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면 그대로 믿지 마세요.

아내는 반평생 위나 대장 검사 같은 주요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았습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검사 전에 먹어야 하는 약이 ‘상그랍다(먹기 사납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나는 건강검진을 미루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지인의 아내 이야기를 들려주며, 건강만큼은 자만하지 말고 적정 주기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권했지만 아내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건강 적신호가 찾아왔습니다. 아내는 배가 아프다며 잠에서 깼고, 심한 복통으로 잠시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기까지 했습니다. 곧장 의식을 되찾기는 했지만 아내에게 몹쓸 병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됐습니다. 나는 그길로 아내의 건강검진을 예약하고 왔습니다.
검사받는 날, 아내는 일찍 일어나 병원에서 받아 온 1리터짜리 장 세척제를 마셨습니다.
느끼하게 보이는 희멀건 액체가 마시기 힘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다며 지금까지 괜한 걱정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아침 내내 화장실을 들락거리더니 검진 시간에 맞춰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마취 깨고 집까지 동행할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기에 응당 내게 같이 가자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택시 타면 된다며 혼자 가겠답니다.
“당신 위해서 일부러 시간도 비워 뒀는데 진짜 혼자 갔다 올 거요? 그러고 싶으면 그리하든지.” 나는 톤을 높여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습니다. 그제야 아내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같이 가주면 좋고”라고 말했습니다.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보호자 대기 의자에 앉아 아내가 건강하기를 기원도 하고 살짝 졸기도 했습니다. 잠시 후 검사가 끝났는지 저기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취가 덜 풀린 듯 약간 몽롱해하는 아내와 같이 의사 앞에 앉았습니다.
"위나 대장에서 암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대장에 제법 큰 선종 하나가 있어 떼어 냈습니다. 선종을 그대로 두었더라면 아마 암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건강을 위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의사의 말에 우리 부부는 안심했습니다.
건강에 별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아내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녁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더니 예전의 높고 우렁찬 목소리를 되찾았습니다. 아내의 소프라노 목소리가 가끔은 귀에 거슬릴 때도 있지만 그건 건강징표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리고 가슴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남자여! 여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야!' (서상호 / 『공무원연금』 2019년 8월 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