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he Butcher Boy
감독: 조던 (1997년, 아일랜드 미국)
배경: 1960년대, 아일랜드
등장인물: 에이먼 오언스(프랜시), 스티븐 레이(아버지) 피오나 (누전트 부인) 앨런 보일(조).
상영 시간: 110분 (15세 관람가)
수상: 1998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애 하나 망치는 데 온 마을이 다 동원된다
〈푸줏간 소년>으로 1998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닐 조던은 <마이클 콜린스> (1996), <크라잉 게임> (1992),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 등을 연출한 사회 비판적 성향의 감독으로, 이 영화에서도 조국 아일랜드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된 달력 속 그림 같은 아일랜드 시골 마을은 원작자 맥케이브의 고향이고, 실제 마을 주민 400여 명이 엑스트라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초반부의 평화로운 풍경은, 걷잡을 수 없는 광기로 치닫는 주인공 프랜시의 끔찍한 행동과 대조를 이루며 관객의 가슴을 아프게 후빕니다. 파리 인간, 메뚜기 외계인 등 프랜시의 상상 속에 나타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은 사회파 감독인 동시에 영상과 감독이라고도 불리는 닐 조던의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 줍니다.
1960년대 초 아일랜드의 작은 시골 마을, 주인공 프랜시 브랜디는 알코올의존자인 아버지와 우울증 환자이고 남편의 학대로 늘 자살을 꿈꾸는 어머니 밑에서 자랍니다. 프랜시는 부모의 불화에 익숙하다 못해 오히려 부모를 불쌍하게 여기는 애어른입니다. 열세 살 소년 프랜시의 버팀목이라고는 그때만 해도 정다워 보였던 부모의 신혼여행 사진, 그리고 하나뿐인 단짝 친구 조와의 우정뿐입니다. TV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피해 프랜시가 이웃 마을로 가출한 사이 어머니는 자살을 합니다.
한편 잉글랜드에서 이사 온 누전트 부인은 상류층 티를 내는 교만한 성격의 소유자로, 늘 프랜시를 '돼지'라고 부르며 프랜시의 부모님까지 모욕합니다. 프랜시는 누전트 부인의 집에 들어가 거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카펫에 '큰일'을 보는 등 정말 돼지처럼 행동합니다. 이 일로 프랜시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감화원에 수용되지만 그곳에서도 감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소아성애자인 신부에게 충격적인 일을 당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에게서 누전트 부인의 아들 필립과 친해지고 있다는 편지가 날아오자 프랜시는 돌연 열병을 앓고 성모 마리아의 환상을 보기도 합니다. 이후 프랜시는 신부의 성희롱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풀려나 푸줏간에 일자리를 얻고, 말 그대로 푸줏간 소년이 되면서 푸줏간 밖의 평범한 소년들과는 점점 멀어집니다.
아버지마저 세상을 뜬 뒤, 프랜시는 사진 한 장을 들고 부모의 추억을 좇아 신혼 여행지를 찾아갑니다. 부모의 사진이 걸려 있는 한 모텔에서 프랜시는 자신이 품고 다니던 다정한 신혼 사진은 순간의 의례적인 연출일 뿐이었으며, 신혼 초부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부모님의 씁쓸한 과거와 유일한 친구라 믿었던 조의 배신, 그것도 하필이면 누전트 부인에 의해 유도된 배신은 프랜시를 절망에 빠뜨립니다.
세상에 대해 기대할 것도 놀랄 것도 별로 없다고 여겼던 냉소적인 프랜시였지만 정말로 더 이상 믿을 게 없다고 생각한 순간, 내면에 눌러 왔던 광기가 폭발 일보 직전으로 치달아 오릅니다. 평소에도 소외감에 내몰릴 때마다 TV를 보며 공상에 빠지던 프랜시는 TV 속의 핵폭발 이미지에 붙들린 채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분열 상태로 빠져듭니다. 게다가 고통에 젖어들 때마다 나타나는 성모마리아의 환영으로 인해 더욱 정신착란에 휩싸입니다.
거대한 메뚜기 형상을 한 외계인들은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의 원흉으로 규탄받은 '빨갱이'들과 동일시되고, 나아가 평소 자신을 괴롭혀 왔던 누전트 부인과 겹쳐집니다. 마침내 프랜시는 외계인에서 빨갱이, 빨갱이에서 누전트 부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악한 무리들을 응징하기 위해 식칼을 집어 듭니다.
