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Dancer in the Dark
감독: 라르스 본 트리에르(2000년, 덴마크 외 12개국)
등장인물: 비외르크 (셀마 제스코바), 카트린 드뇌브(캐시 크왈다), 빌 휴스턴(데이비드 모스), 카라 시모어(린다 휴스턴)
배경: 20세기, 미국
상영 시간: 140분(12세 관람가)
수상: 2000년 칸영화제 작품상 · 여우주연상
백치 같은 엄마의 슬픈 노래와 춤
감독 라르스 본 트리에르는 덴마크 출신이며 영화의 사실주의를 강조한 '도그마 95 선언' 으로 유명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핸드헬드 기법을 통해 공산권 체코에서 건너온 이민자이며 일용 노동자이자 세입자, 게다가 미혼모라는 '어둠'뿐인 상황에 있는 셀마의 불안한 처지를 대변합니다. 〈어둠 속의 댄서>는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작품이지만 해피엔딩, 스타 시스템, 화려한 볼거리 등 기존 뮤지컬의 관습을 깨 칸영화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데뷔작으로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쥔 비외르크는 아이슬란드의 록 가수이자 작곡가입니다. 라르스 본 트리에르 감독은 처음엔 영화 음악을 의뢰하고자 그녀를 찾아갔다가, 일단 만나 보자 영화 주인공에도 적합하겠다 싶어 음악과 셀마 역 모두를 그녀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비외르크는 연기 경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실제로 셀마가 된 듯 배역에 몰입하여 독특한 스타일의 뮤지컬을 펼쳐 보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셀마가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마이 페이버릿 씽(My Favorite Thing)〉을 부르며 뮤지컬 연습을 하는 장면입니다. 셀마는 체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로, 곧 열세 살이 되는 아들 진과 함께 트레일러에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셀마가 안경을 낀 것은 유전적 원인으로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시력을 잃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 역시 그대로 두면 앞을 볼 수 없게 될 처지이기에, 셀마는 아들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악착같이 공장에서 돈을 법니다. 밤낮 구분이 힘들 만큼 시력이 떨어졌음에도, 언제 프레스에 손이 잘려 나갈지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야근까지 합니다.
그녀의 유일한 기쁨은 춤과 노래를 연습하며 상상의 뮤지컬에 빠지는 것입니다. 야간작업 중 절단기의 시퍼런 칼날이 쨍하고 내리치는 소리, 톱니바퀴와 나사가 철컥거리는 소리에 맞춰 노래하고 탭댄스를 추는 장면은 세상의 모든 소리, 심지어 소음까지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감독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셀마가 사는 트레일러 앞에는 그 주인인 젊은 부부의 집이 있습니다. 경찰관인 남편 빌은 아내 린다의 사치를 감당하기 힘들어 합니다. 빌은 셀마에게 어려움을 털어놓고, 셀마 역시 아들의 눈 수술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는 비밀을 말합니다. 퇴근길에 셀마는 지나가던 빌의 차를 얻어 타는데, 빌은 셀마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자신은 자살할지도 모른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셀마는 거절합니다. 그날 저녁 빌은 셀마가 공장에서 받은 일당을 통에 담는 모습을 목격하고, 장님이나 다름없는 셀마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훔쳐 갑니다.
다음 날, 어두운 눈 탓에 기계를 망가뜨리고 해고된 셀마는 집으로 돌아오는 철길을 따라 노래를 부르며 고통을 달랩니다. 집에 도착해 마지막 일당을 통에 넣으려는 순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아 놓은 전 재산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셀마는 주인집으로 달려갑니다. 셀마는 빌에게 제발 그 돈만은 돌려 달라고 간청하지만, 빌은 돈을 움켜쥐고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고 외칩니다. 돈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셀마는 실수로 빌에게 총을 쏘고, 결국 살인 용의자로 법정에 섭니다.
