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조병식의 자연치유 13 – 최선을 다 한다면 병을 꼭 고칠 수 있습니다

hope888 2022. 5. 12. 10:04

애리조나 주 앤털로프 캐니언

 

1. 발병 시작

 

2004년 여름

샴푸 후 머리가 많이 빠지고 몸이 많이 피곤해서 잠을 자주 잤습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잠을 많이 잡니까?"라고 할 정도로.

 

2004년 겨울

대변이 잘 안 나오기 시작하고 변이 우동 줄기처럼 나왔습니다. 2달 정도 그러고 난 후 대변에 콧물 같은 점액이 묻어 나오고 방귀가 자꾸 나왔습니다.

 

2005년 봄, 여름

그렇게 봄, 여름을 지냈습니다.

 

2005년 가을

추석 10일 전부터 대변이 너무 안 나왔습니다. 추석을 5일 앞두고 항문 안으로 손가락을 넣었는데 항문이 부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 애를 낳고 대변이 안 나와서 손가락을 넣었을 때는 구불구불한 주름이 느껴졌는데 이번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는 손가락이 똑바로 쑥 들어가서 뭔가 병이 있다는 낌새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대변을 볼 때 피가 섞여 나왔습니다. 그날 저녁에 다시 항문에 손가락을 넣고 다음날 아침에 대변을 볼 때 항문에서 오줌 누듯이 피가 많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추석이 얼마 안 남아서 꾹 참고 가족들에게는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고 남편에게 추석을 쇠고 병원에 가보자고 얘기를 했습니다.

 

20059

그렇게 추석을 보내고 바로 창원에 있는 굿모닝내과에 가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고 직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200510

부산에 있는 고신대병원에서 수술을 하려고 검진을 받았는데 직장암 1기 반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200511

좋은 곳에서 수술을 받고 싶어서 서울 삼성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3기 판정을 받아 너무 놀랐습니다.

 

200512~ 20061

삼성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항암을 6번 받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항암 첫 번째는 힘든 줄 모르고 받았는데 두 번째는 힘이 너무 빠지고 아무 것도 못할 지경이 됐습니다. 입술이 터서 갈라지고 피가 나와서 입을 벌리기조차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사용해 거울을 보아가면서 입술에 부딪치지 않게 밥을 먹었습니다. 식도

는 부어서 물이 잘 안 넘어 갔습니다.

 

20062

인터넷을 통해서 양산 원동 산속에 있는 (지금은 경주 산내로 옮김) 자연의원이라는 곳을 알게 됐고 그 곳에서 상담을 했습니다. 원장님이 항암을 받지 말고 오라고 해서 항암을 그만두고 6개월간 자연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원장님은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섭생을 잘못해

서 병이 났으니, 섭생을 바로 잡고 즐겁게 생활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정말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항암을 받다가도 죽는데 저는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서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2. 자연의원에서 생활

 

먼저 자연식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산행, 풍욕, 냉온욕, 기수련, 명상 등을 했습니다. 자연의원에서의 생활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식사 시간 이후에 환우들과 보급대를 만들어서 산에 올라가 산나물이나 산야초를 캐 와서 반찬도 해 먹고 산야초 추출액을 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락시간에는 환우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사비를 털어 우스꽝스런 옷들을 사서 그것을 입고 노래 시간에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었습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환우들을 위해서 많이 웃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원장님은 저에게 삐에로'라는 별명도 지어주고, 퇴원할 때는 원장님과 환우들이 자연의원의 꽃이 나간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제가 외박 나가 있는 동안 간호 과장님에게서 환우들의 얼굴이 어둡다고 빨리 돌아오라고 전화가 온 적도 있습니다.

저는 자연의원에서 생활하면서 나아야겠다는 의지로 최선을 다해서 생활했습니다. 같이 생활한 부원장님은 정경선 씨는 두 번 다시 병원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원장님, 부원장님, 간호 과장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큰 힘이 되어준 같은 방 유혜경 씨에게도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

 

3. 현재의 생활

 

저는 20년 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밤 12시에 자는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도 그런 생활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일의 양은 줄이고 제 몸을 관리하는데 시간을 더 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에 사업장에 가는 차 안에 앉아서 운동을 하고 차 안에서 노래도 부릅니다. 자동차 안은 저의 운동장과도 같았습니다. 집에 있는 화장실 안에서도 노래를 부릅니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한 노래 교실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스포츠댄스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 뒤에 있는 동산에 올라가 2시간 정도 산행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일상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운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우들의 집에 놀러 다니고, 가게 일도 가끔씩 봐주고 있습니다. 저는 '즐겁게 산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현재는 많이 좋아졌고 20074월에 서울 삼성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결과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환우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일단 병이 나면 마음부터 정리를 해야 합니다. 내 몸에 병이 들어도 내 마음은 건강하다고 다짐을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한다면 꼭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열심히 운동하고 마음가짐을 잘 잡아야 합니다.

저는 정말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정말 악착같이 1년에 5일 정도만 쉬어가면서 일을 했고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다 보니까 제 몸을 돌볼 생각을 못 했고 병이 들었습니다. 저는 직장암 판정을 받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사람이 살 만하면 병이 든다고 조금 살 만하니까 병이 났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강한 사람이라 강하게 살아왔고 열심히 노력해서 장사도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병 치료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은 병도 고치고 하던 일도 해가면서 제2의 인생을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있듯이 우리가 '내가 아픈데.라고 자꾸 생각하면 진짜로 아파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제보다 조금 낫다라고 생각하면 병이 조금씩 나아지죠. 이것은 말하면 말한 대로 된다"는 말로, 저는 아파도 항상 낫고 있다고 생각하고 병을 고쳐갔습니다.

----------------

정경선 님은 내가 5년 동안 암 환우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함께 하신 분들 중에서 큰 감동을 주신 분으로, 암투병을 하고 계신 환우분에게 귀감이다.

정경선 님은 갖은 고생 끝에 살 만하니 병이 났고, 병이 나서는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어 이상한(?) 사람이 됐다.

잘 웃을 줄도 모르는 분이 잘 웃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잘 웃기는 사람이 됐으며, 꾸밀 줄도 모르는 사람이 환우들을 웃기기 위해서 온갖 의상과 액세서리를 사 모으는 취미를 가지게 됐다. 정경선 님은 스스로 웃음 치료를 터득한 웃음치료사가 된 것이다.

지금도 정경선 님은 노래도 부르고 춤도 배우며 즐겁게 살고 계신데 이것이 암을 극복한 제일의 치료제가 됐다. 또한 정경선 님은 섭생을 바꾸어 채식, 자연식을 하고 있으며, 매일 등산을 실천하고 있다. (조병식 / 조병식의 자연치유/ 왕의 서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