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러한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남편이 LA에서는 도저히 학교를 찾을 수 없으니까 다른 곳으로 아이를 보내겠다는 결정을 하면서 저와 아이들을 하와이로 보냈어요. 남편도 곧 정리하고 따라오겠다고,
2005년 9월에 아들을 보낼 학교를 캘리포니아에서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와이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9월 4일, 절망적인 마음으로, 이게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거라는 믿음 하나 붙들고 “하나님, 말씀 주셔야 제가 가겠습니다" 했을 때, 에스겔서 36장 26절 말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붙잡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타지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게 되었어요.
그때는 남편과의 관계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남편과 사이가 나빠지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16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과 떨어져서 혼자 아이들과 간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거기에서 학교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 일요일마다 생명의 떡, 말씀을 받아서 먹게 해주셨던 사랑하는 교회, 2002년부터 3년 동안 저에게 성령의 말씀으로 양육해 주셨던 목사님을 떠나는 것도 싫었습니다. 제가 변호사 하면서 사역하던 것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많은 청소년 아이들이 살아난 것도, 저를 엄마처럼 그렇게 따르던 사역을 버린다는 것도 저에게 너무 힘들었고, 또 바닷가의 아름다운 집을 주셔서 아침마다 새벽이면 일어나서 QT를 하던 장소를 빼앗기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학교생활 잘하고 있는 밑의 두 아이를 전학시켜야 한다는 것도 막막했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에릭 목사님과 함께 하던 치유사역도 자리가 잡혀서 한인들이 많이 오던 시기였습니다. 사역이라든지 가정이라든지, 우리 아들 문제만 빼고는 가진 것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다 내려놓고 헤어져서 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지기 싫은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바람처럼 너무 강하게 저를 휘몰아쳐서 더 이상 주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가셨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거라는 믿음으로 제가 하와이에 갔습니다.
하와이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던 사람들을 만나며 일주일 만에 학교와 교회와 집을 교회 장로님 한 사람을 통해서 마련해 주셨어요. 그래서 하와이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 한국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벽지에서 제가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하와이에서는 변호사를 할 수 없고, 남편은 2주에 한 번씩 오는 상황에서 1년을 보냈습니다.
아름다운 하와이 섬에서 친구도 하나도 없으니까 아침마다 제게 말씀해 주시는 그 예수님을 만나면서 저에게 예언의 은사가 임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그날 그 말씀이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고,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면, 그 사람의 상황을 알려주시면서 비전도 보여주시고, 예언적인 꿈도 꾸게 하셨습니다. 1년 동안 그 하와이에서 완전히 하나님과 독대하는 그런 기간 동안 저에게 없었던 은사를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가 1년 만에 문을 닫게 되면서 지금 제가 사역하는 ‘Heaven on Earth' 즉 ’이 지상의 천국' 이라는 치유사역을 함께하는 랜디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2006년 9월 23일,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제가 그 목사님의 기도모임에 걸어 들어가면서 제 인생이 또다시 한번 업그레이드가 되었는데요, 그날 목사님이 나에게 영혼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아이가 아픈 것, 또 남편이 믿지 않는 것, 이런 저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상황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약속의 말씀, 그 비전들을 가지고, 네가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말씀 안에서 살 때 다른 문제들은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신다" 고 그렇게 기도해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저를 치유사역자로 쓰시겠다고 하셨던 말씀들과 한국에 청소년 아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부흥을 주시겠다고, 그 스타디움 야구장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환상을 상기시켜 주시면서 “비전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는 말씀을 저에게 다시 주셨어요. 내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셨던 비전, 하나님이 주셨던 예언적인 말씀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나를 중보사역자로서 하나님이 쓰실 때, 우리 가족은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다는 약속 말씀을 그날 다시 한 번 받았습니다.
그 기도 모임을 걸어 나올 때는 완전히 제 마음에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평강과 기쁨과 소망이 넘쳐흘렀어요.
9월 23일, 제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부흥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Heaven on Earth' 사역을 목사님과 하면서 저희들이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목사님 통역을 하면서 같이 사역을 했는데, 그 하와이에 있는 교포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많은 치유회복들이 일어나고, 가정들이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났어요.
갑자기 제 눈이 안 보이게 됐어요. 2006년 5월에, 그러니까 목사님을 만나기 전에 갑자기 실명을 하게 되었어요. 그 망막이 완전히 떨어지는 상황이 되어서 운전도 하지 못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돌볼 수 없었습니다. 침침하고 까맣게 눈앞이 큰 점처럼 보이고, 눈앞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 주위만 보이는 불편한 상황에서 7개월을 보냈습니다.
