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Central do Brasil
감독: 바우테르 살리스(1998년, 브라질 프랑스)
등장인물: 페르난다 몬테네그로(도라), 비니시우스 지을리베이라(조슈에)
배경: 20세기, 브라질
상영 시간: 113분 (15세 관람가)
수상: 1998년 베를린영화제 최우수작품상·여우주연상,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시네마 초청작
나이를 뛰어넘어 미움이 우정으로 승화되는 ‘길’
<중앙역>은 우리에겐 아직 낯선 나라 브라질의 모습을 보여 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바우테르 살리스는 오랫동안 다큐멘터리를 찍어 온 감독답게, 리우데자네이루 중앙역 주변의 지저분한 뒷골목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주인공 도라 역의 페르난다 몬테네그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만큼 연기력을 인정받은 브라질의 국민 배우이지만, 조슈에 역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실제 중앙역을 지나다니던 보통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중앙역 한구석에 삐걱거리는 책상을 놓고 앉아 있는 여인의 이름은 도라, 예전엔 학교 선생님이었으나, 현재는 문맹자들을 위해 편지를 대필하는 일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방탕
한 아들을 용서하겠다는 아버지, 지난밤 함께했던 연인을 그리워하는 청년, 아들이 아빠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감추는 여인 등 도라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받아 적는 사연들은 애절합니다.
하지만 도라는 편지들을 부치지 않습니다. 이런 청승맞은 편지는 전해 봤자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모자가 떨어져 사는 아빠에게 부칠 편지를 쓰기 위해 도라를 찾아옵니다. 엄마는 아빠를 원망하는 듯 하면서도 내심 그리워하는 마음을 진지하게 이야기하지만, 아이는 책상 위에서 팽이를 돌리며 도라의 신경을 거스릅니다. 그러고는 다음 날 다시 와 편지를 수정해 달라 부탁하는 엄마 곁에서 "돈만 받고 안 부치면 어떡해?"라는 맹랑한 말을 던져 도라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역에서 나와 길을 건너던 조슈에는 팽이를 떨어뜨립니다. 팽이를 집으러 가는 조슈에를 쫓던 엄마는 대형 버스에 치이고 맙니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즉사하고, 고아가 된 조슈에는 도라에게 달려와 아빠에게 다시 편지를 써 달라고 조르지만 돈이 없는 조슈에를 도라는 냉정히 거절합니다. 다음 날 역 구내 바닥에서 자고 있는 조슈에를 보고, 소매치기와 총기 사고 등 역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 불안해진 도라는 조슈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옵니다.
하지만 조슈에는 사사건건 도라에게 대들기만 합니다. 게다가 서랍 가득 쌓인 부치지 않은 편지들을 발견하고 도라를 비난합니다.
도라는 조슈에를 입양 기관에 맡기러 가지만, 그곳의 정체가 장기 밀매소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극적으로 조슈에를 데리고 도망칩니다. 미안한 마음에 도라는 편지의 주소를 찾아 조슈에를 아빠에게 데려다주기로 결심합니다. 거친 모래바람이 부는 거리에 내던져진 두 사람의 행로를 따라, 영화는 본격적인 ‘로드 무비' 로 전환됩니다.
조슈에와 도라는 휴게소에서 잠시 내렸다 버스를 놓친 데다 가방마저 버스에 두고 내려 차비 한 푼 없는 신세가 되지만, 다행히 인상 좋은 트럭 운전사를 만나 잠시 동행합니다. 하지만 또다시 두 사람은 길에 버려지고, 차비 대신 시계를 끌러 주고 다른 트럭 짐칸에 자리를 얻습니다. 둘 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품고 있어서일까요?
아니면 한마디 말도 없이 그들을 짐짝처럼 떨구고 떠난 트럭 운전사에 대한 배신감을 나누었기 때문일까요? 서로에 대한 미움은 점차 믿음으로 변해 가고, 고단한 여정은 나이를 뛰어넘어 두 사람을 하나로 묶습니다.
