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이 흐른다. 감미롭고 애잔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아련한 무엇이 피어난다. 다시 들어도 여전히 심금이 울린다. 여운에 젖어 눈감으니 바이올린 선율보다 더 감동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이 가마득히 흘렀건만 또렷이 살아있다. 그날 그대로다.
비가 소리로 온다. 빗소리는 언어이고 음악이었다. 봄비는 나직한 소리로 다가와서 소년에게 사랑을 알려줬다. 소년은 가슴이 두근대고 몸이 달아서 온종일 밖을 헤맸다. 그러다가 돌아와서는 넋 나간 듯 틀어박혔다. 봄비의 속삭임은 달고도 썼다. 밤빗소리는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주절대는 시인의 넋두리였고 내 안의 숱한 말을 잠재우는 자장가였다. 아무리 와도 젖지 않을 듯 내리는 이슬비는 피아니시모 (pp)이고 한 번에 쏟아 붓는 소나기는 포르티시모(ff)였다. 4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원두막에서 공부하는데 어수선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소나기가 몰려왔다. “두 두 두 쏴” 진군하는 군대의 소리였다. 나는 겁나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소나기는 원두막을 부술 듯 들이붓고는 산 너머로 사라졌다. '매우 세게‘ 오는 비였다.
더 신기한 것은 가까이 오면서 커진 소리가 원두막에서 절정을 이루더니 멀어지면서 작아지는 것이었다. 크레센도(점점 세게)로 와서 데크레센도로 간 소나기는 멋진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소나기가 오는 날이면 가끔 그 원두막의 연주 소리가 들리곤 한다.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얼 듯 추운 날, 사람들이 집 안에 머물자 빈 마을을 지나던 바람이 심술이 나서 높은 전깃줄에 올라 “웅 " 소리를 질러댔다. 아기 방에 다가가서 “부르르” 문풍지를 간질이며 장난도 쳤다. 이곳저곳 다니며 짚가리를 무너뜨리고 기저귀 널린 바지랑대도 넘어뜨렸다. 부아가 덜 풀린 듯 흙먼지 회오리를 일으키고 논둑에서 날리는 아이들의 연줄도 끊어 버렸다. 거친 바람이 고삐 풀린 황소처럼 온 마을을 헤집었으나 아무도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바람은 거칠게 굴다가도 마을 잔칫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해졌다. 거칠어서 식구들을 힘들게 하다가도 몰래 궂은일 다 해 놓는 속정 깊은 작은 형을 닮았다. “우우웅 씨이잉” 겨울바람 소리는 으스스하면서도 정겨웠다.
새소리가 날아온다. “노골노골 지리지리” 종달새 소리가 들린다. 산 너머 밭에서 일하는 아버지한테 아침밥을 가지고 가면 먼저 맞는 게 종달새였다.
나는 노래하는 새를 잡으려고 언덕 위를 달렸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밭두렁에 앉아 오래도록 밥을 먹었다. 아직도 그곳에는 종달새가 날고 있을까. 뒷산의 꾀꼬리 소리는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웠다. 노래 잘하는 사람을 ‘꾀꼬리 같다."라 하는 것은 새 중에서 꾀꼬리 소리가 제일이라는 말일러라. 노란 슈트를 입은 그는 먼 나라의 공주처럼 예뻤다. 꾀꼬리 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리가 노랗게 되고 혀도 고부라져 영어를 잘하는 소년이 될 것만 같았다.
네 마디로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설법하는 새도 있다. “후 후 후 후” 노래하는 검은 등 뻐꾸기다. 그는 사람에 따라 저마다의 의미로 들리는 메시지를 전한다. 골프 치는 사람은 "공 잘 쳐라, 식사를 거른 사람은 "밥 먹어라", 성악가는 “미 미 미 도”로 들렸으리라. 올여름에는 나도 ‘네 마디’ 선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아야겠다.
소리의 으뜸은 어머니 노래다. 아름다운 소리를 다 모아도 어머니 노랫가락 한 소절만 못하리라. 딸 없이 육 형제를 낳아 기른 어머니는 고생이 많으셨다. 우리가 거들었지만 어머니 일은 줄지 않았다. 집안 살림, 농사일, 길쌈까지 삶이 고단했을 터이지만 어머니는 콧노래를 부르셨다. 좋을 때도 부르고 힘들 때도 불렀다. “갈매기 바다 위에 울지 말아요. 물항라 저고리에 눈물 젖는데 / 저 멀리 수평선에 흰 돛대 하나 오늘도 아 가신님은 아니 오시네.” 이난영의 <해조곡(海島曲)>이었다. 어머니가 이 노래를 부르면 우리는 처져 있다가도 기운이 났다. 어머니는 평생, 이 노래를 부르셨다. 왜 이 노래를 부르셨을까. 어머니도 할머니가 보고 싶으셨을까. 어머니를 눈물짓게 하며 오지 않는 임은 누구였을까. 아흔둘에 가신 어머니는 그 10년 전부터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 맏아들이 입원하고부터다. 자식이 아파 누웠는데 어미가 성한 것도 죄라며 웃음을 지우고 노래까지 끊으셨다.
잎을 하나하나 떨구고 마른 등걸 되어 떠나셨다. 자신을 주고 아들을 구하고 싶었던 어머니, 어머니 노래는 자식을 위한 길고 긴 기도였으리라.
잎을 하나하나 떨구고 마른 등걸 되어 떠나셨다. 자신을 주고 아들을 구하고 싶었던 어머니, 어머니 노래는 자식을 위한 길고 긴 기도였으리라.
나는 어머니 노래를 곧잘 불렀다. 어릴 때는 기쁘게 해드리려고 부르고 나중에는 어머니가 그리워서 불렀다. 해조곡을 부르면 어머니가 돌아오신다. 객지에서 배곯는다고 보리밥에 배추쌈을 한 상 가득 내어 오신다. 검은 머리에 주름 없이 곱고 예쁘다. 노래가 끝나니 흰머리의 어머니가 돌아서신다. 흰 돛배를 따라 어머니 노래가 가물가물 수평선을 넘는다. (남조령 / 『한국수필』 2022년 3월 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