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목 염좌
상호 씨는 사회인 야구동호회 회원이다. 주말마다 연습 경기를 하고, 평일에도 시간 나면 타격 연습이니 투구 연습을 한다. 일이 벌어진 건 지난 주말 연습 경기에서다. 경기 중에 손이 까지거나 넘어져서 손목이 아프거나 하는 일은 다반사지만, 이번에는 재수 없게 걸렸다.
슬라이딩하다가 발목이 꺾인 것이다. 회원들의 부상이 일상화한 터라 얼음찜질 후에 붕대를 감고는 됐으려니 했다.
다음 날 일어나니 그럭저럭 걷기는 하겠으나 통증이 꽤 심했다. 꾹 참고 있자니 점점 더 부어올라서, 아픈 건 둘째 치고 후유증이 남을까 걱정되었다. 별 수 없이 화요일 오후에 사무실에서 제일 가까운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의사가 먼저 인사한다. 몸이 불편해서일까, 상호 씨는 이 의례적인 말이 새삼 못마땅했다. 안녕하지 못해서 자기한테 온 걸 뻔히 알면서 안녕하냐니. 그렇다고 인사를 안 받을 수도 없다.
"네, 안녕하세요. 제가 사흘 전에 발목을 다쳤는데 낫질 않고 점점 더 아프네요.“
"아, 그러세요? 우선 사진 좀 찍어보시죠."
에스레이를 찍고 돌아오자 잠시 후 컴퓨터 화면에 사진이 나왔다.
의사가 잠시 들여다본다.
“인대가 끊어졌습니다. 깁스하시고 며칠 주사 맞고 하시면 낫겠어요.”
"그런가요? 그러면 인대가 붙을까요?” 상호 씨는 인대가 끊어졌다는 말에 놀랐다.
“그건 치료해봐야 알겠는데요.” 우리라고 그런 걸 어떻게 장담하나, 사람마다 다른 걸, 환자들이야 확신을 주기 바라지만 말이야, 의사는 생각했다.
상호 씨는 상호 씨대로 해봐야 안다는 말에 김이 샜다. 의사가 그런 것도 모르나. 시키는 대로 주사 맞고 붕대로 반(半)깁스를 하고 나오기는 했지만 다른 의사를 만나보리라 마음을 굳혔다.
다음 날 상호 씨는 한 블록 거리에 있는 다른 정형외과를 찾았다.
다친 사연과 현재 상태를 설명하고는 어제 간 의원에서 인대가 끊어졌다고 하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의사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마는 것 같았다.
의사는 난처했다. 끊어졌다고 해야 하나 끊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일단 엑스레이 찍고 오세요."
의사는 시간이 필요했다. 환자는 가는 데마다 방사선 사진을 찍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의사도 제대로 진단하려면 그게 필요하지 싶어서 별말을 안 했다.
그런데 표정이 왜 저리 심각하지?
사진을 찍고 왔다. 그사이 의사는 다른 환자를 진료하느라 상호 씨에게 인대 상태를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한데 엑스레이를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인 말이 쑥 나와 버렸다.
“인대가 늘어났어요.” 뭐라 할지 그리 걱정을 했으면서도 말이다.
“끊어진 게 아니라 늘어났다고요? 어제 본 의사는 끊어졌다고 했는데요?" 상호 씨는 혼란스러웠다.
의사는 곧 말실수를 깨달았다. 할 수 없다, 밀어붙이자.
"끊어지기까지는 안 했고요. 약간 늘어났을 뿐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하고 있는 깁스를 두세 주일 하면 됩니다. 약 처방을 드릴 테니 받아 가시고요.” 서둘러 말을 마무리하고 상호 씨를 내보냈다.
의사가 왜 이리 급할까, 상호 씨는 어리둥절했지만 아무튼 안 끊어졌다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깁스 기간도 길지 않은가 보네. 인대가 늘어났든 끊어졌든 그 정도 하고 나으면 그만이지 뭐. 의사의 권유대로 깁스를 2주 동안 하기로 했다. 붕대로 뚤뚤 말아놓고 두 주를 지내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그래도 상호 씨는 붕대에 손대지 않고 고지식하게 그 기간을 견뎠다.
