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야기

부활이야기

hope888 2014. 10. 12. 11:29

부활이야기 

   이십 년이 넘도록 부활을 연구하는 중에 나는 부활 사실이 온갖 종류의 암초에 겹겹이 둘러싸여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섬과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릇 이 섬에 접근하여 파괴하려는 배는 이 암초들에 걸려 좌초되고 말 것입니다. 부활 사실을 향하여 최대의 포를 겨냥한 회의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과 불신자들이 생각해 낸 이론들은 기껏해야 한 줌밖에 안됩니다. 그 이론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가를 알고 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더욱 확고하게 될 뿐입니다.

  데이빗 넬슨 박사(Dr. David Nelson)의 저서 "불신앙의 원인과 치료(The Cause and Cure of Infidelity)"에는 그가 대학과 대학원 과정에서 공부하던 젊은 시절에 그의 믿음을 잃었으나 마음 속에 여전히 한 가지 부담이 있어 괴로웠었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자기의 불신앙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 그는 아주 유명한 무신론자들의 글을 모조리 읽었습니다.

   그는 지적으로 아주 총명했기 때문에 그 무신론자들의 논증이 너무나 어리석고 헛되어 밑빠진 독처럼 물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구약성경의 예언들과 자기가 죄인들의 손에 넘기워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리라는 주님 자신의 예언과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봅니다. 그가 만일 어떤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을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인격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은 온 세상이 한 목소리로 이제까지 세상이 알았던 사람들 중에 가장 위대하시고, 가장 윤리적이시며, 가장 순결하시고, 가장 정직하신 이라고 선언한 바로 그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빈 무덤을 대합니다. 바로 이 빈 무덤의 반석 위에 수많은 이론들이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빈 무덤 안에 남아있던 주님의 수의를 봅니다. 여러 사람의 증언을 듣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열두 차례의 서로 다른 기회에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일들에 관하여 읽어봅니다. 한번은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아침과 오후와 저녁 시간에 집 안과 집 밖에서 나타나셨고, 제자들이 그의 음성을 귀로 듣고 그의 손과 옆구리를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겁 많고 소심하고 수줍음을 타던 사도들이 담대히 목숨을 내걸고 복음을 선포하는 능력의 사람들로 변화되는 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전에는 여종이 묻는 말에도 두려워한 나머지 거짓말을 했던 사도 베드로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지 얼마 안되어서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서 온 공회의원들에게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증인들의 충성과 인격과 고난과 죽음을 대하게 됩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들의 증언 위에 그들 자신의 순교의 피로써 인을 쳤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심리학의 역사상 어떤 사람이 거짓으로 알고 있는 것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은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모든 성도들이 그처럼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받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고문을 당하도록 허용하신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기독교의 기초가 그렇게 다져졌기에 오늘날까지 확고부동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승천 사실과 그에 대한 증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을 박해하고 잡아 죽였던 핍박자 사울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 바울로 바뀐 놀라운 회심과 변화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제 부활을 설명하고자 하는 다양한 이론들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의 사기극이었다는 이론들 중에는 제자들끼리 혹은 예수 그리스도와 짜고 세상을 속여서 그가 죽음에서 부활한 것으로 믿도록 음모를 꾸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이 분야 최초의 이론이었습니다. 그것은 파수꾼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산헤드린 공회(유대인들의 지도체제)에 모든 되어진 일과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보고했을 때 제안된 의견으로서 복음서에 나옵니다. 그 때 산헤드린 공회는 파수꾼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말하기를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마태복음 28:13-14)고 했습니다. 법학의 전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잠든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증언하게 한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의 제자들이 방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의 법에 따르면 군인이 파수 근무 중에 잠이 들 경우 마땅히 처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법은 엄격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스코틀런드의 신학자 프린시 펄 힐 박사(Dr. Principal Hill)는 이 사기극 이론에 대하여 논평을 했는데 나는 그의 논평을 고전적인 인용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증거들을 다 검토한 다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사실로 제시된 모든 증거들을 물리치고 그들의 증언을 거짓으로 생각한다면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아주 불합리한 상황 등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신분이 낮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열두 명의 사람들이 무슨 야심을 품을 수도, 이룰 수도 없는 초라한 지위에 처하여 살면서 정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이제까지 사람들이 생각조차 못했던 가장 고상한 책략을 세우고, 그 책략을 실행하기 위하여 아주 대담한 방법을 채택하고, 단순성과 덕을 가장하여 속임수를 감추는 연설을 해서 그 일을 이루어갔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사람들을 속인 죄가 있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아주 부자연스런 시도를 해서 실제로  최대의 성공을 거두어 세계를 덕스럽게 만들었으며, 그들이 자기의 유익을 전혀 추구하지 않고 손해와 이익에 전혀 구애받지 않으며, 멸시와 박해를 분명히 예상하면서도 이 유례없는 일을 추진하고. 서로의 악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 중 아무도 그 사기극을 폭로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생각을 하는 대신에 극도의 육신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비밀을 지키고 세상을 속여서 경건하고 정직하고 인자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야만 하게 됩니다. 참으로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가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이적들을 반대할 자격이 없습니다.

