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1기 6 - 1인 1기에 적합한 환경이 온다

53세인 한창민 씨는 스마트폰 사진작가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사진 공유 어플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 2012년부터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중심으로 한 SNS로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고 자기 사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알 수 있다. 온라인에 매일 사진을 올리자 주위 사람들이 권유해서 2013년에 사진전을 열었다. 무명작가 사진전이라 200명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전혀 예상 밖이었다. 사진도 전시한 70여 점이 모두 다 팔렸다. 보도자료 부제 중 하나가 "사진을 전혀 안 찍던 평범한 중년이 SNS의 인기에 힘입어 개인 사진전 개최, 온라인에서 화제"였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사진전이 끝날 무렵 출판사에
서 책을 내자고 제안을 해온 것이다. 사진을 전공하지도 배우지도 않았는데 취미 삼아 찍어 올린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 그는 1년 동안 거의 1만 장에 가까운 사진을 올렸다. 혼자서 이루어낸 일이다. 모바일과 SNS라는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대 출신으로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지인은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페이스북에 올리곤 하는데 어느 날 일본에서 연락이 와 그 그림을 사겠다고 했단다. 그림을 팔려고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것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자신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네트워크상에 늘어나면서 틈틈이 그림을 올려놓고 판다고 한다.
미국의 줄리 사이버슨은 수의 테크니션, 즉 동물전문 간호사이다. 그는 워싱턴의 블루펄 동물병원에서 애완동물의 혈압과 체온을 재고 X선도 찍는다. 이런 수의 테크니션이 미국에만 8만 명이 넘는다. 수의사 수의 1.3배가 된다.
일본도 2만 5,000명이나 된다. 고령화·저출산 추세에 따라 반려동물 수요가 늘어나면서 직업 전망도 밝다고 한다. 미국 수의 테크니션협회 관계자는 "남성은 5,400만 원, 여성은 4,100만 원의 연수입을 올린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이 직업이 없다. 동물병원에서 간호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지만 면허나 자격증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주사를 놓거나 채혈하는 건 불법이다. 우리나라도 규제들이 풀리면 이런 직업들이 많이 생겨날 여지가 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규제에 막힌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하기만 해도 새로운 직업이 5만 개가 생겨난다고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례는 모바일이라는 환경으로 기술을 가진 사람이 1인 기업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며, 세 번째 사례는 우리나라도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런저런 장벽들이 제거되면 작은 분야의 다양한 직업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국의 이색적인 직업들을 보면 디지털 장의사, 자연 치유사, 환경정리 전문가, 동물관리 전문가, 도로안전 유도원, 냄새 판정사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 직업의 종류는 1만 4,880 개인 데 반해 미국은 3만 650여 개이다. 우리나라도 규제를 풀어 새로운 직업 11개만 만들어도 일자리가 20만 개가 늘어난다고 한다. 서비스 부문이 발전하면 다양한 틈새 직업들이 가능해진다.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1인 1기에 유리해지고 있다. 오래전 우리는 맥심 커피 하나만 마시다가 원두커피가 들어오면서 아메리카노와 까페라떼를 마셨다. 지금은 드립커피도 나오고 선택해야 하는 원두커피 종류가 10가지도 넘는다. 기호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커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수제 명장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까지 소공인들이 기계의 값싼 대량생산으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품질이 좋기만 하면 앞으로 시장이 유망할 것으로 본다. 경력 55년의 구두장인 유홍식 씨는 “이 구두를 보세요. 제가 디자인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딱 한 켤레뿐인 구두지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제품을 찾을 것이다. 양복장인 김의곤 씨도 "나만을 위한 패션을 고집하는 게 요즘 추세이기 때문에 맞춤은 꼭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말한다.
전문성이나 기술이 좋으면 노후에도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환경이 온다. '모바일과 네트워크 사회 도래', '서비스사회 도래', '개성과 다양성'이 그 중심에 있다. 따라서 고령자들이 공공근로 정도의 일을 한다는 현재의 인식이나 틀을 크게 바꿀 필요가 있다. 현재의 일 중에 사라지는 일들이 있는 반면 새로운 일들도 많이 생겨난다. 기술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면 기회는 온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핵심 기술만 가지면 나머지를 값싼 비용으로 아웃소싱할 수 있다. 1인 기업을 만들기가 훨씬 편해졌다는 뜻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널드 코즈R. Coase라는 경제학자는 왜 기업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시장에서 인사 총무, 철강 등을 모두 구입해서 조직만 잘하면 되지 굳이 회사를 만들어서 그 회사 안에 많은 사람들과 부서를 둘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이들을 외부 시장에서 구입하면 거래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조직을 만드는 데 비용이 들더라도 감수한다고 주장했다. 조직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거래비용과 같을 때까지 기업의 규모가 커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기술혁신 덕분에 아웃소싱하는 거래비용이 싸지면서 기업들이 핵심적인 사업만을 남겨두고 비핵심적인 부분은 외부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어 물건을 팔 경우 물류 업무는 다른 업체를 통해서 수행하고 물건은 여러 공장에서 사면된다. 급여 등의 업무처리도 외부에서 조달할 수 있다. 기업을 대규모로 조직화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만큼 고정비용 부담도 줄어든다. 핵심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나머지는 아웃소싱을 통해서도 기업 경영이 가능하게 사회가 변해가고 있다.
한편 런던경영대학원의 경영학 교수 린다 그랜튼은 『일의 미래The shift』에서 기술발전에 따라 펼쳐질 일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술발전으로 50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기업은 메가 컴퍼니 mega-company 와 수많은 소규모 기업들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될 것으로 봤다. 네트워크가 확장되면 각 개인들에게 네트워크를 통한 협력과 참여가 중요해진다. 이전에는 하나의 거대한 기업이라는 단위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이제는 흩어진 개인들의 협력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수억 명이 소기업가로 활동하며 인터넷을 통해 생태계를 형성해가는 것이다.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기술이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중국 인터넷 전자상거래 포털 사이트인 알리바바는 소기업가들을 다른 구매자나 판매자와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을
만들어주었다. 이 플랫폼을 통해 구매자와 판매자 간에 다양한 혁신이 일어난다. 액세서리를 잘 만드는 사람이 소재지가 자기 집으로 되어 있는 법인을 만들고, 그 물건을 알리바바 플랫폼에 올려놓으면 전 세계 사람들이 본다. 수만 명의 소기업가가 자신의 기술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은 알리바바뿐 아니라 세계 모든 곳에 갖춰져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어떤 직업과 일을 가진 것인가에 대해 『일의 미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일반적인 관리기술은 그 범위가 한 회사로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지식은 인터넷 지식저장소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심층적인 지식과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한 분야 이상에서 깊이 있는 능력과 지식을 길러야 한다. 둘째, 향후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나 소규모 집단에서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셋째,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산업혁명 시대에 사라진 장인기술 개념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중세의 장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기술을 갈고 닦았다.
미래에 다가올 환경은 1인 1기에 적합하다. 1인 1기 뿐 아니라 자신의 기업까지 가질 수 있는 1인 1기도 될 수 있다. 기술과 전문성만 가지고 있으면 값싼 거래비용으로 1인 기업가로 활동할 수 있다. (김경록 / 『1인 1기』 / 더난출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