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추억
우리 가족은 교회에서 주관하는 스키캠프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눈은 우리나라에 내리는 눈과는 달라서 눈사람도 만들 수 없고, 뭉쳐지지도 않기 때문에 눈싸움도 하지 못하는 건조한, 이상한 눈이다. 새털 눈이라고 해야 할까?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새하얀 설원을 바라보면서 이 나라가 바로 성경 속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인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연휴라 고속도로가 막힐 것을 각오했던 나는 너무나 한가한 고속도로와 스키장이 너무나 생소하기만 했다. horse shoe 스키장에서 스키 장비를 렌트해서 스키장을 미끄러져 내 달렸다. 내 아들은 스노보드를 타고, 나는 스키를 탔다.
아내는 우리들의 모습을 기록에 남기기도 하고, 따뜻한 카페테리아에서 다른 일행들과 교제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조그마한 애들이 벌써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고 있었다. 3살 정도의 자녀에게 엄마나 아빠가 스키 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와 아들은 토론토의 설원을 신나게 달렸다.
하루를 즐기는데 소요된 경비가 무척 저렴하기 때문에 전 세계 각지에서, 특히 많은 한국, 타이완, 홍콩 사람들이 스키 관광을 와서 즐기고 있었다. 어떤 홍콩 사람은 많은 음식을 만들어와서 먹으면서 알뜰한 스키 관광을 즐기는 모습도 보았다.
하도 많이 넘어져서 온몸이 멍들고 아프고 피곤했지만 맑은 공기 속에서 신나게 하루를 즐겼기 때문인지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토요일인 오늘 토론토에는 모처럼 햇빛이 빛났다. 우리 부부는 타이완에서 이민 온 아내 친구의 초대에 응했다. 우리를 초대한 그녀는 아내와 함께 영어를 배우는 ESL 과정의 동창생인 30대의 노처녀이다.
그녀는 타이완에서 회계 사무를 보다가 잠시 어학 연수차 캐나다에 와 있는데 아내와 매우 친한 사이라고 소개했다. 3층의 비교적 좋은 집에 사는 타이완의 사업가 집안의 4자매가 아내의 친구인 고모와 함께 사는 집에 방문하니 온 식구가 현관에 줄을 서서 우리 부부를 극진히 모셨다. 따뜻한 수건을 준비해서 우리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공손히 인사를 하면서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다정한 말과 함께 따뜻한 물수건을 주었다. 외투를 받아서 조심스럽게 걸어주면서 밝은 웃음으로 각자를 소개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아내의 친구이자 우리 부부를 초대한 사람은 4명의 조카와 함께 사는 고모였다. 두 명의 조카는 칼리지에 다니고 있고 두 명의 나이 어린 조카들은 고등학생이다. 우리 부부를 위해서 또 다른 4명의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다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 모여든 고모의 친구들이었다.
지하에는 가득히 음식이 장만되어 있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기 쉬운 것이 있다. 중국 음식을 생각하면 대부분이 기름진 음식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기를 일절 먹지 않는 중국인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를 대접한 이 타이완 사람들도 고기가 아예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채소만을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안에 있는 모든 타이완 사람들이 다 날씬하고 예뻤다.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사용하는 것 같은 신선로 같은 전기용품으로 각종 맛있고 싱싱한 채소와 버섯 종류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중국 고유의 향료와 다양한 소스와 곁들여서 먹는 맛이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콩으로 만든 쇠고기 대용 음식은 쇠고기의 맛이 났다. 그러므로 고기를 먹지 않아도 기분은 낼 수 있어서 좋았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다정한 대화를 영어로 나눴다. 서로 언어가 달라서 영어를 사용해야 했지만 비교적 소통이 잘 되었다.
4명의 조카는 이곳에 온 지 5년이 되었기 때문에 영어는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고모가 우리의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할 때에는 조카들이 나서서 중국어로 통역해 주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말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같은 간단한 인사말을 가르쳐 주고 중국어도 배웠다.
나에게 공자를 아느냐고 질문하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효경의 한 구절을 한자로 써서 보여 주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 '내 몸은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것으로 어찌 감히 함부로 할 수 없고 다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라고 써서 주었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이런 글을 받을 수 있었다.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 "출세하고 바른길을 가서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겨서 자기의 부모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이다."
점심시간이 무려 5시간을 넘겼다. 나는 잠시 일어나서 피아노 앞에 앉아서 내가 좋아하는 "향수", "에델바이스" 같은 노래를 쳐서 분위기를 돋구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할 때에는 모두 다 합창을 하기도 했다.
매우 즐겁게 지낸 뒤에 그들은 친절하게도 머나먼 우리 집까지 픽업해 주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접어서 만들어 준 종이학들을 우리에게 정표로서 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 차에 그들이 만들어 준 종이학 세 마리를 걸어 두고 그들의 친절한 마음에 감사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우리 부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때 매우 긍정적으로 우리의 말을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가지고 간 영어와 한글로 된 매일 성경책을 10여명이 돌려 가면서 읽어보는 그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엿볼 수 있었다.
아내 친구의 초대로 뜻깊은 하루를 즐겁게 보낸 것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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