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이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바로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북경대학교 교수였던 루쉰(魯迅)은 젊은 시절 의사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가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오래지 않아 냉혹한 현실에 산산이 부서졌다. 루쉰이 의학을 공부하던 시기는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해 나갈 때였다. 힘없는 국가의 국민이었던 루쉰은 일본인들에게 심한 멸시를 받았다.
일본인들의 눈에 중국인은 '저능아‘였다. 심지어 루쉰이 해부학 시험에서 100점 만점에 59.3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후지노 해부학 교수가 그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쉰은 수업시간에 한 편의 슬라이드 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화면 속에는 건장한 체격의 중국인들이 러시아 스파이 혐의를 받고 죽어 가는 동포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감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병들어 죽는 것을 두고 보는 것보다 더욱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이때 그는 건강한 신체보다 건강한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1. 의대생 루쉰, 칼 대신 글로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다
루쉰은 더 이상 의학이 중요하게 안 느껴졌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건강해도 무지하거나 정신이 깨어 있지 않으면 오직 바보 같은 구경꾼밖에 될 수 없었다. 이제 루쉰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정신을 깨워 희망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바꾸고 민중을 깨울 수 있을까? 당시 중국 유학생들은 대부분 의학, 법률, 기계 등을 공부했다. 루쉰은 이런 학문들은 단지 한 영역에서만 성과를 낼 뿐이지 사람들의 정신을 바꿀 순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정신을 바꾸려면 먼저 문예를 널리 알려야 한다. 문예는 사상을 향상시키고, 깊이 잠들고 마비된 정신 상태를 깨우고, 나라를 사랑하는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생각 끝에 루쉰은 얼마 뒤 센다이 의학 전문학교를 떠나 도쿄로 자리를 옮겨 마음이 맞는 몇 명의 친구에게 연락해 문예잡지를 기획하고 문학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루쉰의 선택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의 운명을 구하고 싶은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학을 포기하고 작가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수술용 칼이 아닌 글로써 민족의 영혼을 치료하기로 한 것이다. 루쉰은 내면의 가장 큰 소망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을 택해 중국을 구했다. 루쉰 인생의 전환점도 이때였다.
그는 의학을 버리고 문학에 뛰어들었기에 훗날 중국의 ‘민족혼'이 될 수 있었다.
루쉰의 삶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언제나 내면의 본성을 따르라고.
환상에 젖은 아Q(루쉰 소설의 주인공)가 아니라 루쉰 자신처럼 참담한 인생을 직면하는 용사가 되라고.
일과 사람을 대하는 됨됨이는 내면에서 나온다. 이 됨됨이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진실을 거스르지 않고 본성을 따르면 즐겁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 기억하라. 하늘도 넓히고 바다도 메우고 산도 옮길 수 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다시 붙잡을 수 없다. 잠깐 사이에 인생은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므로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관심을 갖고 본성에 따라 인생의 의의를 추구해야 한다.
2. 지금 당신의 내면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탄둔(譚盾)은 <와호장룡>이라는 영화의 음악감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그는 미국에 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돈을 벌었다. 탄둔은 한 흑인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운 좋게 노른자 자리인 은행 입구를 차지해 연주할 수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탄둔과 흑인 바이올리니스트는 날마다 꽤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탄둔은 한동안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 흑인 바이올리니스트와 헤어지고 그간 모은 돈으로 음대에 진학했다. 음대에 들어간 탄둔은 음악의 대가들과 연주 기술이 뛰어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혼신을 다해서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적 소양과 연주 기술을 키웠다.
10년 뒤에 탄둔은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예전에 자신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돈을 벌던 은행 앞을 우연히 지나가다가 여전히 그곳에서 연주하고 있는 옛 흑인 친구를 만났다.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연주하는 흑인 바이올리니스트를 보고 탄둔이 다가가서 인사하자 그가 반갑게 물었다.
"헤이, 탄! 오랜만이야. 요새는 어디에서 연주해?"
탄둔이 유명한 콘서트홀의 이름을 대자 흑인 바이올리니스트가 그새를 못 참고 물었다.
“거기 입구에도 사람이 많아?"
탄둔이 작게 말했다.
“응. 장사가 그럭저럭 잘되는 편이야."
탄둔은 흑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자신이 이제 거리가 아니라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두 사람에게 큰 차이를 만들었다. 흑인 바이올리니스트는 탄둔과 똑같이 바이올린을 연주했지만 돈을 버는 것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탄둔은 음대에 진학해 바이올린을 깊이 파고들어 자신을 승화시키고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선택했다.
탄둔은 거리에서 재능을 팔아 얻은 일시적인 수입에 만족하지 않았다.
음악적 이상을 실현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바이올린 연주 실력을 뽐냈다.
그의 내면이 추구한 것은 세계무대이지 거리의 구석이 아니었다.
옛말에 "망설이는 호랑이는 침을 쏘는 벌보다 못하고, 움직이지 않는 준마는 천천히 걷는 노마보다 못하고, 요순의 지혜가 있어도 말하지 않으면 말 못하는 자의 손짓보다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안에 담겨 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일단 결정했으면 우물쭈물 망설이면 안 되고, 마음에 방향을 세웠으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
송나라의 문사인 소식은 말했다.
“예로부터 큰일을 한 사람은 세인을 뛰어넘는 재간과 강인한 의지가 있었다."
의지가 강한지 약한지는 선택의 순간 대중을 맹목적으로 따르는가, 내면의 본성을 따르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바깥 세계에 동요하지 말고 어려움에 움츠려들지 말라. 꿋꿋하고 결연하게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가자.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의지가 없으면 부끄러운 것이다. (장샤오헝·한쿤 / 『인생의 품격』 / 글담출판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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