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영화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

hope888 2022. 4. 21. 09:48

감독: 이성강(2006년 한국)

음악: 양방언

등장인물: 손혜진(여우비 목소리), 류덕환(황금이 목소리), 공형진강 선생님 목소리)

배경: 21세기, 한국

상영 시간: 85 (전체 관람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SF 애니메이션

 

이솝우화 속 여우는 꾀 많고 교활한 동물이지만,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지혜의 상징으로 그려집니다. 한국에서 여우는 어떤 존재일까요? 전설 속의 구미호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라는 뜻으로, 예쁜 여자로 둔갑하여 지나가는 나그네를 유혹하고 간을 빼 먹는 요망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한 세대 전 인기를 끌었고 2009년 리메이크된 TV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선 구미호가 좀 더 인간적으로 그려지며, 오히려 인간이 구미호보다 더 무섭고 교활하게 그려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점점 더 사람들이 영악해져 가는 세태를 반영하는 듯,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심지어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구미호 캐릭터가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바로 <천년여우 여우비>의 여우비가 그 주인공입니다. 여우비의 나이는 백 살로, 구미호의 평균 수명을 천 살이라 치면 여우비는 사람 나이로는 열 살 또래입니다. 여우비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온 아이로 설정되었는데 이는 여우비가 1900년대에 태어났고, 당시 여우들이 대량으로 사냥됐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20세기가 되면서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전환되고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자연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니 백 년이 지난 2006년의 시점에 여우, 그리고 구미호는 거의 멸종 상태라는 거죠.

희귀종이 된 여우비는 불시착한 ‘UFO'와 조우하고, 이후 외계인들과 함께 인간을 피해 움집 같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나뭇잎으로 뒤덮인 아지트는 인간의 눈을 피하는 방공호인 셈입니다. 그러던 구미호가 어느 날 우연히 시골에 놀러 온 사람들을, 그것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10대 소년소녀를 만나게 된다면? 이러한 설정으로 천년여우 여우비>는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여우비는 고양이, 사람(어른이나 아이), 나비, 토끼, 새 등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꼬리의 개수만큼이나 다양하다는 구미호의 둔갑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여우비의 사춘기적 성향, 즉 변화무쌍한 성장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여우비의 꼬리는 아홉 개가 아니라 다섯 개로 그려지는데, 아직 성장하는 중이라 그렇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이 꼬리들은 펼쳐지면 꽃 같기도 하고 단풍잎 같기도 한데, 가을에 빨강, 노랑, 갈색으로 변하는 나뭇잎과 구미호의 다채로운 변신은 왠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인간보다 발달한 문명에서 왔을 것이라 짐작되는 외계 생명체 요요들에게 여우비는 "너희들이 사는 별은 어떻게 생겼는데?"라고 묻습니다. 요요들은 자기들의 고향은 별 전체가 생명체이며 산과 바다. 하늘 등 모든 것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밤이면 땅이 노래를 부른다며 합창을 해 보이기도 합니다. 21세기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겐 어림없는 생각이지만, 여우비가 곰, 나뭇잎, 심지어 욕조와도 대화하는 장면은 이 같은 애니미즘의 흔적을 보여 주는지도 모릅니다.

황금이는 '황금빛 들판에서 처음 만난 아이'란 의미로, 엄마 아빠의 사랑의 결실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여우비가 인간의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자신의 엄마로 변신해 학교 선생님과 상담하러 갔을 때 황금이의 사연이 잠깐 언급됩니다. 엄마를 잃고 나서 비뚤어진 아이라고 선생님이 말하자, 여우비는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입니다.

여우비 역시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 없이 버려진 존재나 다름없었기에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을 테죠.

모성 본능, 즉 돌봄의 마음은 비단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연민과 배려심의 성숙된 형태를 일컫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사춘기에 일어나는 이성에 대한 사랑은 모성 본능을 깨어나게 하고, 역으로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는 모성 본능은 사랑의 감정을 성숙케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사람의 영혼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고 부추기는 악마(그림자 탐정)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위험에 처한 황금이 대신 스스로의 영혼을 새장에 가두는 여우비의 모습은 사랑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마지막 장면, 새 한 마리가 처음 황금이와 여우비가 만나는 장면에 등장했던 카나바(악몽을 없애 주는 상징이라 믿어지는 구슬과 매듭, 깃털로 장식된 인디언들의 부적)를 물고 날아가다가 아래로 떨굽니다.

