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환자의 진단 기준은 무엇일까? 거식증은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라고도 부른다. 쉽게 말하면 음식을 안 먹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거식증 환자가 음식을 거부하는 첫 번째 이유는 살찌는 것이 싫어서인 경우가 많다. 폭식증은 거식증과 반대로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이다. 그리고 폭식증 환자가 폭식하게 되는 주요 원인은 무리한 다이어트다. 살을 빼기 위해 먹는 것을 오랫동안 참다가 결국 식욕을 이기지 못하고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많은 양의 음식 먹게 된다.
음식을 안 먹는 것과 너무 많이 먹는 것. 어찌 보면 정반대의 일로 보이지만 거식증과 폭식증의 기저에는 공통적으로 살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환자의 기질에 따라 그 두려움이 다른 방향으로 발현되고, 그 양극에 거식증과 폭식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섭식장애는 결국 먹는 데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흔히 알려진 거식증과 폭식증 외에도 음식이 아닌 것을 먹는 이식증, 먹은 것을 역류시켜 되씹는 되새김장애, 극소량의 음식이나 특정 음식만을 먹는 회피적 제한적 음식 섭취장애 등이 있는데 대부분은 소아기나 유아기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거식증과 폭식증 또한 의학적으로는 사춘기 시절에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설명하나, 국내 자료 대부분이 2010년 이전에 나온 것들이라 최근의 세태를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섭식장애는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으로 시작해 많은 양의 음식 을 한꺼번에 먹는 폭식증으로 발전하며 악화된다. 거식증이 폭식증이 되는 과정에는 ‘충동 욕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인내심이 강하고 내향적인 사람일수록 심한 거식증이 될 확률 이 높고, 충동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일수록 거식증에서 끝나지 않고 폭식증으로 넘어가게 될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개인의 성격이 형성되는 가정환경이 거식증과 폭식증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거식증과 폭식증은 같은 원인과 비슷한 증상을 공유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음식을 거부하는 환자를 거식증, 음식을 많이 먹는 환자를 폭식증이라고 구분하기 어렵다.
『섭식장애』(김정욱 지음, 학지사 2016)에서는 거식증 환자를 주기적으로 폭식하는 폭식형 거식증과 계속적으로 음식을 절제하는 절제형 거식증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폭식형 거식증 환자들은 발병 이전에 체중이 많이 나갔을 확률이 높고 체중을 줄이기 위해 구토를 하거나 설사약을 남용한다. 또한 폭식형 거식증 환자는 절제형 거식증 환자에 비해 더 충동적인 성향을 보이며 행동을 통해 충동을 발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딱 여기에 부합했다.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했고 그만큼 다툼도 잦았던 가정환경 탓인지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꼭 해야 하고 화가 나면 화를 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나를 지배하는 욕구는 오로지 식욕뿐이었고, 아주 작은 자극에도 쉽게 휘둘렸다. 시장을 지나가다 맡게 되는 떡볶이 냄새, 치킨 집에서 풍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 TV에 나오는 음식과 그것을 먹음직스럽게 먹는 사람들, 그뿐만 아니라 단순히 잠이 오지 않을 때부터 그저 심심하다고 느낄 때까지 시도 때도 없다.
일단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이성적 사고는 물론 식욕을 제외한 다른 감각까지 모두 마비된다. 음식을 입에 넣기 전까지는 먹어야 한다는 강력한 충동 때문에 초조해지고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며 손이 떨린다. 결국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상상 그 이상의 양을 먹는다.
'먹방' 이나 '먹방 유튜버'가 인기를 끌면서 지금은 많은 양의 음식을 한꺼번에 먹는 것이 특이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그렇게 많은 양의 음식을 한 번에 먹는 것은 사실 비정상적인 행동이다.
폭식증 환자들의 폭식은 결코 먹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 평소 식습관과는 별개의 문제다. 폭식을 할 때는 오히려 평소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음식들을 주로 먹는 경향이 있다. 나는 식욕이 일기 시작하면 제대로 씹지도 않고 단시간에 많은 양의 음식을 위 속 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배가 부른 수준을 넘어 음식이 목까지 차올라 이러다 정말 위가 찢어질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먹방의 대명사라 불리는 한 연예인은 이렇게 말했다. “위는 오장육부 중 유일하게 머리의 지배를 받는다. 나는 배불러도 뇌로 컨트롤할 수 있다.” 웃자고 한 말이었겠지만 사람의 위가 늘어나는 수준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폭식할 때는 한번에 치킨 한 마리, 피자 한판, 식빵 한 봉지, 밥 한솥, 과자 열 봉지 정도는 우습게 들어갔다. 마치 눈에 보이는 모든 음식을 다 먹어치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위에서 소화가 되기 전 이 모든 음식을 다 게워냈다.
이러한 폭식 증상은 환자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 오랜 식욕 억제와 불규칙적인 식사는 우리 몸의 배고픔과 배부름을 관장하는 식이중추의 신호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망가진 식이중추로 인해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배부름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그래서 병이고,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하다.
나는 섭식장애가 다른 병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신체 어느 한 부분에 염증이 생긴 것을 모르고 방치하다가 결국 합병증이 생기거나 심각한 병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식이중추에 이상이 생긴 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식욕을 억제하다가 섭식장애라는 병이 되는 것이다. 다른 환자들이 나아지기 위해 약을 복용하거나 수술을 받는 등 여러 가지 치료를 하듯 섭식장애 환자도 나아지기 위해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낫는 병이 아니다.
섭식장애라는 병에 걸리기는 상대적으로 쉬워도 완치는 쉽지 않다. 재발률도 높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들 하지만 이는 너무 가벼운 표현이다. 한때 우울증을 개인의 의지 문제라 여겨 환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힘내, 이겨낼 수 있어” 같은 무신경한 말을 충고랍시고 건네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건네는 긍정의 말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정도로 우울증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졌다. 극심한 경쟁에 노출된 사람에게 번 아웃이 생기고, 미래에 대한 공포가 극대화된 사람에게 공황장애가 생기듯 섭식장애도 외모가 곧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생긴 질병은 아닐까? 이를 개인의 문제 혹은 의지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김안젤라 /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 창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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