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식의 자연치유 9 - 자연생활로 암을 극복하다.
삼양 검은모래해변

다음은 자연생활로 암을 극복한 사례로 2007년 6월 20일 김정대 (64- 남)이 직접 작성한 글이다.
마음 비우고 자연에서 열심히 노시라
평소 술과 담배를 즐기는 편이지만 병으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가리는 음식도 없으며 흔한 몸살감기도 남 이야기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특히 음식의 소화와 배변은 그 누구보다도 원활해 가족들도 인정하는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다. 다만 오랜 흡연 기간과 폭음하는 습관 때문에 몸이 상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신선한 채소와 계절 과일 등을 즐겨 먹고 육고기를 남들보다 많이 먹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하루 세 끼 균형 있는 식사를 했다고 생각하나 단 음식과 간식을 배불리 먹는 습관 때문에 오랜 기간 영양과잉 상태가 계속 됐을 것 같고 지방의회 의원직 활동을 8년여 하면서 잦은 외식으로 고단백과 고지방 음식을 많이 먹었다.
1) 발병
2006년 2월 지방의회 의원 활동을 하면서 그해 5월 지방선거 출마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에 딸과 사위의 권유로 인근 삼천포에 있는 단식원에서 수련할 기회가 있었다.
평소 고혈압 때문인지 2004년 뇌경색 판정을 받았고 그 이후에 술,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동시에 당뇨약을 복용하고 있을 때였는데 고혈압과 당뇨병의 치료에 단식이 효과가 있다는 주변 분들의 말에 15일간 생수 단식을 하게 됐다. 단식원에서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에 임한 탓에 원장님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조금 의심스러웠던 점은 단식 수련 중에 각혈을 했는데 각혈의 횟수와 지속 기간을 보고 암을 의심해 볼 수 있다는 원장님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나의 증세는 다른 암환자들과 다르다며 원장님도 안심하게 됐다.
단식을 무사히 잘 마치고 자택에서 보식 기간 중에 감기와 기침으로 며칠 드러누워 있었는데 그때는 병을 고치러 갔다가 얻어온 격이라서 나를 단식원에 소개시켜준 가족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보식 기간이라 감기약이나 기침약을 먹지 않고 단식원 원장님이 가르쳐 준대로 집에서 치료를 하고 있었다. 1주일째 계속되는 감기와 기침으로 밤에 잠을 못 이루고 점점 기운이 없어져갔다. 이런 나를 보다 못한 아내가 X레이 촬영이라도 해보자며 이들 녀석과 함께 진단방사선과 의원에 가서 X레이 촬영을 해보았다. 폐에 염증이 있다며 CT 촬영을 추가로 하고 휴게실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담당 의사가 아들만 몰래 진료실로 불러 상담을 했다.
폐암이 예상된다는 의사의 소견을 아내와 아들은 알게 되고 나에게는 가벼운 염증이라며 조금 큰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아보자고 했다. 그렇게 인근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한 결과 폐암 2~3기라는 판정을 받았고 가족들은 나에게 작은 덩어리가 있어 수술만 하면 된다는 말만 했다.
2006년 3월
서울 쪽에서 수술 받기를 원해서 영동세브란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으며 이때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정밀검사 결과 흉부외과 담당 의사는 항암치료 후 수술 여부를 결정하자고 하셨고 5월까지 항암치료(화학요법)를 받았다. 다행스럽게 경과도 좋고 항암치료 부작용도 적어서 5월 말경에 수술을 받기로 했다.
2) 수술
2006년 5월
수술은 흉부외과 의사들도 놀랄 만큼 성공적으로 깨끗하게 암 덩어리를 제거했다고 했다. 퇴원 후에도 암 재발 예방약을 복용하고 두어 달에 한 번씩 검사하러 병원을 찾는 것이 고작이었다. 수술 부위에 약간의 통증을 제외하고는 일상 생활에서도 큰 불편을 못 느끼며 의사들이 권하는 대로 그동안 떨어진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개고기를 비롯해 고단백 고지방 음식을 많이 섭취했다.
평소 고혈압과 당뇨병이 있었는데 2월경 단식 후에는 혈압이 정상으로 낮아졌으나 당뇨는 항암치료를 받을 때부터 더 악화되기 시작했다. 당뇨약을 처방받아 계속 복용하고 있으면서 음식은 전혀 가리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10월에 막내딸 결혼을 서둘렀다.
3) 재발
2006년 12월
정기 검사 때 담당 의사에게서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말을 들었다. 워낙 수술이 잘 됐다는 관계자들의 소견과 나 역시 몸에 특별한 이상 징후가 없었기 때문에 그때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검사 결과 암이 재발됐으며 대동맥과 림프절로 전이됐다고 했다.
2007년 1월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담당의사의 소견과 함께 방사선치료와 화학요법을 동시에 받아야 했고 자택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할 것을 권유 받았다.
그러나 가족들의 만류로 수술한 병원에서 치료받기로 하고 병원 주위에 월세 방을 얻어 아내와 함께 지내게 됐다.
