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즈니스 세계에서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예측 불허의 인물은 바로 하이패션 디자이너 노마 카말리 Norma Kamal다. 그의 부티크 작품은 한 벌에 수백만 원(수천만 원까지는 아니더라도)에 팔린다. 나는 2008년 카말 리가 월마트에 의류 상품을 입점하기로 했으며, 가격대는 20 달러 이하로 책정했다는 발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런 일이 성사되기까지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스토리를 제대로 전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카말리를 알게 된 것은 1970년대 중반 그녀가 맨해튼 북부에 작은 상점을 연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영화 <디프>를 제작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영화의 스타인 아름다운 재클린 비셋과 함께 카말리를 찾아가 잠수 신에 필요한 수영복을 포함해서 의상에 관한 도움을 받고자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카말리의 수영복은 호피 무늬에 일부러 여러 곳을 잘라내고 모조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금빛 찬란한 디자인이었다. 비셋이 맡은 역은 스쿠버 다이버였지 해변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아니었다.
그녀는 확고한 섹스 심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 영화에서 만큼은 진지한 여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누가 봐도 그 비키니는 너무 야했다.
카말리는 스토리는 생각하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아, 그 옷 위에 티셔츠만 한 장 걸치면 되죠. 뭐.” 그러나 티셔츠 아래의 ‘그 옷'은 뚜렷이 눈에 띄었고, 그렇게 해서 역사에 남을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가 연출되었다. 재클린 비셋의 젖은 티셔츠는 너무나 유명해져서 ’젖은 티셔츠 경연대회'까지 만들어졌고, 우리 영화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끄는 계기가 되었다. 카말리는 패션계의 거물로 성장했고, 코티 coty 와 CFDA(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 등의 인정을 받아 화장품, 침낭으로 만든 코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브랜드를 확장했다.
그러나 월마트와의 협업은 그녀가 했던 어떤 일보다도 더 뜻밖의 결정이었다. 그녀가 밝힌 배경 이야기가 없었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내게 “제가 예쁘다거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패션을 통해 타고난 별난 스타일을 활짝 꽃피울 수 있으며, '예쁜 여자'라고 할 때 떠오르는 전통적인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자신이 그와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기술은 그녀의 브랜드를 이루는 기초가 되었다. “나는 패션을 통해 여성들이 자존감을 갖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랬기 때문에 월마트가 저소득층 여성을 위한 상품을 디자인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녀는 남보다 혜택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기존의 최고급 고객과 유통업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이 가격대의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그녀의 이런 변신을 미디어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카말리는 자신의 스토리를 곰곰이 되돌아보며 어렸을 적 깨달았던 교훈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르지만 동등하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이 사업의 신조가 되었다.
그녀가 월마트에서 팔기 위해 만든 옷은 기존의 최고급 디자인과는 완전히 달랐다. 급격하게 낮아진 가격대에 맞추기 위해서는 좀 더 유연한 스타일을 추구하고 더 저렴한 소재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최고급 고객이 보기에도 훌륭해서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옷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다르지만 동등하다는 이 개념을 어떻게 월마트 공급업체 전체가 숙지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들이 하는 일은 그저 옷을 재단하고, 봉제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해 온 일은 옷을 값싸고 빨리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조금만 더 세심하게 공을 들이고, 절차를 무시하지만 않으면 저렴한 가격에 높은 품질을 갖춘 상품을 만들 수 있다고 설득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기득권자들이었고, 기득권자는 좀처럼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을 움직이려면 그들의 마음에 호소해야만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녀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 때문에 월마트용 의류를 디자인하는 이 기회를 받아들였던 걸까?
그녀는 맨해튼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신만의 창의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던 시절, 저소득층 어머니들이 해 준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그 어머니들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부끄러워 학교회의에 참석하기는커녕 아이들의 선생님을 만나는 것조차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 말만 생각하면 마치 자신의 스토리처럼 생각돼,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다르지만 동등한 디자인이 분명히 여성들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안겨 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녀는 새로운 옷을 만드는 공급업자들에게 이런 필요와 기회를 이야기해 주면서 그들이 이 여성들에게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들은 이 스토리를 듣고 그녀의 진정한 목적을 이해했다. 그리고 마치 자부심 넘치는 챔피언의 태도를 발휘해 변화를 꺼리는 자신들의 본성을 극복해 냈다.
카말리는 협력업체와 영업직원, 언론을 비롯해 이 새로운 브랜드를 마치 영웅처럼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스토리를 전해 주었다. 그녀가 사는 지역의 월마트에서 이 상품이 처음 선보이던 날, 나이와 체형, 신체 사이즈가 모두 제각각인 직원들이 스스로 인간 마네킹 노릇을 하며 이 상품이 진열된 구역에 서 있었다. 카말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그 상품을 판매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모두가 저소득층 어머니들의 영웅이었으니까요.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오더군요. 이것이야말로 먹히는 스토리의 힘이다!”
노마 카말리의 스토리는 우리가 직접 경험한 생생한 이야기가 어떻게 강력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비즈니스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스토리라고 해서 모두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전혀 먹히지 않는 것도 있다.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구사하는 사람은 이런 부정적인 스토리를 다루고 극복하는 방법을 안다. 한 발 더 나아가 큰 낭패를 볼 수 있는 이야기조차 유리하게 활용해 오히려 설득력을 끌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제부터 그 방법을 살펴보자. (피터 거버 / 『스토리의 기술』 / 라이팅하우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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