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Le Huitime Jour
감독: 자코 반도르말(1996년, 벨기에 프랑스·영국)
등장인물: 파스텔 뒤킨(조지), 다니엘 오테이유(아리)
배경: 20세기, 프랑스(벨기에)
상영 시간: 118분(전체 관람가)
수상: 1996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공동수상),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
신께서 뭐 빠진 게 없나 살펴본 뒤 조지를 만든 날
〈제8요일>은 제목부터 수상한 프랑스 영화입니다. 요일은 분명 월화수목금토일 일곱 가지뿐인데 제8요일이라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제8요일이란 도대체 어떤 날을 말하는 것일까요? 영화가 시작되면 텔레비전 수상기가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음악뿐……."이라는 대사가 나오고,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이어집니다.
“신은 첫째 날 태양을 만들고, 둘째 날에 땅과 바다를 만들었다. 셋째 날에 레코드를 만들고, 넷째 날에는 TV를 만들었다. 다섯째 날에는 풀을 만들고, 여섯째 날에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요일에 쉬었다.”
이 영화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조지, 다운증후군 환자로 일반인과 외모가 다르고 두뇌 발달도 지체되어 사회와 격리된 한적한 시골 요양원에 살고 있습니다. 혼자 놀기의 달인인 조지는 방 안에 틀어박혀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광고 속 꿈의 나라를 동경합니다. 카세트를 들으며 멕시코 가수 루이스 마리아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이따금 간단한 영어 회화를 따라 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주인공의 이름은 아리, 세일즈맨을 교육하는 대기업 중역으로 일 중독자 입니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게 사는 것 같지만 퇴근 후면 홀로 빈집을 지키는 처량한 신세입니다. 비 오는 밤에 울적한 심정으로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아리는 실수로 개 한 마리를 치는데, 개의 주인은 다름이 아니라 요양원을 나와서 무턱대고 이정표를 따라 걷던 조지였습니다. 조지는 어머니가 오래전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머니를 찾아 예전에 살던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리는 조지를 보고 당황하지만, 개를 친 미안함 때문에 마지못해 조지를 태우고 조지의 가족을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조지를 맡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유일한 혈육인 조지의 누나마저 동생을 외면합니다. 아리 역시 조지와 마찬가지로 가족들에게 거부당하는 찬밥 신세입니다. 아리는 조지와 함께 딸의 생일선물을 준비해 헤어진 아내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과거 그의 행동에 실망했던 가족들은 아리를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아리는 자신을 홀대하는 아내와 장모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난동을 부립니다.
조지는 가족에게 난폭한 행동을 하는 아리를 가까스로 진정시켜 떠납니다. 그러고는 절망
에 빠진 아리를 달래어 마침내 웃게 합니다. 신체의 장애를 가진 조지가 마음의 장애를 지닌
아리를 위로하는 셈입니다.
영화 중반부터는 과연 누가 장애인인지, 누가 보호자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나이도 어리고 지능도 떨어지고 감정 표현도 미숙한 조지가 오히려 아리를 진정시키고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며 무엇보다 웃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지만 그에겐 책임져야 할 스스로의 인생이 있단다.”라는 꿈속 어머니의 충고대로, 조지는 아리에게 가족사진을 쥐여 주고 떠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족과 화해하고 행복해하는 아리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봅니다. 이처럼 조지가 아리를 배려하는 장면들은 몇 번을 보아도 눈시울을 적시게 합니다.
조지와 아리가 나무 아래에서 딱 일 분만 말없이 있자며 나란히 누워 휴식을 취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마치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이 둘을 내려다보듯 부감으로 찍은 정지 화면은 영화 속 일 분을 실시간으로 포착해닙니다. 배경음악도 없이 오직 풀벌레 소리만 들려오는 일 분은 조지와 아리가 침묵 속에서 서로를 물들이는 그들만의 시간이며, 관객 입장에서도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순간입니다.
조지와 아리는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며 닮아 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처음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내레이터의 목소리 또한 조지가 아닌 아리로 바뀌어 있습니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음악뿐. 첫째 날 신은 태양을 만들었다. 태양은 눈이 부시다. 둘째 날 신은 바다를 만들었다. 바다는 발을 적신다. 바람이 간지럼을 태운다. 셋째 날 신은 풀을 만들었다. 풀은 잘릴 때 운다. 그럴 땐 다정한 말로 달래 주어야 한다. 넷째 날 신은 소를 만들었다. 소가 숨 쉴 땐 뜨거운 김이 나온다. 다섯째 날 신은 비행기를 만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있지 않을 때면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섯째 날 신은 인간을 만들었다.
