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대퇴골 경부 골절(고관절)
딴따라라딴딴 따라라딴딴 딴따라라.
구 씨는 벨이 한참 울린 다음에야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하늘요양원 간호사인데요. 김갑생 할머니 아드님이시지요?"
"네, 안녕하세요? 이 밤에 어쩐 일이세요? 어머니한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어머니는 곧 구십이다. 구 씨 자신도 작년에 환갑이 지났다. 치매가 심한 어머니의 수발을 같이 늙어가는 아내에게 맡기기가 미안해서 요양원에 모신 지 1년이 넘었다. 어머니도 별로 싫어하는 기색이 없어 좋기는 한데, 가끔씩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한다. 혹시 돌아가신 건 아닌가, 자식으로서 임종을 못 한 건 아닌가 하고,
"예, 할머니가 넘어지셔서 병원에 모시고 왔는데 고관절이 부러졌다고 해서 전화드렸어요. 읍내 종합병원으로 오세요."
돌아가셨다는 말이 아니어서 안심은 되면서도,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고관절이라니. 그래도 이제까지는 요양원에서 산책이라도 하시면서 지냈는데, 이제는 꼼짝 못하고 누워 계셔야 하는 건가. 대소변도 혼자 못 보시고,
응급실에 도착해보니 어머니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간호사는 주사를 찾느라 애쓰고 있었다. 응급실 당직으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구 씨에게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여기가 부러진 자립니다. 대퇴골 목 부분이에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데를 보니 진짜 목처럼 생긴 자리가 두 동강이 나 있다.
“엉덩이예요, 다리예요?" 엉덩이가 부러지면 위험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다.
'다리뼈가 엉덩이뼈에 붙는 관절 부위지요.” 뭐야, 그럼 엉덩이야 다리야? 엉덩이는 위험하다는데….
“연세가 많은데 뼈가 붙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는 수술해야 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일단 입원시키시고, 어떤 수술을 할지는 내일 원장님 나오시면 상의하세요." 당직 의사는 정형외과가 아니어서 해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었다.
애들에게 할머니 수발을 시킬 수도 없고, 간병인 쓰기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고 해서 구 씨 자신이 어머니를 돌보기로 했다. 그날 어머니 침상 옆에서 잤다. 노인용 기저귀를 찬 어머니는 다행히 밤새 잘 주무셨다. 아프다고 웅얼거리기는 했지만 같은 방의 환자들이 눈살 찌푸릴 정도로 시끄럽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원장이 회진을 왔다.
"할머니 잘 주무셨어요? 많이 아프시지요? 가만 누워 계셔서 별로 안 아프셨나요?" 원장은 부러진 것을 알고 온 눈치였다.
"이 양반이 누구여?" 어머니가 구 씨에게 물었다. 어머니와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원장이 구 씨를 보고 말했다. “아드님이시지요? 아홉 시에 외래로 내려오세요. 사진 보면서 설명해드릴게요.” 그러고는 다른 환자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방을 나갔다.
아홉 시가 되어 구 씨는 외래의 원장 진료실로 갔다. 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사진에서 여기가 부러진 데라는 건 아마 들으셨을 테고요. 이 자리는 이만큼 부러져서 어긋나면 다시 붙지는 않는 데예요. 결국 인공관절을 해야 한다는 얘기지요.” 의사가 부러진 부위를 확대해서 보여주며 말했다.
“뼈를 붙이는 수술이 아니라 인공 관절이라고요? 그럼 큰 수술이겠네요.” 환자나 가족들에겐 수술의 '크기'가 늘 관심거리다.
"허허, 크다는 거야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원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술을 안 할 수는 없는 건가요? 이 연세에 수술을 했다가 회복은 고사하고 돌아가시지나 않을까 걱정인데요.” 구 씨가 말했다. 노인환자 보호자 대부분의 걱정이다.
“저도 걱정입니다. 그런데, 얼마를 더 사실지 모르지만, 수술을 안 하면 돌아가실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실 거예요. 기저귀 갈 때마다 아픈 것도 문제고요." 구 씨의 머릿속에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술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수술하면 많이 위험한가요?"
“그렇지요, 많이 위험합니다. 제가 수술한 나이 드신 환자 중에서도 회복을 못하고 돌아가신 분이 있었어요. 할머니도 수술 후 회복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저도 꼭 하시라고 권하지는 못합니다.” 원장의 말은 냉정했다. 괜찮으니 수술하라고 하면 결정하기가 쉬울 텐데,
“수술하면 걸으시기는 할까요?" 못 걷지 않을까 생각하며 구 씨가 물었다.
“수술 전에 어땠지요?” 원장이 반문했다.
"요양원 안에서는 걸으셨어요."
