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경제 지도는 아주 큰 지도의 단편을 담은 화폐경제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추적되지도 측정되지도 않고, 대가도 없이 대대적으로 경제 활동이 벌어지는 숨은 경제가 있다. 바로 비화폐의 프로슈머 경제(prosumer economy)이다. 나는 『제3의 물결』에서 판매나 교환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사용이나 만족을 위해 제품, 서비스 또는 경험을 생산하는 이들을 가리켜 프로슈머라는 신조어로 지칭했다. 사실 모든 경제에는 프로슈머가 존재한다. 극히 개인적인 필요나 욕구를 시장에서 모두 충족시킬 수 없고, 또 너무 비쌀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화폐경제에서 잠시 눈을 떼면 몇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프로슈머 경제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고, 둘째, 우리가 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의 일부가 이미 프로슈머 경제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셋째, 경제학자들이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는 화폐경제 안의 50조 달러는 프로슈머 경제 없이는 단 10분도 존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프로슈밍은 소프트웨어 샘플을 만들거나, 간질병 환자인 배우자를 간병하는 일, 학교 기금 마련을 위해 과자를 굽는 자원봉사 활동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무한하다. 이런 측정되지 않는 활동들이 시장에서 벌어지면 그것은 모두 생산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이 측정되지 않은 활동들이 비화폐경제의 생산력이 된다. 만약 이러한 활동을 위해 사람을 고용한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지불될 것이다.
슈타인링게는 "가정은 국가 경제에 시장제도만큼의 기여를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가정에서 생산하는 산출은 거의 모두 프로슈밍의 결과이다. 전통 경제학자들은 실생활 경제에 그와 상반되는 증거가 있는데도 숨은 경제활동(프로슈밍)을 하찮게 치부한다. 그들이 프로슈밍을 관심 밖으로 밀어버리는 이유는 화폐경제와 달리 계량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슈밍의 가치가 경제학자들이 수치로 환산하는 화폐경제의 산출과 거의 맞먹는다면, 이는 숨은 절반에 해당하는 50조 달러를 찾아낼 수 있는 셈이다. 오늘날 이러한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혁명적 부의 다음 단계로 이동해 가는 프로슈머 부문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프로슈머 경제의 대표적인 분야인 의료부문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건강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의사와 환자간의 전통적인 관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의사는 여전히 생산자이지만 환자는 복지와 건강에 관한 경제적 산출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슈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식습관을 바꾸고, 금연·금주하고, 운동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해서 건강이 좋아지면 어느 정도가 프로슈머에 의해 생산된 것일까? 로웰 레빈은 "미국 내 85%~90% 가량의 의료 활동이 민간인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두통이 있을 때 아스피린을 먹고, 화상을 입었을 때 연고를 바르는 등 수없이 많은 자가 치료가 여기에 포함된다. 건강에 관한 프로슈밍은 자신을 보살피는 데 도움이 될 과학기술에 직접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모든 질병 감지를 위한 자가 테스트 기구를 구입할 수 있으며, 가정 치료 부문은 이미 의료기구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가 되었다. 프로슈머가 보건 의료 분야에서 무상으로 엄청난 기여를 할 수 있다면, 현재 생산자(의사)를 훈련시키는 만큼의 비용으로 프로슈머를 교육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전체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 지식경제 안에서 의료 위기와 교육 위기가 상호 연결되지 않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이 두 분야에 대한 생각과 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기 위해 상상력을 조금 동원해 보라.
페덱스 소포가 제때 안 오면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걸어 왜 소포가 늦어지고 어디쯤 오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소비자들이 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입력하여 직접 소포를 추적해야 한다. 이처럼 기업들은 노동을 외부로 돌리는 보다 영리한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만약 이를 주도하는 혁신적인 기업에게 상을 준다면 일본의 도톤보리 레스토랑이 받게 될 것이다. 도톤보리에서는 단순한 뷔페 스타일을 넘어 고객이 직접 요리를 한다. 아마존 닷컴은 무보수 프로슈머의 생산성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기업이다. 아마존의 소비자들은 서적과 음반 리뷰, 개인 의견 등의 콘텐츠를 사이트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세무기관도 타인의 무급 노동으로 자기 비용을 절감하는 철면피이다. 그들은 납세자에게 복잡한 장부관리와 세금계산을 떠넘기고 있다. 납세자들은 세금을 내면서 무보수 노동을 하는 격이다. 유급노동과 무급 프로슈밍에 더하여 제3의 무보수 직업까지 추가되고 보니 우리가 시간에 지쳐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프로슈밍의 증가로 노동이 외부로 전가되는 움직임이 강하게 번지자 <딜버트>라는 풍자 만화에 "조금만 있으면 소비자들이 제조에서 배송까지 하도록 훈련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이 말이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
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www.bookcosmos.com
저자인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 금세기 최고의 미래학자라고 불리는 앨빈 토플러는 미국의 뉴욕 대학을 졸업한 후 과학, 문학, 법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다섯 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장 노동자 생활을 했는가 하면 신문 기자로도 일했으며,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경제지인 <포춘>의 편집장, 코넬 대학의 객원 교수 생활도 했다. 『미래 쇼크』, 『제3물결』, 『권력이동』 등 그가 쓴 일련의 미래학 도서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앨빈 토플러의 아내이자 미래학자인 하이디 토플러는 법학과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사회사상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이탈리아 공화국 대통령 메달'을 수상했다.
토플러 부부는 토플러 어소시에이츠(Toffler Associates)를 공동 창설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정부와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제와 기술의 발전, 사회 변화에 대해 조언하고 있으며, 글로벌 트렌드에 대해 집필과 강연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이프라인의 우화 (0) | 2014.08.27 |
---|---|
흥부와 놀부의 자녀교육 -소란희 (0) | 2014.08.27 |
일곱가지 씨앗의 비밀 (0) | 2014.08.27 |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 (0) | 2014.08.27 |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0) | 2014.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