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게룡산 기행

hope888 2014. 9. 22. 14:15

계룡산 기행

 인생은 여행으로 비유된다. 그래서 폭 넓은 생을 바라는 사람들은 자주 여행을 한다. 여행을 하면 건강도 좋아지고, 우울증도 스트레스도 모두 다 사라진다고 한다. 여행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산으로 바다로 들로 아니면 해외로, 그리고 단일 치기로 아니면 며칠간의 계획된 여행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멋진 신혼 여행을 준비하기 위하여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늦은 가을에 동료 선생님 세 분과 함께 2박 3일 예정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여 오후 5시 기차로 논산을 향해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기차 칸에서 음악 감상과 더불어 느긋하게 맥주 잔을 기울이며 올라 가다가 金 선생이 동부인하여 상경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평소에 김 선생과는 동갑내기로 친하게 지내 온 터라 무척 반가웠다. 그의 부인이 몸이 조금 불편하여 서울로 진찰 받으러 가는 길이라 하여 조금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같이 맥주 잔을 기울이면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인생을 논하다가 논산 역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우리 일행은 새벽 1시에 역을 나서게 되었는데, 논산은 여수보다 북쪽에 위치하여서 인지 무척 쌀쌀하였다. 잔뜩 정이 담긴 느린 충청도 사투리가 우리의 여정을 더욱 흐뭇하게 하여 주는 것 같았다.

역 앞의 조그마한 여인숙에 들어 짐을 풀고 나서 또 다시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이번 여행이 보람되고 재미있고 멋있게 끝나기를 기원하면서 건배하고 또 건배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논산에 있는 동양 최대의 석불인 은진 미륵을 보기 위해 관촉사로 가기 위하여 새벽 5시 반에 시내버스 주차장을 나갔더니 시간이 너무 일러서인지 버스가 운행 전이었기 때문에 옆에 있는 해장국 집에서 막걸리로 해장을 하고 돈을 치르려고 했더니 주인이 우리들의 차림새를 보고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조금 다투었다. 어제 저녁의 좋았던 인상이 이 조그마한 사건으로 우리들에게 논산이 달리 보이기도 하였다.

시내 버스로 관촉사에 도착하여 진입로를 터덜터덜 걸어 올라가면서 보니까 입구가 너무나 멋이 있었다. 어떤 사찰보다도 잘 꾸며져 있었다. 박 대통령이 다녀가느라고 치장하였다는 사실에 조금 어색해 했지만 하여튼 이른 아침에 관촉사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그 곳에서 약수를 많이 마셔서 배고픔을 견디고, 동양 최대의 웅장하고 수려하며 인자한 미소를 띄우고 우뚝 서 있는 미륵불을 보니 잠시 울적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아서 좋았다.

여명의 빛을 얼굴 전면에 가득히 받으며 인자하게 웃고 서 있는 석불을 대하니 내 자신이 엄숙해지고 불심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 같았다.

한시간 정도 돌아 다니다가 관촉사를 뒤로 하였다. 이 때는 뱃속이 아주 텅 비어서 쪼로록 소리가 옆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커서 민망할 지경이었다.

관촉사 입구에 있는 상점에서 막걸리 사발에 도토리 묵은 그야말로 천하일품이었다. “이 맛으로 여행하는 거야.” 교감 선생님의 일갈에 우리는 긍정의 폭소를 유쾌하게 터뜨렸다.

그 곳에서 택시를 대절하여 논산을 통과하여 부여로 줄달음 쳤다. 부여에 도착하여 보니 오전 9시 30분이었는데 부여는 조그마한 읍이었다. 대절 택시로 부소 산성까지 가서 잘 정돈된 포장 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서 받은 첫 인상은 깨끗함이었다.