하지만 피곤에 지친 도라가 무심코 "네 부모가 너를 낳은 건 실수다.“ 라고 내뱉자 상처받은 조슈에는 군중 사이로 뛰쳐나갑니다. 당황한 도라는 성급히 조슈에를 찾아 나서고, 군중의 모습이 360도 패닝 기법으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다행히 재회한 둘은 마을 사람들이 성 시스로 상 앞에서 소원을 비는 것을 목격하고, 조슈에는 도라에게 소원 대필 사업을 제안합니다. 둘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소원을 대신 써 주면서 순식간에 많은 돈을 법니다. 동업을 하며 더욱 가까워진 조슈에와 도라는 성 시스로 상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조슈에의 아빠를 찾아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엔 아빠는 없고, 조슈에의 이복형제로 보이는 두 형만이 살고 있을 뿐입니다. 아빠와 마찬가지로 목수인 형들은 조슈에를 제재소에 데리고 가 나무 팽이를 만들어 줍니다. 거실엔 조슈에 엄마와 아빠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큰형은 도라에게 그동안 아빠가 보관해 온 편지 한 통을 읽어 달라 부탁합니다.
세 형제 앞에서 아빠가 육 개월 전 조슈에의 엄마에게 부치려던 편지를 읽는 도라. 주된 내용은 가족 다섯 명이 함께 모여 살자는 것입니다. 조슈에는 도라가 읽어 주는 편지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지만, 아빠가 엄마를 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흡족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도라는 잠든 조슈에를 남겨 두고 몰래 떠납니다. 거실에 있는 사진 밑에, 조슈에 아빠가 엄마에게 부치려 했던 편지와 조슈에 엄마가 아빠에게 부치려 했던 편지 두 통을 나란히 놓고 버스에 탑니다.
그러고서 조슈에에게 보낼 도라의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옵니다. “난 오랫동안 부치지 않을 편지만 써 왔다. 하지만 이 편지는 꼭 부친다고 약속하마. 아빠는 네 말대로 꼭 돌아오실 거야. 너는 나보다 형들과 있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 날 기억하고 싶을 땐 우리의 작은 사진을 꺼내 보렴.”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나도 나의 아빠가 보고 싶구나! 조슈에, 그리운 게 너무 많아!"
1. 조슈에가 갖고 놀던 팽이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길잡이: 조슈에에게 팽이는 장난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조슈에는 중앙역에서 떨어뜨린 팽이를 집으러 가다 엄마를 잃고, 아빠를 찾아 나선 길에서는 팽이를 매개로 이복형과 마음이 통하게 됩니다. 팽이는 조슈에의 불행과 행복이 교차되는 실마리이자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조수에의 운명을 보여 주는 물건으로 보입니다. 또 혼자서도 팽그르르 잘 돌아가는 모습을 보자면, 조슈에 자신을 대변하는 상징물로도 비쳐집니다.
2. 조슈에 몰래 떠나간 도라가 편지를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길잡이: 조슈에가 꿈에 그리던 아빠는 만날 수 없었지만 조슈에를 보자마자 말장난을 거는 큰형의 여유 있고 다정한 모습을 보고 도라는 안심한 것 같습니다. 처음엔 뚱해 보였지만 작업실에 들어가 팽이를 만들어 주고 조슈에와 함께 축구공을 차는 둘째 형을 지켜보고서 도라는 조슈에가 앞으로 형들과 사는 것이 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굳힌 듯합니다. 여행 막바지에 조슈에와 함께 돌아가기로 결심한 터였지만, 결국 자신보다는 조슈에의 입장을 배려해서 혼자 몰래 떠나 버린 것일 테지요.
조슈에의 아버지를 찾아 떠난 여행길은 도라에게도 헛되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라는 그제서야 보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솔직하게 끄집어내고 어릴 적 상처를 보듬었으니까요. 게다가 이제껏 남의 편지만 대필해 주던 도라가 처음으로 자필 편지를 썼고, 도라의 말대로라면 그 편지는 조슈에에게 부쳐졌을 테니까요. 도라의 편지는 조슈에에게 전하는 이야기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도라가 스스로에게 전하는 독백은 아닐까 합니다.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 문학동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