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암환자와 화
경기도 수원의 한 음식점에서 파를 썰고 있는 장옥규(53) 씨. 음식점을 운영하는 그녀가 하루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의 장옥규 씨는 누구보다 건강하지만, 사실 그녀는 7년 전 갑상선암으로 인해 수술대에 올랐던 아찔한 과거가 있다.
"그때는 진짜 일주일 동안 음식점 밖을 나가본 적이 없어요. 일에 시달리고 또 사람한테 시달리고, 이러기를 한 20년 반복하다보니까 병이 왔던 거 같아요.
옆에서 그녀를 지켜본 남편도 "아내가 진짜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1인 다역을 하다보니 암이 몸에 온 것 같다."며 그녀의 스트레스와 고초를 대변했다.
20여 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하며 얻은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갑상선암. 하지만 수술을 받고 나서도 그녀를 둘러싼 주변 상황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빠졌다.
"나는 갑상선암 수술을 한 지 얼마 안 되서 몸은 피곤한데, 남편은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이런 상황이 맞물려 돌아가니까 칼질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내가 왜 이러지' 이러면서 칼을 확 집어 던졌어요. 내 정신이 아닌 거 같았어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 그녀가 찾은 것은 암환자들을 위한 이완명상 프로그램이었다. 이완명상 프로그램은 암환자와 화의 관계에 주목한 아주대학교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전미선 교수가 10년 전부터 진행해온 프로그램으로,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와 병행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전미선 교수는 "사람들은 항상 긴장을 하고 살기 때문에 긴장을 이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연습이다."라고 말했다.
이완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장옥규 씨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에는 화를 참지 못했다. 화를 참지 못해 열이 40도까지 올라 병원 응급실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았다. 그런데 이완명상 프로그램을 받고나서부터는 화를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되어, 더 이상은 병원을 찾지 않는다고 한다.
암환자가 화를 다스리는 것이 치료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까? 암 발병 후 7년째, 이완명상 프로그램으로 화를 다스리는 법을 배운 장옥규 씨가 정기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검진 결과, 장옥규 씨의 몸은 깨끗했다. 재발이나 전이도 없다. 장옥규 씨의 주치의인 전미선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완명상을 해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막연한 화를 잘 다스리는 계기가 되고, 그 후에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암도 재발할 가능성이 줄어든 거죠."
암환자가 화를 다스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화는 우리 몸을 해치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 나면 우리 몸은 공격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전투태세를 갖추기 위해 본능적으로 근육을 먼저 수축시킨다. 이와 함께 땀이 나기 시작하며, 동공이 확대되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몸의 변화와 함께 우리 몸속에서도 교감신경계가 아드레날린과 같은 신경 전달물질과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고, 혈액이 근육 쪽으로 몰리면서 혈압이 증가하고 혈당도 올라간다. 그로 인해 혈류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심장박동도 빨라지고, 몸의 기능이 전투태세에 집중되면서 소화기관의 기능은 떨어진다. 화를 낼 때는 이런 작용들로 인해 다른 곳보다 심장과 혈관이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고, 특히 암환자들은 약화된 면역체계로 더 큰 악영향을 받는다.
화가 불러오는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화를 자주 내면 뇌의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이 만성적으로 증가해, 사소한 자극에도 교감신경계가 강한 흥분 반응을 일으키는 분노중독이 일어난다. 분노에 중독되면 뇌에서 세로토닌 물질의 활성이 저하돼 우울증에 빠지기 쉽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 연출된다. 급격한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황에 다다르게 되면, 아무리 화타나 편작 같은 전설의 명의가 치료하고 아무리 좋은 초현대식 기술의 치료가 동원되어도 암을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암환자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화를 지혜롭게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전문가들은 화를 긍정적으로 다스리는 방법으로 운동, 음악이나 영화감상 같은 예술 활동, 그리고 종교 활동 등을 꼽는다. 이런 활동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화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동을 하고 예술 활동과 종교 활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분노 조절이 힘들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인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식이요법과 운동, 적절한 치료와 함께 정신적인 힘이 중요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자. 살면서 화를 내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화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암 치료에 악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내 몸속의 화를 현명하게 다스리는 지혜를 발휘하자. (허완석 엮음 / 『암중모색 암을 이긴 사람들의 비밀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팀』 / 비타북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