나는 부여에 가면서 한가지 기대감이 있었다. 내 자신이 백마강을 한번도 본 경험이 없으면서도 학생들에게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소정방과 용과의 싸움을 실감나게 들려주곤 하였기 때문에 도대체 백마강이 얼마나 웅장하고 커다란지를 보고 싶었고, 조룡대 위에 뚜렷하게 찍혀 있다는 소정방의 발자국도 찾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내가 괜히 와서 보았다는 후회가 앞섰던 것이다. 부소 산성은 백마강이 감싸고 굽이 굽이 흐르고 있었지만 여수 앞 바다를 상시로 보고 살고 있는 나의 눈에는 너무 초라한 몰골이었다.

무척이나 실망을 하고 우리 나라 사람들도 중국 사람들 못지 않게 침소 봉대 하는 경향이 뚜렷함을 피부로 느끼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맨 먼저 낙화암에 도착하였다. 모든 것은 전설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임을 실감하면서 구경을 했는데 정상에는 백화정이 우뚝 솟아서 3천 궁녀들의 넋을 위로해 주기 위하여 오늘도 화려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백화정에서 잠시 3천 궁녀의 넋을 위로하는 묵념을 하고 나서 바삐 서둘러 고란사로 갔다. 고란사는 아주 오래된 사찰이었다. 고요한 곳에 위치하여 저절로 퇴색해 가는 절을 바라보며 화려했던 백제의 문화를 생각하면서 다시금 인생의 무상함을 실감하고, 배가 부르게 고란사의 약수를 마셔 댔다.

같이 간 교감 선생님은 자기 딸이 이번 예비 고사에 우수한 점수로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뒤로, 우리는 그곳을 아쉬워하면서 떠났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 밤에 ....” 구성지게 합창을 하며 부소 산성을 두루 구경하며 다녔다. 어떤 곳에는 나.당 연합군에 대항하기 위하여 주둔했던 병사들의 군량미가 불에 타서 천여 년이 지난 지금, 까맣게 탄화되어 발견되기도 하고, 백제 시절의 3충신인 계백, 성충, 홍수의 영정을 모시기 위한 사당을 한참 짓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와 보리라 기약하며 시외 버스로 공주에 갔다. 공주에 살고 있는 여자들은 공주님같이 다들 예쁘게 보였고, 그야말로 교육의 도시다웠다. 공주 시내가 온통 검은 교복 일색이었으며 학교 수가 여수보다도 훨씬 많았다.

터미널 옆의 여인숙에 숙소를 정하고 나서 공주 공원에 놀러 갔다. 그 곳에서 공주 여중생 3명을 만나서 그들의 안내로 공주의 명승지를 두루 구경하였다. 무령왕릉의 웅장하고 화려한 연화 문전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한가지 섭섭한 것은 여인숙에 카메라 후래쉬를 놓고 온 관계로 무령왕릉의 내부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도 찍지 못한 것이 섭섭했다.

그 다음으로 무령왕릉의 뒤에 있는 곰나루를 찾았다. 곰나루 터는 백마강과 마찬가지로 몹시 초라한 행색이었다. 곰과 나무꾼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곰 나루터에서 싱싱한 잉어 회에 소주 한잔 ‘커 !’ 하고 싶었지만 잉어를 잡는 사람도, 구경할 만한 것도 없었다.

여대생인 듯한 여인 둘이 우리 앞에 멀찌감치 앞서 가기에 이야기나 하려고 바삐 발걸음을 하였으나 따라 잡지 못하고, 시내까지 와서 여중생들을 돌려보내고 쉬고 있으려니까 아까 그 여중생들이 다시 놀러 와서 그들의 도움으로 가지고 갔던 돼지 불고기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 조금 이야기하다가 그 애들을 돌려 보냈다. 이렇게 자기 고향에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조그마한 친절을 베풀어 주는 일이 얼마나 공주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했는지.......

