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캐나다 토버머리에서 인디언과 함께

hope888 2014. 10. 18. 08:25

캐나다 토버머리에서 인디언과 함께

새벽기도 후에 큰빛교회에서 제공하는 맛있는 미역국을 먹은 우리 가족은 1박 2일의 가족 캠핑을 떠났다.

토론토를 출발해서 '휴런호'와 '조지안 베이'의 한가운데 있는 브루스 반도의 최북단에 있는 '토버머리 레저타운'으로의 여행이다.

지난 겨울에는 '호스 슈' 스키장에 갈 때 망망대해 같은 설원을 달려 보았는데 이번에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원시림 숲 속을 달렸다. 듬성듬성 노랗게 익은 밀밭과 끝없이 나타나는 목장들이 우리의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오렌지빌'에서 간단한 요기와 커피를 마실 때 옆자리에 복장이 특이한 사람들이 있었다. 가이드가 귓속말로 인디언이라고 하니까 아들이 인디언이라고 하면 기분 나빠하니까 "First Nations"라고 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두 아들로부터 캐나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우리와 함께 여행하는 대학생 남매는 유학 준비 차 캐나다와 미국을 돌아보는 중이고 그의 이모는 남편이 은행원인데, 이민을 목적으로 조카들과 함께 배낭여행을 왔다고 한다.

우리 가족과 그들은 좁은 공간인 차 안에서 함께 하다 보니 친해져서 즐겁게 담소하면서 스스럼이 없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게 곧바로 뻗어있는 아스팔트 길을 시속 8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많은 차의 꽁무니에는 모터보트가 달려 있거나 자동차의 지붕 위에 카누나 카약이 묶여 있거나 했다. 이동식 집이라는 비-클 하우스 차량도 많았고 그 차량들 사이에 검정색 가죽 옷으로 차려 입은 멋진 오토바이족도 함께 달렸다.

캐나다인은 모터보트를 가지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어디를 가든지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수많은 물고기가 그들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4시간의 기나긴 드라이브 후에 '토버머리'에 도착한 후 미리 예약해 둔 통나무집인 '캐빈' 과 '인디언 텐트'에 짐을 풀었다.

'캐빈'에는 처음 보는 신기한 인디언 물건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우리를 섬뜩하게 하는 것들도 있었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게 된 인디언 마을은 "Che Mao Zah"라는 곳이다.

컵라면으로 요기한 후에 항구로 구경을 갔다. 돛대가 유난히도 높은 수많은 '요트'와 다양한 크기의 '모터보트'들, 그리고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들을 구경하면서 즐겁게 지냈다.

서둘러서 "Dorcas Bay" 해양국립공원에 갔다. 간단한 반바지 차림의 우리들은 부드럽고 고운 모래로 만들어진 엄청나게 넓은 백사장을 거닐면서 이국의 정취에 취했다. 날이 차가워서 목욕은 하지 않고 맨발로 호숫가를 거닐면서 만족을 했지만, 캐나다인들은 추운데도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백사장 한편에 노랗게 피어있는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예쁘게 피어 있어서 한국에서 온 여대생과 이모가 꽃송이를 꺾어서 꽃다발을 만들다가 공원 관리원에게 혼이 났다. 한참 혼이 날 때 하필이면 경찰들이 순시하기 위해 오는 바람에 두 여자는 잔뜩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리게 되었다. 두 아들이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두 여자의 통역을 해 주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풀려나면서 압수당한 꽃다발 중에서 몇 개의 꽃송이를 기념으로 받아 든 두 여자는 너무나 놀라고 창피해서인지 차 안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캐나다는 "환경 캐나다"를 목표로 모든 법이 환경친화적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 파괴도 용서하지 않는다. 야생화 한 송이도 꺾을 수 없는 것이다. 낚시할 때에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하루에 단 두 마리만 가지고 올 수 있도록 엄격하다.

저녁에 통나무집 앞의 캠핑장에서 준비해 간 LA 갈비로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매우 맛이 있고 운치가 있어서인지 꽃다발 사건 때문에 혼이 난 두 여자도 즐거워했다.

'캠프파이어'가 이글거리는 가운데 인디언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북소리에 따라 현란하게 몸을 움직이는 춤사위에 우리들은 한껏 기분이 상기되었다. 인디언 음식은 향료를 쓰지 않아서 매우 담백했다. 통밀로 만든 빵과 옥수수, 감자, 그리고 통닭구이 등이 있었다.