10월 10일에 ‘Heaven on Earth' 사역을 시작할 때는 눈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다음 해 1월, 조그맣게 사역하는 곳에 저희 아버지가 오셨어요. 아버지께서 그렇게 기도를 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딸이 눈이 낮게 되면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1월 말에 아버지가 가시고, 2월 말에 제가 어떤 집회에 갔습니다. 그때 예언 치유사역하시는 데이빗 헐작이라는 목사님이 “오늘 이 망막이 떨어져서 눈이 보이지 않는, 실명하신 분이 있는데 하나님이 지금 낫는다고 하십니다" 하는 예언 말씀을 했을 때, 제가 그 말씀을 그냥 믿으면서 벌떡 일어났어요. 그 성전 안을 두어 바퀴 정도 믿음으로 돌았을 때, 그 자리에서 망막이 붙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눈앞이 보이게 되고, 저희 아버지도 구원받으시고, 그다음부터는 제가 이제 제 인생을 완전히 다 드려서 치유사역을 하게 되었는데요. 2007년 2월에 눈이 낫고 나서 한 3,4개월 지나고 나서 저희 아들의 자폐증도 완전히 나았어요. 한국에 와서 그 두 가지 일에 대해서 간증도 하고, 일본 러브 소나타에 가서 7월 23일 제 생일날 저희 아버님이 세례도 받으시고, 저에게는 가장 큰 승리들이 임하는 2007년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러브 소나타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우리 아들 자폐도 완전히 낫고, 제 눈도 낫고, 이제부터는 간증의 사역을 하게 되는 기회도 또 열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쁨으로 집으로 돌아온 지 3주밖에 안 지난 8월 16일, 저희 큰아들이 그때 25세이었는데, 버클리 나오고, 법대 갈 준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코마 상태에 빠졌어요. 그래서 LA에서도 가장 좋다는 병원에 갔습니다. 우리 아버지 세례받으신 직후에, 정말 기쁨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런 시험이 왔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아버님이나 저에게는 큰 믿음의 시험이었어요. 우리 아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아이였고, 제가 3주 동안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19일 만인 2007년 9월 5일, 천국으로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그렇게 열심히 치유사역을 하고 하나님을 믿었는데, 지금 얼마나 실망이 되고 원망이 되느냐고 말했습니다. 너무 놀라웠던 것은 하나님이 그동안 여러 가지 사역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면서 저의 심령에 부흥이 왔고,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저는 완전히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이사야서 55장 8절 말씀을 주셨어요.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너는 그래도 나를 믿겠느냐. 내 생각은 너의 생각과 다르다. 그래서 네 생각으로는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온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너의 아버지이며, 너를 너무나 사랑해서 나의 독생자를 너에게 주었고, 독생자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고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네 생각으로는 믿어지지 않고, 이해되지 않고, 나의 길이 네가 보기엔 악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너의 아들을 지금 천국으로 데려간 것, 그것이 사랑인 것을 너는 믿겠느냐, 그것이 너를 향한 나의 생각이 항상 선하다는 것을 너는 믿겠느냐.” 주님께서 저에게 그렇게 속삭여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 유진이를 제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시는 분인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고, 저의 길과 하나님의 길이 너무나도 다릅니다. 그러나 저의 길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길을 택하겠습니다. 저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을 믿겠습니다. 저는 주님이 저를 사랑하시고, 저의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가장 좋은 것을 주셨음을 믿습니다. 지금 이 아이가 천국에 가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겠고, 죽어도 살겠다' 하는 그 부활의 생명을 우리 아들에게 주셔서 요한계시록 21장 말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 예수님이 있는 보좌에 우리 아들이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그곳에는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도 없고, 예수님 앞에서 유진이가 엄마 아빠 이혼하고 힘들었던 기간에 흘렸던 모든 눈물들 다 씻어 주시고, 그래도 삐뚤어지지 않고 엄마 아빠 사랑하는 좋은 아이로 잘 길러주셔서 우리 아이의 장례식에, 사랑하는
사람들로만 가득하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25년 동안 미워하는 사람, 상처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모두들 그리워하는 아이로 저에게 주셨던 것도 너무 감사합니다. 이 아이대신 어머니 아버지 사랑 못 받고 하나님 모르는 아이들에게 저를 보내주시면, 제가 그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사역하고,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청소년 사역비전, 중보사역을 하겠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셨어요.
우리 아들 비석 세우는 날, 주님께서 아침에 찾아오셔서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하고, 몇 년부터 몇 년까지 살았던 아무개 이렇게 평범한 비석으로 하지 말고, “내 아버지 집에는 쉴 곳이 많다”는 그 성경구절,
예수님이 요한복음에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라는 말씀을 아침에 주셨어요. 유진이가 자기 방을 보고 너무 좋아하는 모습도 저에게 보여주시고, 그래서 비명을 그렇게 지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집에서 지금 편히 쉬고 있는 우리 아들 유진, 1982년 7월 29일부터 2007년 9월 4일까지 나에게 선물처럼 와서 너무나 많은 사랑을 주고 간 아이' 그 애의 여자친구가 저에게 울면서 말했어요. “유진이는 너무나 사랑이 많은 아이였어요. 내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못 받은 사랑까지 다해줬어요. 천국에 가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역을 하려고, 어머니 도우려고 천국에 갔을 거예요."
