 하면 더 빨리 망가지는데 인공 관절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 화타의 충고
운동을 많이 하거나 일을 많이 한 만큼 노화가 빨리 온다. 운동도 많이 하는데 웬 관절염이냐고 제발 묻지 말자, 쪼그려 앉으면 뒤쪽 연골에 압박이 증가해서 연골이 빨리 망가진다. 견딜 수 있으면 견디는 거다. 못 견디면 치료 받자, 그렇지만 관절염을 고치거나 예방할 수있다는 착각은 하지 말자, 진시황이 불로장생약을 구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기 나이에 맞는 관절염은 정상이다. 질병이 아닌 것이다. 살아온 세월의 반영이다. 갑자기 30년 젊어질 수 없는 것처럼 관절도 신묘한 치료로 세월을 돌릴 수는 없다.
다만, 많이 불편하면 약간의 손질로 10년 정도의 세월을 거스를 수는 있어 보인다. 그것 역시 치료는 아니다. 약간 손질해서 쓴다고 생각하자. (정병오 지음 / 『똑똑한 환자 되기』 / 모멘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