공장 동료 캐시 크왈다와 친구 제프가 무죄를 입증해 줄 변호사를 보내지만, 셀마는 수술이 더 늦어지면 아들도 시력을 잃게 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2,056달러, 셀마가 이제껏 피땀 흘려 모은 돈의 총액입니다. 변호사 수임료냐, 아들의 수술비냐. 셀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셀마는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노래를 부릅니다. 뮤지컬을 연습할 때, 공장에서 야간작업할 때, 그리고 시력을 속이고 일하다 쫓겨나 빛도 희망도 없을 것 같은 절망의 순간에조차 "과거도 보았고 미래도 알아요. 난 더 이상 볼 것이 없답니다.” 하며 노래 부릅니다.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 울면서 방아쇠를 당기고, 죽어가는 빌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바보 같은 셀마, 다 너 때문이야."라는 자책의 노래를 관객에게 들려줍니다. 재판정에서도, 라디오조차 허용되지 않는 독방에서도 셀마는 상상의 뮤지컬을 공연합니다.
죽음 앞으로 걸어가는 순간까지도 셀마는 노래를 부릅니다. 사형 직전 건네받은 아들의 안경을 움켜쥐고 마지막을 맞는 셀마. 뮤지컬을 볼 때마다 그래 왔듯 “이것은 마지막 노래가 아니라 마지막 전의 노래일 뿐!"이라며 자신을 위로하는 가운데, 셀마의 목에 감겼던 밧줄이 아래로 툭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최후의 노래라고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알지 못해, 최후의 노래로 만드는 건 우리 자신에게 달렸단다.“ 라는 자막이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1. 셀마는 조용한 감옥 생활을 답답해합니다.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나요?
길잡이: 눈도 안 보이는데 소리까지 없다면 세상과 차단된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그랬던 건 아닐까요? 친구 크왈다와 극장에 갔을 때도, 장님이나 다름없는 셀마에게 크왈다는 뮤지컬 배우의 움직임을 일일이 이야기해 줍니다. 어떤 때는 손바닥에 그림을 그려 주기도 하고요. 공장 안의 소음과 기계 소리조차 셀마에게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을 것입니다. 그런 셀마가 이야기할 친구는 물론 라디오 듣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독방에 갇히자 환풍구의 소음에 맞추어 자신이 주인공이 된 뮤지컬을 공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사형장으로 가는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에도, 셀마는 간수의 딱딱 구둣발 소리에 리듬을 싣고 간수를 따라 걸으며 노래를 불러 공포를 쫓아냅니다.
2. 여러분의 '페이버릿 씽(favorite thing)'은 무엇인가요?
길잡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셀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노래합니다. "벌에게 쏘였을 때, 개에게 물렸을 때, 기분이 우울할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전혀 슬프지 않아요. 빗방울과 장미, 새끼 고양이의 수염, 구릿빛 주전자와 따스한 털장갑, 끈으로 묶은 갈색 포장지…….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죠. 크림색 망아지, 바삭한 사과 파이, 초인종과 썰매 방울, 국수를 곁들인 슈니첼, 달을 등지고 나는 기러기 떼….
이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랍니다.” 저 역시 감옥은 아니라도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답답한 순간이나 겁에 질릴 때면 셀마의 노래를 떠올리곤 합니다. 제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치과에 가면 들리는 연마기 소리인데, 이럴 때 〈마이 페이버릿씽> 노래를 떠올리거나, 혹은 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죠. 예를 들면 연잎에서 또르르 굴러 내리는 이슬방울, 담양 소쇄원 대숲에서 나는 바람 소리, 해안을 맨발로 걸을 때 느껴지는 모래알 감촉, 목욕시킨 갓난아이의 머리에서 나는 캐러멜 냄새, 그리고 나른한 오후에 마시는 우유 넣은 홍차를 떠올리면 현실의 두려움을 조금은 잊을 수 있답니다.
3. 내가 만약 셀마의 아들 진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요? 어머니의 목숨과 자신의 시력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까요?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 문학동네). 끝.