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주상골
“아야”. 가람이 엄마는 넘어져서 울고 있는 가람을 일으키려고 뛰어가다 계단에서 삐끗했다. 다행히 엎어지지는 않았지만 발이 아팠다.
그래도 우선 가람을 챙겨야 해서, 바로 뛰어가 안아 일으키고, 넘어졌다고 핀잔 한마디 하고, 옷을 털어주고 안아 올려서는 집으로 들어왔다. 목욕통에 물을 받아 아이를 집어넣으니 잘 놀았다. 물속에서 한 시간은 놀겠지 하며 저녁에 먹을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안치고 소파에 앉았다. 아까 삐끗한 왼발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이 눈길을 주어서일까, 응석 부리듯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뒤집어졌던 것도 아닌데 꽤 뜨끔거렸다. 안쪽 복숭아뼈 아래 앞쪽이 아프고 멍도 약간 들었다. 한번 눌러보다가 화들짝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걷는 건 문제가 없었다. 아이까지 데리고 병원을 가려면 번거로울 게 뻔해서 놔둬보기로 했다. 마침 조제한 감기약 남은 게 있어 타이레놀만 쏙 빼서 먹으니 차츰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세수할 때까지는 몰랐는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때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그냥 두고 볼 통증이 아니었다. 보기에는 별로 붓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의원에 들렀다.
자초지종을 들은 의사는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보라고 했다. 사진이 나오자 의사는 발과 사진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뜸을 좀 들이다가 말했다.
“뼈는 이상 없네요. 인대가 늘어났으니 붕대로 하는 반깁스를 며칠 하세요, 주사 맞고 약 먹고 물리치료도 좀 하시고."
“깁스하고 어떻게 물리치료를 해요?"
음, 의사는 잠시 머뭇거렸다. “물리치료는 깁스 풀고 나서 하세요."
어쨌든 시키는 대로 했다. 주사 맞고 집에 오니 한결 나았다. 깁스하고 걸으니 불편하긴 하지만 발은 덜 아팠다.
밤에 신랑한테 칠칠치 못하다고 구박을 받았다. 붕대를 풀어서 씻고 다시 감을 때 신랑 도움을 받느라 한 번 더 핀잔받고,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동네 의원에 갔다.
"오늘은 깁스 풀고 물리치료 하세요. 약 좀 더 드시고요."
"약 먹으니까 속이 약간 시린 느낌이 들어요.” 가람 엄마가 말했다.
"그럼 약을 좀 바꿔드릴게요."
“그게 무슨 약이지요? 인대 빨리 붙게 하는 약인가요?” 약을 먹을 때마다 그게 궁금했다.
"네, 소염제예요.” 전형적인 대답이다.
"물리치료는 며칠이나 해야 할까요?"
"일주일 하면 나을 거예요." 의사들이 약속이라도 했나, 큰 병 아니면 하나같이 일주일, 이 주일이네.“
시키는 대로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일주일 했다. 차도가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인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의사와 면담했다.
"아직도 아파요. 별로 낫지 않는 것 같아요." 환자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럼 일주일 더 하세요." 의사는 느긋했다. 또 아니면 말고 속으로 생각했다.
“네? 아, 네.” 그러고 물리치료를 하러 갔지만 희망을 버렸다. 여긴 끝이다. 하는 등 마는 둥 하고 나왔다. 큰 병원에 안 가봐도 될까?
또 일주일이 흘렀다. 처음에 비하면 거의 나은 셈이지만 깔끔하지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거나 돌부리라도 밟을 때는 발 안쪽이 시큰한 느낌이 계속 있었다. 내일은 다른 데 가봐야지.
다음 날 읍내 종합병원으로 갔다. 정형외과에 접수를 했다. 그간의 사정을 대강 설명했다. 의사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보라고 하고는 몇 군데를 눌렀다. 별나게 아픈 자리가 있었다.
"알겠네요. 엑스레이 찍고 설명해드릴게요.” 의사가 컴퓨터에 처방을 입력하면서 말했다.
