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딥시크릿 동굴에서 발견된 내성균
제리 라이트 Gerry Wright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북부에서 자랐다. 그곳은 광활한 황야와 희박한 인구로 이름난 지역이다. 그는 사방에 펼쳐진 온타리오 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흙과 흙 속의 보물에 매료되었다. 바로 그런 관심사를 좇아 그는 맥마스터대학교의 미생물학 교수가 되었다.
라이트는 흙이 귀중한 자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20세기의 주요 항생물질 가운데 반코마이신과 스트렙토마이신 streptomycin을 비롯한 일부는 토양 샘플에서 나왔다. 1930년대 초부터 토양학자들은 흙 속의 세균들이 다른 종과 끊임없이 싸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수천 년간 세균은 경쟁자를 죽이려고 정교한 항생물질을 만들어왔다. 라이트는 궁금했다. 우리 항생제 중 상당수의 원천인 토양 세균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소수의 세균 종만 강력한 항생제를 만든다면 당연히 그들만 살아남아야 하는데, 항생물질을 만들 능력이 없던 나머지 세균 종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2006년 온타리오 주의 라이트 교수 실험실에서 내놓은 논문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라이트는 다양한 종류의 세균과 그들의 천연 방어 메커니즘을 연구하려고 온타리오주 곳곳에서 토양 샘플을 채취해왔다. 그의 팀은 실험실 근처 토양 속의 세균 대부분이 일선 항생제 대부분에 대해 내성이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런 세균이 살아남은 까닭은 다른 세균의 항생물질이 그들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성균을 만난 항생물질은 높은 철벽에 부딪힌 듯 그냥 튕겨 나가버렸다. 그런 내성균들은 병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사실상 흙 속에서 자기네 일에만 신경 쓰는 셈이었다. 라이트 연구팀은 항생물질을 생성하지 않는 일부 세균도 여타 항생물질 생성균의 공격에 대한 방어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바꿔 말하면 항생물질 생성균이 정교한 내성 메커니즘을 개발해냈다는 이야기다. 이는 마치 어떤 나라가 강력한 군대를 갖추었지만 이웃 나라를 공격하는 일이나 공격 능력엔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와 같다.
라이트팀 논문은 새로운 발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지만 혹독한 비판에도 부딪혔다. 과학자 중 상당수는 세균이 스스로 내성을 키웠다는 라이트 연구팀의 결론에 이의를 제기했다. 어쩌면 그 세균이 내성을 지닌 이유는 인간이 지나치게 개입했기 때문인지도, 이를테면 인간이 항생물질을 자연환경에 마구 유출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항생물질은 농업에 많이 쓰였고, 농업은 온타리오주의 주요 산업이었으니까. 상하수로를 거쳐 유출된 항생물질이 토양을 오염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라이트는 온타리오주 북부를 자기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지역이 항생물질에 오염되지 않았으며 자기가 연구한 세균이 다른 이유로 내성을 지녔다고 확신했다. 그가 토양 샘플을 채취한 지역에 항생물질이 많이 유입되었으리라고 볼 만한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데 있었다.
한동안 그 문제는 미해결로 남았다. 그러다 2008년이 되었다.
라이트는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생물학회에 참석했다. 그는 그 학회를 똑똑히 기억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남부 캘리포니아의 태양이 떠 있고, 곳곳에 부두와 잔교가 있는 해변으로부터 태평양이 광활히 펼쳐진 해안 도시 샌디에이고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라이트가 그 학회를 똑똑히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학회에서 과학자 헤이즐 바턴 Hazel Barton이 인간 손길이 닿지 않은 오래된 동굴 속의 세균이 지닌 습성과 속성에 관해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헛소동 동굴 배양종 모음 Much Ado About Nothing: Cave
Cultivar Collections」이었다. 이때 제리 라이트는 오하이오주 애크런대학교 교수 바턴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의 발표에 매료된 라이트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다음과 같은 의문을 함께 해결할 완벽한 연구 파트너를 찾았다고 확신했다. 토양 세균은 언제부터 항생물질 내성을 지니게 되었을까?
바턴도 라이트에 동의했다. 항생물질을 접한 적 없는 세균에서 내성이 저절로 생기는지를 라이트와 함께 알아보기로 했다. 그녀는 그 연구를 시작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를 알고 있었다.