매일 방사선치료를 받고 1주일에 한 번 항암 주사를 맞았다. 1주일이 지났을 무렵 아들과 딸이 저녁에 급히 찾아와 다른 치료법을 찾아보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나는 담당 의사의 소견과 처방만 믿고 끝까지 치료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아들과 딸의 계속된 설득에도 며칠 더 치료를 받고 있었고 그제서야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입맛이 없고 음식 냄새도 역겨웠다. 자연히 하루 종일 목으로 넘어가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2주째 되는 날 아들의 안내로 서울에 있는 한의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한의사는 자신이 치료를 할 수 있다며 병원에서 항암치료 받은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런데도 나는 내키지 않아 한방 치료는 포기했다.
그 외 모든 치료를 포기하고 자택으로 차를 돌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른 치료법으로 암환자를 치료하는 수련원에 가보길 원했고, 자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충남 홍성에 있는 자연건강원에서 원장과 상담을 했다. 자연요법으로 난치병, 현대병 등을 치료하고 있는 원장은 현대의학의 암치료 방법에 대해 강한 어투로 비판하며 입원을 권유했다. 상담 후 나 자신도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수술과 방사선, 화학요법의 양의학 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었으며 며칠 후 그곳에서 10일 동안 수련하고 자택에 돌아와 그곳에서 배운 대로 실천을 하고 있었다. 20일 후에 2차 수련 참가를 앞두고 갈등이 생겼다.
수련원 환경이 열악해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2007년 3월
하나의 대안을 또 잃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점점 작아지는 삶의 희망에 내심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산에 있는 자연의원을 가족들과 함께 찾은 나는 그곳에서 원장님 말씀을 듣고 작은 희망을 품게 됐다.
4) 새로운 희망
자연의원 원장님은 내 병의 원인은 오랜 흡연과 잦은 회식이기 때문에 섭생과 생활습관을 바꾸고 몸에 쌓여 있는 노폐물, 독소를 빼고 면역을 증강시키면 암을 억제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프로그램을 보니 자연식하고 등산하고 쑥뜸하고 명상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것들이면 자신이 있었고 마음에도 들었다. 또한 원장님이 의사여서 안심이 됐다.
이제야 자연의원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나뭇가지는 아직 앙상하지만 봄 냄새가 나는 듯했다. 이런 산 속에 병원을 차리고 있는 이유가 분명하고 이곳까지 찾아오게 된 것도 깊은 인연이 있는 것이리라 생각됐다.
나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자연의원에 입원했다. 10여 명의 환우들도 다 같은 처지라 금방 친해졌다. 같은 방을 쓰게 된 분은 현직 교장선생님이었는데 나보다 오래 투병을 해왔고 더 위중한 상태였지만 치유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그램대로 아주 열심히 따라했다. 말 잘 듣는 모범학생이 된 셈이다. 매일 풍욕과 냉온욕을 하고 등산을 했는데 새잎이 파릇파릇 돋아나듯이 하루하루 다르게 나의 몸은 가뿐해지고 다리에 힘도 붙었다.
자연 속에서 이렇게 느긋하게 자연을 즐기면서 마음까지 즐거우니 이제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서 하는 기수련이나 명상도 좋았다. 기수련은 따라 하기는 힘들었지만 깊은 호흡을 하고 명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원장님은 “폐과는 성격이 급하고 욕심이 많은 편이다. 욕심을 버리시라"고 했다.
자존심 강한 나는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나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여기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고 여기 들어오기 전에 논과 밭을 부동산에 내놓았는데 거기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마음을 더욱 느긋하게 가지리라 다짐했다.
4월이 되자 봄이 완연해졌다. 원동이 참 예뻤다. 매화와 진달래가 산을 물들이고 바람에 실려온 매화향은 정말 일품이었다.
자연의원은 4월 중순에 경주 산내로 이사를 했다. 환우들도 함께 이사했다. 경주 산내도 원동 못지않게 공기도 좋고 산도 좋았다. 나는 이곳에서 한 달을 더 열심히 산을 타고 108배를 했다.
병원 생활 3개월째, 서울대병원에서 PET 사진을 찍었는데, 대동맥 림프절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내 몸에 암세포가 다 사라진 것처럼 기뻤다. 나는 보무도 당당히 하산했다. 자연의원에서는 퇴원을 이렇게 부른다.
5) 마음을 비우고 자연에서 열심히 노시라
서울대학교병원 주치의 선생은 나보고 무슨 치료를 받고 있는지 물었다. 당연히 의아해 하실 것이다. “3개월 동안의 특별한 치료 덕분이지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자연의원 원장님 말씀대로 마음 비우고 자연 속에서 열심히 놀았을 뿐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마음을 비우고 산을 열심히 타고 있다. 마침 원장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잘 지내시죠?"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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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대 님은 2007년에 3개월 동안의 자연치유 결과 종양이 줄어들어 기쁜 마음으로 하산을 했는데, 자연의원에서 배운 대로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고 방심하신 결과 7개월 뒤에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 2007년 12월 PET, CT 결과 흉막전이가 되고 흉수가 생겼다.
그래서 2007년 12월에 자연의원에 재입원해 4개월 동안 다시 몸을 만들어 하산했는데, 그 뒤로는 이전과 다르게 채식과 등산 등 생활요법을 더 철저하게 하고, 작년부터는 아예 산에 컨테이너를 갖다 두고 거기서 잠을 자는 자연생활을 하고 계신다.
그 결과 아주 건강해지셨고, 1년 6개월 만에 찍은 CT 결과 대동맥림프종 paraaortic I.N. 크기가 반 정도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조병식 / 『조병식의 자연치유』 / 왕의 서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