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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성장의 동력이다 - 인생을 바꾼 삼실(三實) 인천재능대학교 이기우 총장
‘고졸 9급 신화’, ‘320미리 신발의 마당발’, ‘이기우를 통해서 안 되면 애당초 안 되는 것’,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 ‘공직의 달인’ 등등 숱한 별명의 주인공, 9급 최말단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서 교육인적자원부 차관까지 역임함으로써 진정한 공직자의 상징과 신화가 된 주인공이 현재 인천재능대학 이기우 총장이다. 그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까지 맡고 있다.
1948년생인 그는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1967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강과 가정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몇 개월을 허송세월하다가 9급 체신공무원 시험을 봤는데 합격했다. 그렇게 공직생활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래,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40년 만에 순수한 공무원으로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차관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사실 이 총장이 처음부터 공직생활에 뜻을 두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시급한 취업의 방편으로 체신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던 것이다. 그는 우체국에서 서기보로 일하며 재수해서 대학입시를 치르려고 했다. 그런데 복잡하고 분주한 우체국 업무를 하면서 입시공부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을 하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일을 하며 고향에서 대학입시에 몰두하고 싶었다.
그는 다시 9급 공무원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우체국은 1년 만에 그만두고 그가 의도했던 대로 고향인 거제 교육청의 서기보가 됐다. 그는 당초 계획했던 대로 업무는 대충 처리하고 공부에 열중했다. 말하자면 공식적인 일을 제대로 안 한 것이다. 공직생활에서 그런 태도가 오래갈 리 없었다. 상사가 그가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것을 알고 아예 그의 책상을 빼버리고 시설계로 보내버렸다. 절차를 밟아 내쫓으려는 조치였다. 이 총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인정을 받아야겠다.”라는 생각에 그때부터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주어진 업무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의 몰라보게 달라진 성실한 태도와 업무처리능력이 상사들의 눈에 띄어, 시설계로 쫓겨간 지 몇 개월 만에 다시 서무계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그때부터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공직생활에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대학입시 공부는 완전히 접었다. 스스로 일에 재미를 느끼고 오직 업무에만 몰입하니 업무처리능력이 단연 돋보이게 되었고, 원만한 대인관계까지 점점 인정을 받았다. 자연히 그에 대한 인사고과 점수가 높아 빠르게 승진했다. 또한 5급 사무관 승진 시험에 단번에 합격했다. 간부가 되면서 그의 능력은 더욱 빛났다. 사무관으로 승진한 지 5년 만에 정부의 중앙부처인 당시 교육부에 입성했다. 뿐만 아니라 승승장구해서 총무과장, 공보관, 부산시 부교육감, 지방교육행정국장, 기획관리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 무렵, 정치변동이 심해서 그가 교육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있는 4년 동안 장관이 일곱 번이나 바뀌었다. 장관이 자주 바뀌니 특히 국회의 교육부 업무 보고와 처리는 실질적으로 거의 그가 도맡아야 했다. 그는 업무처리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남다른 친화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국회와의 관계는 물론, 대인관계가 좋아서 ‘발치수 320미리 마당발’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총장은 교원공제회 이사장이 되어 교육부를 잠시 떠났지만, 곧 화려하게 다시 복귀했다.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그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사실 이 총장과 이해찬 총리의 인연은 각별하다. 이해찬 총리가 교육부 장관으로 재임했던 1998~1999년 이 총장은 교육환경개선국장으로 당시 교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교원 정년 단축 등, 굵직굵직한 개혁현안 추진에 심혈을 기울였었다. 일을 맡기면 ‘100%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이 총장을 가리켜 이해찬 총리는 사석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공직자’라고 표현했다.
이 총장은 오늘의 자신이 있게 한 것은 ‘삼실(三實)’이라고 말한다. 삼실이란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인 성실(誠實),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기 위해서는 ‘예전의 나’라는 라이벌을 죽여야 하는 진실(眞實), 간절히 구하는 자세와 가슴을 울리는 절실(切實)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에게 정직하게 진실하고,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하며, 상대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절실하게 노력하는 것이다. 결코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덕목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만 말할 뿐, 그것을 진정으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이 총장의 성공비결은 그러한 덕목을 좌우명으로 삼고 빈틈없이 실천해온 데 있는 것이다.
‘성실(誠實)’이라는 것은 직급과 자리에 상관없이 최대한의 정보와 지식으로 조직을 위해 업무를 정직하게 그리고 부지런하고 열심히 처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그냥 성실하게 일한다고 성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절절하게 느낄 수 있고, 그의 가슴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업무수행을 위해 상대방을 방문할 때, 세 번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열 번이라도 상대방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는 옛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이기우 총장이 교육부, 교육인적자원부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하면서 무려 7명의 장관을 모시는 과정에서 장관들로부터 가장 높게 평가받은 핵심이 바로 성실이었다.
