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이야기> 중 사람이 되어라
감독: 박재동 (2005년, 한국)
배경: 21세기, 한국
상영 시간: 13분 전체 관람가)
등장인물: 김원철, 아버지, 선생님, 장수풍뎅이, 알락하늘소, 넓적사슴벌레
차별의 사각지대, 학생인권
‘사람이 되어라'는 학생들이 겪는 폭력적인 상황들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며 학교를 억압의 공간으로 부각시키는 대신, 우화적 기법으로 학교 현실을 꼬집은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 중의 한 단편으로, 일상적이고도 오래된 차별인 학력 차별과 학생 인권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미술 교사 경험이 있는 박재동 감독은, 자신이 학생이던 때나 학생을 가르치던 때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학교 현실을 꼬집으며, "학생들의 꿈은 오직 대학이고, 학교에선 대학 가야 사람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본래 '사람이 돼라.'는 말은 인격을 갖추라는 뜻인데, 현재의 학교 교육은 그와는 거리가 멉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나중에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지금도 사람이니 사람답게 대해 주자는 것입니다."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곤충 표본들이 가득한 방 안, 곤충에게 이야기하는 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장수풍뎅이에게 젤리와 바나나를 권하며 “밥맛도 없고, 죽을 맛이야."라고 말하는 주인공 원철이는 고릴라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성적이 이 모양인데 벌레나 들여다보다니, 이래서 너 언제 사람 될래?"라는 아버지의 꾸중을 듣고 원철은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집을 나섭니다. 놀랍게도 등굣길 학생들은 모두 고릴라와 원숭이같이 짐승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진화고등학교'라는 팻말 위엔 '먼저 사람이 되어라'라는 교훈(校訓)이 적혀 있습니다.
교실에서도 원철은 줄곧 집에서 데려온 장풍이(장수풍뎅이)와 장난을 칩니다. 혀 안으로 장풍이 감추기, 장풍이 물구나무 세우기 등의 묘기에 학생들은 환호하지만 그것도 잠시. 선생님이 복장 검사를 시작하고, 피어싱이나 염색을 한 학생들에게는 따가운 눈총과 함께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항상 이렇다니까.”라는 폭언이 이어집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원철은 아버지에게 "벌레가 그렇게 좋으면 아예 숲에 가서 살아라, 사람 안 될 거냐?"라는 꾸중을 듣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등굣길, “정말 숲에서 살면 좋겠다."는 원철의 혼잣말은 마법의 주문이 되어 원철을 숲으로 인도합니다. 원철은 평소에 관심 있었던 하늘소와 넓적사슴벌레를 관찰하며 이들의 생태를 노트에 적습니다. 학교에서는 부적응자처럼 보이지만, 숲 속에서 좋아하는 곤충들을 관찰할 때는 원철에게도 진지함과 생기가 넘쳐 납니다.
잠시 후 원철은 칵테일파티를 여는 곤충들 사이에서 장풍이를 발견하고 합석합니다. 곤충들은 "웰빙'이 별거냐?”며 버드나무 수액을 권하고, 원철은 받아 마십니다. 사슴벌레가 학교에는 왜 가냐고 묻자 원철은 “사람 되려고, 사람이 된 다음에 너희들을 연구하면서 살고 싶어."라고 대답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될 수 있냐는 곤충들의 질문에 원철은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남을 돕고 공부 열심히 하면 된대!"라고 말합니다. 곤충들은 "공부가 뭔데? 공공의 부자 되는 거?"라며 촌철살인의 대사를 던지고, 원철은 자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자신감을 얻습니다.
원철이 교실에 들어서자, 친구들은 원철이 사람이 되었다고 놀랍니다. 원철 역시 거울을 보고는 “이게 나야?"라며 놀랍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왜 네 맘대로 사람이 되고 그래? 아직은 사람 되면 안 돼, 사람은 너희들 맘대로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라고 소리칩니다. “선생님이 사람 되라고 하셨잖아요?"라는 원철의 질문에, 선생님은 “그건 대학 가서 되는 거야! 네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란 말이다!”라고 다그치며 분필로 정수리를 쿡쿡 찍습니다. 잠시 고릴라로 돌아가는 듯 하다 다시 사람 얼굴이 된 원철은, 창문을 뛰어넘어 숲 속으로 달려갑니다.
숲 속에서 하늘소들의 씨름 시합을 구경하던 원철은 담임과 교장,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교문 밖으로 나간 학생에게 "나중에 진짜 사람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다.”라고 회유하는 교장과 담임 선생님, “전 지금 행복해지고 싶어요!"라고 외치는 원철, “좋은 대학 나오지 않으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라며 사람 탈을 벗고 고릴라의 얼굴로 변하는 아버지…….학생 인권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또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 삼각 구도(교사, 학생, 학부모)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보는 듯합니다.
원철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글썽이는 눈물 사이로 나비 채집, 수액 칵테일파티, 씨름 구경에 빠져 있던 행복한 순간들이 플래시백(flashback: 과거 회상 장면을 삽입하는 기법)으로 짧게 스쳐 갑니다.
다시 고릴라로 변해 고개를 떨어뜨리고 학교로 걸어가는 원철의 뒷모습에 이어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언입니다.‘라고 외치는 가수 싸이의 <챔피언>이 흐르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추는 주인공의 모습이 어두운 칠판 배경에 하얀 분필로 실루엣 처리되는데, 마치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자아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함께 나눌 이야기:
1.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선생님이 21세기 아이들을 교육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을 새겨 보고, 교권과 학생 인권 모두가 존중되려면 먼저 어떤 노력들이 있어야 할지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2. 이 작품에 나오는 고등학생들이 원숭이나 고릴라로 표현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길잡이: 감독의 변에서 알 수 있듯이 '먼저 사람이 되어라.‘ 라는 말은 원래 인격을 갖추고 나서 지적인 소양이나 기술을 닦아야 한다는 의미였지만, 입시 지옥 21세기 대한민국의 학생에게는 대학에 합격할 때까지 사람임을 포기하고 공부하는 기계가 되도록 강요당하는 현실을 의미합니다. 복장 검사, 두발 검사, 소지품 검사 등의 통제는 일본 제국주의 교육의 잔재로, 우월한 교육자가 미개한 피교육자를 지도하고 훈육하여 말 잘 듣는 신민(臣民)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식민지 지배 논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이 '진화고등학교'라는 점은 대학에 가야 사람으로 진화 된다는 명목 하에 학생들을 수동적 존재로 가두고 성적으로 서열을 매겨 통제하고 억압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꼬집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3. 학교의 현실을 다룬 영화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세요.
길잡이: 학교의 현실을 가장 충격적으로 보여 준 영화로는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앨런 파커, 1982)을 꼽을 수 있습니다. 똑같은 가면을 쓴 학생들이 차례차례 고기 분쇄기 속으로 밀려들어가 소시지가 되어 나오는 장면은, 획일적인 인간형을 찍어 내는 학교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한편 미국에서 만들어진 <언제나 마음은 태양>(제임스 크라벨, 1907), <죽은 시인의 사회>(피터 위어, 1989), <홀랜드 오퍼스>(스티븐 헤렉, 1995), <스쿨 오브 락>(리처드 링클레이터, 2003). 〈프리덤 라이터스> 리처드 라그라베네스, 2007) 같은 작품들은 전형적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으로 긍정적 교사상을 그려 낸 데 비해, <여고괴담 시리즈> (1998~2009),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 2000), 〈친구〉 (곽경택, 2001),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2004), 〈스승의 은혜> (임대웅, 2006) 같은 한국 영화들은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했습니다.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 문학동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