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무로 베트남을 10여 차례 다녀왔다.
처음 갔을 때 자전거 행렬을 보고 자전거의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여러 차례 방문하는 동안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다시 차량으로 교통수단이 바뀐 모습을 보아왔다.
하노이 한 호텔에서 바라본 아침 출근길은 오토바이와 차량의 거대한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오토바이와 차량이 넓은 도로를 가득 메워 달리지만 아무런 사고가 없어 신기할 따름이었다.
한국과 베트남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한국은 5천 년 역사상 1,000여 회의 외침을 받았고, 중국에 조공을 바쳤으며, 36년간 일본 식민지 생활을 거쳐 6·25전쟁을 겪었다. 베트남은 4천 년 역사 동안 300여 년간 프랑스 식민지 생활을 하였고 월남과 월맹이 치열한 전쟁을 했다. 두 나라는 같은 유교권역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조상을 모시는 제사나 결혼 풍습이 비슷하다. 다름이 있다면 그들은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새마을교육 장소인 타이응우엔 딩화현인민위원회 강당으로 갔다. 공무원, 마을 주민, 박사과정 학생 등 150여 명이 새마을 조끼를 입고 기다리다가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따뜻이 맞이해 강의장으로 안내해주었다.
강당 중앙에는 호치민 흉상이 있고 흉상은 꽃으로 장식해 두었다. 베트남은 호치민을 국부로 모시며 가장 존경하는 분이란다. 오늘 일정이 빡빡해서 8시 50분경 서둘러 입교식을 마치고 9시 10분부터 90분간 '새마을운동‘의 기본이해에 대해 강의를 진행했다. 새마을운동을 잘 모르는 주민들에게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에서 태동 배경,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정신, 새마을운동의 추진원리, 새마을운동의 특징, 새마을운동의 성과 등을 소개하였다. 50분 정도 강의를 했을 즈음 여독이 풀리지 않았는데다 오늘 새벽에 출발해서 두 시간 가까이 먼 길을 차를 타고 왔기 때문에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서 강의 중간에 10분간 휴식을 제의하였다. 강사의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주민들은 연속강의를 원해서 어쩔 수 없이 무려 160분 간 쉬지 않고 강의했다. 강의가 끝난 후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딩화현에서 강의를 마치고 서둘러 닝투언성 닝썬으로 갔다. 닝썬현 인민위원회 대강당은 좌석수가 180석인데 230여 명이 참석했다. 좌석이 없는 일부 주민은 강의장 뒤편에 서서 강의를 듣는 열의를 보고 새마을운동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토론회에서 제기한 질문은 현재 베트남 농촌마을의 문제점들이었다. 첫째 학생들이 마약, 술, 담배를 피우는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지도했는지, 둘째 새마을운동을 추진할 때 공무원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셋째 마을에서 사업을 추진할 때 일부 주민들이 공동 사업자금 분담금을 부담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처리했는지, 넷째 생산된 농산물의 판매 방법은, 다섯째 이곳 여성에게 한국의 선진 기술교육을 전수해줄 것을 요구하고, 여섯째 한국은 1헥타르에 벼 수확량과 소득은 얼마가 되는지 일곱째 베트남은 3모작을 해도 쌀이 부족한 실정인데 한국은 1모작만 해도 자급자족하고 남는 쌀을 해외에 원조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잘 사는지 들이었다.
답변은 우리 일행의 전공영역별로 나누어 했다. 한국에서 처음 새마을운동을 추진할 당시 상황과 추진하면서 부딪친 어려움을 해결한 사례를 하나하나 베트남 현실에 맞게 설명하니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농촌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민들의 의식개혁이 먼저 이루어지고 새마정신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새마을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한국에서 새마을교육을 받은 외국인의 연수 소감을 소개했다. 탄자니아 펫마므아사 의원이 말한 "새마을교육을 받으며 아프리카를 살릴 수 있는 3가지 중요한 무기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인데, 이 정신을 아프리카 54개국 10억 인에게 잘 전수하면 아프리카는 분명히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라는 실증적 사실을 전해주니 새마을운동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새마을정신을 실천하려는 의자를 읽을 수 있었다.
교육을 마치고 한 농촌 가정을 찾아갔다. 안내를 받아 간 집은 마을 당서기집이었다. 이 층 마루에서 차담을 나누고 부엌을 보았다. 부엌에는 음식물쓰레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음식물 조리 기구는 때에 절었고 파리들이 들끓어 비위생적이었다.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생활개선과 식생활개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새마을운동 초기에 가족의 건강을 지키려고 주부들이 실천한 사업을 소개했다.
일행은 닝썬현을 출발해서 타이응우옌성 방면 반마을로 이동했다.
이 마을은 2006년에 경상북도가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육성지로 선정한 곳이다. 한국형시범마을 육성을 목표로 성 정부, 군, 면 공무원과 마을주민을 한국으로 여러 차례 초청해서 새마을교육을 시켰다. 여건이 허락 할 때는 농업전문가와 새마을전문가가 현지로 찾아가 의식교육, 환경개선, 과학영농법을 가르쳤다. 오랜 기간 꾸준히 추진한 결과 주민들의 의식과 마을환경이 개선되었고 소득이 증대 되어 지금은 베트남 새마을운동 성공사례 마을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룽반 마을은 한국 청도같이 마을 대로변에 200여개의 새마을기를 게양하고 지금은 '경북마을'로 부르고 있었다. 마을이 발전한 모습을 보며 작은 보람을 느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타이응우옌성 외교실장(33세)이 "오늘 강의한 새마을정신을 저의 정신적 지주로 삼겠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 공손히 인사를 하며 작은 꽃다발을 주기에 받았다. 외교실장이 부족한 강의를 듣고 전한 말의 향기와 꽃향기는 세월이 흘러도 은은히 풍긴다.
한국이 뿌린 새마을운동의 씨앗이 베트남 희망운동으로 확산되기를 염원해 본다. (최진근 / 『한국수필』 2022년 6월 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