사건이 있은 지 수십 년 후, 후줄근한 아저씨 차림으로 쭈뼛쭈뼛 교도소를 나서는 프랜시에게 성모 마리아의 환영이 또 나타납니다.
사십 대의 성인이 된 프랜시는 "아줌마! 아직도 나 같은 놈에게 말이나 걸면서 지내세요?" 하며 이죽거리지만 성모 마리아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작은 꽃 한 송이를 건넵니다. “하느님은 누구나 사랑하신단다. 특히 너를.” 사랑한다는 말, 그 한마디를 현실의 누군가에게서 조금만 더 일찍 들었다면 프랜시는 과연 어떤 어른이 되어 있었을까요?
또 하나 이 영화에서 주목해 볼 것은 내레이션의 형식입니다. 성장 영화에서 흔히 보아 왔던 회상조의 담담한 내레이션 대신, 푸줏간 소년은 성인이 된 프랜시의 음성으로 시종 짓궂게 이죽거리며 악동이었던 과거의 프랜시와 장난하듯 대화를 나눕니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자살, 자신이 겪었던 성희롱, 걷잡을 수 없는 광기와 살인 등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을 담아내는 화면 위로 흐르는 냉소적 내레이션은 브레히트의 연극에서 유래된 소격효과를 연상케 합니다.
<푸줏간 소년>은 일견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토 베니니, 1997)와 마찬가지로 희극적 어법을 통해 비극적 현실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내레이션과 화면의 톤을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른 울림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이 외에도 어른들의 부도덕한 욕망과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그려 낸 영화로는 〈프라이멀 피어>(그레고리 호블릿, 1996), <나쁜 교육>(페드로 알모도바르, 2004) 등이 있습니다.
1.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행동 때문에 문제아 취급을 당하는 프랜시와 그를 문제아로 취급하는 누전트 부인, 이 둘 중 누가 더 문제가 있는 것일지 생각해 보세요.
길잡이: <푸줏간 소년>이 개봉될 즈음, 미국 영부인이었던 힐러리 로댐 클린턴의 교육학 저서가 출간된 바 있습니다. 남편이 성추문으로 연일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상황에도 힐러리는 끄떡없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책까지 펴낸 것이지요. 책 제목은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에는 온 마을이 다 필요하다』였습니다. 아이는 가족뿐 아니라 학교 선생님, 친구, 동네 어른 등 주변인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 그들의 평판에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문제아 뒤에는 늘 문제 어른이 있다던가요? 힐러리의 책 제목대로라면, 영화에서 처벌받아야 할 진짜 죄인, 적어도 공범자는 주인공 소년이 아니라 주변의 어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에게 봉변당했다는 이유로 청부 폭력배를 동원하는 누전트 부인이나 힘없고 의지할 곳 없는 소년을 성 노리개로 삼는 고위 성직자, 일자리를 미끼로 추문을 숨기도록 강요하고 수도원 당국이나 누전트 부인의 사주로 프랜시를 왕따시키는 기숙사 사감 같은 어른들 말입니다.
2. 누전트 부인이 왜 프랜시와 동네 사람들에게 거만하게 대했는지 이해할 수 있나요?
길잡이: 누전트 부인의 행동은 아일랜드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아일랜드 국기인 삼색기 왼편의 초록은 아일랜드계인 켈트족과 구교를 의미하고, 오른편의 주황은 잉글랜드계인 앵글로색슨족과 신교를 의미합니다. 가운데의 흰색은 이 두 민족의 화합을 상징하지요. 하지만 국기에 표현된 이상과는 달리, 아일랜드는 원주민과 나중에 유입된 잉글랜드인 간의 대립과 반목이 심하기로 유명합니다.
이들의 갈등은 닐 조던의 <크라잉 게임〉(1992),< 마이클 콜린스> (1996)와 폴그린그래스의 〈블러디 선데이>(2002) 같은 영화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누전트 부인은 잉글랜드 출신으로 민족적 우월감을 가진 한편,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여성의 처지였기에 타인을 배제하고 거리를 두어 자신을 보호하려는 강박을 지녔던 것 같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오히려 다른 이들을 경계하고 무시하는 일례로 볼 수 있겠습니다.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 문학동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