2주하고 하루가 지난 날, 상호 씨는 집에서 붕대를 풀었다. 어찌 됐을지 궁금해 하며 보물상자 열듯이 조심스레 다 푼 순간, 진한 요구르트 냄새 같은 게 방안을 채웠다. 살아 있는 사람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날 수 있다니, 그러다 발을 들여다보고는 화들짝했다. 온통 퍼렇게 멍이 들어 있지 않은가, 얼른 발을 씻어 냄새를 없애고, 병원에 가려고 나섰다. 지난번 갔던 병원도 못 미더워서 동네에 있는 종합병원엘 가서 원장을 만났다.
“다친 후 아픈 건 거의 없어졌는데 부기가 안 가라앉아요. 멍도 심하게 들었고.”
"보여주세요.”
양말을 벗고 발을 내밀었다.
“걸어보세요.”
맨발로 걸어 보였다.
“걸을 때 아프세요?”
"안 아파요.”
“인대가 끊어지긴 했겠지만 거의 붙었을 테니 앞으로 두 달 동안 격한 운동은 하지 말고 지내시면 되겠어요.” 의사는 간단히 진료를 끝낼 태세였다. 상호 씨가 재빨리 물었다.
"어떤 의사는 끊어졌다 하고 어떤 의사는 늘어났다고 하는데 도대체 뭐가 맞는 건가요?"
의사가 상호 씨를 한참 보다가 물었다.
"엑스레이에 인대가 보일까요, 안 보일까요?"
"저는 모르지요." 뜻밖의 질문에 당황하며 상호 씨가 말했다.
“안 보입니다. 의사들이 끊어졌네 늘어났네 하는 거는 추측이에요. 제가 끊어졌다고 한 건 멍이 심하게 든 걸 보면 그러리라는 거지요."
"그럼 수술해서 이어야 하지 않나요? 끊어졌다면요.”
"그럴 필요 없어요. 발목 인대는 깁스만 해도 잘 붙어요. 그런데 끊어진 거랑 늘어난 거랑 뭐가 다를까요?” 의사가 미소를 띠며 다시 물었다. 연거푸 답 못할 질문을 받은 상호 씨는 민망한 얼굴이 됐다.
“당연히 다른 거 아닌가요? 끊어진 거하고 늘어난 거는."
"인대가 고무줄도 아닌데 늘어나겠어요? 고무줄처럼 늘어나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 병이라 할 것도 없고.”
듣고 보니 그렇기도 했다.
"늘어났다는 말은 조금 끊어졌다는 뜻이고, 끊어졌다는 말은 많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멍이 든 건 속에서 피가 났다는 얘기이니, 멍이 심하게 들었으면 많이 끊어진 거겠지요? 깁스기간도 멍든 정도에 따라서 조절하면 됩니다. 알아들으셨죠? 가셔도 됩니다."
상호 씨는 알 듯 모를 듯했다. 다음에 또 다치면 어쩌지?
2. 발목 염좌
- 증상
염좌란 관절을 받쳐주는 인대나 근육이 갑작스러운 충격이나 격한 운동에 의해 늘어나거나 찢어지는 것을 말한다. 골절과 다른 점은 대체로 통증의 정도가 덜하다는 것이다. 골절의 경우, 환자들은 스스로 걸을 수 있으면 부러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살짝 실금만 가 있으면 걸을 수 있기도 하고, 손상의 정도도 심한 인대 손상보다 적을 수도 있다.
증세가 가벼우면 다행이지만, 걸을 때 날카로운 통증이 있을 정도면 증상만 가지고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스스로 판단하려 들지 않는 게 좋다.
- 원인
삔 데서 온다.
- 진단
대부분은 단순 방사선 검사(엑스레이)로 충분하지만 CT, MRI가 필요한 경우도 종종 있다. 결국 치료의 핵심은 골절되었느냐 아니냐이다. 치료도 그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엑스레이에서 골절이 보이지 않으면 염좌라고 한다. 통증이나 부종이 매우 심한데 엑스레이에서 골절이 보이지 않는다면 CT나 MRI를 추천한다.
- 치료
급성기, 즉 발병 직후에 한냉치료, 휴식, 거상(발을 높이 두기), 부목 고정 3주를 권한다.
- 화타의 충고
핵심은 부목 고정을 할 건지 말 건지, 얼마나 오래 할 건지이다.
골절이라면 방사선 사진에 보이기 때문에 그 모양에 따라서 결정할 수 있지만, 염좌의 경우 인대 손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화타는 부목을 하고 사흘 후에 풀어봐서 피멍이 있으면 3주를 하고, 없으면 부목을 풀고 일상생활을 할 것을 추천한다. (정병오 지음 / 『똑똑한 환자 되기』 / 모멘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