카나바를 주워 들고, 어디선가 본 물건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녀의 얼굴은 여우비와 닮아 있습니다. 새가 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자유로운 영혼으로 거듭난 여우비를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여우비가 인간 소녀로 다시 태어남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 따르면, 영혼은 원래 하얀색이지만 사랑을 하게 되면 푸른색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마음에 여러 결이 있듯이 영혼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색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왜 하필 사랑을 분홍색도 붉은색도 아닌 푸른색이라 했을까요? 수줍은 연분홍빛으로 시작되어 뜨거운 붉은색으로 타오르는 게 사랑이라는 통념을 깨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각본까지 맡은 이성강 감독은, 여우비처럼 상대방을 위해 죽음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을 신비와 고독의 색인 푸른 빛깔로 나타내어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이타적 사랑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1. UFO unidentified flying object

 

흔히 말하는 '비행접시'를 비롯한 정체불명의 비행물체들을 일컫습니다. 19476월 미국 워싱턴 주에서 최초로 목격되었고, 이후 세계 각지에서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1967년 미국 항공우주학회에 이를 조사하는 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으며, 보고된 사례들 중 1퍼센트 정도는 신뢰성이 있으나 그 정체는 여전히 불명이라 합니다. 우주인의 이동 수단 외에도 기구 , 유성, 방전(放電), 구름에 비친 탐조등 불빛, 어느 국가의 비밀 무기 등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2. 애니미즘과 애니메이션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있다는 믿음을 애니미즘(animism)이라고 합니다. '애니미즘''애니메이션'(animation)은 모두 라틴어 아니마(anima: 영혼)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에서는 동식물은 물론 탁자, 거울, 옷장 같은 사물들도 인간과 똑같이 말을 하고 희로애락을 느낍니다.

철학자 김용석은 애니메이션을 '혼화(魂畵: 영혼이 담겨 있는 그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3. <천년여우 여우비>에서 과묵한 곰이 도리어 자폐아에게 소통의 매개 역할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길잡이: 곰이라는 동물은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아이들 그림책의 단골 소재로 등장합니다. 야니크 스트륨 감독의 <곰이 되고 싶어요>도 곰을 주인공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천년여우 여우비>에서 곰 인형과 반달곰의 모성으로 인해 자폐아 종희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말문을 여는 모습은 주목할 만합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자폐아 종희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그 치유 과정을 보여 준 것은 통신 수단과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일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고 오해와 불신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세태를 은연중에 지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4. 여우비의 꼬리가 단풍잎처럼 다섯 갈래로 그려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길잡이: 나무는 겨울이 오면 잎을 다 떨구어 거름으로 만들고 뿌리와 줄기만을 최소한의 양분으로 버텨 내게 하는데 떨구어지기 전 광합성을 중단하여 색이 변한 나뭇잎을 단풍이라 부릅니다. 잎의 희생으로 나무는 이듬해 더 큰 잎과 예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겠지요. 이는 여우비가 희생으로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지키고 키워 낸다는 영화의 내용과도 상통하는 듯합니다. <천년여우 여우비>의 배경을 단풍이 떨어진 늦은 가을 산으로 잡았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진 않을 것입니다. 또한 타인을 위해 희생함으로써 진정한 변신을 이룬다는 설정은 모성 본능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 본연의 힘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 아닐까요? 남녀 불문하고 인간에 내재된 모성 본능은 사랑의 감정을 성숙시켜 인간을 진정한 자아실현으로 이끄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5. 영화에서 여우비가 외계인과 인간들을 대하는 마음과 행동의 변화, 그리고 '환생' 모티프는 성장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위계론에 대해 알아보고, 영화 속에서 여우비의 행동들이 각각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 해석해 보세요.

 

6. 왜 외계인들은 사고뭉치나 멍청이 캐릭터로 그려졌을까요?

 

길잡이: SF영화가 과학의 총합이자 지구 문화를 기반으로 한 상상의 산물이라면, SF 속 외계 생명체는 지구인의 의식이 반영된 존재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흔히 앞선 문명을 가졌다고 설정되는 외계인들이 어수룩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도 이 영화의 참신한 설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외계인과 왕따, 자폐아를 같은 선상에 놓고 있는 듯합니다. 외계인의 불시착이 시간적·공간적 오류라면, 부적응 또한 부적합한 주변 환경에 의해 상대적으로 비교되고 평가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앞선 문명과 늦된 아이들을 동일선상에 놓은 것은 바보와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이며 평가하는 주체의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라 생각됩니다.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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