“동네 의원서 찍었는데, 또 찍어요?” 모든 환자의 불만 사항이다.
“제가 봐야지요. 그 의사만 봤지 나는 못 봤으니 다시 찍어야겠지요? 내가 점쟁인가요, 얼굴만 보고 병을 알아맞히게?" 의사가 답답해 하면서 설명했다. 맞는 말이네.
"그럼 복사해 올까요?”
"엑스레이는 복사비나 찍는 값이나 그게 그거일 걸요. 복사하려면 거기 가서 또 접수하고 진료비 내고, 결국 더 비싸지요."
병원 일은 의사가 더 잘 아니 이길 수가 없다. 다시 찍었다.
의사가 사진을 놓고 설명했다.
“발 안쪽에 동그란 하얀 것이 보이지요? 이게 부주상골(副舟狀骨)이라는 겁니다. 누구한테나 있는 게 아니에요. 다들 있는 건 여기 이 주상골(舟狀骨)이지요. 배 모양의 뼈라는 뜻인데, 열 명에 하나 가량은 그 주상골 옆에 작은 뼈가 하나 더 있어요. 주상골 옆에 있다고 부주상골이라고 부릅니다. 음, 해부학 강의는 그 정도만 하고, 여길 보세요. 이 경계가 울퉁불퉁한 건 관절이 망가졌다는 거고, 이것 때문에 아픈 거예요.” 꽤 친절한 설명이었다.
"언제 그런 뼈가 생겼을까요?" 환자는 자기한테 병명이 붙고 보면 궁금한 게 많아진다.
“부주상골이라는 건 날 때부터 있는 거예요. 나쁜 것도 아니고, 단지 나이 들어서 관절염이 생기면 아픈 거지요."
가람 엄마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럼 내가 완전 정상이 아니란 말이네. 게다가 나이 서른에 관절염이라니 참.
“아무튼 기형이라는 거네요.” 기분 안 좋은 용어지만 그 외엔 적절한 말이 없었다.
"굳이 그렇게 부를 필요가 있겠어요? 그냥 특징이라고 해두지요. 코나 귀가 별나게 큰 사람이 있듯이!" 의사도 환자의 정서를 생각해서 그 단어는 피하고 싶었다.
"그럼 어떻게 치료해야 하지요?” 당장 중요한 건 해결책이다.
"그냥 살아도 괜찮고, 아픈 게 불편해서 꼭 치료하려면 수술해서 떼어내면 돼요.”
“그럼 안 떼어내도 낫나요, 언젠가는 떼어내야 하나요?" |
“점점 더 아파질 테고, 언젠가는 수술해야 할 가능성이 크지요.” 의사는 이 재미없는 문답이 너무 길어진다 싶었다.
“약은 없나요? 주사로는 못 고치나요?”
“그런 주사나 약은 없어요. 저 딱딱한 뼈를 녹여내는 약이 있겠어요? 나 같으면 있어도 안 쓰겠어요, 얼마나 독할지 생각해보세요. 저걸 녹이려면,”
환자의 말문을 막으려고 독하다느니 녹인다느니 강한 표현을 썼지만, 환자는 눈치를 못 챈다.
"근데 동네 의원에서는 무슨 약을 준 거죠?"
“진통제겠지요.” 대답이 초간단이다.
“뭔가 다른 거라고 했는데…….”
헐헐헐, 의사의 웃음소리가 공허했다.
저녁에 신랑에게 털어놓았다. “나, 발 속 무슨 뼈가 기형이라 수술해야 고칠 수 있대.”
이제 결혼한 지 4년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있는 거라니까 마치 무슨 병을 속이고 결혼한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아직 보증기간 안 끝났는데, 장인어른께 치료비 내시라고 해야겠다.” 신랑이 약을 올렸다.
"뭐예요? 원래 있었던 거긴 하지만 가람이 보다가 다쳐서 아프게 된 거잖아요.“
“그건 그렇고, 이 동네 의사들 실력을 믿을 수가 있나. 내일 대학병원에 가보자.”
