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이침 이야기
귀에 침을 놓아 병을 치료하는 것을 본 것은 아주 어렸을 때이다. 필자가 태어나 자란 곳은 강원도 산골이었다. 지금은 교통수단이라든가 지역개발 등으로 생활환경이 많이 나아져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의료시설을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지만, 필자가 자랄 때만 해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몸이 아프다고 쉽게 병원을 찾기란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지낸 것은 아니다. 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알겠지만 예전에는 마을마다 자연요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분이 한 분 정도 있었다. 그분들은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방법대로 침을 놓기도 하고 약초를 활용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다.
특히나 필자의 마을에 있던 분은 아버지와 친한 친구사이였는데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축들에게 병이 났을 때도 성심성의껏 치료해주셨다.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병든 가축의 귀에 침을 놓아 낫게 하셨다는 것이다. 다리가 삐었거나 체한 사람들을 치료할 때 몸의 한 부분에 침을 놓는 것을 보곤 했지만 귀에 침을 놓는다는 것은 생소한 일이었다. 그분을 따라다니며 침놓는 장면을 지켜보게 된 필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하게 병이 낫는 가축들을 보면서, 사람에게 병이 났을 때도 귀에 침을 놓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시작으로 이침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고, 지난 30년간 수없이 많은 사례를 통해 이침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침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귀에 침을 놓아 인체 각부의 질병을 치료하는 침술요법이라 할 수 있다. 이침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여자들의 미용 장식으로 귓불에 구멍을 뚫어 귀고리를 하는 방법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이침요법으로서 안과질환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 또, 민간요법에서도 귓불에 침을 놓아 결막염을 치료하고 귀 뒷부분을 침으로 찔러 인후염을 치료하는 방법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침은 세계보건기구에서 인정한 대체의학 중 하나이며 가장 쉽고 효과적인 침술요법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과 같은 이침요법은 프랑스 의사인 폴 노지에 박사가 개발하였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그의 병원에 찾아온 환자가 있었다. 환자의 귀에 불로 지진 듯한 상처가 있는 것을 본 노지에 박사는 궁금히 여겼고 원인을 캐물었다. 그 환자는 좌골신경통을 앓고 있었는데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원시부족을 여행하던 중 한 마을에서 병을 잘 고친다는 사람이 있다기에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한 일은 귀의 한 부분을 불로 지진 것뿐인데 신기하게도 좌골신경통이 완치되었다는 것이다.
노지에 박사는 그 일을 계기로 귀와 인체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자신의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 결과 귀와 신체 각 부위의 상관관계를 활용한 치료는 현실적으로 놀라운 효과를 거두었고, 그의 노력으로 이침은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침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사례가 기사화 된 적이 있다. 뇌중풍 환자 20여 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뇌중풍 마비 치료 효과가 가장 높은 양릉천혈에 침을 놓고 한 그룹에는 양릉천혈 주위에 침을 놓은 뒤 뇌를 촬영했는데 양릉천혈에 정확히 침을 놓은 그룹은 뇌의 운동피질이 활성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사람에게서 경락과 경혈의 존재가 입증된 것도 처음이었고, 그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한방의 침술요법이 과학적 근거를 갖게 된 것을 보면서, 이침요법 또한 과학적 근거를 정립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인체는 끊임없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말하는 원래의 상태란 인체의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숨 쉬고 걷고 먹고 소화하는 등 인체가 살아 움직이는 모든 일들이 몸이 건강할 땐 당연히 이루어지는 줄 알지만 어느 한 곳에 이상이 생기면 금세 불편함을 느낀다. 이때 인체는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이것을 자가치유능력이라 한다. 이침요법의 놀라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침요법은 인체의 자가치유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탁월하며, 각 장기와 부위에 해당하는 침점을 찾아 붙이면 각 장기와 부위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게 만든다.
필자는 인체의 자가치유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어떠한 병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좀 더 과학적인 근거를 정립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이침요법이 알려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이선호 / 『이침요법』 / 랜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