 법률가 프랭크 모리슨(Lawyer Frank Morris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그 친구들(교회의)이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것만 아니라 그 원수들이 마비된 것과 줄기차게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증가되고 있는 이유를 밝혀야만 한다. 예루살렘의 어떤 고위층 인사들이 이 운동을 그 태동기에 진압하려 했다가 실패한 것이 거의 확실하고 진짜 율리시즈(Ulysses)의 화살인 대 박해가 일어났다가 그들 손에서 와해될 때까지 사도들을 침묵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극단적인 수단이 사용되었는가를 기억할 때 우리는 이 모든 속임수들과 임시방편들 배후에 무언의 답변할 수 없는 어떤 사실, 그 지리적인 위치와 운명을 확고하게 만든 어떤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또한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참으로 가공할 만한 속도로 성장을 계속하고 있던 4년 동안에 가야바도, 안나스도, 사두개파의 비밀결사대 요원 중 어느 누구도 자기네들의 특권과 명성이 기독교의 새로운 교리에 의해서 그처럼 능욕을 받고 손상을 입었으면서도 그들의 곤경에서 벗어날 분명한  지름길을 찾아내지 못했던 이유를 실감하게 된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요셉이 장사지낸 그 무덤 속에 아직 그대로 있었든지, 아니면 그들이 자신이 주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다른 곳에 두었다면 왜 그랬다고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마비가 되어서 전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겨우 생각해 낸 것은 대 박해를 가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부활이 점차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전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고등비평가들이 복음서들은 실제의 사건이 일어난 지 백 년이나 이백 년이 지난 뒤에 쓰여졌다고 말한 19세기에 하나의 인기있는 이론이었습니다만 고고학이 발전되면서 이러한 비평은 입을 다물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서들이 각각 그 이름을 가진 저작자들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부활에 관한 간증도 그 사건이 일어난 당시로 되돌아가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까 전설이 형성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그 전설은 바울이 오백여 형제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일시에 목격했고 그 가운데 아직도 태반이나 살아있다고 말하기 적어도 16년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지도가 더 낮은 것으로 보이는 환상설(The vision theory)도 있습니다. 이 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난 것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리라는 큰 기대를 가진 나머지 단순히 환상을 보았거나 아니면 환각을 경험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설입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왔었던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그 여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왔었나요, 아니면 그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왔었나요? 주님이 돌아가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는데 그의 시신이 없어졌기 때문에 마리아가 무덤 밖에 앉아 울고 있었던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이스라엘을 구속할 메시아로 생각했다가 이제는 모든 것을 다 잃었기 때문에 슬퍼하고 낙심했던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예수께서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이 믿지 않는 것을 책망하신 사실은 또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것을 기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환각증세의 역사상 배경이 다르고 기질이 다른 사람 오백여 명이 일시에 동일한 환상을 본 일은 도무지 없습니다. 더욱이 그러한 이론의 배를 좌초하게 만들 암초들은 그밖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만일 그들이 본 모든 것이 다 단순한 환각에 불과했다면 제자 중에 아무도 무덤에 가서 주님의 시신이 거기 그대로 있는지 확인해 볼 생각을 못했을까요? 그들이 '환각증세'를 보였다고 주장했다면 대적들 가운데서 몇 걸음 더 나아가 무덤을 조사해 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요? 베드로가 오순절 날에 그가 본 '큰 환상'에 대해서 설교를 할 때 주님의 무덤에서 10분 거리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듣고 믿은 사람만 수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듣지도 믿지 않은 사람도 수천 명이었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직접 무덤에 가서 확인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요? 그럴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분명히 생각이 복잡하고 음모 꾸미기를 즐기던 사두개인들은 이것이 단순히 환각증세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온갖 기회를 노렸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절(swoon)'설이 있습니다. 이것은 벤투리니(Venturini)가 제안한 설인데 머어리 베이커 애디(Mary Baker Eddy)의 저술들과 유월절 음모(The Passover Plot)에 나오는 휴 숀필드(Hugh Schonfield)의 글들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1,800년이 넘는 세월 동안에 기독교의 친구들 가운데서나 도무지 화해할 수 없는 대적들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죽지 않으셨다는 말은 귓속말로조차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은 흥미 있는 사실입니다. 이 최근의 저술가들 중 몇몇은 예수께서 단순히 기절을 하셨는데 죽으신 줄로 알고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서늘한 무덤 속에 놓아 두니 정신이 들어서 밖으로 나와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알려주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기절설이라고 하는 배는 우리의 부활의 섬에 결코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기절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마의 백부장이 그의 창으로 주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물과 피가 흘러나온 사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상처에서 물과 피가 분리되어 흘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험적인 증거였습니다. 또 빌라도가 보낸 백부장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그 백부장은 죄수들의 처형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운명하셨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쌌던 베에 관한 사실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장례를 지닐 때 세마포로 시신을 싸고 백근이나 되는 향품을 사용해서 마치 미이라처럼 시신을 봉했습니다. 시신의 머리 부분도 그와 같이 했습니다. 의학계의 권위자들은 예수께서 만일 기절하신 것이었다면 밀폐된 무덤이 아니라 바깥 공기가 필요했다고 말했습니다. 기절하셨을 경우에는 분명히 코와 입에 향품을 넣고 베로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기절한 사람을 서늘한 무덤 속에 넣어둔다면 더욱 혼미해지거나 심장의 박동이 멎어 버릴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감쌌던 베를 흐트러뜨림이 없이 그대로 남겨두고 몸만 살짝 빠져나와 무덤을 봉하고 있던 큰 바위 문으로 다가갔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 로마의 대못에 박힌 손과 발의 상처를 가지고 그 무거운 돌문을 열어야만 하셨을 것입니다. 무덤 안쪽에서 만지면 손잡이도 없이 반반한 그 엄청난 돌을 맨손으로 굴려야 하셨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헬라어 낱말들은 그 돌문을 높은 쪽으로 굴려 올려야 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무장한 파수꾼들을 따돌리고 그 날 오후에 오십 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엠마오까지 갔다가 되돌아오셔야만 했습니다. 못 박힌 상처가 아직 그대로 있는 발로 산길을 걸어 팔레스타인 북쪽으로 올라가서 갈릴리까지 걸어가셔야만 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기절설'이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이론도 믿지 않았던 유명한 비평가 데이빗 스트라우스(David Straus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덤에서 방금 나오신 분, 반죽음을 하여 연약하여지신 분, 수술을 받고 붕대를 감고 강심제를 맞고 약을 먹으며 집중적인 간호를 받아야 할 분, 결국에는 고통으로 인하여 쓰러지실 그 분이 제자들에게 자기는 죽음과 무덤을 정복했다는, 자기는 생명의 주라는, 제자들의 장래 사역의 기본이 되는 인상을 주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모양의 부활은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심어준 인상을 오히려 약화시킬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생각해 보십시다.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나기 위해서 애를 썼던 이 분이 무덤에서 나와서 하늘로 날아 올라가셨던가요? 제자들은 예수께서 승천하셨다고 확언하였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여기서 제자들이 또 한번 사기극을 벌인 것이었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그들은 주님의 부름과 승천을 인하여 자기들의 생명을 끔찍한 순교의 재물로 아낌없이 드렸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결코 사기극이 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너무도 분명하여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역사의 사실들을 검토해 볼 때 이제까지 제안된 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부활을 부정하는 이론들은 먼지 속에 묻혀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명해집니다.

