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Mars Attacks!
감독: 팀 버튼 (1996년, 미국)
등장인물: 잭 니컬슨(데일 대통령, 아트), 글렌 클로스(부인), 매네트 베님 (바버라), 피어스 브로스넌(케슬러 박사), 내털리 포트먼(태피 데일)
배경: 20세기 미국
상영 시간: 106분 (15세 관람가)
노래 한 곡이 지구를 구하다.
2004년 초 쌍둥이 무인 탐사선 ‘스피리트'와 '오퍼튜니티'가 화성에 착륙했습니다. 그에 이어 2008년 화성에 안착한 ’피닉스'는 화성 지표면에 물이 흐른 흔적을 사진으로 지구에 전송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들 탐사선의 주된 임무는 화성의 환경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가를 규명해 내는 것입니다. 탐사선이 보내온 화성 소식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로 미 항공우주국 사이트는 연일 붐볐으며, 미국에서는 '마스 마니아(Mars mania)'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화성에서 지구를 탐사하고 공격해 온다는 발상으로부터 만들어진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팀 버튼의 <화성 침공> 입니다. 이 영화는 1962년 어느 풍선껌 회사가 껌 포장지에 끼워 넣었던 그림카드 시리즈 '화성 침공'의 이미지를 차용해 만들어졌습니다. 화성인의 기괴한 외모는 물론 엽기적인 발상, 기존 가치에 대한 풍자와 전복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미국의 한적한 시골 마을, 등에 불이 붙은 소 떼들이 지나가고 이를 뒤따라 UFO로 보이는 은빛 접시가 하늘로 사라집니다.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수많은 비행접시들이 기계음을 내며 지구로 향하고,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 비행접시의 가장자리를 따라 회전하며 나타납니다. 장면이 바뀌어 한가로운 오후의 백악관, 돋보기안경으로 “허블 우주 망원경"이 촬영한 사진을 살펴보는 미국 대통령 데일의 표정은 자못 심각합니다.
공보관 제리는 국민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가볍게 말하지만, 테커 국방부 장관은 “이 일은 극비로 다뤄야 하며 비상 체제에 돌입하는 게 마땅하다.”고 굳은 표정으로 주장합니다. 옆에 있던 케이시 장군은 중도적 입장을 취합니다. 천체물리학자 케슬러 박사는 “화성인들이 지구까지 올 수 있다면 기술적으로 상당히 발전되었을 것이고, 이는 그들이 평화적이란 얘기며 선진 문명은 곧 야만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라는 알쏭달쏭한 삼단 논법을 폅니다. 박사의 말에 대통령은 안심하는 표정으로 이 일은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며, 역사적인 순간에 자신이 위대한 정치가답게 보일 수 있도록 연설을 준비하라고 공보관에게 지시합니다.
한편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갤럭시 호텔‘의 주인 아트는 화성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다며 흥분합니다.
부인 바버라도 탐욕과 개발로 얼룩진 지구를 구원할 메시아야말로 화성인이라며 들뜹니다.
화성인들이 착륙할 예정인 네바다 사막에는 구경꾼들이 모여들고, 케이시 장군은 의전을 갖추어 화성인을 맞습니다. 드디어 붉은 가운을 걸친 화성인이 커다란 가분수 머리로 꽥꽥 소리를 내며 등장합니다. 화성인들은 케이시가 청한 악수에 응답하지 않지만, 케이시가 도넛 모양을 그리자 따라서 도넛 신호를 보내옵니다.
화성인의 꽥꽥거림이 통역기를 통해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라는 말로 해석되자, 관중들은 환호하며 비둘기를 날립니다. 하지만 기쁨의 순간도 잠시, 비둘기는 화성인이 쏜 레이저 총에 맞아 아래로 떨어집니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레이저 광선이 난무하는 가운데 장군, 방송국 앵커, 기자 등 맨 앞에 나와 잘난 체하던 사람부터 하나둘 죽어 나갑니다. 화성인을 환영하려고 군에 자원 입대한 도넛 가게 아들 빌리 또한 성조기를 든 채 레이저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화성에서 비둘기는 전쟁의 상징이며, 화성인의 공격은 문화적 차이에서 온 오해였다는 케슬러 박사의 말을 듣고서 대통령은 사과의 뜻을 전합니다. 화성인들 역시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겠다고 답합니다. 하지만 의회에 모인 의원들은 레이저 총으로 무차별 공격을 당합니다. 한편 인간 미녀의 가죽을 쓴 화성인은 백악관에 잠입하여 감시 카메라로 정찰 활동을 하고, 모선에서는 대대적인 공격 준비를 시작합니다. 전투복 자동 착용 기계를 거쳐 출동하는 화성인들의 모습에 이어 런던탑, 타지마할, 이스터 석상 등 전 세계의 소중한 문화 유적들이 파괴되는 장면이 보입니다.
