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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종말 1 – 민주주의의 위기

hope888 2022. 4. 10. 09:15

1. 민주주의의 위기

 

큰 위기가 닥치면, 통상적이지 않은 조치가 필요하다. 더없이 명백히 드러났듯이, 국제적인 수준뿐 아니라 제도적 수준과 개인적 수준에서도 우리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하고 받아들일 능력이 있다. 민주주의는 위기에 대처할 줄 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얼마나 오랫동안 손상되지 않으면서 위기모드에 머무를 수 있을까? 20204월 초,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봉쇄 기간을 한정할 것을 촉구한다. 강제 조치에 반발하는 소송들이 제기된다. 자유가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독일에서 연방과 주들과 자치단체들은 행동의 자유에 대한 제한조치를 통일하는 데 실패한다. 일부 주의회와 시장은 단지 주소를 다르게 신고했다는 이유만으로 주민을 자택에서 쫓아낸다.

이스라엘에서는 부패 혐의를 받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코로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3년 동안 비상 정부에 국정을 맡길 것을 제안한다. 받아들여지면 네타냐후 개인이 임박한 소송을 피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영국에서는 당국이 감염 의심자를 체포하고 한 달 동안 강제로 격리하는 것을 허용하는 긴급조치안이 하원에 상정된다. 그 안이 통과되면, 당국은 정신장애인을 구금하고 생필품을 배급할 수 있을 것이며, 의사는 한 번도 진료한 적 없는 환자의 사망진단서를 발급해도 될 것이다.

헝가리에서는 정부 수반 빅토르 오르반이 140개 기업을 군대의 감독 아래 둔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전쟁 중인 국가에서나 벌어질 법 일이다. 그리고 오르반은 이론적으로 볼 때 자신의 독재를 무기한 허용하는 법안을 제출한다. 그 법안은 의회를 대체로 배제한다.

바이러스가 사람에게서 민주주의로 옮아가 치명적일 수도 있는 병을 일으킬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더 큰 권력을 틀어쥐기 위해 코로나 비상사태를 악용하는 정권들은 정치학 및 사회학 이론이 늘 우려해오던 바를 입증하는 듯하다. 정치학자 한스 요르크 지크바르트는 그 위험을 이렇게 표현한다. “순전히 효율성을 기준으로 관철된 모든 자연 지배의 시도는 인간 지배로 바뀔 위험을 품고 있다.” 일찍이 한나 아렌트도 알았듯이 자연의 목소리는 늘 필연의 언어로 말한다. 자연은 자유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코로나 위기와 생태 위기 사이의 중대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몇 주, 심지어 단 며칠이라도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권력 남용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독점적 권력이 법의 속박에서 풀려난다면, 고삐 풀린 국가 위에 주권자인 국민이 있지 않다면, 아무도 비상사태의 종결을 강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법치국가의 운명은 극소수 권력자들의 신념에 좌우될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코로나 위기와 생태 위기 사이의 중대한 공통점이 드러난다. 자연법칙은 우리가 불변적이라고 느끼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때 자연이 유행병이냐, 대멸종이냐, 기후 위기냐는 원리적인 차이가 아니라 빌미의 차이일 뿐이다. 요컨대 환경학에서 익숙한 기준선의 이동.shifting baseline"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준선의 도약jumping baseline” 곧 기준선이나 기준값이 도약적으로 바뀌면서 혼란을 동반한 개혁을 강제하는 경우도 있다.

파산 직전의 은행을 위한 구제금융과 달리, 자연법칙은 정말로 대안이 없는 정책을 요구한다. 코로나 위기는 국가가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 무엇이 위태로운지 아는 시민들이 국가를 얼마나 멀리까지 기꺼이 따라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대멸종과 생태 위기는 물론 긴급한 문제지만, 지구 시스템은 바이러스와는 다른 속도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사회가 과정을 계획하고 제안과 반발과 논쟁을 허용하고 사상과 아이디어의 교환을 장려할 시간이 충분히 있다. 논쟁은 민주주의의 숨통이다. 그리고 생태 논쟁만큼 복잡한 논쟁은 거의 없다.

괜한 불안을 품을 필요는 없다. 유행병과 싸우기 위해 필요한 독재적 조치들과 비교할 때, 강력한 환경정책의 개인적 자유권 침범은 미미한 수준이다.

