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표적치료제인 혈관생성억제제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58년, 미국의 유명 일간지 <뉴욕타임즈>의 특종기사를 통해서다. 당시 전 세계 암환자들을 흥분시키는 뉴스가 실렸는데, 그 뉴스의 주인공은 바로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주다 포크만 박사였다.
포크만 박사는 약물 부작용이 거의 없으면서 암의 주된 영양 공급원인 혈관을 차단시켜서 암세포만 굶겨 죽이는 치료법을 개발하여, 일약 암환자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새로운 표적치료제인 혈관생성억제제의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보스턴 병원, 이곳 12층에는 40년 동안 암의 혈관생성을 연구해온 포크만 박사의 연구실이 자리 잡고 있다. 포크만 박사는 암세포의 혈관생성물질과 억제 물질을 세계 최초로 발견한 주인공이다.
현재 혈관생성억제제인 표적치료제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은퇴할 시기를 훌쩍 넘긴 나이지만 연구에 대한 열정은 젊은 학자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암세포만 굶겨 죽인다는 포크만 박사의 이론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 시작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미 해군 병원 근무시절, 포크만 박사는 쥐의 종양을 연구 중이었다. 떼어낸 갑상선 조직에서 종양은 전혀 자라지 않았다. 그런데 쥐의 몸속에 들어가면 다시 살아나 성장하기 시작했다. 차이는 오직 한 가지. 바로 혈관이었다. 그 후, 포크만 박사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외과로 자리를 옮긴다. 5년이 채 되지 않아 어린이 병원에서 최연소 외과과장이 되었다.
그는 수술로 종양을 제거할 때마다 수많은 혈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종양에서 온기가 느껴지고 혈액이 흐른다는 점에서 '암과 혈관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의문을 품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당시 의학계의 정설은 종양의 깊은 비밀은 암세포 자체에 있다는 이론이었기 때문에 오직 포크만 박사만이 암세포의 혈관에 관심을 가졌다. 1960년대 말, 그는 본격적으로 암세포의 혈관생성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1971년, 마침내 포크만 박사는 암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발표한다.
암세포가 성장을 위해 새로운 혈관을 형성한다는 것이었다. 종양의 혈관생성 이론은 곧바로 동료 의사 및 연구자들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거센 의학계의 저항으로 포크만 박사는 한동안 연구논문조차 발표하기 어려웠다.
1970년대 당시에도 많은 연구자들은 혈관이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운반하는 용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새로운 혈관의 형성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이 과학적 정설이었다. 새로운 혈관은 태아의 생성과정, 상처치유, 생리 중에만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포크만 박사는 혈관생성 이론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실험을 고안해 냈다. 눈의 각막은 눈 위에 씌워진 아주 투명한 막이다. 여기에는 혈관이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포크만 박사는 토끼의 각막에 작은 종양을 끼워 넣었다. 며칠 후 놀랍게도 토끼의 각막에서 새로운 혈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혈관은 자석에 이끌리듯 종양으로 직행했고 종양은 빠른 속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암세포의 혈관생성'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포크만 박사가 주창한 암세포의 혈관생성 이론이 20년 후에 비로소 임상에서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1991년 세계적인 의학전문지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는 암세포 주변의 혈관 수가 암의 진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유방암 환자의 암 조직을 고배율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혈관생성이 33개 이하인 경우 환자들 대부분이 생존한 반면 혈관생성이 100개 이상인 환자들은 대부분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종양의 크기와 혈관생성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2cm가 넘는 큰 종양과 1cm 정도의 작은 종양을 떼어낸 후, 혈관생성 숫자를 비교해봤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큰 종양을 떼어낸 자리가 더 붉어 보인다. 혈관생성이 더 많이 됐다는 뜻이다. 종양 크기와 혈관생성이 비례함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오래도록 풀리지 않았던 암 성장의 비밀이 밝혀진 셈이다. 하지만 포크만 박사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암세포의 혈관생성을 억제하는 물질을 찾고자 했다. 그 과정은 지루하고도 긴 작업이었다.
1991년 연구팀에 합류한 마이클 오렐리 박사는 종양을 가진 쥐의 소변을 분리해 혈관생성을 막는 물질을 찾기 시작했다. 2년여의 연구 끝에 마침내 암세포의 혈관생성을 차단하는 물질을 찾는 데 성공했다. 이 물질은 ‘혈관을 멈추다'라는 뜻의 '엔지오 스타틴(Angiostatin)'으로 불리게 된다.
과연 엔지오 스타틴은 암의 성장을 멈추게 할 것인가? 곧바로 동물 실험에 들어갔다. 쥐 20마리의 등에 암세포를 투여한 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쪽은 치료를 전혀 하지 않고 다른 한쪽에는 혈관생성억제제를 투여했다. 치료를 받지 않은 쥐는 종양이 성장해 다른 장기로까지 전이되었다. 반면 혈관생성억제제를 투여한 쥐는 종양이 거의 자라지 않았다. 혈관생성억제제인 엔지오 스타틴이 암의 성장을 멈춘 것이다. 1년 후, 또 다른 혈관생성억제제, 즉 엔도 스타틴을 찾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연구 성과로 혈관생성억제제는 새로운 암 치료제로 급부상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웠던 궁금증 하나에서부터 시작된 주다 포크만 박사의 집념과 마이클 오렐리 박사의 연구로 태어난 혈관생성억제제, 세계 암환자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떠오르는 치료제의 이름이다. (허완석 엮음 / 『암중모색 암을 이긴 사람들의 비밀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팀』 / 비타북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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