남자, 여자, 아이들. 뽀뽀할 때 따갑지 않아서 난 여자와 아이들이 좋다. 일곱째 날 쉬어 가기 위해 신은 구름을 만들었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구름 속에 이야기가 보인다. 뭐 빠진 게 없나 생각한 뒤 여덟 째 날 신은 조지를 만들었는데 보기에 참 좋았더라."
위의 대사를 보면 '제8요일'이란 이름은 조지가 창조된 날일뿐만 아니라, 조지와의 만남을 통해 맑은 영혼을 회복하고 다시 태어난 아리의 모습을 두고 붙여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 다운증후군
21번 염색체가 하나 더 있을 때 생기는 선천적 질환입니다. 지적장애를 동반하며 낮은 코, 작은 눈, 벌어진 미간 등 외모로도 판별이 가능합니다. 19세기 서양에선 동양인과 닮았다고 몽골증(Mongolism)이라 칭했습니다. 이는 조지와 다투던 아리가 '몽골놈'이라고 욕하는 장면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봉사심과 인내심이 강하며 낙천적인 성격이 많다고 합니다. 한국 영화 <다섯 개의 시선 중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박경희, 2005)에는 다운증후군인 정은혜 씨가 실명으로 출연했습니다.
2. 일 중독자 work aholic
일 중독이란 업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지 못할 때 생기는 현대의 ‘사회적 성인병' 입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영화평론가인 김상준 박사는 『신화로 영화읽기 영화로 인간읽기』(세종서적, 1999) 라는 책에서 "일중독자란 내면의 욕구보다는 사회적 욕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자들이며, 현대 사회가 이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조지를 만나기 전의 아리가 출근길 차 안에서 노숙자와 청소부를 대하는 불친절한 행동, 가족과 겪는 불화 등은 일중독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3.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리겠지만, <제8요일)에 나오는 내레이션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와는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고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내레이션이 다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나요?
길잡이: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영화 도입부 조지의 대사는 결말에서 다시 아리의 목소리로 뒤집혀 나옵니다. 이 대사들은 성경 내용을 조지와 아리의 입장에서 각각 주변 사물들과 상상의 세계를 대입시켜 패러디한 것들입니다. 앞부분에서 조지의 일상에 익숙한 사물들(레코드, TV 등 정적인 이미지)로 성경 속 창조물을 대치했듯이 뒷부분에서는 아리의 일상에 등장하는 사물들(어린아이, 소, 비행기 등 동적인 이미지)이 대입되고 조지에 대한 아리의 애정과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제8요일에 신은 조지를 만들었으며 그를 보고 흡족해했다'는 내용을 덧붙인 것이지요.
4. 조지가 누나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리고 아리의 집에 찾아갔을 때에도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모두 조지를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요?
길잡이: 조지는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합니다. 다운증후군 환자라서 아이들과 비슷한 정신연령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어른들만큼 편견이 많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신의 나이테만큼 많은 편견을 쌓고 그 안에 갇혀 있습니다. 이는 카페에서 조지가 건넨 선물을 흔쾌히 받았다가 조지가 선글라스를 벗고 인사한 후에야 다운증후군 환자임을 알아차리고 당황해 도망치는 종업원의 모습에서도 드러납니다.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란 통념이나 관습, 그리고 매체에 의해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이 아닐까요? <EBS 삼색토크>의 소수자에 대한 토론에서 배우 홍석천 씨가 "앞으로 뽀뽀뽀 같은 어린이 프로에 예쁜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몸이 불편한 아이나 개성 있게 생긴 아이들이 나와야 한다.“ 고 말한 것을 듣고 무릎을 친 적이 있습니다. 방송이나 영화 같은 전파 매체는 사회규범을 학습하는 간접경험의 장으로 흔히 편견을 재생산하지만, 역으로 편견을 무너뜨리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는 <기적의 가비>(루이스 만도키, 1967), <토토의 천국>(자코 반도르말, 1991), <킹덤>(라르스 본 트리에르, 1997) 등에 장애인이 출연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2001). <여섯 개의 시선〉 중 '대륙횡단‘ (여균동, 2003), 다섯 개의 시선 중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 (박경희, 2005)에 실제 장애인 배우가 등장했습니다.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 문학동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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