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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환자 되기 6 - 척추전방 전위증

hope888 2022. 3. 27. 17:53

"아고고고!" 황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허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남편이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지를 못하겠어요." 황 씨는 너무 아파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아프구먼, 병원 가서 주사라도 맞고 오자고.”

남편이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황씨는 전부터 1년에 한두 번씩 허리가 아팠다. 요즘 와서는 아픈 횟수가 늘고, 한번 발동하면 오래갔다. 그때마다 병원 의사는 주사와 약을 주고는 별말이 없었다. 저번에 아프다가 나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제 서울 가서 돌아다녔더니 또 통증이 온 것이다.

집에 상비해 두는 타이레놀을 연거푸 두 알이나 먹었지만 낫는 기색이 없다. 아침을 들고 나서 집 앞 정형외과에 갔다.

"원장님 나 또 아파요.” 황 씨가 들어서며 인사도 생략하고 말했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의사가 힐끗 보고서는 물었다.

"서울 가서 좀 돌아다녔지, 지하철 계단 오르락내리락하고 나서 좀 아프더라고."

“조심하셔야죠, 주사하고 약 드릴게요……. 물리치료도 좀 하시고,”

올 때마다 주고받는 이런 대화만으론 뭔가 좀 부족한 듯싶어 황 씨가 덧붙였다.

"근데 나 맨날 이렇게 아파야 돼? 좀 고쳐줘봐요. “

의사는 대답이 없었다. 황 씨는 늘 하던 대로 주사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약은 먹고 나면 속이 쓰린 기운이 있어 먹기가 싫었지만, 그래도 많이 아플 때는 도움이 됐다.

다음 날은 한의원에 갔다. 침을 며칠 맞으면 좀 낫는 것 같았다. 한데 이번에는 열흘 넘게 침을 맞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픈 게 여전하고 아침이면 일어나기가 더 어려웠다.

"임자, 내일 병원 가서 MRI 좀 찍어봐, 앓아본 사람들이 그러는데 허리는 엑스레이 찍어서는 잘 모른대. 아직 MRI 한 번도 안 찍어봤잖아."

오랜만에 남편이 인심 썼다. 그 비싼 걸 찍어보라는 소리를 다 하고,

다음 날 황 씨는 읍내 종합병원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의자에 앉자 곧바로 의사가 물었다.

"예, 제가 허리가 많이 아파요. 그런 지 한 10년 됐는데 늘 아프다 말다 했었어요. 근데 요즘은 점점 심해지네요.” 처음 오는 병원이라 처음부터 설명하기가 번거롭다.

"허리만 아프세요, 아니면 엉덩이, 다리로 내려가요?” 의사가 손으로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눈으로는 황 씨를 보며 묻는다. 황 씨는 잠깐 생각한 후 대답했다.

"아직 다리는 모르겠는데, 엉덩이는 많이 아파요. “

“차렷 자세로 누워 있으면 아프세요, 안 아프세요?"

"누워 있으면 하나도 안 아파요. 일어날 때, 걷기 시작할 때 많이 아프고 한참 걸으면 아픈 게 오히려 덜해요.” 황 씨는 이런 것도 묻는 구나 생각하며 대답했다. 집 앞 의원은 원체 오래 다녀선지 의사가 너무 습관적으로 대하나 싶었다.

"음, 그동안 치료나 검사는 뭐뭐 해보셨어요?"

“검사는 엑스레이 몇 번 찍었고, 물리치료 하고 주사 맞고 했어요, 그럼 또 금방 낫더라고요.” 하나하나 대답하려니 기억을 많이 떠올려야 했다.

"엑스레이 찍고 의사는 뭐라던가요?" 많이 물어보니 제대로 진료를 받는 것 같기는 한데 좀 귀찮기도 하다.

"별다른 말을 안 해요. 무슨 병이냐고 물어봐도 웃기만 하고, “ 대답하면서 황 씨는, 그러고 보니 엑스레이를 찍기만 했지 병명이 뭔지 듣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렇군요. 그럼 오늘 MRI를 한번 찍어보세요. 허리에 생기는 병이 90%는 디스크 아니면 협착증인데, 둘 다 엑스레이로는 잘 보이지 않거든요.”

"안 그래도 MRI 찍어보려고 왔어요. “

"네, 그럼 찍고 다시 봐드릴게요."

MRI를 찍고 다시 진료실로 왔다.