마침내 대통령은 데커 장군이 핵무기를 사용하도록 허락합니다. 하지만 화성인들은 핵미사일을 공중에서 흡수해 삼켜 버리는가 하면, 미사일 방향을 180도 돌려 지구를 역공하기도 합니다. 백악관을 방문한 화성의 대사를 향해 미국 대통령은 협력을 강조하며 일장 연설을 합니다. 대통령이 내민 손을 잡고 눈물까지 흘리던 화성 대사의 손은 갑자기 스프링처럼 튕겨 나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 비수로 돌변하여 대통령의 심장을 관통합니다. 그러고는 자동으로 안테나가 올라가더니 화성의 붉은 깃발로 변합니다. 1969년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가 달 표면에 꽂은 성조기를 패러디한 이 장면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재편에 대한 야유인 동시에, 영웅 중심적인 할리우드 영화에 드는 반기이기도 합니다.
할머니를 모시러 요양소에 간 빌리의 동생 리치는, 할머니가 즐겨 듣는 <인디언 사랑 노래>(Indian Love Call)의 곡조에 화성인의 뇌가 터져 죽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리치는 방송국에 이 사실을 알려 음악으로 화성인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화성인 우두머리를 태운 모선을 바다에 가라앉히는 데 큰 공을 세웁니다. 화성인의 공격을 피해 동굴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밖으로 나와 복구를 시작하고, 리치와 할머니는 대통령의 딸 태피로부터 명예 훈장을 받습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는 은퇴한 팝 가수 톰 존스의 경쾌한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생존자들이 쓰레기를 치우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1. 이 영화에서 화성인을 물리친 무기는 무엇인가요? 감독이 그렇게 설정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길잡이: 화성인을 물리친 것이 지구인(혹은 미국)이 자랑하는 핵미사일이 아니라 한 곡의 노래, 그것도 <인디언의 사랑> 노래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영화의 맥락에서 보면, 이는 화성인이 산소 대신 질소로 호흡하며 피는 빨간색이 아니라 초록색이라는 등 지구인과는 대조적으로 설정되었다는 점과 관련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화성에서는 공격의 메시지로 해석하는 등 서로의 소통과 인식 구조도 아예 다릅니다. 그래서 지구인이 치유와 안정을 찾고자 할 때 듣는 음악이 화성인에게는 고통을 주는 결정적인 무기로 작용했다는 것이지요.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볼 때 핵미사일이 고도의 서구 과학 문명과 그로 인한 파괴를 상징한다면 음악, 특히 이 영화에 쓰인 인디언의 노래는 문명 이전의 자연 세계로의 회복을 상징하는 코드가 아닐까 합니다. 지구에서 쏘아 올린 핵무기까지 삼켰다가 뱉어 내는 화성인도 맥을 못 추게 한 건 과학 기술이 아니라 '음악'이란 반전은 팀 버튼 영화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류에 대한 조롱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이 영화에서 지구를 구한 이들, 혹은 살아남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길잡이: 영화 후반부로 가면 대통령, 정치인, 장군. 방송국 기자, 백악관 보좌관 엘리트들은 전부 죽어 사라지고, 그 대신 노인과 소년이 지구를 구하는 영웅으로 등장합니다. 대통령 부부를 공격한 화성인들을 물리치며 활약한 건 덩치 큰 경호원들이 아니라 백악관에 견학 온 두 흑인 소년이었습니다. 게다가 화성인을 물리칠 결정적인 방법을 알아낸 장본인은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한 할머니였지요. 맨 마지막 장면의 생존자는 할머니와 평소 남자답지 못하다고 구박받던 손자 리치, 대통령의 딸이지만 부모님에 대해 냉소적이던 태피, 퇴물 권투 선수 바이런과 그의 가족, 은퇴한 가수 톰 존스, 알코올의존자 바버라입니다. 이런 설정은 ‘영웅이 지구를 지킨다'는 할리우드 영화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뒤엎습니다. 화성 침공은 흥미진진한 오락 SF영화일 뿐 아니라, 우리 시대 힘없고 소외된 이들의 존재 의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3. 다른 어떤 행성보다도 화성을 소재로 한 우주 SF영화들이 많습니다. 왜 유독 화성과 관련한 영화가 많은지 생각해 보세요.
길잡이: 화성을 무대로 한 SF영화가 많은 것은 지구와 가장 환경이 비슷한 별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화성에서 온 침입자> (토브 후퍼, 1986), <토탈 리콜> (폴 버호벤, 1990), <마스> (존 헤스, 1990), <화성인 지구정복> (존 카펜터, 1988), <화성인 마틴> (도널드 피트리, 1999), <미션 투 마스> (브라이언 드 팔다. 2000), <화성의 유령들> (존 카펜터, 2001), <화성소년 메르카노> (후안 안틴, 2002) 등이 그 예입니다. 이 영화들에서 화성과 화성인은 경이롭고도 공포스러운 미지의 존재, 혹은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대상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2001년의 '오디세이', 2004년의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그리고 2007년의 '피닉스' 등 여러 차례의 화성 탐사선들로 인해, 그동안 많은 영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던 미지의 세계 화성도 이제 그 실체를 드러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 문학동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