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hope888 2022. 4. 14. 12:00

 

 아내가 한숨을 내쉰다. 보험료와 공과금 불입일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아내의 한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록 땅이 꺼질 듯 내쉬는 한숨은 아니지만 내 가슴은 새처럼 콩닥거린다.

아내와는 중매로 결혼했다. 그 당시에는 늦은 나이였다. 번듯한 직장을 갖지도 않았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 결혼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미루다가 삼십을 채우기 직전에 결혼을 했다. 그나마 장가를 가게 된 것은 늦게나마 사업을 벌여 그런대로 형편이 나아져 용기를 내게 된 것이다.

아내와 다리를 놓은 사람은 처가의 외삼촌과 위 동서였다. 그분들은 사업상의 거래처였다. 거래를 하다 보니 조금은 파악이 되는지라 고맙게도 장래성 있는 인간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엔 사업이 꽤나 잘 되고 있었다.

아내와 첫 만남에서는 가족 관계 정도만 탐색했다. 맞선도 처음이었으니, 얼뜨기처럼 물어볼 게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다리를 놓는 두 분 다 내로라하는 재력가들이어서 처가도 당연히 어마무시한 집안일 거라 짐작만 했다. 그런 부잣집에서 빈털터리나 진배없는 나 같은 인간에게 딸을 주는가 싶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개미의 발톱만큼 진전이 있었다. 취미가 무언가를 묻게 되었다. 진부하게도 음악이나 영화 감상 이야기가 나오고 독서에 이르렀다. 바로 그즈음에서 생뚱맞게도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 당시엔 문학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그 시가 떠올랐다.

아마 그게 내 신념이고 이상이었던 모양이다. 돈에 대한 집착이 없었으니 당연히 그런 시가 부지불식간에 내 뇌리에 박혀 있었던 것 같다. 맞선 보러 나온 아가씨 앞에 낭만 가객처럼 시를 읊조렸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 왜 사냐건 웃지요.

 

그런 시를 읊조린 것은 아내를 시험해 보려는 불손한 의도가 깔려 있기도 했다. 가난한 집안에 시집을 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능력도 모자라고 집안도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귀띔하여 '시집오면 고생깨나 할 거요.'라는 메시지가 다분히 담겨 있었다. 사실상 자신이 없었다.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재능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자를 당겨 앉으며 이 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 없이 배시시 웃고만 있었다. 그윽한 미소는 내 뜻을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여기자 이해심 많은 평강공주로 보였다. 그렇게 혼사는 급물살을 탔다.

결혼 초에는 사업이 순조로웠다. 돈 걱정 없이 잘나가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몇 년 가지 않아 고난이 대문을 박차고 들이닥쳤다. 손익 계산에 철저하지 못한 탓이다. 하루하루 만주 벌판을 걸어가듯 살아야 했다. 그때부터 아내의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내를 쳐다볼 낯이 없었다. 능력 없는 모습이 만천하에 그대로 드러나고 만 것이다.

그러구러 세월도 흐르고 어찌어찌하여 지긋지긋한 만주 벌판을 기어 나왔다. 그렇다고 형편이 그리 풍족해진 것은 아니다. 큰소리칠 형편은 아니지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아내의 한숨은 계속되고 있다. 그때의 습관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만주 벌판에 갇혀 있을 때를 생각하면 가슴을 내밀고 어깨 으쓱거려도 되는데 아내의 한숨은 그칠 줄 모른다.

아내는 결코 욕심이 적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금 수수료를 물거나 가산금을 내거나, 교통카드 체크를 깜빡 잊고 환승하지 못한 것을 그렇게 애통해했다. 여느 아내들이 그러하듯 아이들에게 좋은 옷 입혀야 하고, 좋은 음식 먹여야 하고, 좋은 학교 보내고 싶어 했다. 이 정도야 욕심이라 할 수 없겠다.

아내는 유독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 형편도 되지 않는데, 땅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주식을 사서 재미를 보았다는 말에 크게 동요를 한다. 방송에서 기업가들의 성공담을 들을 때, 지인들의 집들이에 가거나 동창회에 갔다 오면 한숨은 더 깊어진다. 물론 시선도 곱지 않고, 예전의 평강공주 같은 모습이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오늘처럼 아내의 한숨 소리를 들을 때마다 김상용 선생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가 떠오른다. 내가 그 시를 읊었을 때, 아내는 왜 미소만 지었을까?

‘철없는 소리 하고 있군' '싹수가 노랗군'이라고 하든지, 속마음은 그렇더라도 '강냉이만 먹고 어떻게 살아요!' 하지 왜 아무 말 않고 미소만 지었을까?

작금의 한숨은 그때의 미소 때문이다. 나는 멋 부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어봤어야 했다.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한숨은 순전히 아내의 잘못이다. ‘별 볼 일 없는 남자로구나!' 하고 돌아섰어야 했다. 그랬으면 한숨 쉴 일이 없을 것 아닌가. 아 그래도 그렇지 그건 아니다, 미소를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양 느슨하게 살아온 내 잘못이 분명하다. (신현식 / 『한국수필』 2022년 4월 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