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친구들 얘기다. 60세 전후에 동기들이 퇴직을 했는데 유독 세 친구가 색다른 길을 걸었다. A는 공방을 하겠다고 했고, B는 집을 짓겠다고 했고, C는 산에 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7년 전 일인데 당시에는 다른 친구들에게 세 사람의 행보가 좀 어리둥절했고 엉뚱하게 보였나 보다. 그냥 작은 직장으로 옮겨 고문이나 이런 걸로 몇 년 보내다가 은퇴생활을 하면 될 텐데 생전에 해보지도 않은 일을 왜 하느냐는 눈치였다.
A는 우선 목수일을 배워 장롱 같은 가구를 만들었다. 나무를 구하러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곳저곳 구경도 할 수 있어 좋았고, 목수일이 육체적인 일이다 보니 몸도 오히려 더 건강해졌다. 그는 점점 허연 수염에 구릿빛 피부가 되어갔다. 전공이 공학이어서 일도 꼼꼼하게 잘해냈다. 자신의 공방을 카페처럼 차려 동네 사모님들이 차도 마시고 정보도 교환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이전에 공부라면 한가락 했으니 사모님들에게 자녀 교육이나 공부에 관한 컨설팅까지 해 주었다. 이러다 보니 카페가 늘 북적거려 심심하지도 않았다. 장롱을 만들어놓았는데 가격표가 300만 원이나 되기에 이 가격에 사가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니 사간다고 했다.
B는 퇴직 후 집을 지으러 다녔다. 이것도 흙집이 있고 나무집도 있고 조립식 주택도 있다. 흙부대로 짓기도 하고 황토흙으로도 짓는다. 집 짓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다. 캐나다는 나무집이 많아서 그런지 목수일을 배워 가면 먹고 산다고들 얘기하는데, 나이 들어 남의 나라 집고치는 것은 경쟁력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집 짓는 사람을 도와주면서 일을 배우고 있다. 집짓기 자원봉사를 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사람도 알아가는 것은 덤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집 짓는 것도 알게 되는 것 같다.
C는 산에 나무를 심고 과수원을 했다. 산을 하나 사놓은 게 있어서 과실수를 심어서 수확하고 목재용 나무도 심는다. 매일 산에 가서 나무를 심고 과실수를 돌보다 보니 몸은 자연스레 건강해졌다. 일본은 목재를 활용하는 산촌생활이 주목을 받고 있다는데 살다 보면 우리나라에도 그런 유행이 올 때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산에 심는 목재는 재미있는 측면이 있다. 키우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키우고 나면 돈이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잘라서 팔아 쓰면 된다. 나무는 너무 빽빽하면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므로 베어서 팔아야 하고 산을 관리해주어야 한다. 나무를 파는 것은 채권을 사서 이표coupon를 떼어서 이자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며 예금통장에서 이자를 받는 것이기도 하다. 현금 등가물이 산에 있는 셈이다. 아직 큰 돈벌이는 되지 않지만 먹고사는 데 자신감이 생긴 것은 수확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런 일을 왜 하는가 의아해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들 이 세 사람을 부러워한다. 이 길을 일찍 걸었으면 노후의 삶이 훨씬 달라졌을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글로 써놓으니 쉽게 보일 따름이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투자를 한 것이며 숱한 난관들을 이겨낸 결과다. 그래서 강한 의지가 중요하다. 이러한 기술의 길은 들어갈 때는 좁지만 일단 들어가고 나면 넓게 펼쳐진다.
나이 53세에 28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옹기장이로 성공한 사람이 있다. 현재 용기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고 아내는 갤러리 사장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운 결정들이 있었다. 우선 직장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지를 선택하는 갈림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80세까지 할 수 있는 일, 용돈이라도 벌 수 있는 일 등의 기준으로 정하다 보니 도예로 결정났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다시 대학교 도예과에 입학했다. 가족의 생계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퇴직금을 보태 다가구 주택을 사서 거기서 나오는 월세로 생계를 보조했다. 옹기 장인을 우연히 만나 그를 따라 산골에 들어가 2년 동안 배우기도 했다. 마치 무협지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아내는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여주고 어려울 때 격려해줬다. 1단계 성공한 지금, 그는 다시 꿈을 꾼다.
