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동방파제
폭식증을 앓기 시작하고 1년 동안은 줄곧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토끼 굴로 떠밀려 낯선 세계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두려웠다. 그러나 내가 떨어진 토끼 굴에는 낯선 세계도 끝도 없었다. 계속해서 밑으로 추락하는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고 머리는 안개가 낀 듯 아득했다.
그리고 어떠한 감정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식욕이 내 안의 숲을 잠식한 후 내가 가진 다른 감정들, 행복, 기쁨, 슬픔, 분노 등은 모두 사라졌다. 음식에 대한 욕구 말고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슬픈 영화를 봐도, 웃긴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달콤한 순정만화를 봐도 내 안에서는 어떠한 파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대체로 멍하니 있었다. 소파에 기대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내가 항상 기대 있던 빨간색 소파와 거기에서 바라보던 천장의 풍경이다. 모든 것이 너무 버거워 가만히 앉아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잠깐의 외출조차 힘겨워 귀가 후에는 하루 종일 쉬어야 했다. 당시에는 그게 초절식으로 인한 체력 저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의욕이 없었던 것은 내 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런 병이 생겼는지, 왜 나만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이런 생활을 그만둬야 할 텐데'라는 생각만 했다.
물론 정말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남들이 내 병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만 생활을 이어갔다.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영화를 봤다. 좋아하는 만화책이나 소설책도 읽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행위에 불과했다. 입으로는 말을 하고 눈으로는 영화 속 주인공을 좇았다. 만화책 속의 말풍선을 읽고, 소설 속 주인공의 의식을 따라갔다. 그러나 어떤 행위를 하든 내 사고는 외딴곳을 향해 있었다. 바로 음식이다. 내가 먹었던 음식과 먹고 싶은 음식 말이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시도 때도 없이 음식 생각이 스멀스멀 사고 안으로 가지를 치며 침투해 들어왔다.
음식 생각이 가지에 가지를 치는 동안 나는 그 가지가 더 이상 뻗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억눌러보려 했다. 이런 가짜 식욕을 이겨내야 한다고, 이런 것쯤은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고, 힘겨운 갈등이 계속됐다. '먹고 싶어!' '안 돼!" '먹고 싶다니까!' '안 된다 니까!' 두 가지 마음이 계속해서 싸우는 사이 지쳐버렸다. 싸움을 이어나가기에 나는 너무 약해져 있었다. 이렇게 싸우면서 힘들 바에야 차라리 먹어 버리자. 결국 모든 것을 멈추고 마트로 향했다. 폭토를 준비하기 위해. 그래서,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졌을까? 당연히 아니다. 먹고 난 후에도 음식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먹은 것을 후회하느라. 이미 먹은 음식은 감정의 영역이고, 앞으로 먹고 싶은 음식은 욕구의 영역이다. 먹었던 음식은 내 감정을 지배하고 먹고 싶은 음식은 내 욕구를 지배했다. 먹었던 음식으로부터 불안이 생겨나고 먹고 싶은 음식에서는 탐욕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내가 스물한 살 때 느낀 유일한 감정이자 욕구였다.
충동을 이기지 못해 음식을 먹고 나면 살이 찔까 마음이 찾아왔다. 한번 불안감이 밀려오면 좀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동시에 이성적인 사고는 마비됐다. 그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고 단지 살찌는 것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 초조해졌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요동쳤다. 폭토를 일주일에 한두 번 하던 시기, 어느 순간부터 매 끼니를 먹을 때마다 이러한 불안증이 찾아왔다. 일반식을 소량만 먹을 때도 매번 게워 내버리고 싶었고 그러다 문득 어차피 토할 거 먹고 싶은 건 다 먹어버리자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졌다.
이렇게 폭토의 빈도가 잦아졌고 결국 매 끼니 폭토를 하는 상황까지 갔다.
우울과 불안 사이에서 다른 감정과 욕구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불현듯 '아까 먹었던 게 몇 칼로리였지? 그렇게 많이 먹는 게 아니었어. 살찌면 어떡하지? 근데 치킨 먹고 싶은데, 치킨 먹을까?'라는 방향으로 의식이 흐른다. 이런 강렬한 의식의 흐름 탓에 나는 나에게 우울증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정신과 내원 첫날 받아 든 우울증 테스트 용지는 묵직했다. 항목이 너무 많은 나머지 병원에서 채 끝낼 수 없어 집으로 가져와야 했다. 돌아오는 내내 종이 뭉치의 무게가 마치 내 병의 무게인 것처럼 느껴졌다. 집에 가는 동안 점점 더 무거워지며 나를 짓눌렀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도착해 약 두 시간가량 흰 종이에 빼곡히 나열된 테스트 항목을 채워나갔다. 어떤 것은 대답하기 쉬웠고 어떤 것은 고심해야 했다.
어떤 것은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고 또 어떤 것은 모호했다. 그러나 모든 항목에 솔직하게 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주일이 흐른 뒤, 검사 결과를 받아 든 의사는 놀라는 눈치 였다. “우울증 환자들 중에서도 이 정도 수치는 심각한 수준이에요.”
검사 결과는 우울증 단계에서도 위험한 수준이었다. 결과와 달리 겉으로 보기에 나는 밝고 적극적이었다.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 기에 의사는 더 놀라워했다. 검사 결과에 의사보다 더 놀란 사람은 나였다. 스스로 딱히 우울하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울증 검사 결과를 직접 들은 후에야 나는 비로소 우울증 환자가 됐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는 순간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우울감이 밀려왔다. 비로소 내 안에 많은 것들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안젤라 /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 창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