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에서 벗어나기(사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여된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하느님(하나님)께서 손수 지어 내시고 ‘참 좋다’고 감탄하신 우리 모두에게 ‘결여된 것'이 발견된다면 그 결여는 하느님의 실패나 미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된 것’일 수 있습니다. 완전하신 하느님께 실패나 미완성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결여된 것은 다 다릅니다. 그 결여는 어쩌면 상호 보완을 통해 완성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 나의 결여가 너의 것으로 채워지고, 너의 결여는 또 다른 이의 것으로 채워지고, 그리하여 온 인류가 한데 모이면 완성되는 그런 것이 하느님의 꿈이 아닐까요? 문제는 결여에 대한 우리의 태도로 인해 발생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감탄하고 감사하기보다 결여를 채우는 데 온 인생을 소모합니다. 하지만 그 결여는 나의 노력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제아무리 많은 것으로 채워 넣어도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도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태도로 인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었던 사울에게는 참 좋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먼저 그에게는 수려한 용모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잘생긴 이가 없었고, 키도 다른 사람의 어깨 위로 올라갈 만큼 컸습니다. 또한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첫 임금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사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무려 세 차례에 걸쳐 하느님께서 그를 선택하셨다는 표지가 주어집니다.
첫 번째 표지는 사무엘이 비밀리에 사울을 도유(기름을 바름)하였고, 이 사건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사무엘은 사울에게 세 가지 표징을 일러 준 것이었습니다. 곧, 사울이 찾고 있던 아버지의 암나귀들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베텔 성소로 순례
가는 이들로부터 빵 두 덩이를 얻으며, 예언자 무리를 만나 황홀경에 빠져 예언을 하게 되면 그것이 곧 하느님께서 사울과 함께하신다는 표지임을 알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과연 사무엘이 말한 대로 사울에게 이 세 가지 표징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두 번째 표지는 사울이 미츠파의 집회에서 제비뽑기를 통해 임금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표지는 사울이 암몬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길갈에서 왕위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 정도라면 그 누구도 하느님께서 사울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고, 사울 자신은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런 놀라운 선물에 주목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없는 것‘에 더 주목한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가 자신의 결여에 더욱 시선을 두었다는 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울은 수려한 용모에도 불구하고 열등감이 많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사무엘기 상권(사무엘상) 10장 22절에 따르면 임금을 선택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던 당시에 그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짐짝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사울이 자신에게 없는 것에 더 주목하였다는 둘째 표지는 그가 길갈에서 사무엘을 기다리며 필리스티아인들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던 때에 드러납니다. 일찍이 철기 문명의 혜택을 누리던 필리스티아인들에 비해 아직 철기 다루는 법을 몰랐던 이스라엘군은 필리스티아(블레셋)군의 수와 무기에 겁을 먹고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사울은 자신이 가진 것에 주목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없는 것에 시선을 돌립니다. 군사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군사들을 독려하는 대신 이레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무엘을 대신하여 스스로 번제를 바칩니다. 제사를 바치지 않아서 군사들이 사기를 잃었다고 생각하여 그는 사제의 권한을 침범하고 맙니다. 결국 사울은 때마침 나타난 사무엘에게서 하느님의 명령을 어긴 결과로 그의 왕권이 다른 이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아말렉족과의 싸움에서 사울이 보인 태도에서도 그가 자신에게 없는 것에 더 주목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명령은 아말렉족을 완전 전멸하라는 것이었는데 사울은 아말렉 임금 아각을 생포하고, 양과 소와 기름진 짐승들 가운데, 좋은 것들을 취함으로써 하느님의 명령을 거스릅니다. 사무엘이 나타나 이를 지적하자 사울은 두 번이나 자신이 아니라 군사들이 그렇게 했다고 변명하며, 군사들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였노라고 말합니다. 왜 사울은 군사들을 두려워하였을까요? 왜 군사들을 설득하여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게 하기보다는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을까요? 사울은 어쩌면 하느님의 명령보다 군사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더 마음을 쏟았는지 모릅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신뢰하기보다는 군사들의 인기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자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때문에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님은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실지 몰라도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아니십니까?”. 사울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임에도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고, 자신의 존재감을 사람들의 인기와 존경에서 찾으려고 한 것을 지적하는 말일 것입니다.
사울이 자신에게 없는 것에 주목하였다는 가장 확실한 표지는 다윗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다윗을 질투하고, 그것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그의 불안의 정도가 얼마나 컸는지는 다윗을 죽이려는 거듭된 시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사울이 하느님의 선택에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다윗을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에게 없는 것을 보완해 줄 가장 소중한 신하로 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군사령관이 뛰어난 장수라면 그를 잘 활용하는 것이 임금으로서 해야 할 일이지만 그는 다윗의 존재에 위협을 느낍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 임금 곁을 떠나 피신을 다니다가 마침내는 갓 임금 아키스에게 몸을 맡기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울 임금은 유능한 군사령관인 다윗을 잃었고,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투에서 자식들과 함께 비참하게 전사합니다.
손에서 창을 내려놓지 못했던 사울의 심각한 불안은 이처럼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던 좋은 것들에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던 탓이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세 번씩이나 보여 주신 선택의 표지도 사울에게는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뛰어난 용모도 그의 열등감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에게 없는 것에 주목하느라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보지 못했고, 그 소중한 것들을 제대로 살아 내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을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우신 분이 하느님이심을 확신하였다면 사울은 자신의 왕권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것이었고, 하느님께서 지켜 내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채우려하다가 결국 주어진 것마저 제대로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받은 귀한 탈렌트들은 고스란히 땅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울처럼 인간적인 장점이 아주 많은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 역시 열등감을 갖습니다. 열등감이 자신에게 결여된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에서 오는 것이라면, 기이하게도 열등감은 무엇을 더 많이 가진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귀하다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 그래서 자신에게 없는 것을 기꺼이 내어 보이고, 다른 이들로부터 보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열등감에서 해방됩니다. 그는 자신의 결여에 주목하는 대신에 자신이 이미 받은 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압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받은 것이 참 많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귀하게 보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 세상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참으로 귀한 것들을 우리는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 서로 그것을 자랑해 볼까요? (김영선 수녀 / 『관계를 치유하는 33가지 지혜』 / 생활성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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