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What's Eating Gilbert Grape
감독: 라세 할스트륌(1993년, 미국)
등장인물: 조니 뎁(길버트 그레이프),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어니), 줄리엣 루이스(베키)
배경: 20세기 미국
상영시간: 118분 (12세 관람가)
수상: 1993년 전미비평가협회 최우수 남우조연상
무엇이 길버트 그레이프를 괴롭히는가?
'무엇이 길버트 그레이프를 괴롭히는가?(What's Eating Gilbert Grape)'라는 원제처럼 주인공 길버트의 일상은 무엇엔가 단단히 짓눌려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길버트 그레이프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요? <길버트 그레이프>는 길버트의 가족과 그들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캠핑카 고장 때문에 잠시 마을에 머물게 된 베키와의 만남을 차례차례 보여 줍니다.
엔도라라는 시골 마을 입구에서 밀려오는 캠핑카들을 세며 노는 동생 어니는 열일곱 살의 지적장애인입니다. 길버트의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했고, 그 충격으로 폭식을 하여 몸이 불어난 어머니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거실에만 있다 보니 TV중독까지 겪습니다.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돌보느라 꿈을 펴지 못한 누나 에이미, 한창 멋 부리기 좋아하는 여동생 엘렌까지 다섯 명이 길버트네 가족입니다. 스무 살 청년 길버트는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며 다섯 식구를 부양하는 가장으로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와 여기저기 여행하며 사는 베키의 캠핑카가 마을로 들어옵니다. 베키는 가족한테 묶여 사는 길버트와는 대조적으로,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자유의 상징으로 그려집니다. 가족에 대한 의무 때문에 고여 있는 물같이 정체된 길버트의 삶과 흐르는 물처럼 자유로운 베키의 삶은 낡은 집과 캠핑카라는 주거 형태를 통해서도 대비됩니다. 이렇듯 둘의 환경은 서로 딴판이지만, 높다란 가스탱크 위에 올라간 어니를 재미있는 노래로 유인하여 무사히 내려오게 하는 길버트를 보고 베키는 두 형제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길버트는 매번 경찰의 경고를 받으면서도 자꾸만 가스탱크에 올라가는 어니 때문에 골치를 앓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는 결국 경찰서로 끌려가고, 급기야 길버트의 어머니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섭니다.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경찰서까지 가서 고함을 지르며 어니를 꺼내 오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시선을 견디며 차까지 걸어오는 길버트 가족이 슬로모션으로 비추어집니다. “저러니까 지팡이가 필요하지!" "괴물이야!"
라고 놀리는 아이들, 안경을 고쳐 쓰며 뚫어져라 쳐다보는 노인, 자전거로 주위를 빙빙 맴돌며 구경하는 소년, 심지어 사진기를 들이대는 여행객, 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차에 오르는 길버트 가족의 모습은, 어머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한쪽으로 기울어진 자동차만큼이나 안타깝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길버트는 다음 날이 어니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란 사실을 환기시키고 어니를 목욕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목욕하기 싫은 어니는 도망 다니다 누나가 만든 케이크를 망가뜨립니다. 길버트는 평소에 가지 않던 대형 슈퍼마켓까지 가서 케이크를 사 오지만, 이마저 망가뜨린 어니에게 화가 복받쳐 손찌검을 하고 집을 뛰쳐나옵니다. 길버트는 고물차를 몰고 무작정 엔도라를 벗어나려 하지만, 마을 경계에서 잠시 갈등하다 차를 돌려 베키에게 갑니다. 길버트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갈 곳이 없었어." 라고 베키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가지 않은 길'을 동경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네가 진정 원하는 게 뭐니?” 베키의 질문에 길버트는 엉뚱하게도 어니의 두뇌를 바꿀 수 있다면, 어머니가 에어로빅이라도 하실 수 있다면 좋겠어.”라고 대답합니다. 베키가 다시 “다른 사람 말고 네 자신이 진정 되고 싶은 건?” 하고 묻자 길버트는 “그냥, 좋은 사람!” 이라고 대답합니다.
밤새 베키와 대화를 나눈 길버트는 집으로 돌아오고, 가족들은 무사히 어니의 생일파티를 끝냅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평소에 쓰지 않던 2층 침실로 올라갑니다. 혼자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살이 쪄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어머니는, 어니가 무사히 성년이 되는 열여덟 번째 생일에 남편 곁으로 가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자살을 알게 된 어니의 고함에 이어, 나머지 세 남매들이 당황하여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가장 비극적인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롱숏으로 처리됩니다.
길버트는 어머니를 또다시 놀림감으로 만들기 싫어 시신을 옮기지 않고 집과 함께 화장하기로
합니다. 불타는 집을 바라보는 가족들은 이제 마을을 떠나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난생처음 스스로 선택한 길에 대한 설렘 때문일까요? "에이미는 제과점에 취직했고, 엘렌은 곧 전학 갈 거라고 들떠 있다. 나와 어니는 원한다면 어디로든지 떠날 수 있다. 베키와 함께…."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며, 베키의 캠핑카에 올라탄 길버트 그레이프의 얼굴에 문득 행복한 표정이 스쳐 지나갑니다. 지금 자신 앞에 놓인 길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떠남'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듯 말입니다.
* 지적장애인인 어니는 항상 놀림을 받습니다. 비만 때문에 거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도 일단 외출하자 온 동네 사람들의 놀림감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길잡이: 몇 해 전 어른신들을 대상으로 영화 특강을 하면서 <길버트 그레이프>를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 역으로 나온 사람이 진짜 저렇게 살찐 배우나 아니면 분장을 그렇게 한 거냐?"는 질문과 함께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면 더 이상 비만해지지 않도록 더욱 신경 써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전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비만을 '장애'로까지 느끼는 것은 상업 광고와 대중매체에 의해 똑같은 미적 기준이 유포되기 때문입니다. 작은 시골 마을인 엔도라 사람들까지도 이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머니를 마치 동물원 원숭이처럼 바라보는 장면은 이런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짐작했을 때,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들을 견뎌내며 아들을 구하러 외출을 감행한 것은 모성애를 넘어 일종의 동병상련으로 보입니다. 아들인 어니의 지적장애나 어머니의 비만이나,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 문학동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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