"이건 옆에서 보는 사진인데요, 음, 여기가 앞뒤로 약간 어긋났네요. 이 정도면 많이 아프지요.” 의사가 뼈 어긋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긋났다고요? 그런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 황 씨의 말투에 불신이 묻어났다. 단골로 오래 다닌 의원의 원장에게 일단은 더 믿음이 가는 게 당연하다.

"이게 처음에는 엑스레이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MRI에서는 층진 게 드러나지요.” 의사의 말투가 단호했다.

“그럼 맞춰야겠네요?” 황 씨가 사진을 가까이 보며 수긍했다.

"이걸 맞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시적으로야 맞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뼈 구조 자체가 틀어진 것이니 얼마 안 가 다시 어긋나겠지요.” 의사가 무감한 어투로 말했다.

"그럼 어쩌지요?"

“근본적으로야 수술을 해야겠지만 금방 수술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우선은 운동을 좀 해보세요.” 의사는 여전히 천하태평이다. 하기는 자기가 아픈 게 아니니까.

"지금 수술하면 안 되나요?" 의사가 느긋할수록 황 씨는 급해진다.

"아, 이건 디스크 수술과 달리 나사를 박는 큰 수술이에요. 수술하고 석 달은 몸조리를 해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오히려 의사가 망설이는 형국이다.

“심해진 건 요즘이지만 아픈 지 벌써 10년은 됐는걸요, 바로 하지요.” 아픈 사람은 급해지기 마련이다.

"그건 안 되고요, 6주는 있다가 하셔야 해요, 나라에서 규칙으로 정해놓기를, 6주 동안은 물리치료를 하든지 주사를 맞든지 해보고 나서 수술하라고 돼 있어요.” 의사가 느긋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

"어차피 수술해야 할 거라면서 왜 그렇게 정해놓았대요?"

“뭐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참을 수 있으면 참고 살아보자는 취지지요.”

"뭔 소린지 모르겠네, 여하튼 그럼 6주 지내봐야겠네요.” 황 씨는 체념하듯 말했다.

"그러세요. 그러다 안 아파지면 그냥 사는 거지요.” 의사가 한마디 붙이는 게 얄밉다.

"아파지면 또 치료해보고요?” 황 씨가 받아쳤다.

"맞습니다.”

"운동은 무슨 운동이 좋을까요? 매일 한 시간은 걷고 있는데 더 걸어야 하나요?" 황 씨가 이번엔 실질적인 질문을 했다.

"걷는 것도 좋지만 특별히 허리 근육을 튼튼하게 만드는 운동을 알려드릴게요. 침대에 엎드려보세요."

침대에 올라가 엎드렸다.

"뒷짐을 지고 머리를 높이 들어보세요." 의사가 손으로 황 씨의 목 부분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황 씨는 턱이 바닥에서 겨우 떨어질 만큼 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밖에 안 되세요? 허리 힘이 약한 편이시네요. 그 운동을 자꾸 해서 머리를 높이 들 수 있게 하세요, 아침저녁으로 100번씩은 하셔야 해요.” 의사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100번요?” 나한텐 말도 안 되는 숫자 아닌가.

"100번이래야 빨리 하면 1~2분이면 돼요. 아침저녁으로 1~2분 정도는 투자하셔야지요.”

열 번도 못하겠는데 백 번이라니…. 황 씨가 웅얼거렸다.

"매일 연습하다 보면 보름쯤이면 어렵잖게 100번씩 하게 될 겁니다, 며칠을 계속 시켜보면 80세 되신 할머니도 너끈히 하시더라고요."

의사가 자신 있게 말했다.

"어쨌든 지금 좀 안 아프게 해주세요, 농사일도 나가야 되는데 아파서 못하겠어요." 황 씨가 애원하듯 말했다.

"알았습니다, 당장 안 아프게 하는 데는 허리 주사가 제일 좋아요. 그걸 맞고 약 가져가세요.”

황 씨는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허리에 놓는 주사를 맞았다. 이것도 이제 이력이 나서 어떻게 하고 있어야 주사를 쉽게 맞는지 다 안다. 주사를 맞으니 금방 가뿐해졌다. 이 정도면 일할 수 있겠다. 이번에는 몇 번이나 맞아야 나으려나 생각하면서 병원을 나섰다.

5일쯤 지나자 엉덩이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자다가 돌아눕다 엉덩이가 시려서 깨기도 했다. 이틀을 더 참고 버티던 황 씨는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았다.