  그리스도의 빈 무덤은 기독교의 친구들만 아니라 대적들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집니다. 파수꾼들이 받아들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밤에 예수의 제자들이 와서 그의 시체를 도적질하여 갔다는 소문을 내게 함으로써 암시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최초의 가장 훌륭한 유대인 변증가들 중에 하나였던 트리포(Trypho)는 순교자 져스턴(Justin Martyr)과의 대화에서 예수에 관하여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예수, 갈릴리의 사기꾼은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데 그의 제자들이 밤에 무덤에 와서 십자가에서 내려다 안치해 두었던 그의 시체를 훔쳐가 놓고는 이제 와서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승천했다고 주장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있느니라." 이와 같이 트리포마저도 오늘 날 아무도 믿지 않는 이론, 제자들이 주님의 시신을 도적질해 갔다는 설을 제시함으로써 그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천의 경험에 관한 사실이 있습니다. 곧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에 전파되셨고, 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방언과 족속들에게 이르러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셨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살아 계시며 자기들의 삶에 들어오셔서 자기들을 새롭게 해주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계시록 1:8; 요한복음 11:26)고 말씀하실 수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마음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며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자신의 심령 속에서 경험적으로 그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소망이 없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이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소망이 없이는 우리가 밑바닥 없는 구덩이 밖에 더 바라볼 것이 없습니다.

  과연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 죄를 자백하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한다면 그는 기꺼이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실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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