 

2. 코로나 위기가 주는 교훈들

 

유행병도 자연재해다. 그리고 환경 파괴가 계속되면, 유행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것이 코로나19 감염증 대유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이다. 우리가 자연을 가만히 놔두면, 자연은 덜 위험해진다.

둘째, 사람들이 사회적 규범 및 가치관과 일상의 습관을 바꾸려면 반드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반박되었다. 폭넓은 찬성이 있으면, 신속한 변화도 가능하다.

셋째, 최대의 투명성과 진정성은 급진적인 정치적 결정에 대한 사회의 수용성을 높인다. 그러면 개인적 자유의 제한마저도 가능하다. 요컨대 투명성은 근본적 개혁의 가장 중요한 전제들 중 하나다.

넷째, 정치가 과학 지식을 부정하거나 상대화하지 않으면, 정치의 신뢰성이 향상된다. 과학 지식을 존중하면 정치적 행동 반경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확대된다.

다섯째, 생태적 비상사태에서는 외출 금지나 국경 폐쇄, 민주주의를 해치는 권력자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환경보호는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기는커녕 도리어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기반이다.

코로나 위기는 우리에게 중대한 기회를 선사했다. 즉 과학 지식을 행동의 제한 조건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일깨웠다. 이렇게 과학 지식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우리는 생태 위기에서 더는 대처 여부를 놓고 다툴 필요 없이 단지 대처방식에 대해서만 논쟁하면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생물학적 필연에 얼마나 근본적이고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었는지를 우리가 코로나 이후에 상기하면 근본적 개혁을 위한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위기는 민주주의의 행동 능력과 우리 대다수의 행동 능력을 입증했다. 우리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딱 하나, 다시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3. 생태 비상사태

 

자연재해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덮칠 수 있다. 이를테면 바이러스, 폭풍우, 대형 화재의 형태가 있다. 그러나 자연재해에 맞설 때 우리는 대체로 같은 무기들을 사용한다.

2020년 초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꽤 긴 기간을 통틀어 가장 큰 산불이 났다. 특히 큰 피해를 입은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정부는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공무원과 정부기관은 평소에 엄하게 금지된 행동을 갑자기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특히 이동의 자유와 재산권이 긴급사태 선포로 제한되었다. 그리하여 경찰은 자동차 사용을 금지하고 도로를 봉쇄하고 공공시설을 폐쇄할 수 있었다. 소방대는 소유자가 반대하더라도 사유재산을 사용하고 징발하고 파괴할 수 있었다. 피난 명령이 내려지면 공무원은 당사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심지어 강제력을 동원하여 주민들을 자택과 마을과 지역 전체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유행병에 맞선 전쟁에서 이루어진 것과 똑같은 자유의 제한, 기본권을 심하게 침범하는 제한이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도 코로나 위기와 마찬가지로 비상사태였다.

국제법은 재난 시의 비상사태 선포를 대응 수단으로 인정한다. 이 수단의 악용을 막기 위해 유엔은 비상사태에 관한 기준 목록을 작성하여 회원국에게 그 목록의 적용을 권고한다. 그 목록에 따르면, 비상사태는 법치국가의 절차에 따라 합법화되어야 하며 공개적으로 선포되고 공지되어야 한다. 비상사태는 기간이 한정되어야 하고, 그 원인인 위협이 이례적이어야 하며, 비상사태에서의 조치들은 적절해야 하고 차별적이거나 특정 목적에 종사하지 않아야 하며 국제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비상사태를 선포한 국가는 유엔에 통보해야 하고, 유엔은 자유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해당 국가의 기준 준수 여부를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예컨대 빅토르 오르반은 코로나 비상사태에서 이 규칙들 중 다수를 위반했다.

바이러스와 산불이 비상사태를 정당화한다면, 지구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들 중 하나는 어떠할까? 나사NASA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세계 인구의 90퍼센트는 오염된 공기를 어쩔 수 없이 호흡한다. 이로 인해 매년 800만 명 이상이 때 이르게 사망한다.

사망자가 800만 명이라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보아하니 불충분한 모양이다.