전통 옹기에 관한 책을 쓰는 것, 전통옹기를 가르치는 전문학교를 세우는 것, 마지막으로 호주나 영국, 프랑스 등에 옹기 갤러리를 만드는 것이다. 목표가 있는 삶이 되었다!
'시작이 반이다'는 격언이 있다. 하지만 실행력도 중요하다.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있다'는 말처럼 작은 부분들을 잘 돌파해가야 한다. 옹기장이가 된 위의 과정을 보면 난관 하나하나마다 의사결정하고 또 이를 실행해가는 게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친구나 선후배 들을 만나보면 노후 걱정을 많이 하는데 정작 행동은 따르지 않는다. 그래도 이것저것 묻다 보면 나름대로 재주나 기술, 취미도 가지고 있다. 50대 중반으로 평생 경제분석 업무를 해온 후배는 일본에 관한 연구도 오래 해왔는데 소바를 만들고 싶어 하고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이것저것 많이 하지 말고 소바와 튀김만 하는 가게를 하면 어떨까 하고 말했다. 소바만 하면 겨울장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평생 머리만 썼으니 이제 노후에는 몸을 쓰는 일을 해보는 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아서 당장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라고 했다. 소질이 있으면 지금부터 공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만들어 주다가 나중에 일본 가서 1년 정도 공부하고 돌아오면 좋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답은 하는데 '당장은 좀......'이라는 표정이었다.
반면에 말하는 게 조심스러울 정도로 행동이 빠른 사람도 있다. 지난해에 명예퇴직을 하고 나온 친구가 있다. 모임에 나와서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방송통신대학교 이야기를 해주었다. 등록금도 싸고 도서관도 이용할 수 있고 사람들과 모임도 가지며 모르는 게 있으면 교수에게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으니 적극 추천한다고 했다. 석 달 정도 있다가 만났는데 집에 대학교 3학년이 세 명이라고 했다. 첫째는 재대해서 3학년에 복학했고, 둘째는 3학년에 올라가고, 자기는 방송통신대학교 관광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는 것이다. 요즘 교재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실행력이 정말 좋은 친구이다.
노후준비는 많이 공부하는 것뿐 아니라 잘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하는 것이 힘'이다. 기술이나 전문성을 가지고 자기 일을 하든지 전문성을 가지고 재취업을 하든지 간에 일단 실행에 옮기는 게 필요하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한다. 『열자』에 나오는 얘기로 바른 길을 굳건히 밀고 가는 의지와 멀리 내다보는 사고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이야기인즉, 우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집 앞에 큰 산이 두 개 있어 길을 돌아가야 하니 항상 불편했다. 하루는 가족들을 모아 산을 편평하게 만들어서 남쪽까지 길을 내겠다고 했다. 다른 가족들은 찬성하는데 유독 아내만은 "어떻게 산을 깎을 것이며 이 흙들은 어디에 버릴 것인가' 하고 반대했다. 나이가 70세나 된 우공은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산을 허물기 시작했다. 옆 동네 사람이 "나이도 많은 사람이 힘도 없고 곧 죽을 텐데 뭔 어리석은 일인가"라고 하자 우공의 답이 걸작이다. “자네의 지혜는 과부의 어린아이 지혜만도 못하네. 내가 죽더라도 자식이 있고 자식이 죽으면 손자가 생기고 그 손자에 또 자식이 생기지 않겠는가. 사람은 자자손손 대를 이어 불어나지만 산은 불어나는 일이 없으니 언젠가는 평평해지지 않겠는가." 옆에서 이 말을 듣던 산신령이 놀라서 옥황상제에게 찾아가 말려달라고 하자, 옥황상제는 장사를 시켜 두 산을 들어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다고 한다.
세 친구의 이야기는 다들 늦다고 할 때 인생을 길게 보고 기술을 꾸준히 익힌 사례다. 이 사례와 함께 다음의 세 문구도 같이 머리에 넣어두자. '시작이 반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우공이산' 한 번씩 어려움에 닥칠 때마다 펴볼 수 있는 세 가지 비책이다. (김경록 / 『1인 1기』 / 더난출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