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he Cure
감독: 피터 호턴 (1995년, 미국)
등장인물: 브래드 렌프로(에릭), 조지프 마젤로(덱스터)
배경: 20세기 미국
상영: 시간 97분 (12세 관람가)
담 넘어서기로 시작되는 아주 특별한 우정
<굿바이 마이 프렌드>의 원제인 'The Cure'는 '치료, 치유,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에이즈에 걸린 덱스터와 그 옆집에 사는 소년 에릭입니다. 열두 살 소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 내고 있습니다. 둘 사이에 피어나는 특별한 우정과 이들을 바라보는 두 어머니의 갈등이 교차되며, 정작 환자에게 힘든 것은 병 그 자체보다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편견의 벽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킵니다.
첫 장면부터 산만한 행동거지가 눈에 띄는 에릭은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사는 외로운 소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혈을 잘못 받아 에이즈에 걸린 덱스터가 옆집으로 이사 옵니다. 덱스터 역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지만, 학교는커녕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자기 집 마당 안에서만 놀아야 합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따로따로 놀던 둘은 얼마 안 있어 서로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담장 사이로 덱스터를 지켜보던 에릭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덱스터에게 왠지 모를 호감을 느끼고 담장을 넘어 덱스터에게 다가갑니다. 둘은 만나자마자 친밀감을 느끼고, 함께 놀거나 장을 보러 다니면서 친형제처럼 지냅니다.
덩치가 커 언뜻 보면 형 같은 에릭은 덱스터의 병을 고치기 위해 시냇가의 이름 모를 풀들을 달여 먹입니다. 또 스스로 창안한 사탕 식이요법을 실행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덱스터가 독초를 달여 먹고 응급차에 실려 가는 바람에 둘의 우정이 발각됩니다.
에릭의 어머니는 아들이 옆집 에이즈 환자와 어울렸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합니다. “그 앤 홍역이 아니라 에이즈야!"라고 소리치며 매까지 들어 아들을 가둬 두려 하고, 덱스터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두 아이가 만나는 일이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모욕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에릭은 어머니의 꾸중도 매도 아랑곳 않고 하루 빨리 에이즈 치료약을 찾아내는 데만 열중합니다. 그러다 뉴올리언스에 있는 피시번 박사가 에이즈 치료제를 발견했다는 잡지 기사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둘을 떼어 놓으려는 어머니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캠프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에릭은 테스터와 함께 가출하여 둘만의 원정을 떠납니다.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뉴올리언스를 찾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고무보트를 타고 뉴올리언스까지 가려는 생각도 하지만, 1200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보트로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임을 안 아이들은 뉴올리언스행 유람선이 있는 선착장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유람선에 타고 있던 히피 청년들은 뱃삯을 내라며 에릭과 덱스터의 전 재산을 갈취해 가고, 출발할 생각이 없는 듯 빈둥거리며 놀기만 합니다. 날이 저물고 잠들었던 덱스터가 뒤척이며 괴로워하자 에릭은 악몽이라도 꾸었느냐고 묻습니다. 덱스터는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두렵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우주는 "너무 먼 데다 끝없이 춥고 어두운 곳이라 한번 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는 덱스터에게 에릭은 자신의 운동화 한 짝을 벗어 줍니다. 자는 동안 이걸 꼭 잡고 있으라며, 깨어났을 때 냄새나는 운동화 한 짝이 보이면 아직 지구에 있는 거니 안심하라고 말해 줍니다.
다음 날 아침, 에릭은 히피 청년들에게 서둘러 떠날 것을 부탁하지만 무시당하자 뱃삯으로 뺏겼던 돈을 도로 훔쳐 덱스터와 달아납니다. 얼마 못 가 청년들에게 발각되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덱스터는 칼로 손바닥에 상처를 내고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밝히며 "내 피는 독이야!"라고 위협합니다. 위기를 모면한 덱스터는 혼자 상처를 싸매며 에릭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지만, 에릭은 "그건 바이러스일 뿐, 치료법이 개발되면 너도 다른 사람과 똑같아질 거야!”라고 덱스터를 위로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옵니다.
병원에 입원한 덱스터는 담담한 모습으로 SF 영화(스타 트렉>을 보며 먼 우주를 꿈꿉니다. 문병 온 에릭은 덱스터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체스, 카드놀이, 꼭두각시 인형놀이 등 끊임없이 놀 거리를 생각해 냅니다. 두 아이가 개발한 놀이들 중 압권은 덱스터가 죽은 척했다가 벌떡 일어나 의사와 간호사들을 놀라게 하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장난처럼 죽음을 연습하던 어느 날, 덱스터는 그야말로 장난처럼 죽음을 맞습니다. 덱스터는 죽는 순간까지 에릭 덕분에 공포도 외로움도 느끼지 않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덱스터의 어머니는 예정된 일인 양 아들의 죽음을 담담히 지켜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건강한 아이들을 보고 그만 에릭 앞에서 눈물을 쏟습니다. 며칠 후 장례식에 온 에릭을 배웅하던 덱스터의 어머니는 운동화를 한 짝만 신고 있는 에릭을 보고 의아해합니다. 하지만 방에 들어가 아들의 시신을 본 순간 의문이 풀립니다. 창백한 얼굴에 평온한 미소를 띤 채 누워 있는 덱스터의 손에 꼭 쥐여진 헌 운동화 한 짝, 한편 에릭은 덱스터와 함께
놀던 강물에 두 발을 담그고, 덱스터에게서 벗겨 온 구두 한 짝을 강물에 흘려보내며 작별을 고합니다.