‘진실(眞實)’은 정직한 마음과 행동이 기본이다. 업무처리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 공과 사를 가리지 않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직한 생각과 행동이 깃들어 있어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우직하게 정직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칫 무능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실된 자세로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
스페인의 투우에서는 투우사와 소가 일대일로 대결하는 최후의 순간을 결정적인 순간 또는 ‘진실의 순간(moments de truth)’이라고 말한다. 인간관계에서도 투우사처럼 한 순간의 진실된 관계가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이미지를 좌우하게 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자주 맞게 된다. 인간관계에서의 진실의 순간은 상대에게 자신을 분명하게 보여줄 기회이기도 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진실의 순간이 바로 그 사람의 진가를 나타내는 기회인 것이다. 진실의 순간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인간관계에는 곱셈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곱셈의 법칙이란 단 한 번 진실의 순간에서 상대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가 부정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100 x 100 x 0 = 0, 100 x –1 = -100이 된다. 따라서 100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인간관계는 끝나는 것이다. 한시도 방심하지 말고 진실로써 인간관계를 맺어 나가야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이기우 총장은 국회업무에 능통한 이른바 ‘국회통’, ‘국회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교육부 과장 시절부터 국회파견 업무를 맡아온 경험이 있고, 교육 관련 법률제정과 개정작업에 참여해서 국회의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내가 솔직히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 가운데 한 가지를 꼽으라면 아마도 국회에서의 활동일 것입니다. 과거에 어느 정치인이 ‘이기우가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진실성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진실하게 만나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절실(切實)’은 그야말로 물러섬이 없는 간절한 마음이다.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구하는 자세와 상대방의 마음을 울리는 절절함을 말한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처럼 간절히 소망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구하는 바를 얻게 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곧 절실함, 간절함이 있다면 마침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간절한 것을 구해야 하고, 간절한 만큼 절박함으로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즉 ‘그것이 아니면 난 죽는다’는 절박함이 있어야 원하는 것을 얻는다.
이기우 총장이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100대 국정과제 수립에 참여했을 때의 이야기다. 교육 관련 분야는 3~4개만 추려서 보고하라고 했는데, 이 총장은 12개를 올렸다. 그것을 보고 당시 기획조정분과위원장이었던 이해찬 의원이 지시한 대로 다시 작성해서 보고하라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결국 이 총장은 다시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는데 자신이 선정한 12개의 과제를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올렸다. 옳다고 생각한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12개가 모두 국정과제로 선정됐지만 이 총장은 이해찬 의원에게 단단히 찍히고 말았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해찬 의원이 교육부장관으로 취임하여, 상사로 모시게 됐다. 그럼에도 이 총장은 장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일했다.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명문대 나온 고시 출신들이 수두룩한 교육부에서 이 총장은 1급으로 승진한 것이다. 그래서 이해찬 의원이 총리로 취임했을 때, 이기우 총장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하면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이기우 총장은 그를 따르는 후배들이 아주 많다. 총리비서실장 시절, 총리에게 보고할 때 좋은 내용, 칭찬을 들을 만한 내용은 부하직원들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시켰고, 골치 아픈 내용, 질책 당하거나 지적사항이 많을 것 같은 내용은 자신이 총리에게 보고했다. 그러한 성품 때문에 후배들이 그를 따랐고, 그와 함께라면 모두 앞다투어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3실’을 지키며 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에 대해 이기우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자기 안에는 ‘예전의 나’라는 라이벌이 있습니다. 이 라이벌을 이겨내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합니다.” 즉 ‘극기(克己)’를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본래의 나, 지금까지 살아온 나, 다시 말해서 ‘과거의 나’, ‘예전의 나’가 있기 마련이다. 3실을 지키는 삶을 영위하려면 그러한 지난날의 나를 라이벌로 놓고, 그것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2003년, 처음 교육부 차관으로 물망에 올랐다가 좌절된 경험이 있다. 그에 대해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1급 기획관리실장으로 4년을 역임했을 때죠. 제가 차관으로 간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결국 안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사발표가 있던 날, 친척부부와 약속했던 저녁식사를 예정대로 했고 노래방도 가고 잘 놀고 잘 잤습니다. 차관이 되어야겠다는 ‘예전의 나’를 버린 거죠. 과거와 미래는 몰라도 누구든지 오늘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다고 마음먹으면 행복해집니다. 그것이 ‘3실’의 바탕입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을 때,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한 동창생들이 부러웠지만, 9급 공무원이 돼서 일에 재미를 느낀 뒤에는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훗날 공직자 생활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공부해서 마침내 교육학 박사까지 취득했으며, 2006년 마침내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이 되었고 현재 대학총장으로 성실하게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총장의 인생 역정은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자신의 현실에 분노해서 빗나가거나, 현실을 회피하면 자신의 목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다. 현실을 피할 수는 없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 꿈에 대해 절실한 염원, 절박한 소망을 갖고 죽기 살기로 몰입한다면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 절실함을 이끌어내는 것은 ‘결핍’이다. 무엇인가 부족한 것, 무엇인가 아쉬움이 있는 것, 무엇인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결핍감을 느낀다. 결핍이 없는 사람은 절실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끝.(www.bookcosmos.com에서 부분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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