1984년 전몰장병 기념일(Memorial Day 5월의 마지막 월요일) 연휴에 다른 사람들이 바비큐 파티를 즐기며 여름 맞이를 하느라 바쁠 때, 콜로라도주의 엔지니어 데이브 얼루어드Dave Alured는 큰 꿈을 좇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동굴을 발견하고 싶어 했다. 얼마 전 얼루어드와 친구 네 명은 뉴멕시코주 과달루페산맥의 한 동굴 후보지를 출입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은 터였다. 그들은 콜로라도주에서 출발해 뉴멕시코주를 향해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과달루페산맥까지 차로 이동한 다음, 가장 가까운 진입로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다들 피곤했지만 들떠 있었다.
첫 조사에서 그 장소는 뭔가 대단해 보였다. 입구에서 찬 바람이 훅훅 불어왔고, 얼루어드는 그곳을 파보기로 마음먹었다. 11월이 되어서야 얼루어드와 동료들은 동굴 후보지를 파는 데 필요한 허가를 국립공원 측으로부터 얻었다. 친구들과 가족이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를 즐기고 있을 때 얼루어드와 동료들은 쌀쌀한 날씨에 땅을 팠다. 주말 연휴가 끝날 무렵 그들은 제법 일을 진척한 터라, 다음 전몰장병 기념일 연휴에 돌아와서 일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정 과정은 그 후로도 착착 잘 진행되었고, 팀이 열세 명으로 불어난 1985년 11월이 되어서 그들은 종착지에 거의 도달했음을 직감했다. 파고 있던 곳에서 바람이 휘이휘이 불어온다는 사실은 깊은 동굴이 코앞에 있음을 의미했다.
원정대는 1986년 봄에 땅파기를 재개했다. 지난 몇 차례의 원정에서 파놓은 땅굴은 길이가 10미터에 이르렀는데, 얼루어드와 두 동료 닐 백스트롬 Neil Backstron과 릭 브리지스 Rick Bridges는 더 멀리 나아가기로 했다. 땅파기는 점점 위태로워졌다. 큰 바위들이 통로를 막았고 붕괴 위험이 높아졌다. 그래도 세 사람은 끈질기게 계속했다. 땅을 파나가면서 그들은 동굴 진주, 종 모양의 거대한 유석, 동굴 샹들리에, 수정처럼 맑은 지하호를 발견했다. 하나같이 기가 막혔다. 그들은 천천히 전진했고, 그들 앞에 커다란 구덩이가 하나 나타났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였다.
원정대는 구덩이 깊이가 50미터쯤 되리라 추정했다. 사실 구덩이는 그들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무척 크고 깊었다. 1986년 5월 26일에 데이브 얼루어드 원정대가 그곳을 발견한 이후, 탐험가들은 총길이 20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동굴 통로를 지도로 만들었는데, 이로써 세계 최대급 동굴계인 레추기아 동굴 Lechugula Care의 전모가 밝혀졌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석회 동굴이며 세균의 보고였다.
학회에서 라이트의 관심을 받은 바턴의 연구는 바로 레추기아 동굴에서 수행한 것이었다. 바턴은 자신의 두 가지 관심사-미생물학과 동굴 탐험-를 접목하여, 삼 년 넘게 라이트와 함께 야심차고도 위험한 프로젝트에 공을 들였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다음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적 없는 깊은 동굴 속에도 항생물질 내성균이 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레추기아 동굴 깊숙이 들어가서 생물막biofline 샘플을 채취해야 했다. 생물막은 세균으로 구성된 다세포 군집으로 보통 물체 표면에 붙어 있는 미끌미끌한 물때를 가리킨다. 연구를 위해 바턴은 레추기아 동굴 속의 딥시크릿 Deep Secret 구역으로 종종 들어갔다.
딥시크릿은 지표면에서 약 400미터 아래에 있었다. 그곳에 가려면 위험천만하면서도 섬뜩하도록 아름다운 지형을 가로질러야 했다. 꼼꼼한 바턴은 동굴 탐험 장비를 착용하고 최소한의 필수품을 넣은 배낭을 메고서 동굴에 들어갔고, 접근이 매우 어려운 레추기아 동굴에서 세균 93종을 채취했다. 그리고 채취한 샘플을 지상으로 가져와서 동료들과 함께 최신 도구와 기술을 이용해 일반 항생물질로 신중히 검사했다. 시중 항생제나 인간의 행위에 노출되지 않은 세균이 병원용 시중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라이트와 바턴이 알아낸 바에 따르면 레추기아 동굴의 세균은 깊은 비밀 deep secret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턴이 채취한 세균은 인간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에서 왔지만, MRSA 감염증 치료에 쓰이는 답토마이신daptomycin을 비롯한 매우 센 항생제 중 일부에 내성이 있었다. 이제 라이트와 바턴은 라이트의 예전 연구 결과를 의심했던 사람들을 반박할 증거를 확보했다.
