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야기

관계를 치유하는 33가지 지혜 5 - 치장과 과시의 욕구(아마츠야 – 아마샤)

hope888 2022. 4. 26. 08:55

제가 오랜 유학 생활을 끝내고 귀국할 때 마음속 깊이 다짐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쁘게 살지 말자. 사랑하는 일에 바쁜 것을 마다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분주한 것, 나의 상품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을 멈추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공항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다짐은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다짐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갈수록 더 깊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 보여야만 하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있는 그대로 자기 존재의 귀함에 대한 확신을 지켜 내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그때의 다짐을 품고 삽니다. 그것은 하느님(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지를 보지 못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선 치장과 가식의 욕구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겉꾸미고 치장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보다 못나 보이고 부족해 보이는 부분은 가리거나 숨기고 겉으로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사정없이 억누릅니다. 다

숨길 수 없는 약함에는 과도하게 분노하고 절망합니다.

남보다 조금 잘나 보이는 면들은 과장하여 드러내거나 남들의 시선을 얻으려고 애씁니다.

부작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나보다 못한 이들을 무시하고 얕잡아 봅니다. 대신 나보다 더 잘나 보이는 이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그들을 흠잡으려 듭니다.

이렇게 되면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은 점차 마비되어 버립니다. 이 부작용들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멈추지 않는 한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열왕기 하권 14장에 소개되는 남왕국 유다(이하 남유다)의 아마츠야(아마샤) 임금은 이런 악의 순환에 걸려들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는 남유다 임금 요아스의 아들로 스물다섯 살에 왕위에 올라 스물아홉 해 동안 남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신명기계 역사가의 평가에 따르면 아마츠야 임금은 부왕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마음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가 한 옳은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역사가는 아마츠야 임금이 율법에 충실하였던 한 가지 예를 들려줍니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확립한 후에 부왕을 시해한 신하들을 처형하였지만 신명기 법전의 규정대로 시해자들의 자손은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신명 24,16 참조).

이어서 역사가는 아마츠야 임금의 군사적인 성공에 대하여 보도합니다. 아마츠야 임금은 에돔군 일만을 쳐 죽이고, 그들의 도성인 셀라를 점령하여 남유다의 성읍으로 만들었습니다. 신명기계 역사가의 사관에 따르면 아마츠야의 이러한 성공은 그가 율법에 충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주어진 하느님의 축복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로부터 아마츠야 임금이 자신의 성공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에돔군 일만을 격파한 군사적 성공으로 용기백배한 아마츠야는 당시 북이스라엘의 여호아스 (요아스)임금에게 전쟁하자는 도전장을 던집니다. 여호아스 임금은 아마츠야의 군사적 도전에 비유를 들어 응답합니다. “레바논의 엉겅퀴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백향목)에게 '그대의 딸을 내 아들에게 아내로 주오.' 하고 전갈을 보냈다. 그러자 ”레바논의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엉겅퀴를 밟아 버렸다.” (2열왕 14,9).

이 비유의 뜻은 이러합니다. 엉겅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잡풀에 불과하지만 잡풀들 가운데서는 제법 크게 자랍니다. 이에 으쓱해진 엉겅퀴가 잡풀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 채 나무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나무로 여겨지는 향백나무에게 혼사를 제안한 것입니다. 이 제안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입니다. 향백나무가 이 제안에 미처 응답하기도 전에 엉겅퀴는 지나가던 들짐승에 짓밟히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호아스 임금은 아마츠야의 도발을 엉겅퀴의 오만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아마츠야 임금을 타이르듯 말합니다. “그대는 에돔을 쳐부수었다고 마음이 우쭐해져 오만하게 구는데, 집에나 머물러 있어라. 어찌하여 재앙을 일으켜 그대 자신과 유다를 함께 쓰러뜨리려 하는가?" (2열왕

14,10).

아마츠야 임금은 여호아스 임금의 대답을 무시하고 전쟁을 강행합니다. 신명기계 역사가의 평가대로 꽤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아마츠야 임금은 왜 이런 선택을 하였을까요? 에돔군 일만을 쳐부순 성공의 경험을 그는 어떻게 해석한 것일까요? 신명기계 역사가는 그것을 하느님의 축복의 결과로 해석합니다. 그 때문에 아마츠야가 에돔군과 싸울 때 사용한 군사 작전의 훌륭함이나 그의 용맹함과 기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신명기계 역사가는 처음부터 공로를 그의 것으로 돌리지 않고 하느님의 것으로 돌립니다. 역사가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한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어떤 선도 이룰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아마츠야 임금은 자신의 첫 번째 성공을 하느님의 것으로 돌리는 대신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사건으로 해석하였을지 모릅니다.

아마츠야 임금의 도발은 엄청난 값을 치르게 됩니다.

아마츠야 임금이 전쟁을 선포하자 북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는 군사를 이끌고 내려와 남유다의 벳세메스에서 전투를 벌입니다. 결과는 일찍이 여호아스 임금이 예견한 대로 남유다군의 참패였습니다. 아마츠야 임금은 포로가 되었고, 북이스라엘 군대는 예루살렘의 성벽을 '에프라임‘ 성문에서 '모퉁이 성문까지 사백 암마(약 180-200 미터)나 허물어 버렸습니다. 뚫린 성벽을 통해 예루살렘 도성안으로 들어온 여호아스 임금은 성전과 왕궁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귀중품들을 모조리 빼앗고 인질까지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사이의 군사적인 마찰은 그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북이스라엘군이 예루살렘 성벽을 뚫은 것은 이때가 유일합니다. 유다 왕국으로서는 외적의 침입을 제외하고서는 가장 치욕적인 경험을 한 셈입니다.

아마츠야 임금은 이 수치스러운 참패를 경험한 후에도 계속해서 남유다 왕국을 통치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가 죽은 뒤에도 15년을 더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신하들은 아마츠야 임금을 거슬러 모반을 일으키고, 라키스까지 도망친 임금을 뒤쫓아가 시해하였습니다.

아마츠야 임금의 이야기에서 자기 자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됩니다. 외적인 표지에 근거하여 자신의 가치를 잰다면 다음과 같은 부작용들이 생깁니다.

어떤 일에서 실패하게 되면 자아를 축소시키게 되고, 축소된 자아로 인해 비굴해지고 비겁해지기 십상입니다. 반대로 외적으로 성공하게 되면 자아를 부풀리고, 부풀린 자아는 오만과 오판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실패와 성공은 자신의 가치를 달라지게 하지 않습니다. 에돔군 일만을 물리친 아마츠야 임금은 여호아스 임금에게 참패를 당한 아마츠야 임금과 다르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귀함은 외적인 표지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으로 지어내시고 좋게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눈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비굴과 오만 사이를 오가는 흔들림을 멈추고 싶다면, 아마츠야 임금의 오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하느님의 시선 아래 머무십시오. 그분이 보시듯이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하느님의 사랑은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나에 대한 나의 사랑이 변덕스럽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오직 그 사랑에서만 나옵니다. 항구하게(영원토록) 사랑합시다. (김영선 수녀 / 『관계를 치유하는 33가지 지혜』 / 생활성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