"또 아프세요?" 황 씨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의사가 물었다.

"글쎄 그제부터 살살 아프더니 이제는 못 참겠네요. “

"주사를 한두 번 더 맞으시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걸 자꾸 맞으면 해롭다면서요.” 수없이 주사를 맞으면서 그걸 늘 걱정했었다.

“좋지 않지요. 그렇지만 그 정도 맞는다고 당장 큰일이 나는 건 아니에요. 아프다고 누워 있는 것보다는 맞고 활동하는 쪽이 몸에 더 좋다고 봐야죠.”

의사도 어쩔 수 없는 건 마찬가지겠지.

"요즘 같아서는 진짜 당장이라도 수술하고 싶어요."

“그러시면 안 아프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병원에 와서 아픈 시늉을 하고 진료를 받으세요. 그래야 수술받고 싶을 때 바로 할 수 있어요, 아니면 다음에 아플 때 또 6주를 치료해야 수술할 수 있게 되니까.” 비의학적 충고도 의사의 몫이다.

"내 돈 내고 수술하는데 뭐가 그리 복잡한가요?"

"황○○ 씨만 돈을 내는 게 아니지요, 나라에서 돈을 더 많이 내니까 그런 거지요. 병원비를 도시에서는 30~50%, 군 지역은 20%만 본인이 내고 나머지는 의료보험에서 내줘요. 의료보험은 정부에서 주관하는 거고요.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

하기는 그 말도 맞다. 황 씨는 허리에 주사를 한 번 더 맞았다. 주사는 매번 효과가 좋았다. 그러니 지금까지 견뎌왔지.

이번에는 꽤 오래간다. 그럭저럭 근 한 달, 정말 수술을 해야 하나, 생각이 점차 많아진다.

“임자, 의사가 뭐라던가?” 병원 가는 일이 부쩍 잦아지자 남편도 걱정이 되는지 묻는다.

"주사 맞아보고 안 되면 수술해야 한대요. 허리가 어긋나서 그렇다고, 참 일찍도 물어보네. “

“시술로는 안 된대?” 남편이 눈을 떼지 않고 있는 TV에서는 마침 허리 아픈 환자 상담을 하고 있었다. 전문의라지만 맨날 그게 그 소리다. “정확한 검사가 중요합니다. 우선 비수술적인 치료를 합니다. 안 되면 수술합니다.” 그런 말은 황 씨 자신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원장 말로는 시술은 주사하고 똑같은데 돈만 많이 받는 거랍니다."

"하기야 요즘은 너도나도 광고를 너무 해쌓아서 뭐가 맞는지 알 수가 없어, 확실하지 않은 치료 방법은 아예 못 쓰게 법으로 막으면 좋을 텐데, 어쨌든 서울은 한 번 가봐야지?"

황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흘 후 부부는 서울로 향했다. 뒷집에서 공세대학병원 간호사인 딸에게 예약을 시키겠다더니 용케도 빨리 날짜가 잡혔다.

진료실 앞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눈에도 허리 병 환자임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한 삼십 명은 앉아 있었다. 30분쯤 기다리다 불려 들어갔다.

"허리가 많이 아프세요?" 진료 의뢰서를 훑어본 후 의사가 물었다.

"네, 갈수록 심해지네요.” 의뢰서에 다 쓰여 있겠거니 하고 황 씨는 간단히 대답했다.

“신경주사도 많이 맞아보셨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투다.

“가끔 맞았지요, 이번에도 두 번 맞았고,”

“허리뼈 어긋났다는 얘기도 들으셨지요?” 어긋났다는 말이 맞기는 맞는 구나, 황 씨는 생각했다.

"예, 들었어요. 그래서 수술을 꼭 해야 하나요?" 그게 가장 궁금했다.

“해야 합니다. 이 병은 나이가 먹을수록 심해져요. 점점 더 어긋나지요. 아직은 뼈가 그래도 튼튼해서 수술할 수 있지만 나이가 더 들어서 골다공증이 생기면 수술해도 결과가 안 좋고, 아예 수술을 못할 수도 있거든요. 우선 약하고 주사를 처방해드릴 테니 잘 생각해서 결정하세요." 의사는 얘기를 얼른 마무리하려 했다.