대학병원이라니, 고마워라. 다음 날 부부는 가람이도 데리고 전망대학병원으로 갔다. 발을 전문으로 본다는 의사에게 접수했다.
의사는 1~2분 면담하고는 엑스레이 찍고 CI도 찍으라고 했다. 저쪽에서는 엑스레이만 찍고도 알던데…. MRI 찍으라고 하지 않는 게 다행이지 뭐.
그래도 당일에 결과까지 봐주는 게 고마웠다. 진단 내용은 같았다.
수술을 꼭 하라는 결론만 달랐다. 왠지는 못 물어봤다. 신랑은 뭔가 불만이 있어 보였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신랑이 수술할 거냐고 물었다. 계속 아플 거면 해야겠다고 했다. 이쯤 되어서는 바꾸기 어렵다. 2주일 후로 날짜를 잡았다. 시간이 있으니까 그 사이에 나으면 취소해야지.
큰 병은 아니라니 안심은 하고 지냈지만 통증이 가시지를 않아 결국 수술을 받게 됐다.
약속한 날짜에 입원하고 수술받고 3일 만에 집으로 왔다. 간단한 수술이라더니 많이 아팠다. 상처가 욱신욱신하고 빨갛게 부어올라 보기에도 무서웠다. 깁스도 한 달이나 하라고 하니 대수술이었다. 집에서 약 먹고 있자니 통증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일주일 지나 읍내 병원으로 갔다.
“원장님, 죄송한데요, 전망대병원에서 수술하고 왔는데 너무 아파요.”
"죄송하지요? 상처 좀 봐요."
붕대를 풀고 거즈 붙인 걸 들어 올리자 빨갛게 부어오른 상처가 보였다.
"상처에 염증이 생기는가 보네. 항생제 주사 좀 맞고 약 드세요.”
“집에서 견디려고 해봤는데 너무 아파요. 입원하면 안 될까요?"
"항생제 주사 맞으려면 며칠 입원하는 게 낫기는 하겠네요.“
수술 부위 엑스레이를 찍고 엄중 수치를 검사한다고 피를 뽑은 후 입원했다. 항생제 주사를 맞자 몇 시간 만에 통증이 많이 줄어들었다.
침대에 누워 괜히 수술했다고 후회했다. 이때 옆 침대 환자가 들어왔다. 발에 붕대만 감았을 뿐이지 슬리퍼 신고 잘 걸어 다녔다. 저리 멀쩡해졌는데 왜 입원해 있나 싶었다.
다음 날 회진 시간에 원장이 물었다. “아픈 것 좀 나았어요?"
"네, 많이 나았어요. 며칠이나 있어야 할까요?" 친정 엄마한테 가람이를 맡긴 게 미안해서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어서다.
"어제 입원해서 벌써 퇴원 생각을 해요? 염증이 생겼으니 항생제를 15일은 맞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원장은 옆자리 환자에게 묻는다.
"수진 씨는 어때요? 걸을 만하지요?"
“네, 별로 안 아파요. 회사에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퇴원하시고 3일 후에 상처 치료하러 나오세요. 물만 안 들어가면 뭐든지 해도 돼요.”
원장은 수진 씨를 진료하고 다음 병실로 갔다.
낮에 상처를 치료하는데 보니 수진 씨 상처 자리가 가람 엄마와 똑같았다.
"어머, 나하고 상처가 같네, 무슨 수술을 한 거예요?” 가람 엄마가 물었다.
“부주상골인지 뭔지요, 발에 남보다 뼈가 하나 더 있어서 아프대요. 그래서 그걸 떼어내는 수술을 했어요.”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표정이다.
"언제 했는데 잘 걸으시네요?" 가람 엄마는 부러움을 감추며 말했다.
"그저께요.” 수진 씨가 화장실에 가려고 슬리퍼를 신으며 대답했다.
엥? 나는 열흘이나 되었어도 아직 못 걷는데? 깁스도 했고,
"근데 깁스 안 했어요?" 이젠 부러움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안 해도 된대요." 수진 씨는 짧게 대답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가람 엄마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똑같은 병인데 왜 이리 다르지? 의사 면담을 신청했다. 한 시에 외래로 원장실을 찾았다.
