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상(북촌)
'아빠, 물 많이 드세요.'
폭염으로 온 나라가 지글지글 끓던 작년 여름 어느 날, 큰 딸에게서 메일이 왔다. 연일 울려대는 폭염 경보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사무실에 나오는 우리 부부에게 보내는 '경고장'이었다. 다른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매시간 전화로, 메신저로 물 많이 먹고 자주 쉬라는 메시지가 날아온다. 이 나이에 더위를 먹으면 우리 부부가 제일 힘들겠지만 그런 부모를 돌봐야 하는 자녀들도 고생이다. 안 그래도 부지런히 물을 마시는 중이었다.
자식들의 잔소리가 늘어 가는 걸 보면 나도 영락없는 할아버지가 된 게 분명하다. 게다가 나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아니던가. 당뇨, 고혈압처럼 나이 들어 생기는 흔한 만성질환뿐 아니라 허리디스크, 통풍, 담석, 관상동맥 협착을 앓고 있고, 거기에 왼쪽 눈은 전혀 보이지 않으니 자식들로서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4년 전에는 집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다가 계단 하나를 헛디뎌 구르는 바람에 머리를 크게 다쳤다. 다행히 외상만 있을 뿐 골절이나 뇌 기능 손상은 없어서 한 달 정도 치료를 받은 후 퇴원했다. 그 일 이후 아이들은 나에게 '금족령(禁足令)'을 내렸다. 밖에 나가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산에 가지 말라는 엄명이었다.
평생 산을 오르며 지친 심신을 달랬던 나에게는 슬픈 명령이었다. 안 그래도 체력이 떨어져 산을 잘 오르지 못하는데, 자식들까지 못 하게 막으니 더욱 슬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할아버지는 무릇 자녀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법이다.
자녀들이 어릴 때 부모인 내 말을 잘 들어 주었듯이 말이다.
때론 구차하게 느껴져도 원하는 걸 얻으려면 재롱을 섞어 가며 협상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어 낸 타협안이 잘 만들어 놓은 올레길과 둘레길은 가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팔각정에 올라 부암동을 거쳐 구기동의 우리 집까지 가는 길을 즐겼다. 하지만 이 즐거움도 어쩌다 누리는 호사다. 더운 날, 추운 날, 비 오는 날, 미세먼지 심한 날을 빼면 갈 수 있는 날도 적으려니와 체력이 점점 떨어져서 산책하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언젠가 이런 산책마저 그림의 떡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느끼는 슬픔은 자녀들의 금족령으로 인한 슬픔과는 비교가 안 되리라. 그러니 조금이라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산책의 기쁨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나이 들어 찾아오는 여러 가지 변화 중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단연 신체의 노화다. 나이 들면 건강이 나빠질 일만 남았지 반대로 더 좋아지기 어렵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잘 안 들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체력이 저하돼 마음대로 바깥 걸음 하기가 힘들다. 기억력도 떨어져 약속도 깜빡하고, 한두 가지 병쯤은 달고 살게 된다.
여든이 넘으면 노화 속도가 한층 빨라진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쳐 온 나도 여든을 넘긴 후부터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 강연할 때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인다. 예전 같으면 머릿속에 저장해 놓은 강의록을 불러내 줄줄 읊는 식으로 강연을 했다면, 여든이 넘은 후에는 꼭 파워포인트를 켜 놓고 강연한다. 그래야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고, 맥락에서 벗어나 삼천포로 빠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또 강연이 끝난 후 질문을 받을 땐 질문자 옆으로 다가가서 눈을 감고 집중해서 그의 말을 듣는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래야 질문의 뜻을 명확히 이해하고 정확한 답을 줄 수 있어서다. 예전 같으면 청중들의 질문을 다 듣고, 비슷한 질문을 한데 모아 체계적으로 답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만한 집중력과 논리력을 한 번에 응집시키는 일은 무리다. 글을 쓰는 일도 예전 같지 않다. 남아 있는 오른쪽 눈의 시력마저 나빠져서 모니터의 글자가 잘 안 보이는 데다, 그마저도 중간중간 쉬어 가며 봐야 한다. 그러니 한 장의 글을 쓰는 데 꼬박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함께 병원에 들러 정기적인 진료를 받고 약을 타서 나오는데, 그 약이 한 보따리나 되었다. 그걸 본 아내가 "그 약이 다 뱃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무섭다"라며 기겁하기도 했다.
하지만 찾아오는 노화를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프면 의사의 말을 잘 따르고, 약을 꼬박꼬박 먹으면서 병을 다스리는 수밖에 없다. 기억력이 나빠지면 달력에 표시를 잘 해 두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첨단 기기의 도움을 받으면서 노쇠한 내 몸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법을 하나씩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마음껏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슬퍼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말이다. 힘에 부치는 일이 늘어 간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그것은 응당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오랫동안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런데 환자들은 대개 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아마 환자들이 오랫동안 고통을 감수하고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외모에 영향을 끼친 게 병력만은 아닌 듯했다. 환자들은 나를 만나면 자기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아느냐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마음도 힘들고, 주위 사람들과 세상도 제 뜻대로 안 된다며 불평을 해댔다. 환자들의 아픈 마음을 잘 듣고 객관적으로 구성하여 되돌려주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역할이기에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자연인으로서 나는 그때마다 한 가지를 결심했다. “몸이 아프다고,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주저앉아 푸념하지 말자.” 명실상부한 노인이 된 지금, 과거의 나를 돌이키면 환자의 호소에 공감하지 못하는 젊은 의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가슴 한켠에는 환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미안함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직접 나이가 들어 봐야 노화와 노쇠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힘들다 말해 봐야 별 소용이 없다. 아직 젊은 그들은 '나이 듦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나이 든 자의 품격이란 무엇일까. 노화를 수용하되, 지금 현재 누릴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즐기는 적극적인 태도가 아닐까. “너희들은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내가 살아 봐서 다 아는데…” 하는 식으로 자기 말이 전부 옳다는 고집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게다. 젊어도 봤고 늙어도 봤으니 나이 든 자의 수용력과 표현력은 한층 더 풍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아프다고 징징대거나 힘들다고 푸념하는 식이 아니라 좀 더 세련되고 현명한 방식으로 나이 듦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품격 있는 태도일 것이다.
"아빠, 물 드셨어요?"
메일로만 전한 것이 미덥지 못했는지 딸에게 전화가 왔다. 자녀들로부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후학들로부터 헤어지는 인사로 “건강 조심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나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받아들이기 싫은 거부심도 든다. 나 아직 정정한데, 내 마음은 한창인데….' 하지만 이런 마음을 절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들의 말이 백번 옳다. 싫은 마음은 노화를 받아들이는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슬픔은 받아들이되 거부심은 내려놓아야 옳을 것 같다.
"그래 맞다. 자녀들이나 후학들이 갖는 연민의 마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자. 말 잘 듣는 착한 아버지로 살자!' 그래도 어떤 날은 괜한 심통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땐 '내 체력이 쇠잔해서 산행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나를 걱정해서 안 가는 거다'라는 식으로 슬픔을 달래 본다.
어린아이가 할 법한 유치한 핑계지만, 그러고 나면 슬픔이 한층 가라앉는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나면 아프다고, 힘들다고 푸념할 일이 없다. 이 또한 내 나이에 적응하는 나만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이근후 /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메이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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