김 선생님과 제주도 비바리 처녀와의 풋사랑 이야기가 그 다음날 계룡산 중턱의 변소 칸까지 화제가 이어지고 심지어는 여수의 아꾸찜 집의 술잔 안에 까지 이어진 잠꼬대 사건, 아주 비싼 막걸리, 그리고 외로운 새우잠 등 등. 아침 일찍 버너에 아침밥 지어먹고 버스 편으로 계룡산에 도착하였는데 무척 단풍이 아름다웠다. 소주병 3개를 배낭에 넣고 용감히 정상을 향하여 출발했다. 도중에 갑사라는 절에 들렀는데 임진왜란 때 조헌 장군과 함께 용감히 싸웠던 영규 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기에 묵념을 하였다. 그 뒤에 녹음기를 틀어 음악 감상을 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정상을 향했다. 산이 좋아 산에서 산다는 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서로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반갑게 “수고하십니다!” “정상이 다 와 갑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등의 정이 듬뿍 담긴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서 3시간 여의 시간을 소비하여 바라던 정상에 올랐다.

도중에 정방 폭포와 옛날의 수도하던 흔적들을 많이 보았다. 인간은 약하디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웅장한 대 자연을 보면 저절로 위축감이 들어 불심이 저절로 솟아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정상에 서서 내려다보면 계룡산은 마치 용이 누워 있는 형상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정상에서 고함을 질러 보고 누워서 하늘을 보기도 하고 물구나무를 서서 거꾸로 이 세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마음껏 호연지기를 발산하고는 동쪽으로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조금 내려오니까 바위가 우뚝 서 있었는데 정한수가 놓여 있었고 촛불이 타고 있었으며 어떤 젊은 여인이 웅장하게 서 있는 바위 앞에서 다소곳이 합장을 하고 간절히 소원을 빌고 있었다. 아마도 아기 하나를 점지해 달라고 하나 보다. 그곳에서 잠시 쉬면서 마지막 불고기를 소주잔에 헌상하였는데 그 맛이야 말로 천하 일품이었다. 계속 내려오면서 보니 도중에 오뉘 탑이 있었다. 옛날 옛날 이곳 암자에 불심이 깊은 젊은 스님 한 분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커다란 호랑이가 방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신음을 하고 있기에 나가 보았더니 호랑이 앞발에 커다란 가시 하나가 박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스님은 무서움을 무릅쓰고 앞발을 들어 올려서 가시를 뽑아 주었다고 한다. 커다란 은혜를 입은 그 호랑이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 자기가 잡아 먹어야 할 운명의 여인을 스님이 공부하고 있는 암자에 물어다 내려놓고 “으헝!” 하고 한마디 울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스님은 그 처녀를 살려 내었는데, 그녀는 자기의 생명의 은인인 스님을 무척이나 좋아하여 결혼하기를 애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불심이 두터운 스님은 결혼을 거절하는 대신에 오누이가 되자고 맹세한 후에 그 다정한 오누이는 열심히 불경을 공부하여 둘 다 성불하였으며, 끝까지 다정한 오누이로 일생을 살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그 오누이의 애틋한 사랑을 오랫동안 칭송하기 위하여 오뉘 탑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오뉘 탑에서 사진을 여러 장 찍은 후에 우리는 계속 하산하여 동학사에 도착하였다. 동학사는 무척이나 큰 사찰이었다. 대전에서 가까운 거리라서 인지 등산객이 무척 많아서 인산 인해였다.

그곳에서 김 양과 최 양을 만나서 그녀들과 동반해서 동학사를 구경하고 개울가에서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 먹고 대전에 도착, 여수행 특급열차를 타고 그녀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내려 오다가 김제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피곤한 몸을 계속 부대끼다가 열차 안에서 해남 아가씨를 만나서 다시금 인생 이야기를 논하다가 헤어지고 우리 일행은 여수에 무사히 도착, 아꾸탕 집에 들러 소주잔과 더불어 간단한 해단식을 하고 헤어짐으로써 이 기행문도 끝낼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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