“원장님, 수진 씨가 저하고 같은 병이지요?"
"네, 맞아요.“
"그런데 왜 저하고 많이 다르지요?" 애먼 데다 볼멘소리다.
“엑스레이 찍은 걸 보니까 가람 엄마는 뼈를 떼어낸 게 아니라 붙였더라고요. 어떤 의사들은 부주상골을 떼어내지 않고 주상골에다 붙이기도 해요. 나사를 박아서.” 원장은 엑스레이 사진을 찾아서 보여준다. 수진 씨 것과 나란히.
"그럼 그냥 떼어내도 괜찮은 거예요? 그래도 붙이는 게 떼어내는 것보다 좋은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해본다.
"글쎄, 난 붙이는 게 더 번거롭고 좋을 것도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 했더라고요. 그게 뭐가 더 좋은지는 수술한 의사한테 물어보셔야 할 것 같아요. 떼어내면 금방 활동도 할 수 있고 염증 생길 일도 없을 텐데, 생각해보세요. 나사가 박혔으면 이물질이 몸속에 있으니 염증 생기는 경우도 많고 나중에 빼는 수술도 해야 할 것 아니에요?” 가람 엄마의 기대를 꺾는 대답이다.
"그래도 뭔가 필요하니까 있는 뼈가 아닐까요? 떼어내는 것보다 붙여놓는 게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요?“ 가람 엄마는 희망인지 미련인지의 끈을 놓지 않는다.
"글쎄요, 맹장도 필요하니까 있는 거 아니냐고 하는 것과 비슷해요. 실제로 맹장이 필요하다는 의사도 있으니까. 남이 한 수술에다 대고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는 않으니 그건 전망대병원에 가서 물어보세요. 저는 염증만 없애드릴 테니."
가람 엄마는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상처 염증은 곧 나아서 퇴원했지만, 마음의 염증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2. 부주상골
- 증상
발 안쪽이 아프다. 안쪽 복숭아뼈의 약간 앞쪽에 통증이 있다. 청소년기에 통증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고 장년기 이후에 오는 경우도 있다.
- 원인
주상골은 정상적인 발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뼈다. 그 안쪽으로 전 인구의 10%에만 있는 뼈가 부주상골이다. 너무 흔해서 기형이라고까지 말하기는 무엇하지만, 이 뼈가 있으면 그 부분이 더 튀어나와서 자극을 일으켜 아프다고 한다.
- 진단
부주상골의 존재 자체는 엑스레이에 보인다. 다만 그것이 통증의 원인일지는 세심한 관찰과 진찰이 필요하다. CT가 도움이 된다.
- 치료
우선은 냉찜질하고, 발 가운데의 아치(arch, 足底弓)를 높이는 신발을 신어본다. 소위 마사이 신발과 같은 원리다. 교과서적으로는 두 가지 수술법이 있다. 하나는 부주상골을 제거하고 부주상골에 부착됐던 후경골근(後經骨筋)을 주상골에 재부착하는 수술이고, 또 하나는 부주상골을 단순히 제거하는 수술이다.
- 화타의 충고
우선 원인부터 단순히 자극이나 혈액 순환이 안 되어 아프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이건 딱히 눈에 보이는 원인이 없으면 대충 갖다 붙이는 식이 아닐까 한다. 부주상골에 통증이 있을 때 제거해 보면 틀림없이 주상골과 맞닿은 면에 연골이 없이 빨갛게 뼈가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화타의 경험으로는 부주상골이 발생할 때 뼈만 생기고 연골이 없어서 이미 10대부터 관절염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각설하고, 아프면 떼어내면 된다. 수술 다음 날부터 뛰어 다녀도 된다. 후경골근을 뗐다가 붙이는 방식은 필요 이상으로 수술을 크게 만들고 환자를 고생시키는 일이다. (정병오 지음 / 『똑똑한 환자 되기』 / 모멘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