"그럼 수술 후 회복되면 걸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일반적으로 뼈붙이는 수술은 수술 자체도 간단하고 나중에 정상이 되는 장점이 있어요. 인공 관절은 그런 측면에서는 좀 못하지만, 대신 4~5일이면 걷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지요.” 원장의 대답을 들으며 구 씨는 어느 쪽이든 수술을 하긴 해야겠네 싶었다.
"어머니도 뼈붙이는 수술을 할 수 있나요?” 인공 관절이라면 거부감부터 들었다.
"아니지요. 부러진 자리에 따라 더 좋은 수술이 있는 거지, 그냥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원장은 이야기가 길어질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원장님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큰 병원 가서 하는 게 안전하지 않은가요?"
이 병원 원장이 실력 있다고 정평이 나기는 했지만, 작은 병원에서 했다가 잘못됐을 경우에 쏟아질 형제들의 비난이 구 씨는 두려웠다.
"아무래도 사고 났을 때 두루 대처하는 건 대학병원보다 우리가 못하겠지요. 대학병원으로 가시겠어요?"
원장은 살짝 기분 나쁜 표정이 스치긴 했지만 순순히 인정했다.
"가족들끼리 잘 상의하셔서 수술을 할지 말지, 여기서 할지 대학병원으로 가실지를 결정하세요.” 원장이 일어나면서 대답했다. 그만 나가라는 뜻이다.
"하면 오늘 하나요?" 구 씨가 방을 나가면서 물었다.
"오늘이 마침 토요일이라 오늘 내일은 안 되고요, 월요일 날 해드리겠습니다. 바로 하는 것보다 이삼일 주사 치료 좀 하고 수술 받으시는 게 더 안전한 면도 있어요. 할머니한테 무슨 다른 이상이 있는지도 알아보고요.”
구 씨는 동생들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들은 자기네가 멀리 있어 돌봐드리지도 못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하기가 미안하다고 구 씨에게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다. 병실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침대 난간을 흔들어대고 있다가 아들을 보자 조용해졌다. 이제는 자식이라도 구 씨 말고는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자식들도 마음이 멀어지는 걸까.
“원장님이 뭐래요?" 앞 병상의 보호자가 물었다.
"수술해야 한대요. 그래서 대학병원으로 가보려고요.” 아직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는 중이었지만 옆에서 물어보니 대학병원으로 모신다해야 도리를 아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해버렸다.
“그냥 여기서 하세요. 우리 어머니도 지금 한 주일짼데 조금씩 걸으셔요."
침대에 걸린 이름표를 보니 어머니와 두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할머니였다.
“그래도 혹시 위험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 댁 할머니나 우리 어머니나 낼모레 90인데 팔자소관이지 뭐 미국간다고 크게 다르겠어요?"
고민하던 차에 이 양반이 마음 편하게 거들어주는구나 싶었다. 그래 그냥 여기서 하자. 대학병원 가봐야 여기보다 수술은 더 못 한다는 얘기도 있고,
구 씨는 12시 가까이 되어 외래로 갔다. 환자도 거의 다 왔다 간 듯 한산했다. 진료실로 들어가서 원장에게 말했다.
“원장님 믿고 맡기겠습니다. 잘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지요. 오늘 검사한 걸 보면 표면적으로는 심장이나 폐는 건강해 보이니 별 무리는 없지 않겠나 싶어요. 월요일 오전은 바쁘니 오후에 수술하기로 하지요."
이틀을 더 병실에서 어머니와 씨름하게 됐다. 어머니는 부러진 걸 알기나 하시는지 태평스럽게 잘 드시고 잘 잤다. 가끔 기저귀 갈 때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것 외에는 골절 환자 같지도 않았다.
월요일, 금식하고 주사 맞고 정오가 넘어서 수술실로 향했다. 마취부터 하고 수술은 12시 반이나 돼서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구 씨는 수술실로 들어가는 원장에게 다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원장 표정이 그다지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아서 다소 안심이 되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원장이 나왔다.
"수술은 별 탈 없이 잘 끝났어요. 이제 염증이 생기거나 하지만 않으면 며칠 후에 걸어보시면 되겠네요."
별 탈 없다는 의사의 한마디에 기다리며 초조했던 게 가셨다. 어머니는 회복실에 한 시간쯤 있다가 병동 간호사가 와서 모시고 병실로 갔다. 하반신 마취만 한다더니 역시 어머니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아직 마취가 다 깨지 않아서인지 아프지도 않아 보였다.
"어머니 안 아파요?" 구 씨가 걱정스레 물었다.
"어디가? 어머니는 지금 상황이 파악이 안 되는 눈치다.
