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을 막아낼 나만의 방패(다윗)
제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누구에게나 한계와 약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약점과 한계를 꼬집는 독설이 유달리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그 독설이 지닌 일말의 진실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또한 그 독설에 대해 우리가 분노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결코 우리의 진면목을 제대로 드러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들은 독 묻은 화살처럼 폐부 깊숙이 들어와 우리를 괴롭히며, 잊으려고 해도 자꾸만 되돌아와 귓전을 때립니다.
이 세상에 사는 한 아무도 이런 독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를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막아 낼 방패는 없을까요? 독설을 막아 내는 훌륭한 방패를 지닌 이로 다윗 임금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 임금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도성을 떠나 피신하던 때였습니다. 이때의 상황이 얼마나 비통하고 애달팠던지 성경 저자는 다윗이 올리브 고개를 울면서 넘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그 길을 걸었고, 함께 가던 이들도 울면서 그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바후림은 예루살렘에서 요르단 계곡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성읍으로 예루살렘에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바후림 출신의 벤야민 사람이며 사울의 친척인 시므이가 나타나 다윗을 저주합니다. 다윗을 둘러싸고 있는 임금의 용사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윗과 그의 신하들에게 돌을 던지며 말합니다.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 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 주셨다. 너는 살인자다. 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아들의 반란으로 피난길에 오른 임금에게는 비수처럼 들릴 말입니다. 지금 시므이에게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다윗의 선업은 안중에 없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시절에 다윗이 겪었던 온갖 어려움도, 그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섰던 다윗의 굳건한 신앙과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도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시므이의 눈에 다윗은 그저 실패한 임금, 쫓겨나는 패자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다윗을 살인자요 무뢰한이라며 맘껏 모욕합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죽음을 다윗 탓으로 돌립니다. 다윗의 왕위 등극 사화에 따르면 사실상 다윗은 이들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다윗은 그들이 죽는 일에 조금도 가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성경 제자는 거듭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살인자로 고발하는 시므이의 말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과연 다윗은 밧세바를 탐하여 그의 남편 우리야를 죽이도록 사주한 살인자였습니다. 자신의 충실한 부하 장수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차지한 일을 두고 일찍이 하느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통하여 그의 집안에 칼부림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하느님의 이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이해한 듯합니다. 그래서 시므이의 모욕 앞에서 그는 침묵합니다.
그러나 다윗과 함께 있던 이들은 이 모욕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다윗의 군사령관인 요압 장군의 동생 아비사이는 그를 죽이겠다고 달려듭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윗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츠루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다윗은 시므이의 독설을 그저 시므이가 한 말로만 듣지 않습니다. 그는 이 사건 배후에 하느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시므이의 독설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일 수 있다고 여기며 거부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다윗이 시므이의 독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도 인간이기에 시므이의 말을 가볍게 들을 수만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므이의 말은 다윗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그 독설 앞에서도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았고, 애덕을 거스른 선택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을까요?
첫째, 다윗은 시므이가 퍼붓는 모욕 앞에서도 시선을 하느님께로 향하였습니다. 그는 시므이가 한 말에도,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는 그 사람에게도 시선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눈과 마음을 하느님께로 들어 올려 하느님께서 그의 상황을 보아 주시기를, 그의 처지를 가엾이 여겨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둘째, 다윗은 시므이의 독설에 동의하지도, 그것을 반박하기 위하여 맞서 싸우지도 않습니다. 시므이의 독설이 자신의 속살을 파고들어 생채기를 내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진실 전부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셋째, 다윗은 시므이의 독설을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여기고, 하느님께서 그것을 바꾸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는 주님께서 이 상황을 해결해 주실 것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한결같이 하느님께로 시선을 향하고, 그분에게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시므이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산비탈을 걸어가는 동안 그들을 따라가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흙먼지를 뿌려 대었습니다. 임금은 그 모욕을 묵묵히 받으며 갈 길을 갔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며, 날아오는 돌멩이도, 독화살 같은 저주의 말도, 흙먼지도 그대로 이
루어지소서(Let it be!)'라는 마음으로 받아 내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이 제압되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할 때 시므이는 다시 한 번 다윗 임금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어떤 모습으로 환궁하는 임금을 맞이하였을까요? 유다 사람들이 임금을 맞이하러 길갈로 나갔을 때 시므이도 서둘러 내려갔습니다. 그는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뿐 아니라 다윗이 피신할 때 노새와 양식을 내주었던 사울 집안의 종 치바(시바)를 앞세우고, 또 다른 벤야민 사람 천 명과 함께 요르단강 건널목에서 강을 건너려던 임금을 맞이합니다. 그는 임금 앞에 엎드려 사죄합니다.
"임금님, 저의 죄를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시던 날 이 종이 저지른 죄를 기억하지 마시고, 마음에 품지 마십시오. 이 종은 죄지은 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맞이하려고 요셉의 모든 집안에서 가장 먼저 내려왔습니다.
그러자 아비사이(아비새)가 다시 나섭니다. “시므이가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를 저주하였으니, 그는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다윗 임금이었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다윗은 아비사이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츠루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오늘 그대들이 나의 반대자가 되려 하오? 내가 오늘에야 이스라엘의 임금임을 잘 알게 되었는데, 이런 날 이스라엘에서 사람이 처형당해야 하겠소?"
이때에도 다윗의 시선은 하느님께로 향해 있습니다. 그는 사건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압살롬의 반란도, 시므이의 독설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 사건들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이 힘든 사건들을 겪으면서 하느님께서 정녕 그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선택하셨다는 것, 그리고 임금은 오직 백성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보면 그에게 저주와 독설을 퍼부었던 시므이도 한 백성입니다. 비록 다윗은 마지막 유언에서 솔로몬에게 시므이와 같은 인물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알아서 처리할 것을 당부하였지만, 시므이에게 그를 죽이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습니다. 다윗은 죽을 때까지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다윗 임금이 시므이의 독설을 막아 낸 방패는 다름이 아니라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말하는 '믿음의 방패‘입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에페(엡) 6,16). (김영선 수녀 / 『관계를 치유하는 33가지 지혜』 / 생활성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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