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치유하는 33가지 지혜 7 - 위기에 직면하는 법(다윗)
이른 아침 영산강 변은 하얗게 피어오른 억새로 눈부셨습니다. 제법 강한 바람에 억새는 쉴 새 없이 이리 눕고 또 저리 누웠습니다. 그러나 억새는 흔들리면서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킵니다. 그 뿌리로 제가 서 있는 땅을 단단히 움켜잡고 있는 까닭입니다. 흔들리는 저 억새에 깊이 감정 이입이 된 저는 저를 스쳐 갔던 바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저를 이리저리 흔들어 놓았던 바람들…. 좋은 바람도 있었고 두렵고 무서운 바람도 있었습니다. 붙잡아 둘 수 없어 안타깝기만 했던 고마운 바람도, 취약한 내 뿌리를 온통 드러내는 사나운 바람도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바람은 불어올 것입니다.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법, 바람을 탓할 수 없다면 저 억새처럼 어떤 바람에도 굳건히 서 있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불어오는 그 바람과 함께 춤추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어디에서 이런 자유를 배울 수 있을까요?
참자유를 배우기 위하여 우리는 이스라엘의 남부 광야 지역으로 갈 것입니다. 광야에는 모든 생명을 태워 버릴 듯한 뜨거운 열풍이 자주 불어옵니다. 그러나 그 바람을 피할 은신처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굴곡진 언덕과 메마른 계곡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곳에서 우리에게 참 자유를 가르쳐 줄 스승은 사무엘기 상권 30장에 소개되는 다윗입니다.
당시 다윗은 사울을 피해 유다 광야를 헤매며 고된 피난살이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육백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필리스티아(블레셋)에 망명하기 위해 갓의 임금 아키스(아기스)를 찾아갑니다. 사울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사무 27 1 참조), 아키스 임금은 다윗 일행에게 치클락(시글락)이라는 성읍을 내주어 살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치클락에 정착하고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필리스티아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필리스티아 군대는 아펙에 집결하였습니다. 이때 다윗 역시 아키스 임금과 함께 아펙으로 진군하였습니다. 만약 아키스 임금의 뜻대로 다윗이 이 전쟁에 참가한다면, 다윗은 자기 동족과 맞서 싸워야만 합니다.
다윗의 진퇴양난은 하느님의 개입으로 해결됩니다. 필리스티아는 다섯 임금이 다스리는 연방 국가인데, 아기스를 제외한 나머지 네 임금이 다윗이 한때는 적의 장수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다윗을 불신한 네 임금 덕분에 다윗은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치클락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은 전사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과 그 일행은 전쟁터와는 정반대 방향인 치클락을 향하여 사흘 길을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다윗 일행을 맞이한 것은 폐허가 되어 버린 성읍이었습니다. 그들이 전쟁터로 간 사이에 아말렉족이 습격하여 성읍에 불을 지르고 모든 주민을 끌고 간 것입니다. 다윗의 두 아내인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잡혀갔습니다. 이 기막힌 상황을 본 다윗과 그의 수하 군사들은 목놓아 울었습니다.
위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은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1사무 30,6), 모든 군사가 저마다 아들딸을 잃고 마음이 쓰라려, 다윗에게 돌을 던져 죽이자고 수군거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는 위기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몰려왔습니다.
왜 그의 수하 군사들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다윗을 죽이려고 할까요? 사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곤란은 누가 야기한 것입니까? 성읍을 약탈한 아말렉족입니다. 다윗은 이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아니라 그 역시 이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군사들은 감당하기 힘겨운 고통 앞에서 다윗을 탓하고 죽이려 합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대상을 비난함으로써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방어 기제입니다. 그러나 남을 비난하거나 탓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고통을 더할 뿐입니다. 만약 다윗의 수하 군사들이 작정한 대로 다윗을 죽였다면 결국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 줄 지도자마저 잃고 절망한 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이 위기를 어떻게 직면하였을까요?
다윗은 군사들이 자신을 탓하고 비난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비난 대상을 찾거나 탓을 돌릴 누군가의 이름을 거론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그는 제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는 억새처럼 땅을 단단히 움켜잡습니다. 그가 단단히 움켜잡은 땅은 바로 그의 하느님(하나님)이었습니다.
성경 본문은 이 사실을 강조하듯이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군사들이 그를 죽이자는 말을 수군거렸을 때 다윗이 취한 즉각적인 대응은 “주 자기의 하느님 덕분에 힘을 얻었다.”(1사무 30,6)는 것입니다. 그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체하지 않고 하느님께 의탁하여 힘을 얻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그 역시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그는 잡혀간 가족들을 되찾아 오기 위하여 하느님께 여쭈어 봅니다. 에브야타르 사제를 통하여 하느님께 강도떼를 추격해도 되겠는지 문의합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그는 즉시 부하들을 설득하여 아말렉족을 찾아 나섭니다. 육백 명의 군사들이 모두 그와 함께 떠났지만 아펙에서 이미 사흘 길을 달려왔던 군사들 가운데는 지친이들도 많았습니다. 너무 지쳐서 더 이상 행군할 수 없던 이백 명은 브소르 개울에 남아 그들의 짐을 지켰습니다.
사백 명의 군사들과 함께 계속해서 아말렉족의 행적을 찾던 다윗은 주님의 도움으로 아말렉족의 노예였다가 도망친 이집트인을 만납니다. 이 이집트인의 안내로 아말렉족이 머무는 곳을 발견하게 된 다윗과 그 일행은 약탈물로 성대한 잔치를 벌이던 아말렉족을 공략하여 모든 것을 되찾습니다. 아말렉족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사백명에 불과했고, 그들은 낙타를 타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다윗과 그 일행은 잃은 것을 모두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아말렉족의 양 떼와 소 떼까지 전리품으로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다윗과 그 일행을 뒤흔들던 위기는 해결되었습니다.
이들이 전리품을 안고 당당하게 돌아올 때 지쳐서 뒤에 남았던 이백 명의 군사들은 이기고 돌아오는 다윗 일행을 환영하였습니다. 그런데 추격전에 끝까지 참여했던 사백 명 중 일부가 이 이백 명에게는 전리품을 나누어 주지 말자고 제안합니다.
이 바람도 다윗을 흔들지 못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형제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넘겨주신 것을 가지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오. 그분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를 치러 온 강도떼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는데, 이 일을 두고 누가 그대들의 말을 들을 것 같소? 싸우러 나갔던 사람의 몫이나 뒤에 남아 물건을 지킨 사람의 몫이나 다 똑같아야 하오. 똑같이 나눠 가져야 하오." (1사무30,23-24).
과연 다윗은 주님께 단단히 뿌리내린 사람입니다. 그는 승리에 도취되지 않습니다. 이 승리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승리를 자신의 공으로 돌리지 않고, 그 결과를 독식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혜택이 모든 이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씁니다.
다윗은 하느님께 뿌리를 내린 사람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들은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든, 또 어떤 바람이 불든, 그 바람에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선택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들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굳건히 뿌리내린 이들은 하느님의 지혜를 드러내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아말렉족에게서 얻은 전리품으로 넉넉해진 다윗은 필요 이상의 것을 보관할 창고를 짓는 데 골몰하는 대신 유다 광야에 있는 성읍들의 원로들에게 전리품의 일부를 선물로 보냅니다. 이는 예전에 입은 은덕에 대한 답례이기도 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합니다. 훗날 그는 이 원로들의 지지를 받아 헤브론에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김영선 수녀 / 『관계를 치유하는 33가지 지혜』 / 생활성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