저녁이 되자 두 동생이 왔다.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 어머니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는 원장에게 몰려가 수술 경과에 대해 들었다. 구 씨도 따라갔지만 이미 다 아는 얘기였다. 똑같은 설명을 또다시 해야 하는 원장을 보며 의사란 참 번거로운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수술한 날부터 어머니는 다인 간병실로 들어가기에 구 씨는 한숨 놓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흘간 잘 못 잔 구 씨는 오랜만에 발을 뻗고 잤다.
어머니는 수술 후 이틀간 아프다고 징징거리셨다. 이틀째 밤에는 소리를 질러대고 욕까지 해서 주위 사람들을 정신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는 큰아들인 구 씨마저 못 알아보는 듯했다. 사흘간을 밤에는 시끄럽게 하고 낮에는 잠만 잤다. 의사, 간호사, 간병인들은 별일 아니라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구 씨는 평생 저러면 어떻게 사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원장은 며칠 저러다 만다고 했다.
과연 닷새째가 되자 원래대로 돌아왔다. 원장은 물리치료실에 가서 걸음 연습을 시키라고 했다.
“벌써요?" 구 씨는 한편 놀라고 한편 걱정이 되어 물었다.
“이제 해도 됩니다. 빨리 걸어야 얼른 요양원으로 돌아가시지요."
사실 구 씨는 어머니가 차라리 못 걷는 게 여러 사람에게 도움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못 걷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리치료실에서 사흘간 연습하고 나자 보행기를 붙들고 걸을 정도는 되었다. 상처도 깨끗해 보였다. 여드레째에 요양원에서 모시러 왔다. 요양원으로 돌아간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생활했다. 걸을 때 절룩거리고 인상을 쓰기는 했지만 그걸 통증으로 인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원장은 반대쪽도 부러질 수 있다고 했다. 이 노릇을 또 할지도 모른다는 거네. 언젠가 원장에게 물은 적이 있다.
“골다공증 치료를 하면 안 부러질까요?"
"그렇다고 안 부러지나요? 약 많이 먹어서 더 잘 부러진다는 이야기까지 있어요. 물론 안 먹는 것보다는 먹는 게 낫겠지요." 구 씨는 저 원장처럼 생각하면 세상에 고민이 없겠다 싶었다.
"어떻게 해야 안 부러질까요. 아예 걷지 못하게 해야 하나요?"
“걷지 못하게 할 수도 없지만 뼈가 약해지다 보면 안 걸어도 부러질 수 있어요. 그러니 부러질 때 부러지더라도 걸어야겠지요." 대답이 항상 시원시원하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구 씨 자신도 오래지 않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면 산다는 게 뭔가 싶기도 했다.
2. 대퇴골 경부 골절
- 증상
다리와 골반이 만나는 부위가 아프다. 주로 앞쪽이 아프다. 아파서 못 걷는다. 대퇴골의 이 부위는 위치와 모양이 목과 같아서 경부(頸部)라 한다.
- 원인
꼭 넘어져야 부러지는 게 아니다. 골다공증이 생기면 기역(ㄱ) 자로 꺾인 부분이 약해져서 일어서다가, 심지어는 가만히 서 있는데 부러지기도 한다. 그래서, 넘어진 적이 없는데 무슨 골절이냐며 항의하는 환자나 보호자가 간혹 있어 의사를 당황케 한다. 대퇴골(넓적다리뼈) 경부는 하느님이 사람을 만들 때 설계를 잘못 한 부분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 진단
엑스레이에서 보인다. 다만, 아주 미세하게 부러지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다가 후에 어긋난 다음에 보이는 수도 있다. 그래서 엑스레이로는 보이지 않지만 증세가 골절로 의심될 경우엔 CT, MRI가 필요하다.
- 치료
엑스레이로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골절이라면 한 달간 누워 있어 본다. 전위골절(골절 부위가 서로 어긋난 것이 엑스레이에 확인이 되는 경우)로 부위가 대퇴골 경부라면 인공 관절 수술을, 경부 아래쪽이라면 고정 수술을 한다. 경부 아래쪽의 대퇴골 전자부(轉子部)라는 넓은 부위는 고정 수술을 하면 잘 붙는다.
- 화타의 충고
화타의 친할머니가 이 부위가 골절이 되었는데 합병증이 무서워 수술하지 않고 1년 넘게 누워서 대소변 받아내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물론 수술 중이나 수술 직후에 불미스러운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그 확률은 환자의 심장이나 폐가 어떤지 등 전신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리 나쁜 경우도 5%를 넘지는 않는다. 따라서 걸을 수 있는 환자라면 수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죽음까지도 존엄사가 화두인 세상이다. 누워서 대소변 받아내는 여생은 결코 존엄하지 않다. (정병오 지음 / 『똑똑한 환자 되기』 / 모멘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