1. 에이즈 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인 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에 감염되면 체내 면역 체계가 파괴되어 병원균에 저항하지 못하고 마침내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릅니다. 1981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된 HIV는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한국의 경우 1985년 첫 사례가 확인되었습니다. 감염자 중에는 15세 이하 어린이도 상당수 존재하며, 아프리카에서는 감염된 채 태어나는 신생아와, 부모를 병으로 잃은 '에이즈 고아‘가 늘고 있습니다. 에이즈 감염자가 등장하는 영화로는 〈필라델피아>(조너선 드미, 1993), 〈너는 내 운명〉(박진표, 2005),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장 마크 발리, 2013) 등이 있습니다.
2. 덱스터가 여행 도중 텐트 안에서 신발을 끌어안고 자는 장면, 그리고 홀로 남은 에릭이 덱스터의 신발을 강물에 흘려보내는 장면에서 신발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요?
길잡이: 여러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발 중. (굿바이 마이 프렌드)의 운동화 한 짝만큼 콧날을 시큰하게 만드는 경우가 또 있을까요? <포레스트 검프>(로버트 제멕키스, 1994)에서 주인공 포레스트의 엄마가 “사람들이 신은 신발만 보아도 그 주인의 직업과 성격, 기분을 알 수 있단다.” 라고 말했듯 신발은 그 사람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는 소품입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집에서 아이를 낳던 시절만 해도 산모가 죽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애를 낳으러 방으로 들어가는 여자들은 “내가 저 신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빗돌 위에 놓인 고무신을 쳐다봤다고 합니다. 이처럼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신발이란 물건은 예로부터 존재감을 확인하는 상징으로 많이 쓰입니다. 에이즈 치료약을 찾는 여행에서 덱스터의 공포를 덜어 주었던 에릭의 운동화 한 짝, 그리고 나중에 덱스터의 장례식에 참석한 에릭이 덱스터의 구두 한 짝을 들고 나오면서 그 대신 가슴에 올려놓은 운동화 한 짝은 곧 에릭 자신을 상징하는 소도구가 아니었을까요?
그 누구도 함께 갈 수 없는 저승길, 친구가 혼자서도 외롭지 않도록 신발 한 짝을 통해서나마 동행하고 싶어 하는 에릭의 엉뚱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3.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편견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길잡이: 에이즈의 전파 경로는 감염자와의 성 접촉이나 감염된 혈액, 감염된 주사기나 피어싱 기구 등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감염자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도 에이즈에 감염됩니다. 하지만 에이즈는 다른 전염병과 달리 음식, 물, 공기, 악수, 포옹, 변기, 목욕탕 등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에이즈 감염자라고 하면 무조건 동성애자나 부적절한 성관계를 한 사람으로 몰아 그들의 인권을 무시해 왔고, 따라서 감염자 스스로도 숨기려고만 드는 음지의 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에이즈가 수혈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고 공기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부각됩니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면 먼저 에이즈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얼마나 많은 마음의 울타리를 치고 모르는 세상에 대한 편견에 가득 차 있는지 한번 환기해 보는 건 어떨까요?
4. 덱스터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길잡이: 항상 다정하면서도 장난스러운 엄마, 진료 시간이 아닐 때도 대화 상대가 되어 주고 카드놀이도 함께해 준 친절한 의사들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담을 넘어 성큼 다가온 이후로 항상 무언가를 함께 타고 다니며 덱스터를 치료하려 했던 에릭의 존재는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에릭은 사탕 식이요법을 시험하던 때엔 덱스터를 슈퍼마켓 카트에 태우고 다니고, 약초를 찾아다닐 때는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갑니다. 치료제를 구하러 뉴올리언스로 향했을 때도 둘은 함께 유람선에 올랐습니다. 이런 동승(同乘)의 모습은 질병의 치료 '결과'를 떠나 영혼의 치유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덱스터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놀이와 웃음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에릭은 덱스터의 침대를 놀이기구로 이용하고, 덱스터의 소맷자락을 잡아끌며 놀이에 끌어들여 덱스터를 웃게 만듭니다. 거듭되는 놀이 중에, 덱스터는 힘없이 눈을 감으면서도 다음번 장난에는 어떤 의사 혹은 간호사가 불려올지 궁금해하며 웃음 짓다가 세상을 떠나갑니다. 이런 놀이는, 죽어 가는 덱스터는 물론 친구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에릭에게도 그 공포를 완화시켜 주는 예행연습이 아니었을까요?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 문학동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