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야기

나이듦의 품격 1 - 산티아고 순례길

hope888 2022. 4. 17. 10:41

은퇴하고 나서 저는 자연과 더 깊은 차원의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 명의 오랜 친구들과 함께 산티아고 순롓길을 걸었을 때 이런 차원의 친밀감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모두 60대 중반인 '노장' 들이었습니다. 미시간과 인디아나, 알래스카와 호주에서 이 순롓길을 걸으러 왔습니다. 다들 몸은 아직 괜찮은 편이었지만 누구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또 누구는 대머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순례가 힘은 들겠지만 좋은 도전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미 은퇴를 한 사람도 있었고, 곧 은퇴하게 될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순례를 통하여 우리의 은퇴를 자축하고 그동안의 우리의 삶을 경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어느 봄날 저는 30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 제가 가진 세상의 무게는 7킬로그램이었습니다. 저는 그 세상을 배낭 속에 쑤셔 넣고 길을 떠났습니다. 피레네산맥을 거쳐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시에 이르는 유서 깊은 순롓길을 우리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프랑스 국경이 가까운 론세스바예스 Roncesvilles 의 산간 마을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800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안내자도 없었고, 짐꾼도 없었으며, 지원 차량도 물론 없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머물 호스텔에 예약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35일 만에 이 순례를 마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4월의 어느 금요일에 길을 떠나 감청색 바탕에 노란 화살표가 그려진 같은 모양으로 된 온갖 크기의 타일로 된 표지들을 따라 걸었습니다.

저는 순례의 정신으로 이 길을 걸으며, 이 순례 여정 자체가 일종의 걷기 피정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걷기라는 영성 훈련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별로 경건하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시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미사에 참여하거나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치거나 성무일도를 바치면 될까요 ? 이것은 별로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성이 높은 산위에 자리한 수도원에서 침묵 가운데 사는 것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기도문을 바치거나 공적인 전례에 참석하는 것만이 기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와 영성은 우리가 매일 하는 일과 놀이와 행위,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들과 맺는 관계를 통하여 실천될 수 있습니다.

저의 영성 훈련은 단순합니다.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여 걷는 것입니다. 저는 걷기라는 육체적인 훈련이 영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 또 저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저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저는 매일 그 가운데 특정한 한 사람을 선택하고 그 사람을 기억하며 걸었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을 조용히 걸으며 제가 그동안 어떤 남편, 아버지, 아들, 친구 혹은 동료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고, 동시에 이 각각의 역할들이 어떻게 제 삶을 풍요롭게 해 주었는지도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걸으면서 길고 지속적인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도에서 저를 기쁘게 하였던 성공의 순간들뿐만 아니라 저를 불인하게 만들었던 실패의 순간들도 차례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이들과 친구들, 지인들에 대한 진심 어린 깊은 감사가 우러나왔습니다.

이런 기도 체험들은 눈 덮인 산들과 넓은 포도원, 끝도 없이 펼쳐진 귀리밭과 밀밭, 보리밭과 유채밭, 고대의 석조물들이 남아 있는 중세풍의 마을들, 산을 가로지르는 가파른 오르막길, 팜플로나와 부르고스와 레온과 같은 현대적인 도시들, 양귀비꽃과 야생화, 가시금작화와 라벤더, 금작화로 뒤덮인 들판의 풍경들을 배경으로 일어났습니다.

저는 걷는 동안에 가질 수 있었던 긴 침묵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덕분에 저는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저의 육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고 만족하였습니다. 60대이지만 잘 걷고, 건강하며, 힘든 순롓길에도 금방 단련됩니다. 낯설고 잘 모르는 상황도 잘 헤쳐나갑니다. 하지만 내적인 모습을 보니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이 순례 여정이 아내와 가장 오래 떨어져 있는 시간이다 보니 외로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또한 저는 마음의 습관을 자주 살펴보고, 건강한 생각은 발전시키고 독이 되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순례는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이며, 우리가 만든 갖가지 가면과 장막으로 가려진 참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발견한 다음에는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이 순례 여정은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바치는 순례자들의 미사나 순례인 증서를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인 R. S. 토마스가 이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여행의 정점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있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꽃가루를 잔뜩 묻혀 왔으니 이제는 마음이 먹고 살 꿀을 열심히 만들어야 한다.

 

저의 걷기는 신심 행위도 아니요 경건함을 드러내는 행위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영성 훈련이었습니다. 저는 걷는 동안 일정한 시기마다 정기적으로 멈추었습니다. 뒤를 돌아보고, 제가 걸어왔던 길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걷기란 곧 뒤를 돌아봄으로써 얻게 되는 관점에 대한 것입니다. 이 여정은 저의 외면과 내면에 영향을 미쳤고, 저의 현실에 도전을 주었습니다. 저는 침낭과 배낭을 합하여 7 킬로그램의 짐으로 5주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균형 잡힌 삶을 살고자 할 때 제가 꼭 필요로 한 것들은 어느 만큼일까요? 어떻게 하면 산티아고 순롓길에서 익힌 훈련을 계속 적용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 길에서는 매일 아침 우리를 미지의 영역으로 안내해 줄 새로운 목적지를 생각하며 눈을 뜨는 일이 그저 신나기만 하였습니다. 그때는 하루하루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저는 그때 얻은 통찰을 제 삶에 적용해 보려고 애씁니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대신 오늘 가능한 일들은 무엇일까?” 하고 자문하려고 합니다. 저는 산티아고 순롓길이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순롓길을 걸을 때 어떤 구간에서는 잘 걸었지만 다른 구간에서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생을 통해 익힌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신에게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 순례 체험을 통하여 저는 많은 것을 배웠고, 앞으로의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산티아고 순례를 가기 위해서 열심히 걷는 연습을 하였지만 순례를 마치고 나서도 제가 계속해서 걷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는 걷기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걷다 보면 오히려 피로가 풀리고 적당한 자극을 받고, 성취감도 느낍니다. 점차 저는 제가 정말로 걷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벌써 여러 해 동안 매일 5-8킬로미터씩 걷고 있습니다. 그렇게 걷는 동안 제가 좋아하는 성찰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가집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경력을 쌓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시간입니다.

걷기를 통해 저는 보다 심오한 관점을 얻게 됩니다. 걷다 보면 의식은 더 명료해지고 주변의 것들을 더욱 친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시속 100킬로미터로 재빨리 지나치는 대신 한가롭게 걸으면서 가깝게 다가가 아주 자세히, 그리고 열심히 관찰합니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자연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들을 음미하려면 자연을 아주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제가 걸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은 대부분 미묘하고 섬세한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북쪽 지역의 겨울은 단색조가 아닙니다. 상록수들은 눈 덮인 산 위에 우뚝 그 모습을 드러내고, 활엽수의 가지들과 줄기들은 붉은색이나 오렌지색, 혹은 노란색을 띠기도 합니다. 산딸기와 블루베리는 눈과 영하의 기온을 용케 버텨 냅니다. 토끼와 사슴이 흰 눈 속에 흐릿한 발자국을 남깁니다. 이따금씩 여우의 발자국도 보입니다. 우리 지역에 거의 언제나 떠 있는 정체된 구름이 흩어지는 날에는 청아한 하늘이 열리고 눈부신 태양빛이 눈에 반사되어 기막힌 장관을 만들어 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습지의 물은 진흙탕 색깔에서 부평초로 뒤덮인 녹색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칙칙하고 차가운 잿빛이 되고, 이어서 반짝이는 솜털처럼 하얀 도화지로 바뀝니다. (프랭크 커닝햄 / 나이듦의 품격/ 생활성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