손자를 잃고 아버지의 믿음이 흔들리지나 않을까도 걱정이 되었어요. 그때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없이 시 한 편을 보내주셨어요.
사랑하는 薰雨에게
얼마나 큰 슬픔이었기에
너 지금 저 많은 빗방울이 되어
저리도 구슬피 내리는가.
한강으로 흐를 만큼
황하를 채울 만큼
그리도 못 참을 슬픔이었느냐.
창문을 닫아도 다시 걸어도
방 안에 넘쳐나는 차가운 빗발
이하 생략
그래서 그날부터 저는 옆도 보지 않고, 앞도 보지 않고, 정말 청소년 사역하는 데만 모든 것을 바치고 여태까지 달려 왔습니다. 제가 지금 섬기는 교회, 저를 보고 엄마라고 하는 불쌍한 아이들이 너무나 많아요. 자기 엄마 아빠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신앙생활을 아름답게 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성경 말씀처럼 "내가 아이를 잃었을 때, 내가 낳지도 않은 많은 아이들이 와서 이 장막이 좁습니다. 더 넓혀주세요” 한다고 주님께서 약속한 말씀처럼 우리 아들 죽고, 지금 2년 만에 저에게는 가는 곳마다 내가 배를 아파서 낳지도 않은 아이들이 너무나 많아요.
한국에 오면 한국에서 만나고, 아프리카에 가면 아프리카에서 만나고, 중국에 가서도 저에게 따라오고 싶다고 계속 울면서 매달리는 아이들도 있었고요. 지금 제가 사역하는 곳에서는 저를 자기 친아버지 어머니보다 더 의지하고 따르고 신앙의 어머니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와서 기도해 달라고 하는, 어떻게 생각하면 제 아들보다 더 소중한 그런 아이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정말 너무나 귀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온누리 교회에서 사역할 때도, 젊은 대학생들이 하나님의 예언 말씀처럼 우리를 안위하고 권면하고, 덕을 세운다고 했어요.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말씀으로 기도할 때, 배터리가 나간 것처럼 축 처졌던 아이들이 살아나고, 실망했던 아이들이 다시 소망을 찾고, 위로 받지 못해 항상 슬펐던 아이들이 기쁨을 찾아 춤추면서 노래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일들이 우리 사역하는 곳마다 일어났습니다. 뉴욕에 가서도 유학생으로 와서 힘든 아이들이 저희 랜디 목사님과 저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해서 축복 기도를 해주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귀한 자녀를 주시고, 가족을 주십니다.
시편 말씀인 것 같아요. "고독한 자애를 가솔 중에 처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 아버지가 너무 사랑을 많이 해주시고, 남편이 많이 사랑해 줬지만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 신앙적으로 참 고독했어요. 가족 중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까 영적인 가족이 없었어요. 영적인 고아처럼 저는 가족 없이 혼자 생활을 했지만, 하나님이 영적인 가족을 저에게 많이 주셨습니다. 랜디 목사님은 저에게 영적인 아버지 같은 분이시고, 지난 3년 동안 저를 제자 삼아 주셔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받고 싶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해주셨고, 저희 아버지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육적인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아버지로 회복시켜서 신앙의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가장 기쁩니다.
신앙적인 것을 깨달으면서 하루하루를 사는데 가장 사랑하는 저희 가족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억지로 믿으라고 어머니 아버지를 몰아붙였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로 돌아오시는데 오래 걸린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아버지가 신앙적인, 영적인 깨달음이 있으시면서 이제부터는 영적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어렸을 때부터 받지 못했던 아비지의 사랑까지도 다 아버지가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고 하신 말라기서 4장 6절 말씀이 저의 인생에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와이에 갔을 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밖에는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예언의 영이 임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저에게로, 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완전히 회복시켜 주시는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에 여러 가지 치유의 기적과 여러 가지 기적도 체험했고, 열매도 많이 맺었습니다. 아프리카 갔을 때는 3천 명이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그런 전도의 열매도 많이 맺게 해주셨지만 저에게 가장 기쁜 것은 엘리아의 영이 우리 가족에게 임해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으로 깨닫고, 아버지와 저의 관계가 육적인 관계에서 영적인 관계로 나아가게 하시어 가정을 이루게 하셔서 이제는 더 이상 고독한 자가 아니게 하신 것이 저에게는 가장 감사를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어령 / 『지성에서 영성으로』 / 열림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