400만 년 가까이 인간 문명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던 장소의 세균들도 항생물질 내성균이었다.
그들의 연구에서는 더욱더 이상한 사실도 밝혀졌다. 동굴 세균들이 지닌 내성 유전자와 항생물질에 대한 방어 메커니즘은 장티푸스 치료제 클로람페니콜 chloramphernicol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에게서 관찰되는 양상과 비슷했다. 이 소식에 미생물학계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2012년 당시까지만 해도 내성은 주로 무절제하고 탐욕스럽고 무지하고 오만한 인간의 활동이 키운다는 생각이 중론이었다. 학자들은 대체로 세균이 항생물질을 접하면 특정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런 돌연변이가 일어난 세균은 새로운 대(對)항생물질 방어 메커니즘을 만들어낸다. 돌연변이 중 일부는 자연적으로 생기는데, 이는 무작위 발생일 가능성도 있고 다른 항생물질 생성균의 공격에 대한 반응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내성균은 과학자가 발견하고 제약회사가 생산한 항생물질에 지나치게 노출된 결과이다. 인간 활동을 전혀 접한 적 없으며 인간보다 수백만 년 전부터 존재해온 세균이, 어떻게 병원에서 관찰 가능한 내성 패턴을 보일까?
바턴과 라이트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연구 결과를 철저히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굴 속에서 인간 활동을 전혀 접한 적 없는 세균 한 종과, 지표면에서 인간. 동물 활동을 많이 접해본 근연종 세균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연구팀은 페니바실러스 Paenibacillus sp. LC231 이란 특정 동굴 세균을 같은 과의 페니바실러스 라우투스 Paenibacillus lautus ATCC 438981 이란 지표면 세균과 비교했다. 놀랍게도 LC231은 병원에서 아주 많이 쓰이는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보였다. 그 세균은 연구팀이 시험해본 항생제 40가지 중 26가지에 내성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LC231의 내성 메커니즘 중 몇 가지는 다른 세균에서도 나타난다고 익히 알려졌으며 여러 문헌에서 입증된 패턴이었지만, 적어도 세 가지는 보고된 적이 한 번도 없는 새로운 형태였다.
연구팀은 세균의 내성 메커니즘이 매우 오래되었으며 인간 활동이나 현대 의학의 경이로운 성과보다 먼저 생겨났음을 확실히 입증해 보였다. 이는 인간의 항생제 오남용과 관련이 없었다. 동굴 속 세균들은 대(對)항생물질 방어책을 제 나름대로 개발하고 수백만 년간 아주 잘 보전했다.
이 이야기는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인간 활동이 자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해온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쓰일 소지도 있었다. 제약업을 비롯한 관련 업계 종사자 중 일부는 바턴과 라이트의 연구 결과를 전폭 수용하였고, 항생제가 만들어지기 한참 전부터 세균이 나름의 방어 메커니즘을 만들었다면, 항생제를 농업과 식량 생산 등에 계속 사용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병원에서 사람에게 투여하는 양보다 세 배 많은 항생제를 가축에게 쓴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분명히 세균은 인간 행동과 관계없이 수백만 년간 해온 일을 하고 있었다. 업계 종사자 일부는 내성이 실제로 존재하나 농산업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라이트는 그런 반응이 근시안적이라고 생각했다. 온타리오주 토양에서부터 딥시크릿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진행한 그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세균은 항생물질을 스스로 개발한다. 그러면 같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다른 세균은 그 세균의 항생물질 공격을 막으려고 내성을 키운다. 항생물질 생성균과 항생물질 내성균의 균형 잡힌 경쟁이 수백만 년간 계속된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항생제를 남용하다 보니 흙 속에서도 냇물 속에서도 문손잡이와 베갯머리에서도 그리고 물론 병원에서도 오랜 시간 계속된 균형이 깨졌다. 약제 내성균은 이제 확실히 우위를 차지하면서 사실상 경쟁자 없이 번성하고 있었다. 라이트는 인간 활동이 균형 붕괴의 원인이라고 확신했다. 다른 한편, 그의 연구 결과는 한 줄기 희망을 보여주었다. 세균은 새로운 방어 메커니즘뿐 아니라 내성균을 무력화할 만한 새로운 분자도 열심히 만들며, 수많은 미발견 항생물질이 이 세상의 보배들 속에 깊숙이 숨어서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무하마드 H. 자만 / 『내성 전쟁』 / 7분의 언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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