다들 알다시피, 점진적이고 분산적인 위험은 방어 반사 defense reflex를 일으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미래 세대들의 근심과 곤경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없다.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려면, 위험이 구체적이거나 갑작스러워야 하고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나 산불과 달리 생태 위기는 명확한 이미지들과 결부되지 않는다. 방호복을 입고 방독마스크를 쓴 사람들도 없고, 이글거리는 불꽃과 새까맣게 타죽은 코알라도 없다. 우리는 재난의 표면은 보지만 그 너머의 다양한 원인은 보지 못한다.

문제는 부분적으로 우리의 한정된 상상력에 있다.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술책을 부리고, 우리는 한 심리적 함정에서 헤어나자마자 다른 심리적 함정에 빠져서 자연이 그렇게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애써 믿으며 개혁을 지체한다. 작가 데이비드 월리스 웰스는 저서 거주할 수 없는 지구 The Uninhabitable Earth에서 그런 함정 몇 개를 열거한다.

닻내림 효과 anchor effect'는 우리로 하여금 얼마 안 되는 사례를 근거로 미래를 예견하게 만든다. 오늘날의 세계는 아직 안심해도 좋을 만큼 우리에게 우호적이니 미래의 세계도 그러하리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구경꾼 효과, spectator effect’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누군가가 문제를 처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 자신이 행동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다.

'모호성 효과 ambiguity effect'란 대다수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몹시 꺼려서 심지어 낯선 이득보다 잘 아는 손해를 더 선호한다는 것을 뜻한다. 마치 우리 스스로 함정을 파고 거기에 빠지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우리가 어디에 도달할지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위험에 대처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능력이지만, 그 능력은 불상사가 코앞에 닥쳤을 때만 잘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거주하는 동굴에 검치호랑이가 침입했을 때? 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할 때? 산불이 났을 때? 걱정할 것 없다. 호모사피엔스는 위험에 대처하고 해결책을 찾아낸다. 반면에 미래의 추상적 위험 앞에서 우리는 데면데면하다고 신학자 볼프강 후버는 지적한다. “그 위험은 본능에 따른 반응의 가능 범위뿐 아니라 전통적 윤리의 범주도 벗어난다.” 따라서 그는 예방의 원칙을 정치적 의무의 기본 요소로서 촉구한다. 실제로 국제 사회는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 그 원리를 채택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예방의 원칙은 대체로 선의의 바람일 뿐이다. 거의 30년 전에 합의된 그 원칙을 일상에서, 현실의 정치적 결정에서 실천하려 애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의 실적을 선거와 분기 보고서를 통해 평가받는 정치인과 경영자는 손해는 즉각적으로 체감되고 이득은 미래에나 뚜렷해질 법안이나 사업을 관철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예방의 원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은 낙선하거나 해고된다.

 

4. 예외적인 상황을 위한 규칙

 

앞서 우리는 큰 변화를 일으킬 지렛대를 발견하기 위하여 우리의 시스템을 분석하는 방법의 한 예로 도넬라 메도스의 이론을 보았다. 우리가 신속하게 행동 능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만한 정치적 도구들을 재난 관리 관행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앞선 장들에서 우리는 대멸종과 지구의 부담 한계를 무시하는 태도가 우리의 자유와 복지, 건강,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과 그 이유를 설명하려 애썼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과 식물은 약 100만 종이며, 매일 150종이 절멸한다. 게다가 해수면은 상승하고, 공기는 독성 물질들로 오염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는 비상사태를 겪고 있다. 재난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재난은 아주 커서, 재난이 절정에 이르면, 우리는 아예 대응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예방의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 전 지구적 대멸종은 복구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효과적인 예방이 근본적이며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삶의 토대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기관들에 더 많은 권력을 위임할 필요가 있다.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우리 모두가 "현실적 유토피아적realistics utopian" 관점을 채택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즉 코로나 유행병이나 대멸종처럼 규칙을 변화시키는 근원적 폭력을 우리가 사유를 통해 선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통상적으로 우리가 실천적-정치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기는 행동의 범위가 확장될 것이다. 이례적인 난관에도 대처할 수 있기 위하여 우리는 사유를 한정하는 울타리를 폭파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생태 비상사태의 선포는 다음을 의미한다. ‘모든 결정에서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하며, 항상 환경보호를 우선해야 한다. 국가는 필요한 만큼 급진적으로 이 우선순위를 관철한다.’ (디르크 슈테펜스, 프리츠 하베쿠스 지음 / 인간의 종말/ 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