"아니에요, 너무 아파요, 수술 날짜 잡아주세요." 황 씨가 작심했다. 남편은 의외의 반응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럼 잠깐 앞에 나가 계시면 우리 전공의 선생님이 수술 날짜랑 준비할 것들을 알려드릴 겁니다."

수술 날짜를 한 달 후로 잡아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술을 안 하면 이번에 낫더라도 종종 통증이 찾아오고 그것도 갈수록 심해질 거라는데, 계속 참아낼 자신이 없었다. 남편은 걱정되는 눈치였다.

"임자, 그렇게 많이 아팠어?” 남편이 짐짓 미안해하는 말투로 물었다.

"지금보다 더해지면 못 참을 것 같아요, 수술을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망설임 없이 대답했지만, 스스로도 마음이 또 바뀔까 걱정스러웠다.

그 후로도 황 씨는 두 번 더 주사를 맞았다. 수술이 가까워지면서 통증이 웬만큼 가라앉았는데, 그리 되니 또 수술하기가 싫어졌다. 겪어본 사람들 말로는 서울의 병원은 맨 도둑놈들인지 수술비가 600~700만 원이나 든다고 했다. 의사에게 수술비가 얼마냐고 차마 물어보지 못한 게 걸렸었는데, 그 정도라면 너무 비싸다. 게다가 며칠 괜찮다 보니 이젠 다시 아플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보 같은 기대라는 걸 알면서도 10년 동안 항상 그래왔던 것이다. 환자들의 이런 마음을 훤히 알고 나라에서도 6주를 기다려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아는 사람 통해서 병원 예약을 쉽게 하는 게 단점도 있다. 소개해준 사람 체면을 생각해야 하므로 수술 따위 약속을 취소하고 싶어도 그러기 어려운 것이다. 고민하던 황 씨는 놔두면 나중에는 수술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이참에 해버리자고 마음을 굳혔다.

젊은 의사의 지시대로 수술 전날 입원했다. 무슨 검사가 그리 많은지 심장 관련 검사라는 것만 서너 가지, MRI도 다시 찍으라 하고, 근전도니 뭐니까지 검사하는 데 하루가 다 가고 진이 빠졌다.

겨우 저녁을 먹고 누웠다. 드디어 수술을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작은 수술도 아니라잖은가…. 잠시 창밖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앞 침대 환자의 딸이다. 웬일인지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침대와 옷장에서 환자 소지품을 챙겨 나가면서 한마디 말도 없이 눈물만 훔쳤다. 무슨 일이지? 황 씨가 잠들 때까지도 앞 침대 환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황 씨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병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환자며 보호자들이 어제 그 환자가 죽었대, 하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누구? 내 앞 침대 사람! 황 씨는 속이 울렁거렸다. 어제 아침에만 해도 서로 허리 아픈 얘기니 가족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그리 멀쩡하던 사람이?

어찌해야지? 수술을 그냥 받아야 할지 남편과 상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의사들 실력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만, 사람인 이상 컨디션이라는 것도 있는 거고, 어제 수술의 충격도 있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죽은 환자가 누웠던 수술대에 자신이 오르는 게 끔찍했다.

결국 황 씨는 수술을 취소하고 퇴원해버렸다. 병원 측에서도 별로 만류하지 않았다.

그다지 아프지도 않은데 수술하러 갔다가 놀란 가슴만 안고 돌아온 황 씨는 이제 수술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후 꽤 오랫동안은 크게 아프지 않고 살았다. 허리가 아파온다 싶으면 병원 가서 신경주사 맞고, 며칠 지나면 그 증세를 잊곤 했다. 추수가 끝나고 겨울이 되면 일을 안 하니 아프지 않다. 봄이 되어 농사를 붙잡으면 통증이 오기 시작하지만, 일 때문에 수술은 못한다. 매년 그랬다. 마치 계절의 순환 같은 통증의 사이클을 뻔히 알면서도, 멀리 보는 대응책은 모색하지 않고 눈앞의 아픔이나 편안함에만 반응하곤 했다. 하기 싫은 생

각은 무의식이 알아서 머릿속 깊이 묻어버리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황 씨도 의학적 노인이라 할 65세가 되었다. 이젠 전문적인 환자랄까, 한 달에 한두 번씩은 허리 치료를 하러 다녔다. 큰 효과는 바라지도 않았다. 찜질만 하고 나도 이틀은 한결 나았다. 병원이나 보건소에 가면 골다공증 검사를 권하곤 했다. 황 씨는 뼈가 약해지면 수술도 못한다는 말이 생각나고, 검사 결과가 겁이 나서 자꾸 피했다.