배가 부른 우리들은 적극적으로 인디언 전통 축제에 참가했다. 큰 북과 작은 북, 그리고 다양한 인디언 악기들을 치면서 즐거워했고, 뚱뚱한 인디언 여자가 선창하면 따라서 하는 인디언 노래와 춤의 한마당 한 복판에서 우리도 함께 어울려서 춤을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마치 인디언이 된 듯 한껏 뛰놀며 춤추며 노래 불렀다.

마치 곰이 나올 것 같은 적막한 숲 속 한 가운데에서 인디언 텐트들을 배경으로 힘차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고 서며 신나게 놀았다. 밤이 깊어가고, 장작불도 사그라질 때 우리도 지쳐서 하나 둘씩 통나무집과 천막으로 사라졌다.

우리 부부는 2인용 캐빈에서 통나무의 은은한 향기와 태고의 숲이 품어내는 신비한 향을 맡으며 머리맡에 있는 액자 속의 무섭게 노려보는 인디언 추장의 보호 하에 잠을 잤다.(두 아들이 '인디언 추장' 액자가 무서워서 우리와 방을 바꾸었다.) 인디언들에게 다급하게 쫓기는 꿈도 꾸었다.

주일이라서 일찍 일어난 우리 가족은 함께 모여서 가정 예배를 드렸다. 무인도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한 두 방울 비가 와서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비가 개어서 일정대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탄 배는 밑창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강바닥을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물이 맑아서 마치 거울 같이 환하게 밑을 내다 볼 수 있었다. 2층으로 되어 있는 배 위에서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니 마치 망망대해에 온 느낌이었다. 분명히 호수인데도 말이다.

수평선 위에는 점점이 떠 있는 아름다운 섬들이 많아서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우리는 무인도 중에서 특히 경치가 아름답다는 '플라워 포트'라는 곳에 갔다. 여객선이 섬에 접안할 수 없어서 모터보트로 갈아탔다. 노란 구명조끼를 입고 엄청나게 흔들리는 조그마한 모터보트를 타는 즐거움은 여행 보너스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무인도에서 우리는 가지고 간 라면과 갈비를 요리해서 먹었는데 지나가는 캐나디안들이 냄새가 너무 좋다고 한마디씩 하면서 지나갔다. 우리들은 같이 먹자고 권하면 한사코 사양을 하면서 맛있게 먹으라고 사양한다. 참으로 유쾌한 사람들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웃으며 "하이" 하고 인사를 한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우리의 파티장에는 다람쥐와 갈매기도 동참했다. 우리 주변 가까이 와서 혹시나 먹을 것이 없나 하고 바라보는 그들의 눈망울이 예뻤다. 그들은 우리를 도무지 무서워하지 않았다.

점심 후에 우리는 원시림에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서 섬을 산책했다. 수많은 세월의 연륜이 쌓이다 보니 오솔길은 온통 낙엽이 쌓이고 썩어서 마치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감촉이 묻어났다. 하도 신기해서 조금 파보니 낙엽들 속에 부식토들이 검게 변해서 겹겹이 쌓여 있었다. 우리의 발자국은 마치 발바닥에 스프링을 단 것처럼 푹신푹신해서 기분이 좋았다. 여기저기에는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야생화들이 마치 숲 속의 요정처럼 자신의 자태를 숨기면서 수줍게 피어 있었다.

숲이 울창하고 고사목들이 많아서 마치 아주 오랜 옛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한참 가다 보니 'Flower Pot'가 나왔다. 억겁의 세월을 견디어 오면서 비바람과 폭풍우, 해일 등이 만들어 낸 자연의 조각품을 감격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우뚝 솟은 바위가 마치 한 송이 꽃 같은 형상이라서 이런 이름이 지어졌나 보다.

우리가 탄 유람선은 '패덤 파이브' 해양 국립공원을 유람했다. 이곳은 지형이 아름답고 독특하며 19개의 섬이 포함된 수상 공원으로 공원의 경계선 안에 19세기 말 침몰된 것으로 보이는 20여척의 난파선이 물속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유리로 된 배 밑바닥을 통해서 난파선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물이 마치 수정 같이 맑아서 세계의 '스쿠버'들이 한번쯤 꼭 와보고 싶어하는 곳이라고 한다.

토버머리 항구로 돌아오는 유람선상에서 나는 토론토에서 유학 중인 두 아들을 차례 차례 불러서 아빠로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두 아들은 모두다 다소곳이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나는 두 아들에게 어디에서든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고, 항상 남을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대해주며 겸손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꼭 껴안아 주며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라는 축복 기도를 해 주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선상여행을 할 수 있는 내가 무척 대견하고 행복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