그해 겨울, 장을 보러 나가던 황 씨는 문을 열다가 허리가 뜨끔했다. 도통 허리를 펼 수가 없어서 도로 들어가 누웠다. 넘어진 것도 아니고 부딪힌 것도 아닌데 어찌된 영문인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틀을 꼬박 아랫목에 누워 있던 황 씨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읍내 종합병원으로 갔다. 승용차를 탈 자신이 없어서 미안스럽게 119 구급차 신세를 졌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엑스레이를 찍었으나 당연히 골절은 안 보였다. 결국 MRI를 찍어야 아픈원인을 알 수 있다고 했다. 3년 전 것은 소용없었다. MRI를 찍은 뒤 진통제 주사를 맞고 통증이 좀 가라앉았을 때쯤 원장이 나타났다.

“지난번 검사 때보다 1cm쯤 더 어긋났네요. 그만큼 신경 구멍도 좁아져서 엉덩이며 다리로 가는 신경이 더 많이 눌린 거예요. 그동안 잘 버티고 있다가 허리 근육이 방심하는 사이에 더 어긋나서 갑자기 아파졌을 거예요. 지금 진통제 맞고 버틸 만하세요? 집에 가시긴 어려워 보이니까 이삼 일 입원해서 수술할지 말지 생각해보세요. 이제 치료 방법은 다 아시잖아요."

황 씨는 말없이 한숨만 쉬었다. 수술 안 하고 죽기는 틀렸나 보다. 그래도 겨울에 수술하게 된 게 어디야, 라고 생각했다.

사흘 후에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에 원장이 겁을 잔뜩 줬다. 수술하다 죽거나 다리가 마비되는 경우도 있고, 수술하고 나서도 아플 수 있다고, 수술 뒤 사흘간은 이런 것 다시는 못하겠다 싶게 아팠지만, 차츰 걸을 수 있게 되자 진작 할 걸 그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원장은 앞으로 석 달 동안은 보호대를 차고, 일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한 달여가 지나자 수술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게 됐다. 원장은 조심하지 않으면 10년쯤 지나 수술한 곳의 위나 아래 마디가 또 아파질거라고 했다. 하지만 1년 후도 생각 않는데 10년 후 때문에 조심할 환자가 어디 있겠나 하고 웃어넘겼다.

 

- 척추전방전위증

 

1) 증상

 

허리가 아프다. 그것도 많이. 보통은 양쪽 하지(다리)가 저리거나 시고 힘이 없어지는 등의 방사(放射) 증상도 있으나 요통만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특히 자고 나서 걷기 시작할 때나 처음 누웠을 때 통증이 심하다.

 

2) 원인

 

5번 요추(腰椎, 허리뼈)와 바로 아래 천추(推, 엉치 척추뼈) 간의 전위, 즉 어긋남은 선천적인 원인이 있고, 4번 요추와 5번 요추 간의 전위는 퇴행성 내지는 외상성 원인이 많다고 한다. 그 외에 수술 후유증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3) 진단

 

전위 사실 자체는 엑스레이만 찍어도 대부분 진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동반된 협착증이나 디스크의 진단을 위해서는 CT, MRI 검사가 필요하다.

 

4) 치료

 

초기에는 허리 근력 강화 운동과 진통제 치료를 한다. 문제가 된 뼈의 25% 이상이 전위, 즉 어긋나게 되면 활동 제한이 필요하다.

무거운 물건 들기나 격한 운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50% 이상 전위가 되었을 때, 많이 또는 오래 아플 때, 전위의 정도가 점점 증가할 때는 수술이 추천된다.

 

5) 화타의 충고

 

척추전방 전위증은 수술 없이 낫는 병이 아니다. 허리 근력 운동을 하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지만 80대 전후의 노인에게 운동을 권해보았자 말하는 사람의 입 운동밖에 되는 게 없다.

50~60세까지는 수술을 연기하는 것이 좋지만, 평생 아픈 채로 살 자신이 없다면 그 후에는 더 미루지 말고 조기에 수술하는 것이 좋다. 척추뼈를 나사로 고정하는 수술이어서 골다공증이 생기기 시작하면 수술의 성공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역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수술 안 하고 고쳐준다는 낚시꾼들의 유혹이다. (정병오 지음 / 『똑똑한 환자 되기』 / 모멘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